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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쳤으면 쉬는 게 정답 본문

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지쳤으면 쉬는 게 정답

beautician 2021. 6. 8. 11:40

원칙으로 돌아갈 때

 

 

마음을 즐겁게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사는 걸 들여다보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아이들 앞길에 분명 많은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잘 살아갈 것이라 믿는 것도 어쩌면 부모가 마음을 훈련하는 한 방편일 것 같습니다.

 

꼬물거리는 새끼고양이들을 손바닥 위에, 가슴 위에 올려 놓고 쓰다듬어 주고 간지럽히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동물들이 보내는 애정과 신뢰의 표시는 너무나 순수한 것이어서 때로는 큰 감동이 됩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도 생각을 정리하고 가다듬는 데에 분명 도움이 됩니다. 때로는 그렇게 시작한 글과 그림이 어느 정도 함량을 갖춰 완성되는 게 큰 희열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실 몸과 마음이 지치면 이런 것들조차 귀찮아지고 하기 싫어집니다. 그게 인지상정이죠. 지쳤는데도 그 상황을 타개하려고 이것을 또는 저것을 해야 한다는 건 다 이상한 소리입니다. 원칙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면 지쳤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자기계발강사들은 사람들을 핸드폰이나 랩톱으로 생각하는지 뭔가 자꾸 충전하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슨 다중인격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신과 대화하라, 자기 마음과 이야기를 나누라 합니다. 다 자기 책 팔아먹고 자기 비법 팔아먹으려는 장사꾼들처럼 보입니다. 지쳤으니 푹 쉬라는 말을 해주는 게 그리 어려운 걸까요?

 

어려움에 부딪혀 상처받고 스트레스에 찌들었을 때 뭔가를 충전하기 위해 동분서주할 것이 아니라 마음을 비우고 머리를 비우기 위해 쉬면서 먼산 바라보며 멍 때리는 게 가장 좋은 치유책일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당면한 문제들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테니 말입니다. 그 옛날 파산의 나락에서 간신히 기어 나올 수 있었던 것, 베트남에서 돌아온 후 내 사업이 완전히 소멸했음을 깨달았을 때 한 일은 어디에선가 활력을 충전받으려 뛰어다닌 게 아니라 스스로를 완전히 내려놓고 내 능력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즉시 그럴 수 있었던 건 아니고 상당한 과정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아무튼 그래야 그 다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어쩌면 우리 인생의 탈출구가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인생에 쉼표가 찾아오는 것, 회사가 휴가를 주는 것, 매달 찾아오는 여러 건의 원고마감 사이에 잠시 마음 놓을 수 있는 시간이 생기는 것은 그 시기를 이용해 나와 나의 문제 사이에 거리를 만들어 객관적으로 바라보라는 의미겠죠.

 

문제가 깊어지고,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치면 초심으로, 원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충전기를 전원에서 뽑고 푹 쉬면서 멍 때려야 합니다.

 

2021. 5.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