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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잠자는 차차

beautician 2021. 6. 12. 12:03

 

 

처음 만났을 때 차차는 좀 이상한 아이처럼 보였습니다.

말라깽이에 수줍음 많은 건 그 또래 다른 여자아이들이 다 그랬지만 차차는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산만했습니다. 때로는 나와 얘기하던 중간에 갑자기 다른 생각을 하는지 멍한 표정이 되곤 했습니다. 대 여섯 살이 되도록 그런 모습이 보여 어딘가 장애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때 엄마인 메이가 자랑스럽게 하던 얘기가 생각났습니다. 차차가 갓난 아기일 때부터 직장에서 늘 밤늦게 돌아오던 자길 새벽까지 안자고 기다린다는 겁니다.

 

나와 일하기 전, 메이는 ‘이눌비스타’라고 하는 패밀리 노래방에서 서빙을 했는데 일을 마치고 집에 가면 빨라야 새벽 두 시쯤이었다고 합니다. 그 시간까지 자지 않고 기다리는 차차가 그렇게 대견스러웠다는 거에요. 난 고개를 갸우뚱 했습니다.

 

“애기가 낮잠은 자?”

“낮엔 잘 논대요.”

 

그러니까 하루 10시간 이상 자야 마땅한 아기가 유치원 갈 나이가 될 때까지 하루 다섯 시간도 자지 않은 거에요. 다섯 평도 안되는 집이 반 2층으로 되어 있었지만 거기서 함께 살기 어려웠던 메이는 나와 일하기 시작하면서 꼬스(Kost)라 불리는 자취방을 얻어 나와 있었습니다. 하지만 출근하기 전 차차를 본가 어머니께 맡기고 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메이의 아버지는 메이가 어린 시절 세 딸에게 무지막지한 가정폭력을 휘둘렀고 장성한 딸이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맞서자 그 분풀이를 메이의 어머니에게 했던 사람입니다. 어머니는 야자 열매 쪼갤 때 쓰는 정글도를 들고 위협하는 남편에게서 도망치려고 2층에서 뛰어내리다가 발목이 부러지기도 했습니다. 낮에 그 집에 맡겨진 차차가 온전한 생활을 했을 리 없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차차도 상당히 학대를 당했던 모양이었고 몸 몇 군데에 화상과 담뱃불에 데인 자국이 생겼습니다. 메이도 팔과 다리에 그런 자국을 수도 없이 가지고 있었는데 처음엔 흘려 듣고 흘려 보던 일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어느날 차차가 머리에 큰 상처가 나서 물어보니 계단에서 굴렀다는 대답을 들었는데 나중에 동네 이웃에게 물어보니 메이의 아버지가 자전거로 차차의 머리를 찍었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내 눈에도 불똥이 튀는데 메이는 오죽했겠어요?

 

마침 그 당시 메이는 회사일로도 여러가지 문제를 겪고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사고치던 놈들은 내 신뢰를 받던 메이가 자기들 편이 되어 주면 맘 놓고 외국인 사장 돈을 해먹을 수 있는데 그걸 받아주지 않자 메이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단순한 위협이나 거래선과의 이간질 정도로 끝나지 않고 어느 날 자카르타 시내 미드플라자 앞에서 오토바이에서 내려 수금하러 건물로 들어거려는 메이를 다른 오토바이를 탄 괴한들이 고속으로 달려와 가져온 몽둥이로 머리를 가격하고 달아나는 사건까지 벌어졌습니다. 시내 한복판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대담한 범죄였고 메이는 그 자리에서 실신해 버렸죠.

 

다행히 생각보다 큰 상처는 아니어서 곧 회복했지만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한 꼬스에 메이를 더 이상 놔두는 건 너무 위험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땐 메이가 둘째를 막 낳았던 때였죠. 나중엔 그 역시 회사 돈을 횡령하고 도망갔지만 메이의 전 애인이었던 에도가 갓난아기를 유괴하려 했던 정황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게 다 메이가 내 사업을 지켜주려 애쓰다 벌어진 일이어서 무리해서 메이과 아이들의 숙소를 아파트로 옮겨주었습니다. 쯤빠까마스는 임대료가 싼 편이지만 최소한 경비원들이 있는 데스크를 지나 액세스 카드로 문을 열어야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이제 최소한 누가 집에 찾아와 위해를 가할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터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아이들을 본가에 맡겨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나중엔 어렵사리 좋은 보모를 구해 아이들이 꽤 클 때까지 입주해서 지내게 되지만 그 보모를 만나기 전까지 미리 조치해 놓을 게 있었습니다. 메이의 집을 찾아가 메이의 아버지를 만나는 것이었어요. 메이와 메이 어머니까지 함께 앉은 자리에서 이슬람 모자 꼬삐아(Kopiah)를 쓴 산신령 같은 외모, 그러나 실제로는 나보다 고작 10살쯤 위인 메이의 아버지에게 조곤조곤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들한테 손가락 하나라도 대면 당신 다리를 분질러 드리겠소. 신께 맹세코.”

 

이런저런 문제들이 정리되니 다시 차차의 산만함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이젠 낮이든 밤이든 얼마든지 잠을 잘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었습니다.

 

“마르셀 잘 때 차차도 재워. 그동안 워낙 잠이 부족했으니 지금이라도 모자란 거 보충해야지. 물론 잘 먹이고.”

 

차차는 그때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당시 갓난아기던 마르셀을 재울 때 같이 재우도록 했습니다. 그 후 초등학교 1~2학년이 되도록 차차는 정말 많이 잤습니다. 올해 고등학생이 되는 차차는 잠을 많이 자면서 멍때리는 버릇도 없어지고 집중력도 커져서 중학생이 되어서는 학교에서 K-팝 커버댄스 동아리에서 춤을 추기도 했고 코로나 직전까지 학교 고학년 남자애들이 줄을 서 얘기를 걸고 선물도 보내는 핵인싸가 되었습니다. 영어책도 곧잘 읽고 여성 건축가가 되겠다며 한국과 독일 유학을 꿈꾸는 아가씨로 성장해 가고 있어요.

 

그런 성장 배경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어린 시절 막무가내로 보충한 잠이 큰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세대가 한국에서 그 또래에 겪었던 ‘사당오락’같은 무리한 잠문화를 차차나 인도네시아에 전파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이제 잠이 점점 줄어드는 나이여서 내 이야기보다 차차의 잠 이야기를 해 봤어요.

 

2021.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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