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206)
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곱게 늙긴 틀렸다 특정 나이를 뜻하는 한자들이 대부분 논어(論語)에서 왔다는 건 얼추 알고 있었지만 그 뜻을 되새겨보면서 수천 년을 뛰어넘는 신랄한 풍자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30세를 말하는 이립(而立)은 모든 기초를 세우는 나이, 40세 불혹(不惑) 엔 세상 일에 미혹되지 않는다고 하며 50세 지천명(知天命)에 하늘의 뜻을 깨닫고 60세 이순(耳順)에 이르러 성숙한 경륜과 사리판단으로 타인의 말을 수용하고 70세 종심(從心)엔 자기 뜻대로 행해도 하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 즉시 하늘과 땅의 뜻에 통달한다고 합니다. 다 논어에 나오는 얘기랍니다. 읽어보면 읽어볼 수록 공자님이 고도의 풍자를 섞어 뼈 때리는 농담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가 살던 2500년 전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50살에 벌써 하늘의 ..
집은 들어가 사는 곳 평생 재테크에 밝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같은 것들에 대한 사람들의 끝없는 불만이 대충 이해될 듯하면서도 결국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보편타당한 주장들도 분명 있지만 요즘 가장 크게 대두된 부동산 문제는 대체로 왜 저 사람들의 욕망을 억제하고 통제할 정책을 만들어내지 못하느냐? 그런데 내 욕망을 구현해 낼 정책은 왜 내놓지 못하느냐? 하는 요구가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욕망이란 사람들 마음 속에 있는 것으로 스스로 이성적으로 자제하고 조율하며 때로는 양보도 해야 비로소 해결될 문제인데도 자신은 양껏 마음 내키는 대로 욕심을 부리면서 그 욕심을 통제하지 못하는 정부와 정책을 욕하는 게 일견 이치에 맞지 않아 보입니다. 대체로 당신들 마음이 못된..
은퇴 또는 퇴출? 한 시대를 마감하고 현역에서 물러나는 것을 어떤 이는 은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퇴출이라고도 합니다. 물론 30여년 한 직장에 일하고 영예로운 마무리를 지은 후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들과 많은 부침을 거듭한 끝에 같은 나이에 제 15, 16의 인생을 맞은 이들의 노후는 필연적으로 상이할 뿐더러 서로 이해하기도 힘들 것 같습니다. 올해 하반기의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기 위해 절치부심하던 중 얼마 전 만난 학군 동기는 삼성전자 법인장을 전무로 마치고 모 가전회사 부사장으로 이직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서로의 경험과 입장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끼리 한 시간 넘도록 점심식사 하면서 환담할 수 있던 것은 머리가 굳기 전 어린 시절의 교류가 그만큼 튼튼한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70..
집밥의 고수 집밥이 특별한 것은 음식이 꼭 맛있거나 조미료 첨가제를 덜 쓴, 보다 건강한 음식이어서가 아닙니다. 조미료 범벅을 하고도 맛을 잡지 못하는 엄마들도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흰밥에 고기반찬이란 뜻도 아닐 것입니다. 집밥이 특별한 것은 특수관계에 있는 가족(엄마나 아내)이 특정된 사람(자녀나 가족)을 위해 요리한 음식이기 때문이죠. 그러니 집밥이란 그 요리의 특징보다는 누가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는가에 중점을 둔 개념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집밥을 좀 할 줄 압니다. 특히 지난 12월 이후 아내가 석 달 간 한국에 가 있던 동안 요리실력이 좀 늘었습니다. 누구나 그런 것처럼 오래전 비록 라면으로 시작했지만 김치볶음밥, 김치찌개, 닭국까지 할 수 있게 되었는데 12월에 200개 넘게 만든 만두를 ..
잠 처음 만났을 때 차차는 좀 이상한 아이처럼 보였습니다. 말라깽이에 수줍음 많은 건 그 또래 다른 여자아이들이 다 그랬지만 차차는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산만했습니다. 때로는 나와 얘기하던 중간에 갑자기 다른 생각을 하는지 멍한 표정이 되곤 했습니다. 대 여섯 살이 되도록 그런 모습이 보여 어딘가 장애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때 엄마인 메이가 자랑스럽게 하던 얘기가 생각났습니다. 차차가 갓난 아기일 때부터 직장에서 늘 밤늦게 돌아오던 자길 새벽까지 안자고 기다린다는 겁니다. 나와 일하기 전, 메이는 ‘이눌비스타’라고 하는 패밀리 노래방에서 서빙을 했는데 일을 마치고 집에 가면 빨라야 새벽 두 시쯤이었다고 합니다. 그 시간까지 자지 않고 기다리는 차차가 그렇게 대견스러웠다는 거에요. 난 고개를..
산을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했는데 고3때 체력장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대학시절 ROTC 입단을 앞두고서도 달리기 연습을 좀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무릎이었어요. 연골인지 인대의 문제인지 알 수 없었지만 조금 무리했다 싶으면 며칠씩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무릎이 아팠습니다. 땅을 짚으면 무릎 슬개골 안쪽에서 통증이 엄청났어요. 당시 아버지는 어디서 야메 의사를 몇 차례 불러와 바늘이 길다란 주사기에 담긴 정체불명의 약물을 슬개골 밑으로 주사했는데 그 덕인지 아닌지 ROTC 생활 시작한 후 군시절엔 무릎이 잘 버텨주었습니다. 자대에서는 살이 조금씩 찌기 시작하는 걸 느끼게면서 저녁 5시 일과가 끝나면 내 숙소가 있는 멸공관에서 제3땅굴까지 왕복 8킬로를 매일 뛰었습니다. 5시에 출발해 땅굴..
인생 중대사를 결정하면서 인생의 반 좀 넘는 기간을 매 단계마다 다른 사람들의 결정에 의해, 또는 등 떠밀려 다음 수순으로 접어들곤 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이 진학할 학교를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는 건 매우 이상한 일인 것 같은데 심지어 부모조차 갖지 못했던 그 권리가 주어진 것은 대학을 결정할 때부터였어요. 고3 당시 서울대 농대를 가라고 윽박지르는 담임선생님의 집요한 설득을 들으며 난 그가 우리나라 농업발전에 뭔가 특별한 사명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할 뻔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아버지는 20년 넘게 사회에서 모진 실패를 겪은 끝에 애당초 1950년 인민군들에게 붙잡혀 강경 면사무소 창고에 갇혀 다음날 처형을 기다면서 신 앞에 세운 서원대로 막 목사 안수를 받아 개척교회를 시작하던 중이었고 엄마가 평생 일..
원칙으로 돌아갈 때 마음을 즐겁게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사는 걸 들여다보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아이들 앞길에 분명 많은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잘 살아갈 것이라 믿는 것도 어쩌면 부모가 마음을 훈련하는 한 방편일 것 같습니다. 꼬물거리는 새끼고양이들을 손바닥 위에, 가슴 위에 올려 놓고 쓰다듬어 주고 간지럽히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동물들이 보내는 애정과 신뢰의 표시는 너무나 순수한 것이어서 때로는 큰 감동이 됩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도 생각을 정리하고 가다듬는 데에 분명 도움이 됩니다. 때로는 그렇게 시작한 글과 그림이 어느 정도 함량을 갖춰 완성되는 게 큰 희열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실 몸과 마음이 지치면 이런 것들조차 귀찮아지고 하기 싫어집니다. 그게 인지상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