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일반 칼럼 228

사후피임 결정권은 누구에게?

여성의 임신을 신과 정부가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 사후피임약이 세상에 소개된 것이 2012년 전후 쯤으로 기억하는데 이후 윤리성 문제가 줄곧 화두가 되었습니다. 2013년 쯤에도 한 병원이 사후피임약 처방을 적극 홍보하는 게시물을 정문에 내걸면서 사후피임약을 적극적으로 처방해 줘야 하느냐, 극히 제한적으로 처방해야 하느냐 하는 찬반양론이 그해 4월 14일자 조선일보 기사에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보기엔 단순한 사안 같은데 정말 다양한 의견들이 들끓더군요 당시 기사 내용을 정리하자면 사후피임약의 용도는 난자가 정말 수정란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일단 수정이 되었다고 가정하고 착상되기까지 걸리는 일반적 시한인 72시간 내에 사후피임약을 사용하면 임신 확율을 85% 이상 낮출 수 있는데 모 병원..

일반 칼럼 2021.12.20

공인의 조건

공인의 조건 대학입학 오리엔테이션 당시 교수님들이나 선배님들은 대학 합격통지만 받아 놓고 첫 강의도 듣지 못한 상태였던 우리들에게 "여러분들은 이제 지성인이 되었으니 이제는..." 라는 얘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었다. 참 어이처구니 없는 소리였습니다. 듣기 좋으라고 한 얘기겠지만 그 이면에는 대학을 밟지 못한 모든 사람들을 비지성인으로 치부하고 대학입학을 지성인 임명장처럼 간주하는 오만함이 있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한갓 고등학생이지 비지성인이었던 내가 대학 입학과 동시에 하룻밤 사이에 간단히 지성인으로 탈바꿈한다는 게 놀랍도록 무식한 얘기라 생각했습니다. 사실도 아니었고요. 지성이란 시장바닥에서 돈 주고 티셔츠 하나 사는 것처럼 첫 대학등록금을 내는 것만으로 간단히 얻어지는 건 아닐 터입니다. 대학을 ..

일반 칼럼 2021.12.19

영양가 없는 상대를 대하는 태도

대놓고 업신여기는 상대방과 미팅 인도네시아에서 미용 관련 사업을 하겠다는 두 명의 한국인을 만난 것이 2017년 5월 쯤의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카르타에 사업체를 준비 중이었습니다. 상호를 자기들 이름에서 따오기로 했다는 설명을 듣고 꽤 자신만만한 사람들이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성형수술을 원하는 현지인들을 모집해 한국으로 성형수술 여행을 보내는 브로커 였습니다. 하지만 그걸로 그치지 않고 그 사업을 위한 커버 영업장으로 남부 자카르타에 작은 피부 클리닉과 화장품 유통사업을 하려 한다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들을 만난 이유는 내가 가지고 있던 마케팅 플랫폼과 환경에 대해 그들이 올라탈 수 있을지 타진하고 싶어했기 때문입니다.그들의 미팅을 요청한 날, 마침 다른 외출 일정도 있어 ..

일반 칼럼 2021.12.18

국가에 탱크 사주면 군면제 시켜주자

군복부 면제조건과 모병제 고교 대학시절엔 군대에 대한 모종의 동경과 공포를 함께 가지고 있었다. 그건 아마도 어린 시절 수없이 보았던 전쟁영화들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전쟁은 반드시 영웅을 낳기 마련이지만 한 명의 영웅 뒤에는 수천, 수만 명의 군인과 민간인 피해자들이 피흘리며 쓰러져 있다는 사실을 우린 잘 알고 있다. 전쟁이 벌어진다면 우린 철의 삼각지대 적 기관총진지를 박살내고 마침내 고지를 점령한 영웅보다는 노르망디 해변가에 수북히 쌓여 바다를 빨갛게 피로 물들였던 수많은 전사자들 중 한명이었기 쉽다. 어느날 난 광주 상무대 소대전투훈련장에서 가파른 산허리를 달려 올라가고 있었다. 그 고지 위에 북한군 진지가 있다고 상정하고 그걸 탈취하게 위해 돌격하던 중이었다. 실전이 아니었으니 빗발치는 총탄도, ..

일반 칼럼 2021.12.16

일본의 경제공격 당시 일부 우리 지성인들의 자화상

TV 뉴스를 빨갱이가 장악했다는 교수님 오랫동안 서울대 교수를 하다가 은퇴하신 의학박사를 자카르타에서 만난 일이 있었습니다. 백발임에도 안광이 형형하고 지혜로운 표정을 한 점잖은 분이었습니다. 그날 있던 출판기념회 행사 때문에 아침에 호텔로 모시러 갔을 때 함께 아침식사를 하면서 동석한 다른 교수님들에게 그 다음 주 인도네시아 국립대학교에서 내가 발표자로 나가는 양칠성 세미나 관련해서 고견을 얻고자 몇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러저러한 배경을 가진 양칠성을 친일반역자로 봐야 합니까? 아니면 일제강점기를 기어코 살아낸 선량한 민초라고 봐야 할까요?" 질문을 잘못 이해했는지 교수님들의 답변은 내 질문과 별 관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의 견해는 너무 의외였습니다. 노교수님들은 당시 전국적으로 펼쳐지..

