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이를 처음 만난건 중3때였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새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오빠와 살던 은이는 얼굴이 희고 눈매가 똘망똘망한 아주 작고 귀여운 아이였다. 어느 날 어느 TV 연속극에서 김혜자가 화상을 입는 장면이 나왔는데 다음날 내내 그 앤 눈물을 글썽였다. 김혜자를 보면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난다는 거였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늘 얼굴을 마주쳤지만 난 말도 잘 걸지 못했다. 대학생들과 주로 어울리던 은이는 아마 나보다 훨씬 조숙했던 것 같다. 산행을 가던 날 그애가 눈덥힌 북한산의 좁은 산길을 어느 대학생 손을 잡고 그 일행들과 어울려 올라가는 뒷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섬뜩하게 아파오곤 했다. 버스를 두번 씩이나 갈아타면서 북가좌동 집과 방배동 학교사이를 오가면서 일주일에도 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