목록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206)
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스펙의 배신 최근 10년쯤 동안 자주 거론되는 스펙이란 개념은 그리 참신한 것이 아닙니다. 개인의 이력 또는 프로필의 동의어인데 단지 우리가 랩톱이나 핸드폰 같은 전자기기에 익숙해지면서 그 제품을 살 때 외견만으로는 알 수 없는 메모리의 크기나 속도 같은 재원을 먼저 살펴본다는 측면에서 그걸 사람에게 응용한 것이죠. 그래서 날 처음 보는 사람은 나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용설명서(이력서)에 써 있는 재원을 갖춘 유기체 정도로 생각하는 겁니다. 스펙이란 ‘지금 내가 가진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인식하는 내 ‘재원’입니다 사실 인간적인 사람냄새로 따지자면 이력이나 프로필에 비해 훨씬 후퇴한 개념인 셈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게 나오면 우르르 달려드는 우리들은 그게 뭐 대단한 거라도 되는 것..
상사보다 기발한 부하직원은 퇴사각? 예전 한화 동료 한 명이 기억납니다. 일본에서 중학교까지 나와, 내가 봉제우의 일본수출을 담당할 때 그 친구는 PVC 우의 일본수출을 담당했습니다. 나중에 증명되고 말았지만 너무 고퀄의 인간에게 너무 저급한 업무를 담당시켰던 겁니다. 그때 그 친구가 냈던 많은 아이디어들 중에 당시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자동세차기를 들여오자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자동차를 진입시켜 놓으면 스스로 알아서 30~50미터 정도 전진하며 물뿌리고 비누거품 뿌려 닦고 씼고 하는 거 말입니다. 당시 한화그룹은 경인에너지를 가지고 있었고 관련 주유소들도 많이 있었죠. 게다가 당시엔 아직 그런 자동세차장이 하나도 없었으니 업계 선발주자가 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1990년 전후의 일입니다. ..
자카르타 엑소더스 대단한 영향력을 본 적이 있습니다. 1972년에 서만수 선교사가 세운 자카르타한인연합교회가 인도네시아 1호 한인교회입니다. 2009년 소천하신 서목사님을 추앙하는 사람들은 자카르타에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두번째 한인교회는 1982년에 세워진 수라바야 한인교회입니다. 이 교회 개척에 참여한 한숭인 목사님은1988년 자카르타로 넘어와 자카르타 선교교회를 세우는데 자카르타에서 두번째 한인교회가 됩니다.여기서 많은 교회들이 파생되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한인교회사 초창기에 활약한 한목사님은 이상하게도 앞서 서목사님에 비해 평가가 낮고 심지어 악평도 꽤 많더군요. 선교교회는 몇 차례 내홍을 겪으며 열린교회, 주님의교회, 자카르타한인교회 등이 갈라져 나오는데 그중 한 무리가 200..
의지보다 위치 금난새 지휘자처럼 어떤 조직의 리더나 말에 힘이 실릴 위치에 있는 사람이 개선책을 제시하고 개혁을 주도한다면 성공할 개연성이 매우 크지만 입지가 굳건하지 못한 사람이 뭔가 개선하려 하면 온갖 반대가 무성하고 네가 뭘 아냐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조직이나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어떤 개혁을 이끄는 것도 대개는 그 주체가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달렸습니다. 조직을 구축하여 그조직의 최정점에 선 사람은 그간 자신의 이룬 성공이 가장 우선시하는 성공사례여서 그간 자신의 훌륭한 경험이 오히려 아랫사람들이 참신한 의견을 모두 커트해 버리는 악성 필터가 되곤 합니다. 요컨대 꼰대가 되어버리는 거죠. 오래 전 한 지인이 자기 회사를 나한테 맡기고 본국에서 벌어진 일들을 수습..
동료과 가족 사이 내게 동료 복은 그리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음, 그게 동료 복이 없었던 게 아니라 동료 자체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일했던 대기업에 그렇게도 사람들이 많고 동기들도 많았지만 동료라 말하긴 어려웠습니다. 같은 팀 사람이라 해서 서로 같은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일이 연결된 것도 거의 없었습니다. 내가 만드는 옷은 옆 자리에 앉은 친구가 만드는 옷과 원단부터 시작해 주요 부자재 공급선들이 다 달랐고 생산공장도, 해외 바이어도 모두 달랐습니다. 서로 도와줄 수 있는 부분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없었고 만나는 사람도, 출장지도, 심지어 평소 주로 사용하는 언어도 틀렸습니다. 결국 같은 공간에 앉아 있을 뿐 서로 다른 나라에 사는 셈이었으니 동료가 되긴 애시당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
동반성장 내가 근무했던 멸공관의 정식명칭은 ‘안보통제부’라는 곳이었는데 이름만 봐서는 무슨 정보부서 같은 이 부대가 하는 일은 임진각에서 자유의 다리를 건너 GOP 지역으로 들어오는 안보관광객들을 안내해 멸공관에서는 안보전시관과 10분짜리 반공영화를 보여준 후 도라전망대와 제3땅굴을 견학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러고 나면 JSA에서 연락장교가 나와 우리 관광팀을 인수해 판문점을 데려가는 경우도 있었고 순서가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외국인들도 많이 찾아왔는데 특히 국군의 날 전후엔 수행 보좌관들을 거느린 각국 장군들과 국방장관들로 브리핑룸이 가득 찼고 평소에도 훈련함을 타고 온 각국 해군사관생도들, 각국 장차관들도 적잖게 찾아왔습니다. 당시는 전두환의 5공에서 노태우의 6공으로 넘어가던 시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여러 번 내 사업을 해보다가 결국 실패하거나 접고난 후 절실히 느낀 건 역시 난 보스 타입이 아니라 참모 타입이란 것이었고 그것도 보스 가까이의 측근보다는 좀 멀리 떨어진 곳, 군으로 치면 전초기지나 GP 장 같은 곳을 맡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고백하건데 난 들이받는 타입입니다. 그리고 예전엔 백번 동의했지만 이젠 전혀 동의할 수 없는 이야기는 같은 조직에 속한 사람들은 같은 지향점을 바라봐야 한다는 얘기에요. 모두 같은 곳을 보면 결국 사고날 뿐입니다. 왼쪽 오른쪽도 보고 가끔은 뒤도 봐야 해요. 각각 보는 곳이 다르고 생각과 능력이 다들 달라야 회사나 조직이 돌아가는 것이죠. 훌륭한 신입사원을 채용하고 놀라운 실력을 보인 매니져를 스카우트 해와서 그 능력만 잘 이용하면 ..
그 성향이 어떤 종류인가, 그게 문제죠 상대방 입장을 감안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이나 성소수자들에게 대해 연민과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스스로 다양성을 존중한다고 말하긴 좀 이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들, 수락할 수 없는 일들이 분명 존재하니까요. 개를 아무리 좋아해도 나를 물어뜯으려 달려드는 개까지 좋아할 수 없는 것처럼요. 누군가 나와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곤란하거나 힘들게 여겼던 적은 없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든 사람들이 얼마간 서로 다른 성향을 갖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성향의 종류가 간혹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건 사실입니다. 자기가 대장이 되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향처럼요. 2019년 한인사 편찬위원회가 구성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