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206)
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도랑에 빠진 고양이 고양이 밥을 주면 생난리가 납니다. 가끔 손가락도 물고 손과 팔에 여기저기 생채기도 내지만 건강하게 자라는 고양이들을 보면 왠지 기분이 좋아지죠. 그런데 차차가 어제 주택단지 안의 도랑에 빠진 새끼고양이를 한 마리 데리고 왔습니다. 살겠다고 노력했던 모양이지만 상당히 오래동안 도랑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모양이었습니다. 오늘 가보니 손바닥 만한 고양이가 고개도 가누지 못하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습니다. 고양이 전용 우유에 고양이들이 사족을 못쓰는 추르를 사다 주었지만 입도 대지 않는 것이 새끼고양이에게 죽음이 짙게 드리워 있었습니다. 하지만 새끼고양이를 살려보려는 차차와 마르셀의 노력이 눈물겨운데 거기 괜히 초치고 싶지 않습니다. "내일까지도 기운차리지 못하면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자...
고양이 앞 생선 한 시간쯤 장을 본 물건들을 잔뜩 들고 아이들 집을 방문했습니다. 어제까지 쉬었던 애들 엄마는 우리로 치면 어음에 해당하는 기로(Giro)라는 걸 물품대금으로 받으러 오후에 곧장 거래선에 가서 아이들만 있었습니다. 차차 왼쪽 눈썹 위에 빨갛게 화가 난 여드름이 1학년 여고생의 청춘을 뽐냈고 마르셀은 좀 더 사각형이 되어 있었습니다. 일주일 정도 못 본 셈인데 그 사이 고양이들도 몰라보게들 많이 컸습니다. 내가 도착하니 어른 둘, 새끼 여섯 그렇게 여덟 마리가 애들 집 문앞에서 나랑 같이 들어가겠다고 줄을 서 있었습니다. 고양이들 눈빛이 반짝반짝 거리는건 지난 번 마지막으로 내가 왔을 때를 기억하는 겁니다. 애들 먹을 건 물론 고양이 먹을 것도 잊지 않고 챙기는데 사람 먹을 거 미리 챙긴 ..
나쁜 버릇 오늘은 출판진흥원 7월 원고 마감일입니다. 늘 한번도 늦지 않았고 이번에도 시간 널널한 편이었는데 아직 마무리를 짓지 못했습니다. 의외로 관련 자료를 모으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6월부터 코로나의 나락으로 깊숙이 걸어들어간 인도네시아에서 내 월간 보고서를 체워 줄 출판관련 이슈가 특별히 나온 게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죠. 관련 검색어를 쳐보면 나오는 관련 이슈는 오직 불법복제도서 문제뿐이지만 그게 지난 달 보고서의 메인 주제였으므로 후속보도도 아니고 두달 계속 같은 내용을 쓸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당일 아침이 되었을 때 굳이 세부적인 시간표를 짤 수밖에 없었습니다. 늘 그렇지만 오늘 꼭 마쳐야 하는 일을 아침부터 시작하면 하루 종일 그 일에 매달리게 되니 다른 일을 하..
기가 찬 일들 작년 3월 2일 코로나가 처음 인도네시아에 상륙한 이후 이동제한이 걸릴 때마다 웬만하면 장거리 이동을 삼가했습니다. 위성도시인 데뽁, 땅그랑, 보고르, 찌까랑 등에 일이 있어도 명색이 이동제한 기간인데 어딘가 길이라도 막아 놨으면 차를 돌리느라 또는 샛길을 찾느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게 싫어서였습니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습니다. 소나 양을 잡아 신에게 희생을 드리는 이둘아드하(Idu Adha)가 7월 20일 즉 내일로 다가온 상황에서 정부는 일찌감치 자바섬 100개소에 검문소를 설치해 7월 18일부터 24일 사이 도시간 이동을 제한한다고 미리 통지했던 상황. 워낙 코로나 전파가 심한 상황이니 어쩔 수 없는 조치라 생각했고 희생제 하루 전날이니 도로 통제는 최고조에 이를 터였습니다. 하지만..
파국, 새로 시작 출판진흥원 원고를 새벽 두 시에 마치고 송고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원고를 준비하면서 현재 인도네시아가 지난 한 달간 수많은 매체들의 기사들을 뒤져봐도 보고서 몇 장을 채워줄 만한 출판산업 관련 이슈나 기사를 거의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코로나에 매몰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20일은 이슬람 희생제인 이둘아드하(Idul Adha). 일몰을 하루의 시작으로 보았던 고대 중동 풍습에 따른다면 이미 다음 날인 20일(화) 밤에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발표한 긴급 사회활동제한조치의 완화방침은 사뭇 충격적인 뉴스였습니다. 연일 5만 명대를 기록하던 신규확진자들이 갑자기 지난 며칠간 3만 명대로 떨어진 것이 검사량 자체를 68%로 줄여서 그렇다는 걸 매체들과 야당들이 나서 대놓고 지적함에..
예상했던 일 작년, 올초까지만 해도 코로나는 남의 일 또는 이웃 동네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여겨졌습니다. 작년에 우리 성가대 앞줄에 앉았던 여자 권사님이, 얼마 있지 않아 끌라빠가딩 믿음교회 이재정 목사님이 코로나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재정 목사님과는 한인100년사 집필 관련해서 2020년 3월, 코로나 초창기에 대면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 더욱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지만 살다보면 간혹 피치못하게 주변을 스쳐지나가는 불행한 사건일 뿐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옆 동네, 다른 교회의 일들이 아니라 내 주번에서 마구 터지는 일을 내가 직접 손을 내밀어 돕거나 막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델타 변이에 걸려 몇 주 전 자가격리 치료를 시작한 피오나는 많이 나았지만 지난 수요일 실시한 PCR ..
코로나 시대 송별회 1985년부터 인도네시아에 와서 살다가 36년 6개월만에 귀국하는 선배 댁에 이 사진을 찍으러 갔습니다. 내가 사는 끌라빠가딩에서 28킬로미터 떨어진 찌부부르라는 곳. 원래 6월말 남부 자카르타의 한 식당에서 잡혀 있던 송별회가 코로나 상황이 엄중해 지면서 이동제한이 떨어지기 전이었지만 자체적으로 취소하고 연기했는데 결국 송별회를 아예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식당, 까페들이 모두 문을 닫았기 때문이죠. 결국 댁에 직접 가서 현수막에 사진찍고 기념품으로, 초상화 넣은 T-셔츠를 전달하는 것으로 간촐한 송별회를 마쳤습니다. ROTC 14기이니 재수하지 않았다면 69세입니다. 자기 사업이 없다면 정말 외국에 더 이상 있을 이유도 머물 방법도 없는 나이가 되는 거죠. 나로서는 10년..
우선순위 아시아투데이에 보낸 기사가 데스크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연일 신규확진자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규확진자를 내는 나라가 되어 우너진 의료체계 속에 현지인들은 물론 한국인 확진자들도 무너진 의료체계 속에 호흡곤란이 올 경우 사망자를 내기 쉬운 상황에 의료용 산소 현황과 산소발생기 등의 수입상황을 다룬 것이었지만 데스크의 반려 사유는 '코로나 기사는 식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일이지만 어느 한 나라의 죽고사는 문제, 심지어 그곳에 약 2만 명 교민들의 생사가 걸릴 수도 있는 문제가 식상하다며 다른 기사를 찾아달라는 요청에, 서 있는 자리에 따라 풍경이 달리 보인다는 것을 새삼 절절히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어제 밤엔 2019년에 만화책 채색을 도왔던 옛 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