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206)
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여러 모로 걱정 내 미용기기 사업 막판을 말아 먹었던 메이는 토요일만 강의가 있는 대학교에 다닌 지 벌써 4년차인가 되어 인턴을 나가야 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앞뒤 분간 못하던 친구가 국회사무처에 법대생 자격으로 인턴을 나간다니 격세지감을 느꼈습니다. 차차와 마르셀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할 일이죠. 서류전형에 합격하고 면접만 남겨놓았을 때 기도해 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걱정되는 거겠죠. 와쎕에 대답을 달았습니다. "사실은 네가 바보란 걸 저 놈들이 절대 알아채지 못해야 할 텐데." 그 면접이 며칠 전에 있었고 메이는 결과 연락을 기다리는 중이죠. 내가 넣어 준 플라스틱 포장재 공장에서 일한 지 어느새 6년. 사람들에게 업신여김 당하기 쉬운 작은 공장 영업사원에서 조만간 변호사로 거듭나는 기적이 일어나길..
제목: 네모난 숲 시즌2 - 001 아파트에서 내려다 보이는 저 네모난 구획은 원래 뭔가 건물을 지으려고 정리해 놓고 파일까지 박았던 곳인데 코로나가 세상을 덮치고 불필요한 산업활동이 거의 멈추면서 버려진 공터는 숲이 되었습니다. 찬찬히 살펴보면 꽤 큰 야자나무 잎도 보입니다. 1년 반만에 식물들이 저 정도로 자라날 만큼 열대의 나라는 생육하기에 최고의 장소인듯 합니다. 잘 생각해 보면 세상에 코로나 창궐로 고민하고 걱정하는 건 사람들 뿐인 것 같습니다. 이제 코로나 누적확진자가 2백만 명도 넘게 나와버린 인도네시아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풀과 나무들은 아무 걱정도 없어 보입니다. 이대로 인간시대의 종말이 오고 모든 것이 사람들 손을 떠난다면 저 네모난 솦도 언젠가는 담을 넘어 자카르타 전역을 울창한 정글..
10년 후의 미래 우선 10년 전의 나를 돌아봅니다. 당시 블로그에 올려 놓은 글들은 온통 미용시장과 미용세미나, 미용가위의 날이나 핸들에 대한 기술적인 얘기들뿐입니다. 그로부터 불과 3년 후 미용기기 수입판매 사업이 허물어지기 시작할 것을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인도네시아 전역 10대 도시를 활발하게 돌아다니며 현지 도매상들과 거래를 트고 사업확장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정말 한 치 밖도 내다보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 오늘을 토대로 10년 후를 예측해 보는 것 역시 거의 타로점을 치는 것과 비슷한 일입니다. 사회진출을 준비하던 학창시절 배웠던 거의 모든 것들이 평생 별 도움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죠. 2016년쯤에 삶의 전기가 찾아온 거라 생각합니다. 작가라는 정체성이 생기기 시작하던 시절..
잡종의 미학 나는 얼마나 나와 다른 것을 수용할 수 있는가? 이건 되는데 저건 안된다고 생각하는 나는 과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인가? 내가 타인이나 사물에 불쾌감을 느끼는 지점은 어디인가? 말로만 듣던 북한이 2킬로미터 정도 거리에 있었고 망원경으로 그곳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총부리를 서로 겨누는 것 말고 뭔가 평화로운 교류가 가능한 사람들일까? 전방 GOP 지역에서 근무하던 군시절 북한군이나 기정동 주민들은 그동안 배운 것과는 달리 뿔도 나 있지 않았고 겉보기엔 우리와 별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당시엔 왜 그토록 큰 이질감과 위화감을 느꼈을까? 인도네시아에서 만난 무슬림들은 전혀 테러리스트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슬람의 역사와 교리가 기독교와 그토록 닮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중세시..
하프타임: 자신을 객관화하는 시간 대학 3학년, 그러니까 ROTC 입단 첫 해인 1년차 시절 여름방학 때 병영훈련을 들어갔습니다. 당시엔 대학에도 교련시간이 있어 1학년 때 1주일 병영훈련을 갔지만 ROTC 1년차 여름 병영훈련은 좀 더 본격적인 한 달짜리였습니다. 육군훈련이 총 쏘는 거 말고 딱히 재미있는 게 뭐 있으랴 싶지만 능선과 계곡으로 다니면서 내가 독도법(讀圖法)에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된 건 꽤 흥미진진한 경험이었습니다. 지도를 읽는 능력 말입니다. 미육군 신생 101 공정사단의 제2차세계대전 참전실화인 에서 훈련 중 무능한 소블 중대장이 지도를 잘못 읽어 중대 전체를 엉뚱한 곳으로 데려가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 우리가 훈련할 때에도 집결지를 못찾아 다른 산에서 헤매는 친구들이 꼭 한 팀씩은 나..
인생목표 그동안 내가 세웠던 계획들을 돌이켜보면 현지법인 부임을 위해 인도네시아행 비행기에 몸을 싣던 1995년 이후 대체로 생존을 위한 것들이었습니다. 1996년 하반기 대기업의 끈이 떨어지고 1998년 동남아 외환위기와 자카르타 폭동, 수하르토의 하야, 이듬해 동업 결렬 이후 2002년 파산으로 이어지면서 더 이상 내 인생을 위한 멋들어진 계획을 세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당시 궁극의 과제는 그 파산의 나락에서 정상생활이 가능한 저 위 평지에 이르기 위해 깎아지른 벼량을 맨손으로 타고 오르는 것이었고 가장 우선적 목표는 아이들이 대학까지 학비를 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땐 엄두도 나지 않았습니다. 미용기기 수입판매를 하게 되면서 인도네시아 헤어미용 시장에 발을 디딘 후 갖게 된 목표는 업계에서 한번 정점..
우울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법 100개 중 96번째 질문에 답하면서 그간 쓴 글들을 정리해 보니 23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이 빠진 걸 찾았습니다. 우울의 늪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법. 그것까지 채워야 오는 5월 25일 100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채우게 됩니다. 물론 이 프로그램 초창기 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엉뚱한 글들을 줄줄이 몇 편 쓴 적이 있으니 제대로 하려면 그것들도 모두 새로 써야 하겠지만 그렇게까지 깔끔 떠는 건 좀 병적일 것 같습니다. 공교롭지만 초창기 글들 중 ‘오해’ 1, 2, 3 등의 제목들도 달렸으니 오해한 걸로 퉁 치고 넘어가기로 합니다^^ ‘우울’이란 키워드를 쳐보니 올해 2~3월 사이 글들이 많이 검색됩니다. 돌아보면 전체적으로 앞부분 6할 정도는 집중적으로 스스로의 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