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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와티의 몽니로 정권 상실 위기의 투쟁민주당 본문
뿌안은 투쟁민주당의 에이스일까?
2024년 2월로 예정된 대선과 총선이 아직 17개월 이상 남은 시점이지만 인도네시아 정치권은 관심은 온통 선거준비에 쏠린 모양새다. 특히 독립기념일 연휴가 끝나자마자 나스뎀당, 그린드라당을 연속적으로 방문한 투쟁민주당(PDI-P) 소속 뿌안 마하라니 국회의장의 이른바 ‘정치 사파리’ 투어가 계속되면서 각 당의 입장과 속내가 엿보이며 향후 대선정국의 추이를 대략 추론할 수 있게 한다. 물론 그런 움직임 중심에 당선 가능성이 가장 희박한 뿌안이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컬하다.
뿌안은 투쟁민주당의 에이스인가?
8월 하순에 접어들면서 나스뎀당을 시작으로 정치 사파리 투어를 시작한 뿌안은 명목상 2024 선거를 위해 다른 당들과의 제휴를 모색하라는 투쟁민주당 메가와티 총재, 즉 어머니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지만 사실상 그 덕에 잠재 대선주자로서의 행보를 시작한 것이다. 사실 그녀의 대망은 낮은 인지도 극복을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 자기 얼굴을 담은 옥외광고판을 세울 때 이미 시작되었을 것이고 그녀의 대통령 당선을 바라는 메가와티의 염원의 시작은 그보다 더욱 일렀을 터다.
하지만 그로 인해 투쟁민주당은 물론 뿌안 자신으로서도 선택의 폭이 크게 줄었다. 누가 뭐래도 2024년 대선에서 승리를 거머쥘 사람은 쁘라보워 수비얀토 국방장관, 아니스 바스웨단 자카르타 주지사, 간자르 쁘라노워 중부자바 주지사 세 명밖에 없다. 뿌안이 대선에 나가려면 우선 그중 같은 당의 간자르는 협력대상이 아니라 출마를 좌절시켜 밟고 올라서야 할 상대다.
그렇다면 필승을 위해 손잡을 상대는 쁘라보워와 아니스 두 명으로 좁혀지는데 지지율 바닥인 뿌안으로선 지지율이 가장 높은 쁘라보워 외에 선택지가 없다. 하지만 그 쁘라보워가 대통령 후보 자리를 뿌안에게 줄 리 만무하다. 현재 가장 유력한 뿌안의 선택지는 쁘라보워의 부통령 러닝메이트가 되는 것뿐이다. 현 집권여당인 투쟁민주당이 인기 높은 현직 대통령과 간자르라는 유력한 잠재 후보를 보유하고서도 오직 수카르노 가문과 뿌안의 영광만을 위해 과연 저런 초라한 길을 걸어갈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여기에, 뿌안으로는 정권 재창출이 어려울 것이라는 사이풀 무자니 연구컨절팅(SMRC)의 9월 15일공식 유튜브 채널 방송내용이 쐐기를 박았다. 물론 이게 꼭 누가 얘기를 해줘야 알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아니스의 인기
쁘라보워가 대통령 후보직을 뿌안에게 넘겨줄 리 없다는 점에서 투쟁민주당으로서는 아니스 주지사와의 제휴가 더욱 매력적이었을 지도 모른다. 뿌안의 정치 사파리 첫 방문지가 사실상 아니스를 자당의 대선후보로 여기고 있는 나스뎀당이었데 그것은 아니스에 대한 러브콜 성격으로 읽힐 수 있다. 아직 무소속인 아니스는 대선 출마를 위해 대선판 입장권을 가진 정당의 선택을 받아야 하므로 투쟁민주당이 아니스의 손을 잡아 주는 조건으로 그를 뿌안의 부통령 러닝메이트에 앉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아니스보다 훨씬 높은 지지율을 구가하는 쁘라보워를 뿌안이 이길 수 있는 산술적 확률을 거의 없다. 투쟁민주당의 고민이 깊어지는 지점이다.
