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매일의 삶 656

뭘 해도 안되는 날

그런 날이 있다. 뭘 해도 안되는 날. 그것도 하필이면 랩톱과 핸드폰 문제였다. 처음 문제가 생긴 건 아들이 사준 랩톱이었다. 몇 개월 전에 사둔 것을 지난 10월 KL에서 딸 결혼식 때 아들을 만나 거기서 전달받은 것이었는데 바쁘다 보니 결국 자카르타에 돌아서 코로나로 잠시 앓고 원고마감에 시달리면서 2-3주를 훌쩍 보낸 후 11월에 들어서서야 처음 전원을 넣고 세팅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repairing loop에 걸려 들어간 것이다. 랩톱에 뭔가 문제가 있어 고쳐야 한다며 자동 프로그램 돌리는데 이래도 저래도 결국 고쳐지지 않아 윈도우에 들어가질 못하는 상태. 그 중에 매일의 루틴으로 현지 기사를 검색할 때 가장 중요한 사이트인 kompas.com이 404 error가 발생했다. 서버가 다운된 ..

매일의 삶 2022.11.30

처음 맛본 자카르타의 커피

잊을 수 없는 첫 커피 자카르타에 부임해 오기 몇 해 전 딱 한 번 인도네시아에 출장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1990년대 초의 일입니다. 그때만 해도 난 인도네시아에 대한 터무니없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발리의 낭만적인 백사장을 사진으로만 몇 번 보았는데 상상 속에서는 그런 평화로운 낙원이 뜬금없이 자바섬 남부해안을 따라 끝없이 펼쳐지고 늘씬한 서양 미녀들이 손바닥만한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듯 안입은 듯 해변에서 선탠하는 장면을 머리 속에 그리다가 나도 모르게 흘러내린 입가의 침까지 훔치며 출장출발을 손꼽아 기다렸더랬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오래된 영화에서처럼 행상들과 거지들이 활주로까지 몰려나와 트랩에서 내리는 여행객들을 에워싸는 자카르타 공항을 상상하기도 했고 자카르타 주민들은 아침마다 ..

매일의 삶 2022.11.27

코로나 후유증

목의 통증도 거의 다 사라졌다. 싱가포르의 알렉스는 코로나 증상이 아닌 것이 확인되었고 말레이시아에서 같은 공간에 있었던 아들과 딸도 모두 멀쩡한 걸 보면 우리가 코로나로 보이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은 역시 10월 17일(월) 이민국 입국장에서 수백 명의 중국인들 사이에 섞여 있을 때였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10월 24일(월) 일주일 만에 잠복기와 발병기가 다 지나간 셈이다. 아침 줌미팅을 한 후 피오나에게 개인적으로 물어보니 자신이 작년에 델타 변이에 감염되었을 당시 증세를 말하는데 잦은 기침은 아니지만 기침할 때마다 기침에 칼날이 달린 듯 목이 너무나 아팠다는 것이나 앓는 동안 거의 일어나지 못하고 잠을 잤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였다. 물론 이번에 내가 겪은 것은 델타가 아니라 최근 새로 나왔다는 ..

매일의 삶 2022.11.23

최악의 상황을 지난 듯

10월 20일(목)부터 증상이 나타난 후 나흘 째인 10월 23일 아침 증상이 많이 가라앉은 게 느껴진다. 사실 22일(토) 거의 하루 종일 잔 후 밤에 일어나 기사 번역을 몇 개인가 했으니 이미 그 때부터 몸상태가 호전된 것이리라. 토요일 아침에 사온 약이 효과가 있는 듯. 항생제와 소염제, 해열제 등등 여전히 목이 아프고 침 삼키기 어렵지만 어제만큼은 아니다. 깨질듯한 두통도 이젠 참을 만해졌다. 아침에 몸무게를 재보니 79kgs. 그동안 눈에 불을 켜고 체중을 빼려해도 83킬로 언저리를 돌더니 이틀 앓고서 4킬로나 빠지니 허탈하다. 이걸 유지해야 하는데 몸이 나으니 이젠 다시 올라갈 일만 남은 건가? 아무튼 이틀 동안 못한 일들을 따라 잡아야 할 상황. 마감들이 줄을 서있다. 2022. 10. 23.