일반 칼럼 2021.12.14

세상의 모든 관문

세상의 모든 관문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대략 몇 개쯤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일까 한번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문의 숫자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문'이란 기본적으로 전혀 다른 환경으로 이동해 가는 포털'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곳에 어떤 환경이 펼쳐져 있느냐가 문을 통과하는 '입장' 행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죠. 그래서 우리가 평생 몇 개의 문을 열고 들어가느냐보다 어떤 문들을 여느냐, 이것이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더 큰 가치를 갖게 됩니다. 돌이켜 보면 역사를 바꾼 문들이 많았습니다. 요새와 성들의 관문들. 그 문들은 무너지거나 또는 정 반대로, 열리지 않음으로써 역사의 향방을 바꾸었습니다. 당태종..

일반 칼럼 2021.12.12

빨갱이라 불리는 사람들

제 눈의 들보 "당신이 남들에게 범한 작은 잘못은 큰 것으로 보고 남들이 당신에게 한 큰 잘못은 작은 것으로 보라" 유태인의 인생지혜라며 나열된 여러 항목들 중 이 내용이 눈에 띄었습니다. 사실 난 제2차 세계대전의 최대 피해자였다가 이제 중동의 깡패가 되어버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제 와서 뭘 배울게 있을까 생각하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유태인들의 가치관이 기독교 세계관의 한 축을 이루는 것이 사실이고 탈무드가 지혜의 보고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아직 많습니다. 최근 서울에서 벌어지던 극우집회에서도 가끔 국기가 등장하는 다윗의 별의 나라 이스라엘에 대해 내가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저 위의 문장은 마땅히 따라야 할 보편적 우주적 진리입니다. 요컨대 내 잘못에 더욱 엄격하고 남의 잘못엔 관대하..

일반 칼럼 2021.12.11

권위와 옹졸함 사이

꼰대 인증 "나는 해야 할 말 다 했으니 이제 여러분들이 좋은 안을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선배는 그렇게 멘트를 남기고 단톡방에서 나가버렸습니다. 후배들은 혀를 끌끌 찰 수밖에 없었 습니다. 단톡방에서 우리 모임의 운영규칙을 두구 전체 회원들 간에 논의가 시작되었을 때 그 선배는 뜬금없이 운영부 안을 이해하기 쉽게 도표로 설명하라는 요구를 했습니다. 동문끼리 만나는 친목모임인데 그는 이전 회칙과 회칙 수정안 비교표를 만들어서 제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누구도 그 요구를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친목회의 회장단, 사무국을 맡은 사람들은 각각 자기들이 생업을 위해 운영하는 사업체나 월급을 받는 소속 회사가 있는 사람들인데 별 것도 아닌 일에 그렇게 많은 품을 팔라고 요구하는 건 지나친 일이라고 ..

일반 칼럼 2021.12.10

잡탕찌게

이준석과 화해한 윤석렬의 행보 대통령이 되고 싶은 후보가 도움될 만한 사람들과 무조건 제휴하고,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더니 여기저기 가서 약속하고 사과하고 뒷담화하면서도 결국 각자의 색깔과 맛이 다른 사람들을 모두 끌어모았다. 이 광경을 보면서 떠오른 것은 그의 의지가 어쩌면 정반대의 결과를 낼 수도 있을 것이란 예측이었다. 다양한 입맛을 가진 사람들의 표를 모두 얻기 위해서 통합의 잡탕찌게에 매운 맛(김병준), 단 맛(이준석), 쓴 맛(김종인)을 아낌없이 털어 부었고 거기에 금태섭(떫은 맛) 등 온갖 재료를 투하하며 스스로 자랑스럽고 대견스러워 하는 모습. 그 잡탕찌게는 정말 다양한 입맛을 가진 사람들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울 만족스러운 맛이 나올까? 아니면 이 땅의 개, 돼지들을 위한 오묘한 맛의..

일반 칼럼 2021.12.09

교민사회에선 입조심

끝말 잇기 1997년 태국발 외환위기로 시작된 아시아 경제위기가 지나고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금융계 판도가 한바탕 정리된 시점에, 한 금융사에서 파견나온 한 고교동창은 자신이 속한 금융기관이 그 사이 합병된 상대 은행 자카르타 지점 청산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철저한 보안유지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업무와 관련되지 않었음에도 해당 상황에 호기심을 보이는 교민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자제하고 극도로 말을 아낀 것은 물론 식사자리에 참석할 초대받아도 웬만하면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개인적으로 술을 마실 때마다 나를 대작 상대로 불러내곤 했는데 혹시라도 술 먹다 업무상 어려움도 토로하고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사람을 씹게 될 경우 아무 이해도 엮이지 않고 절대 말도 옮기지 않을 사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일반 칼럼 2021.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