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디포네고로 왕자 13

[소설]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13)

[소설]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13) 족자의 귀족들과 일반 민중들이 끝없이 밀려들어 디포네고로의 휘하에 들었으므로 깔리사카에서는 더이상 그들을 수용할 수 없어 뜨갈레죠를 나온지 불과 며칠 만에 왕자는 더 넓은 곳을 찾아 옮겨가야 했습니다. 가족과 병사들을 거느리고 꿀론쁘로고군 (Kabupaten Kulonprogo) 덱소 마을(Desa Dekso)에 도달한 디포네고로는 거기서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꺾어 반뚤시(Kota Bantul)로부터 서쪽으로 5킬로미터, 족자에서 남서쪽으로 약 9킬로미터쯤 떨어진 고아슬라롱 (Goa Selarong)이란 곳에 이르렀습니다. 고아(Goa)란 동굴이란 의미이므로 고아슬라롱은 '슬라롱 동굴'이라고 번역되지만 그 동굴이 있는 지역을 통칭하는 지명으로 쓰였습니다. 그의..

[소설]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9)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9) 나폴레옹 전쟁으로 멸망하다시피 했다가 간신히 되살아나 동인도로 돌아온 네덜란드는 과거의 기득권을 주장하며 족자 술탄국을 신속히 다시 손에 넣기 위해 이 시기에 전방위적으로 끄라톤 왕족들과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자바땅을 잠시 영국에게 맡겨 놓았던 자기 보따리처럼 여기는 네덜란드의 행태가 디포네고로 왕자 눈에 곱게 보였을 리 없습니다. 그때 그들이 가장 공을 들여 회유하려 한 사람은 다누레죠 4세 재상이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가 그걸 모를 리 없었지만 영국 강점기 내내 섭정 빠꾸알람 1세를 끈질기게 견제해온 다누레죠 4세라면 분명 네덜란드의 유혹도 물리칠 것이라 내심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집요했고 거대한 이권이 걸리자 다누레죠 4세가 욕망 앞에 흔들리는 것은..

[소설]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7)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7) 제3장 왕위를 포기하다 하멩꾸부워노 3세는 술탄이 된 후 아직도 뒤숭숭한 왕궁의 상황을 수습하기는커녕 매번 식사를 물리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등 육체적 정신적 건강문제를 노출시키며 국사에 대해 아무런 의욕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기저에는 그가 어떤 의지와 목적을 가지고 있든 영국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결코 성취할 수 없으리라는 절망감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지난 몇 년 사이 왕국에서 일어난 사건들로 인한 충격과 이제 술탄으로서 왕국을 위하기보다는 이민족들에게 휘둘려야만 한다는 현실은 큰 중압감으로 다가왔고 정신적 부담을 견디지 못한 그의 육체는 날로 쇄잔해 꼬챙이처럼 말라갔습니다. “이럴 때 왕자님이 계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술탄 전하의 힘이 되어 주십시오.” 이..

[소설]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4)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4) 제2장 뜨갈레죠 시절의 청년기 라덴 마스 무스타하르는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궁전에서 나와 머스짓(Mesjid – 이슬람 사원, 모스크)과 쁘산트렌 (Pesantren) 이슬람 기숙학교를 옮겨 다니며 공부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서부 수마트라 출신인 끼아이 땁토자니(Kyai Taptojani)같은 명망 높은 끼아이(Kyai)나 울라마(Ulama)를 스승으로 모실 기회를 가지며 이슬람 사회와 깊은 교분을 쌓았습니다. 1805년 족자 지역 주지사 보고서에 따르면 땁토자니는 자바어로 학문을 가르쳤고 당시 종교교육의 본산인 수라까르타로 학생들을 유학시켰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족자의 왕자인 무스타하르가 사실상 적국이나 다름없었던 수라까르타로 유학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죠. 쁘산트..

[소설]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3)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3) 망꾸부미 왕자는1751년 보고원토 강(Sungai Bogowonto) 전투에서도 드 클럭(de Clerck) 대위가 이끄는 VOC 군을 크게 격파하며 승승장구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망꾸부미 왕자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이번에도 주변에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사실 라덴 마스 사이드 자신도 그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망꾸부미의 조카이자 사위였지만 두 사람은 같은 편에 있으면서도 자바의 주도권을 서로 다투는 경쟁관계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두 사람 모두 21세기에 들어 인도네시아 정부에 의해 국가영웅으로 지정되지만 영화 어벤져스의 마블 영웅들과 달리 실제 역사 속에서 이들이 꼭 끈끈한 우정으로만 이어져 있던 것은 아닙니다. 1752년에 이르러 마침내 망꾸부미와 라덴 마스 사이드가..

[소설]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2)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2) 하멩꾸부워노 1세는 1717년 8월 6일 마타람 왕국 후신인 까르타수라 수난국(Kasunanan Kartasura) 아망꾸랏 4세(Amangkurat IV)의 아들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이 무스타하르 왕자가 일곱 살 때였으니 증조 할아버지 시조 술탄의 아우라와 카리즈마를 무스타하르 왕자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어요. 용맹스러운 시조 술탄도 아망꾸랏 4세의 후궁 라덴 아유 떼자와티(Raden Ayu tejawati)를 어머니로 두었던 것입니다. 하멩꾸부워노 1세의 본명은 라덴 마스 수자나(Raden Mas Sujana)였고 성인이 된 후엔 망꾸부미 왕자(Pangeran Mangkubumi)라고 불렸습니다. ‘망꾸부미’란 이름이 아니라 그의 위상을 상징하는..

[소설]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1)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1) 제1장 디포네고로 왕자 유년기의 시대적 배경 디포네고로 왕자는 1785년 11월 11일 새벽녁, 당시 ‘동인도’라 불리던 현재의 인도네시아 중부 자바에 위치한 요그야카르타(Yogyakarta)에서 하멩꾸부워노 왕가의 왕자로 태어났습니다. 현재 인도네시아의 특별시 중 하나인 요그야카르타가 이 이야기의 주무대가 되는데 여기서는 인도네시아인들이 흔히 그러는 것처럼 ‘족자’(Yogya)라고 줄여 부르기로 합니다. 그렇게 갓 태어난 왕자에게 아버지 라덴 마스 수로요(Raden Mas Suyojo)가 붙여준 이름은 라덴 마스 무스타하르 (Raden Mas Mustahar)였습니다. 왕가와 귀족들의 이름 앞에는 깐젱(Kanjeng), 라덴 마스(Raden Mas), 구스티(Gus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