매일의 삶 2022.11.22

세상이 빙글빙글 돌던 날

아침에 일어나니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메니에르가 밤새 왔던 모양. 아침 10시에 시내 미팅이었지만 도무지 몸의 균형을 잡을 수 없어 일정을 내일로 연기했다. 그리고 그 후유증으로 오전 11시쯤까지 어지러움이 가라앉길 기다렸다. 매스꺼움을 동반한 어지럼증은 결국 구토, 설사 등을 일으키는데 그게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그리고 동시에 식은 땀이 나는데 몇 시간 후 식은 땀이 멈추면 그간의 증세도 대체로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오전에 해야 했던 원고작업들을 뒤늦게 시작했는데 오후 1시 반쯤 세상이 또 돌기 시작했다. 내 귀 때문이라 생각했지만 이번엔 지진이었다. 자카르타에서 약 100킬로 미터 정도 떨어진 찌안주르(Cianjur) 지역에 5.6 규모의 지진이 닥쳐 자카르타는 물론 반둥까지 흔들었다. 이번..

매일의 삶 2022.11.22

코로나?

도대체 어디서 걸렸을까? 이틀 동안 빡세게 앓으면서 이게 감기몸살이 아니라 코로나라고 확인하게 되었다. 몸무게가 이틀 사이 4킬로 빠졌다. 평소 같으면 매우 고무적인 현상인데 아파서 빠졌다니 아프다는 게 엄청난 칼로리가 소모되는 일이라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대략 어디서 누구에게 옮았을까 생각해 보니 처음 떠오르는 건 10월 17일(월) 말레이시아에서 자카르타로 돌아오던 날 입국장 이민국 카운터 앞에 천 명 가까이 중국인들이 줄 서서 붐비던 상황이 떠올랐다. 만약 거기서 걸렸다면 바이러스를 달고 온 중국인들보다 거기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때려넣고 별도의 방역대책도 세워놓지 않았던 인도네시아 이민국 인간들이 책임져야 할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 알렉스도 비슷한 증세를 겪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싱..

매일의 삶 2022.11.21

오랜만의 느긋한 환자생활

온몸이 아프다. 10월 20일(목) 오후 끄마요란에 미팅을 다녀온 후 몸 상태가 확 나빠졌다. 목이 아프고 가래가 끓어 잠시 코로나가 아닐까 의심했다. 사실 4시 미팅 전에 이미 증상이 좀 있었는데 그런 상황을 말하면 미팅이 지장을 줄 터였다. J사장은 내가 어머니 상을 당해 한국에 다녀온 일을 두고 내 개인적인 일정 떄문에 자기 일이 지장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그가 그런 식의 생각을 하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도네시아 노동법에 따라 일년에 한번 주는 보너스를 다른 사람은 다 줘도 나한테 안주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내가 상을 당하든 딸이 결혼하든 조의금이나 부주 역시 하지 않는다. 그의 계산법은 아마도 내가 상과 결혼 등으로 출근하지 못하는 기간 만큼 월급을 주니 그걸 조의금이나 ..

매일의 삶 2022.11.20

바퀴벌레 이야기

전직장을 그만두고 자카르타로 다시 돌아왔을 때의 일입니다. 서울로 철수하기 전 공장의 생산관리자였던 윤대리 집에 맡겨 두었던 몇 무더기의 짐들은 아직 돌려받을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우선 찾아 온 것이라곤 독립군이 된 후 첫 사무실이었던 짜꿍(Cakung)거리의 한 공장 구석방에 갖다 놓은 구식 386 컴퓨터 한 대와 딸린 컴퓨터 책상 하나가 전부였어요. 초창기 4개월 동안 묵었던 꼬스(Kost)라 부르는 현지 자취방도 너무 좁고 어수선해서 짐들을 갖다 놓을 환경이 아니었거든요. 그러던 중, 북부 자카르타 외곽의 따만 모데른(Taman Modern)이라는 주택단지는 비록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밀집한 자카르타 남부의 거대하고 호화로운 저택이나 아파트에 비교할 바 안되는 허름한 곳이었지만 그곳의 작은 주택..

매일의 삶 2022.11.20

선의와 고문 사이, 그 미묘한 경계선

지난 8월 말-9월 초 사이 오랜만에 방문한 한국에서 어머니 상을 치르며 새로이 느끼는 바가 여럿 있었습니다. 한국의 발전한 모습과 변화한 문화에 대한 생경함과 신비로움이 있었어요. 특히 지하철 문이 열릴 때마다 와이파이가 연결되는 것이 정말 신기했습니다. 어머니 상을 치르며 가족관계라는 것, 형제간의 우애 같은 것들이 얼마나 쉽게 상처받고 부스러지는 것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건 마치 노년의 끝을 향해 걸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처럼, 늘 강건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존재의 대책없는 나약함을 알게 되는 것과 같은 경험이었습니다. 상을 치른다는 것, 그 모든 복잡한 절차와 비용을 감수하는 것이 어머니의 시신, 가족의 유해를 이름도 모를 산 속 어딘가에 '매장'이란 허울로 버리고 오기 위해 요식행위, ..

매일의 삶 2022.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