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니켈광산 영적방어작전 16

니켈광산 영적방어작전 (16)

ep16. 떠날 준비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도 같았던 니켈광산들은, 가동이 중단된 이후에도 언제 끝날지 모를 금수조치의 해제를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오히려 큰 돈을 들여 각종 관련허가들을 연장해야 하는 애물단지가 되었습니다. 돈이 벌리는 동안 어떤 식으로든 유지할 수 있었던 릴리의 조직들도 서서히 붕괴조짐을 보였고 특히 로니는 까마루딘이나 당 지역위원장 등 릴리의 적들과 공공연히 내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릴리가 부당하게 자신들을 회사운영에서 배제했다며 소송을 걸어왔고 로니는 폭력과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위협하며 그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줄 증인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좀 더 많이 생산해 좀 더 빨리 수출해 돈을 벌겟다는 목적으로 연합했던 다양한 이해관계의 개인과 조직들은 이제 그간 수출을 통..

니켈광산 영적 방어작전 (15)

ep15. 싱가포르 아시아 시빌리제이션 뮤지엄이 강 너머로 보이는 UOB 플라자의 강변 광장에서 맞는 싱가폴의 오전은 부산하면서도 싱그럽고 평화롭기까지 합니다. 새벽 비행기로 자카르타를 출발해 싱가폴 창이공항에 내려 이스트웨스트라인(Eastwest Line) 지하철을 타고 일단 타나메라(Tanah Merah)역에서 같은 라인의 시내행 열차로 한 번 갈아탄 후 한 시간 가량 달려 도심 시청역(씨티홀)의 바로 다음인 레플스 플레이스(Raffles Place) 역에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가면 도심 번화가가 나타납니다. UOB 플라자 건물은 거기서 멀지 않습니다. 그 건물을 끼고 흐르는 싱가폴리버의 잘 정비된 강변엔 아놀드 슈왈츠네거 닮은 매우 건장한 참새 한 마리가 앉아 있습니다. 청동으로 제..

니켈광산 영적 방어작전 (14)

ep14. 스피드보트 다음날 나타샤의 가족들과 미쯔비시 상사원 등은 아침 일찍 다이빙 포인트가 있는 와카토비 리조트로 들어갔습니다. 새해 첫 날을 해외 유명 유원지에서 보내는 것은 늘 꿈꿔온 것이지만 내가 그들과 함께 와카토비에 가지 못하고 릴리에게 목덜미를 잡혀 광산에서 2014년의 첫 날을 보내게 된 것은, 나타샤가 가족들에게 이 사업에서의 자기 위상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처럼 릴리 역시 기왕에 끈다리까지 모두 날아온 김에 이번만은 꼭 남편에게 광산을 보여주고 격려와 칭찬을 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릴리는 루벤에게서 사업적 조언을 수없이 얻었지만 한번도 광산을 직접 보여준 적이 없었습니다. 루벤으로서도 짧은 휴가를 틈타 자카르타에 돌아오면 무엇보다도 딸 무티아라와 많은 시간을 보내려 했으므로 며칠씩 걸..

니켈광산 영적 방어작전 (13)

ep13. 나타샤 어째서인지 몰라도 릴리는 왕구두의 송구영신 행사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듯 했습니다. 사실 이 행사는 내가 끈다리를 떠나던 2주 전만 해도 계획에 없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릴리가 갑자기 이 행사의 개최를 결정했다는 것인데 급조된 행사치고는 그 규모가 엄청나 억대의 비용이 투하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왕구두와 아세라 전역의 주민들은 물론 부빠띠를 비롯한 지역 고위 관료들과 군, 경찰들을 대대적으로 초청했고 왕구두 중앙통의 큰 공터엔 대규모 무대와 함께 VIP들을 위한 초대형 차양도 설치했습니다. 그동안 허가를 진행하고 선적서류를 만들면서 관청에는 이미 필요 이상의 지출을 한 상태였는데 광물원석 수출금지조치의 발효를 불과 열흘쯤 앞두고 이런 행사를 위해 또다시 엄청난 지출을 불사하는 이유를..

니켈광산 영적 방어작전 (12)

ep12. 축제 전야 그 루벤이 2013년 12월 연말휴가를 얻어 자카르타에 돌아왔습니다. 조호바루의 동업자 나타샤도 부모, 오빠와 함께 입국했습니다. 릴리는 왕구두에서 꼬나웨 우타라의 부빠띠와 고위 공무원들은 물론 아세라 주민 전원을 초청하는 대대적인 송구영신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모두 그 행사에 초청된 것입니다. 비록 두꾼과 싸워 일단 끈다리에서 밀려났지만 나도 거기 초청되었습니다. 릴리와는 아직 앙금이 남았지만 뭐, 그 정도는 1996년 처음 릴리와 만난 이후 늘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던 일입니다. “난 다음 달에 샹하이로 가요. 하지만 릴리는 이번에도 따라오지 않을 모양이네요.” “글쎄요. 꼬나웨에 벌려놓은 일이 릴리 없으면 수습이 안되니 말이죠. 하지만 곧 원석수출금지조치가 발효되면 당분간 일도..