하지만 이와 관계없이, 이제 주지사직 퇴임을 한달 남기고 있는 아니스는 좀 더 노골적으로 2024 대선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는 9월 8일(금) 야당인 민주당의 창립 21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다가 2024 대선준비가 잘 되어가느냐는 질문을 들었다. 민주당의 유도요노 전 대통령은 장남 아구스 하리부르티 유도요도(AHY) 총재와 아니스 주지사의 러닝메이트 구도를 심도 있게 검토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간자르의 출마 가능성이 뿌안으로 인해 점차 희박해지면서 그의 개혁적 성격을 지지하던 표들이 구세대의 상징인 뿌안이나 쁘라보워보다 자카르타 주지사로서 많은 업적을 남긴 아니스에게 몰릴 가능성이 크다. 잠재 대선후보 상위그룹에서 늘 3위를 차지하던 아니스가 간자르 지지자들을 넘겨받아 1위로 등극할 가능성이 남아 있는 것이다. 퇴임을 앞둔 그의 인기가 상승하는 이유다.
그는 9월 15일(목)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비록 정당의 선택을 아직 받지 못했지만 2024 대선 출마준비가 되었음을 노골적으로 밝혔다. 차오르는 자신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조코위 대통령의 선택: 부통령 출마 또는 킹메이커?
대통령 3선 연임, 대선 2년 연기 등 그간 조코위 대통령의 임기연장을 위한 여러 담론이 나온 끝에 지난 주엔 그가 부통령으로 출마할 수 있다는 또 다른 신박한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헌법이 이를 명시적으로 금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담론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그렇다고 조코위 대통령이 이 아이디어에 대해 분명한 반대의사를 밝히지도 않았다.
한편 그는 9월 12일(월) ‘조코위의 국가사무국’이란 지지그룹과 만나 자신이 남길 유산을 보호하고 계승할 후보를 지지해 달라고 당구했다. 즉 대통령이 특정후보를 지지하겠다는 것인데 한국 같으면 대선개입으로 간주되어 큰 난리가 날 사안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인도네시아에서는 해당 발언을 그리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다.
조코위가 지지할 후보가 누구일까 하는 추측은 그리 어렵지 않다. 조코위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현안과 위업은 동부 깔리만탄으로 수도를 이전하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2년 가까이 지연되었고 최근 일본 소프트뱅크가 투자에서 발을 빼면서 이전 비용 조달에도 비상이 걸렸지만 당국에서는 2024년까지, 즉 조코위 대통령 임기만료 전까지 대통령궁과 국회 등 신수도 1기 건설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물론 그건 물리적으로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시간표다.
고가도로 하나 짓는 것도 2-3년 걸리는 인도네시아에서 도시 하나를 2년 만에 뚝딱 만들어낼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니 후임 대통령이 이를 승계하고 보호하는 것은 조코위 대통령이나 관련 이권에 깊이 간여한 측근들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 하나 이전하는 데에도 어마어마한 공사들과 엄청난 이권이 따라가는데 도시 하나를 새로 만들어 수도기능을 이전하는 것은 더 하면 더 했지 덜 할 리 없는 일이다.
미소짓는 쁘라보워
투쟁민주당이 아닌 다른 당이 정권을 가져간다면 조코위 정권이 시작한 거대한 프로젝트의 이권이 제대로 지켜질 리 없다. 어쩌면 수도 이전 자체가 아직 시작도 안한 셈이니 아예 무산될 수도 있다. 그리고 뿌안은 자신이 조코위의 위업을 승계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언한 적도 없다. 우린 최소한 그녀가 수카르노 가문의 영광을 위해 일할 것이란 정도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분명한 승계의지를 밝힌 것은 쁘라보워 뿐이다. 그는 심지어 자신이 조코위 대통령의 유일한 정통 후계자라고까지 발언한 바 있다.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가 한 그러한 발언에 조코위 대통령이 반색하지 않을 리 없다. 투쟁민주당은 조코위 대통령이 지지그룹을 만나 특정 후보 지원의사를 밝히자 다음날인 9월 13일(화) 부랴부랴 조코위 대통령이 메가와티와 한 뜻일 거라며 입단속에 나섰지만 조코위 대통령에겐 신수도 등 자신의 위업이 지켜지는 것이 뿌안의 당선보다 더 중요할 것 같다.
이 모든 것은 뿌안을 대선후보로 삼으려는 메가와티의 몽니에서 시작되었는데 결국 지금 표정관리하며 애써 미소를 숨기고 있는 사람은 아마 쁘라보워일 듯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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