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우린 모두 맛있는 비빔밥의 재료 본문
잡종의 미학
나는 얼마나 나와 다른 것을 수용할 수 있는가?
이건 되는데 저건 안된다고 생각하는 나는 과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인가?
내가 타인이나 사물에 불쾌감을 느끼는 지점은 어디인가?
말로만 듣던 북한이 2킬로미터 정도 거리에 있었고 망원경으로 그곳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총부리를 서로 겨누는 것 말고 뭔가 평화로운 교류가 가능한 사람들일까? 전방 GOP 지역에서 근무하던 군시절 북한군이나 기정동 주민들은 그동안 배운 것과는 달리 뿔도 나 있지 않았고 겉보기엔 우리와 별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당시엔 왜 그토록 큰 이질감과 위화감을 느꼈을까?
인도네시아에서 만난 무슬림들은 전혀 테러리스트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슬람의 역사와 교리가 기독교와 그토록 닮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중세시대 수백 년을 지배했던 두 종교의 반목과 십자군 전쟁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새삼 생각하게 했다. 종교의 본질은 신에게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왕국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일까? 무슬림들 사이에 섞여 살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시타인의 유혈충돌이 안타까웠다. 9.11 사태를 계기로 이슬람권에 가혹한 보복을 벌인 기독교 국가들에게 하나님은 구약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블레셋과 아말렉의 멸절을 독려하고 있었던 것일까? 두 종교는 서로 화해와 평화를 가르치면서도 왜 사람들 손에 비수를 쥐어주는 걸까?
동성애자들, 특히 게이들이 처음부터 불편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특히 30대 초반 인도네시아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영화를 보러 가면 옆에 다가와 질척대는 인간들, 미용실에서 미용가위를 손봐 줄 때 툭툭 건드리던 게이 미용사. 결국 한번은 손가락을 잡아 꺾고 일어나 한번 더 건드리면 부러뜨려 주겠다고 으르렁거려야만 했던 일. 하지만 그런 예의 없는 것들이 미용실 외에는 직장을 구할 수 없었던 성소수자들 전체에서 얼마나 미미한 숫자인지 미용기기 수입판매를 하던 10여년 동안 충분히 알았다. 대부분의 벤쫑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특히 게이들이 접근할까봐 걱정하는 당신. 걱정할 필요 없다. 게이들 눈도 높다. 하지만 그들의 애환이 마음에 와닿고 그들의 삶을 진심으로 공감하기까지 나 역시 적지 않은 기간 성소수자들을 곱지 않은 눈을 바라보았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그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심지어 냉대하곤 하는 것은 단지 그들이 다르기 때문일까? 아니면 소수이기 떄문일까? 어떤 면이 그들을 나보다 못한 인간이라 여겨 업신여기게 했던 것일까? 그 사고의 메커니즘은?
인도네시아 생활 초창기에 현지인과 사는 사람들을 무조건 이상하게 생각했던 건 불륜이나 외도가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남자들은 주재기간이나 현지채용기간이 끝나면 현지처와 아이들을 버리고 귀국한 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최근 정상적인 국제결혼 커플들이 많아지면서 그런 생각들은 많이 불식되었고 실제로 그들 커플이 앞으로 한-인도네시아 민간교류와 현지 교민사회의 주축이 될 것이라 진심으로 믿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남아 있는 외국인 특히 인도네시아인 사위 또는 며느리에 대한 일견 부정적인 선입관과 위화감은 무엇 때문일까? 한민족이 단일민족이란 전통적 믿음이 어느새 한국인들을 세상 남부럽지 않은 인종차별주의자로 만든 건 아닐까? 미국과 호주와 유럽에서 우리를 차별하는 백인들에게 분통을 터트리면서도 우린 얼마나, 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외국인들을 차별하고 경멸하는가? 역시 피부색의 문제인가? 아니면 가방 속 지갑 두께의 문제인가? 현지인, 특히 현지여성과 결혼한 한국인 남성들은 왜 아직도 여전히 이상한 선입견의 대상이 되는가?
우린 왜 오랜 외국생활을 하면서도 진심으로 현지 사회에 섞여 들지 못하고 있을까?
선입견을 깨는 것, 편향된 교육이 낳은 잘못된 인식을 깨는 것은 왜 그렇게나 힘든 것일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왜 무의식 저변의 편향은 고쳐지지 않을까? 돌대가리 똥고집이라서?
아마도, 우리가 비빔밥을 맛있게 만드는 참기름 또는 고추장, 아니면 각종 야채나 갈은 소고기 같이 다른 재료들과 골고루 섞여야 최고의 맛을 낼 수 있는 하나의 재료라는 사실을 잊고 그 비빔밥을 맛보는 시식자라는 오만한 인식, 즉 우월감을 품고 있기 때문에 나 역시 섞여야 한다는 사실에 기겁하는 건 아닐까?
한 사람이 다른 민족, 다른 종교, 다른 성향의 사람들과 어우러지려면 가장 필요한 것은 결국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마음, 내가 상대방과 그리 다를 바 없는 존재라는 최소한의 겸손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닐까?
다른 종, 다른 세계와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도 결국 정복하고야 말겠다는 야심보다 어우러져 맛있는 비빔밥이 되겠다는 존중과 겸손의 마음이 우선해야 하는 것 아닐까?
2021.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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