니켈광산 영적 방어작전 (11)

ep11. 루벤 그런데 내가 정작 그날 밤 릴리에게 물으려고 했던 건 그게 아니었습니다. “아니, 그런데. 그 알라의 뜻, 네 임신 말이야.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미스떠르가 신경 쓸 일 아니에요.” “신경 안 써지겠냐?” 옛날 릴리의 약혼자가 싱가폴에 공부하러 갔다가 거기서 릴리의 친구를 임신시켜 돌아오면서 그녀의 첫사랑이 무참히 깨진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와 일하기 시작할 당시 그녀는 어느 정도 남자들을 혐오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하필 그때 내가 처음 일했던 짜꿍 보세공단의 봉제공장을 인수한 벨기에 회사의 관리이사가 릴리를 눈여겨 보았습니다. 왠지 잡고 흔들어야 할 듯 오똑한 코를 가진 루벤은 벨기에 남자입니다. 그들이 공장 시운전을 할 때부터 우리가 노르웨이 바이어로부터 받은 씸씰링(S..

니켈광산 영적 방어작전 (10)

ep10. 시멘트 공장 매각작전 그렇게 돌아온 자카르타의 상황도 결코 말랑말랑하지 않았습니다. 내 사업의 기반이 되었던 도매 매출도 줄어들고 있었지만 한때 업계 1위를 달렸던 미용실 방판부문은 더욱 큰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리는 중이었습니다. 지표에 나타나는 인도네시아의 GDP는 꾸준히 상승 중이었고 시내 곳곳에 거대한 사무실 건물들과 아파트 단지들이 속속 올라가고 있었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서민들의 구매력 약화가 피부에 와닿았고 그것은 우리가 가동하던 할부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차량이나 오토바이 파이낸스 회사나 해결사들을 낀 전문 회사들이 돈놀이 비슷한 할부사업을 하고 있었지만 우린 그런 회사들을 낄 만한 규모가 되지 않아 할부판매를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모든 리스크를 스스로 져야 했..

니켈광산 영적방어작전 (9)

ep9. 귀신이 쫒아오는 산속 밤길 그러자 디스타로가 끼어들었습니다. “내가 무슨 편견이 있어서 이런 말 하는 건 아니에요. 난 저 두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 우리 일에 지장만 주지 않으면 아무 상관없다고요. 그건 암본 사람들도 마찬가지에요. 하지만 그쪽 현장에 가서 이런 저런 의식을 할 때부터 이미 저 사람들 기분이 상했어요. 양해를 미리 얻었어야죠. 그런데 그 사람들 면전에서 대놓고 마을에 뽀뽀(Poppo)가 있다느니 산속의 롱가(Longga)가 화가 나서 아이들을 잡아갈 거라고 하면 암본 사람들한테 좋게 들리겠어요?” 뽀뽀란 깔리만탄이나 수마트라에서도 각각 꾸양(Kuyang)이나 빨라식(Palasik)같은 이름으로도 불리며 주로 가축이나 작물들을 해친다고 알려져 있지만 어떤 지역에서는 산모의 뱃속에..

니켈광산 영적 방어작전 (8)

ep8. 페리와 로니 물론 벌크선에 가겠다고 해서 무작정 배를 타면 되는 일은 아니었어요. 릴리는 자기 배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바지선을 빌릴 때 팩케지로 따라오는 턱보트(Tugboat)가 있었지만 용도 이외로 사용한다는 문제를 차치하고도, 턱보트로는 본선에 대고 옮겨 타기가 수월치 않았습니다. “나랑 같이 갑시다.” 그렇게 말한 사람은 모셈파의 또 다른 현장을 맡고 있던 페리 소장입니다. 그는 인원만 득실거렸지 광산 경험은 거의 없는 로니의 현장을 자주 방문하며 작업상 조언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비록 조언이라 하지만 그와 같은 전문가가 얘기하는 작업절차와 방법에 대한 의견이란 것은 로니 측의 이권과 대립하지 않는 한 반드시 따라야 할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는 실제로 모셈파 현장 전체에서 일정부..

니켈광산 영적방어작전 (7)

ep7. 경찰서에서 총 쏠 배짱 그들이 올라가니 어쩌면 오늘부터 광산의 운이 대통해 모든 일이 더욱 순조로워질 거라는 생각을 아주 하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아니, 최소한 더 나빠지진 않을 거라 생각했었죠. 하지만 토비메이타의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자마자 듣게 된 소식은 이미 최악이었습니다. “로니 그 미친 놈이 경찰들 앞에서 총을 쐈단 말이지?” 당시 우린 디스타로의 현장 말고도 모셈파의 현장 두 군데를 더 돌리고 있었는데 베이스캠프엔 디스타로가 나와 우릴 맞으며 격앙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전한 소식은 지극히 충격적이었는데 늘 자신만의 꿍꿍이를 가지고 있던 그의 의도 역시 곰곰이 따져봐야 했습니다. 암본 정착촌 마피아 두목 로니는 모셈파의 운영이사가 된 후 더 이상 정글도를 가지고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