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적도에 부는 바람 (9)
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1. 내 차의 좌우를 쌩쌩 지나치는 오토바이들을 볼 때마다 그들이 그렇게나 부럽던 적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기름이 떨어져도 저들은 한화 500원어치만 주유하면 곧 다음 목적지를 향해 내달릴 수 있지만 내 차의 기름이 떨어지면 무슨 돈으로 기름을 채워야 할 지 아무런 기약도 없던 시..
이 이야기의 배경은 이제 어두운 회색이 되었습니다. 그 회색이 점점 짙어지면서 칠흑 같은 검정으로 변해가던 중이었고요.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던 무스티카 라투 건물 5층의 사무실은 결국 공중분해되고 말았습니다. 직원들은 모두 뿔뿔히 흩어진 지 오래였고 비싼 돈을 주고 사왔던 ..
사업이 망가져도, 파산을 해도, 밥은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느 날 일찍 귀가한 나는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시작하려는 중이었습니다. 이 식탁에 둘러 앉은 사람들이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고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고 돌봐 주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일을 하는 이유도..
감독관은 수라바야로 돌아간 후 연락 한 통 해오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끈다리에 날아 갔다가 평생 잊지 못할 무시무시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었죠. 그에게 직접 듣지 못했지만 수라바야에서 그를 만난 요한이 전해 준 바로는 감독관은 끈다리에 도착한 다음 날 제재소를 거..
릴리와 루벤은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한 후 정말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참 많이도 다투었습니다. 그런 싸움에는 서로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있었어요. 빠사라야(Pasaraya)의 스타벅스(Starbucks) 커피점 야외탁자에 앉아 있던 중 아파트 전화비를 좀 내달라며 루벤이 지..
릴리가 루벤을 피하는 이유와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릴리는 기본적으로 남자들을 혐오하고 있었던 거에요. 릴리가 자카르타에 처음 온 것이 1993년쯤이니 나와 만난 것은 그녀가 자카르타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지 2~3년쯤 되어서였습니다. 그 전까지 릴리는 술라웨시 떵가라(Su..
나는 릴리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릴리와, 그리고 그녀의 가족들과 매일 전화통화를 했어요. 그리고 2박 3일의 일정으로 끈다리를 다녀온 루벤과는 그가 자카르타에 귀임한 날 저녁에 만나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장례식 얘기를 들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인연이 그렇듯 오래 전 루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