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개인의 스펙은 관계의 출발점일 뿐 본문
스펙의 배신
최근 10년쯤 동안 자주 거론되는 스펙이란 개념은 그리 참신한 것이 아닙니다. 개인의 이력 또는 프로필의 동의어인데 단지 우리가 랩톱이나 핸드폰 같은 전자기기에 익숙해지면서 그 제품을 살 때 외견만으로는 알 수 없는 메모리의 크기나 속도 같은 재원을 먼저 살펴본다는 측면에서 그걸 사람에게 응용한 것이죠.
그래서 날 처음 보는 사람은 나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용설명서(이력서)에 써 있는 재원을 갖춘 유기체 정도로 생각하는 겁니다. 스펙이란 ‘지금 내가 가진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인식하는 내 ‘재원’입니다 사실 인간적인 사람냄새로 따지자면 이력이나 프로필에 비해 훨씬 후퇴한 개념인 셈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게 나오면 우르르 달려드는 우리들은 그게 뭐 대단한 거라도 되는 것처럼 다들 차용해 사용하는 것이고 그런 예로는 패러다임, 세계관, 소확행 같은 단어들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스펙은 사실상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시작하는 출발점입니다. 50~60대 또는 그 이상의 사람들 중엔 출신지, 출신학교, 전현직 직업과 직장으로 상대방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게 스펙이죠. 바로 그 지점에서 관계가 시작되는 겁니다. 그게 우리가 주류세계와 처음 관계를 맺는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니 누가 어느 매체에 올린 글을 보고 감명을 받아 그를 만나보려 하고 이메일로 독후감을 보내며 서로 교류하게 되거나, 길가에 버려진 더러운 새끼고양이를 안고 돌아오거나 누군지도 모를 지방 또는 해외의 고아와 난민들에게 지원금을 보내는 것이 더욱 진기하고 고귀한 일로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스팩으로 만나 그 스팩에 따르면 이 사람은 이런 유형의 인간이겠거니 생각했는데 그가 작가와 이메일로 교류하고 냥줍 해오고 모르는 이를 돕는 걸 알게 되면 놀라며 감탄하기도 하겠지만 때로는 실망하고 조소하고 깔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S대와 학군 소대장 출신에 삼성 계열사 출신이란 스펙에 무색하게 한동안 교민들을 대상으로 사기를 치고 다녔던 인물도 한 명 압니다. 스펙을 토대로 재구성된 인간과 현실 속의 동일인이 너무나 달라 느끼는 생경함을 교회에서 알게 된 사람을에게서 가끔 느낍니다. 그가 스팩대로 독실한 안수집사라면 사회에서 저렇게 살 리 없는데 말이죠.
그래서 스팩은 옷에 붙은 라벨 같은 것 같습니다. 라벨에 순면 100%라 써 있다 해서 반드시 편안한 옷이 아닌 것처럼 스펙과 조건을 맞춰 만나 선택하는 관계에서는 파국의 가능성이 반품의 가능성처럼 언제나 따라붙는 법이라 생각합니다.
효율적으로 스펙만 검토하는 습관보다 그 주인의 인성을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2021. 4. 2.
'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실패담을 얘기하는 사람들 (0) | 2021.04.28 |
---|---|
오른쪽 가슴엔 인성 표시 마크를 (0) | 2021.04.27 |
기발한 아이디어의 말로 (0) | 2021.04.25 |
어디가서 선한 영향력이라 말하려면 (0) | 2021.04.24 |
남의 집에선 도둑을 잡아줘도 욕을 먹는다 (0) | 2021.04.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