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기발한 아이디어의 말로 본문
상사보다 기발한 부하직원은 퇴사각?
예전 한화 동료 한 명이 기억납니다.
일본에서 중학교까지 나와, 내가 봉제우의 일본수출을 담당할 때 그 친구는 PVC 우의 일본수출을 담당했습니다. 나중에 증명되고 말았지만 너무 고퀄의 인간에게 너무 저급한 업무를 담당시켰던 겁니다.
그때 그 친구가 냈던 많은 아이디어들 중에 당시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자동세차기를 들여오자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자동차를 진입시켜 놓으면 스스로 알아서 30~50미터 정도 전진하며 물뿌리고 비누거품 뿌려 닦고 씼고 하는 거 말입니다. 당시 한화그룹은 경인에너지를 가지고 있었고 관련 주유소들도 많이 있었죠. 게다가 당시엔 아직 그런 자동세차장이 하나도 없었으니 업계 선발주자가 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1990년 전후의 일입니다.
그런데 팀장의 반응은(놀랍게도 팀장은 동경지사에서 막 돌아온 전도 유망한 신예 차장이었는데) 그 친구 생각을 쓸 데없는 망상이라고 일축하면서 이렇게 말한 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너, 요즘 기획실 기웃거리던데 거기에다가도 그 얘기 속삭였던 모양이지? 중요한 회의할 때 그딴 헛소리 자꾸 하면 아예 내가 너 반 접어서 기획실 쓰레기통에 거꾸로 처박아 줄게!"
물론 우리팀이 의류팀이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릅니다. 세차장과 의류팀은 전혀 관계가 없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아이디어도 내면 안되는 것 아니었는데 당시 팀장이 왜 그에게 그렇게 가혹했는지 지금도 잘 이해가 안갑니다.
결국 그 친구는 입을 닫아버렸고 그 이후 더 이상 특별한 의견을 내지않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하고 포스코를 거쳐 포스코 일본 지사로 들어간 것으로 압니다.
그후 한국에 엄청난 자동세차장 붐이 이는 것을 보면서 그 친구 의견을 묵살한 당시 의류팀장이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너무 궁금했어요. 그런 아이디어가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팀장이 일언지하에 묵살해 버렸던 일은 당시 함께 회의실에 앉아 있었던 우리밖에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것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바로 저 '반으로 접어 쓰레기통~' 운운한 발언 대문이었고요.
누군가가 내놓은 기발한 의견을 묵살하는 건 대개 귀차니즘과 열등감 때문이기 쉬울 것 같습니다.
물론 내 의견이 곧잘 묵살되었던 건 전혀 기발하지 못해서였고요.
2021.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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