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인간이란 태생적 계획충 본문
인생목표
그동안 내가 세웠던 계획들을 돌이켜보면 현지법인 부임을 위해 인도네시아행 비행기에 몸을 싣던 1995년 이후 대체로 생존을 위한 것들이었습니다.
1996년 하반기 대기업의 끈이 떨어지고 1998년 동남아 외환위기와 자카르타 폭동, 수하르토의 하야, 이듬해 동업 결렬 이후 2002년 파산으로 이어지면서 더 이상 내 인생을 위한 멋들어진 계획을 세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당시 궁극의 과제는 그 파산의 나락에서 정상생활이 가능한 저 위 평지에 이르기 위해 깎아지른 벼량을 맨손으로 타고 오르는 것이었고 가장 우선적 목표는 아이들이 대학까지 학비를 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땐 엄두도 나지 않았습니다.
미용기기 수입판매를 하게 되면서 인도네시아 헤어미용 시장에 발을 디딘 후 갖게 된 목표는 업계에서 한번 정점을 찍어보겠다는 것보다는 파산하면서 지게 된 경제적, 인간적 빚들을 갚겠다는 것이었어요. 10년 전후의 시간을 그 일에 매달려 살았습니다. 그땐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일이란 건 많은 문제들을 동반하는 것인데 결국 대부분의 시간을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쏟았고 그 문제들의 총량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서 한 시대 내 생계를 지탱해 주었던 미용기기사업 챕터를 접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능력의 한계는 물론 내가 가진 능력이란 것이 어떤 성격인지, 그것으로 무엇을 제일 잘 할 수 있고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을 잡아 창밖 녹음 울창한 계속이 내려다보이는 벙갈로나 아무 방해도 없는 골방에서 골몰한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자카르타 시내를 다니거나 반둥을 오가는 도로에서 운전하며, 또는 비행기 안에서 그런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깨닫는 것만큼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분명히 알게 되는 것도 매우 유익한 일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익한 경험은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우리 인생이란 게 그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절이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그 일을 이루는 이는 신이란 성경구절이 생각나곤 했습니다. 물론 나중엔 사실 공사다망하신 신이 인간의 계획, 특히 내 계획에 딱히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걸 알게 되면서 우리 계획들이 왜 족족 다 실패하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은 당신의 계획과 목표를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쁘시거든요. 인간들이 이해해 줘야 하는 부분입니다.
결국 계획을 수립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나중에 우리가 그 목표에 얼마나 못미쳤거나 어긋났는지를 되짚어 보고 복기하는 결말로 가기 위한 첫 번째 과정입니다. 원대한 꿈을 가지라든가 호랑이라도 그려야 고양이 그림이 나온다든가…… 이런 게 다 그런 맥락에서 나온 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견 현실적이지 않을 듯 보이는 목표를 여전히 세우고 계획을 수립하는 건 인간이 어느 정도 ‘계획충’이라는 증거입니다. 내일 세상이 멸망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무모하고 쓸데없는 계획을 우리가 세기의 명언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정도로요.
움직이지 못하게 되기 전 아내에게 빠리와 모스크바를 보여주겠다는 것이 우선의 목표입니다. 나도 아직 가보지 못했으니 둘이서 손잡고 촌스럽게 두리번거리며 두 도시를 다녀보려 합니다. 이건 비용과 결단의 문제죠.
또 다른 목표는 출판이 되느냐 하는 문제를 차치하고 제대로 소설을 한 권 써보는 겁니다. 그래야 지금 죽으면 매우 모호해지기 쉬운 내 정체성에 분명히 소설가 또는 작가라는 상태보어를 박아 넣을 수 있을 테니까요. 이건 시간과 능력의 문제입니다.
이것 말고도 목표와 계획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대부분 내겐 중요하지만 다른 이들에겐 소소한 것들이죠. 위의 두 가지도 마찬가지고요. 당장의 문제는 생계를 꾸려갈 포트폴리오를 보완하고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것조차도 타인들 보기엔 사소하기 그지없습니다. 하물며 신에겐 오죽할까요.
그렇게 바쁘게 부대끼며 살아가야 사람들에게 삶을 통해 어떤 가치를 추구하라며 동기를 부여하려는 목소리는 일견 공허하게 들립니다. 한 사람이 일생을 살고 간 후 남기는 업적 또는 가치는 그가 평생동안 가꾸고 키워온 세계관과 가치관이 무엇이며 그에 부합한 삶을 살기 위해 매순간 얼마나 최선을 다해 결정하고 선택했는가에 달린 것이지 어느 날 문득 세운 목표에 달린 것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2021.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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