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일반 칼럼

보로부두르 사원 입장료 인상 해프닝

beautician 2022. 6. 24. 11:58

보로부두르 입장료 인상 논쟁.pdf
0.88MB

보로부두르 사원 입장료 파격 인상 해프닝

 

보로부두르 사원; (사진출처:인도네시아 해양투자조정부 홈페이지)[1]

 

중부 자바의 족자와 스마랑 사이 마글랑(Magelang) 지역에 위치한 보로부두르 사원(Candi Borobudur)은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다. 8-9세기 사일렌드라 왕조 시대에 건축된 이 사원은 가로 세로 각각 123미터에 높이 42미터로 아래쪽 사각형 플랫폼 6개 층과 위쪽 원형 플랫폼 3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부처의 일생을 주된 테마로 한 2,672개의 부조와 504개의 불상들이 설치되어 있다.

 

정글 속 흙더미 속에 파묻혀 있던 보로부두르 사원이 발견된 것은 19세기 초였는데 사원은 반파되어 거의 무너진 상태였고 많은 불상들 목이 잘려 있었다. 인도네시아에 이슬람이 전파되고 술탄국들이 힌두불교왕국을 자바섬에서 몰아내던 14세기경부터 방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원의 발굴은 그로부터 약 500년 후인 19세기에 시작되었지만 실제로 대대적인 복원사업은 1975년 이후 인도네시아 정부와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으면서 탄력을 받아 현재의 모습을 되찾았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세계에서 가장 큰 고대 불교사원으로 미얀마의 바간(Bagan),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와 함께 동남아에서 가장 위대한 고고학적 유적으로 손꼽힌다. 당연히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매년 이곳을 찾는다. 섬 전체가 관광지여서 2019년 기준 외국인 관광객들만 620만 명 이상 방문한 발리와 비교할 바 못되지만 보로부두르 사원은 육상교통편으로만 도착할 수 있다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2016~2019년 사이 연간 내국인 360~370만 명, 외국인 20~25만 명 정도가 다녀갔다. 발리 대비 외국인은 3%에 불과하지만 내국인은 30%를 넘는다. 인근 지역 경제가 관광수입에 크게 의존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가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2020년 방문객은 내국인 96만 명, 외국인 3만여 명으로 대폭 감소했고 지역경제는 이후 팬데믹 기간 내내 크게 위축되었다.[2]

 

인도네시아는 2021년 초부터 조기 방역규제 완화를 추진했지만 그해 7월 델타 변이가 전국을 강타해 엄청난 인명피해가 나면서 당시 이미 고사해 가던 관광산업의 재건은 요원해 보이기만 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코로나 상황이 진정되자 그해 10월 발리와 리아우 군도의 관광목적 국제선 직항로 재취항을 허용했다.[3] 하지만 실제로 첫 국제선 항공기가 발리에 취항한 것은 올해 2월의 일이다. 이후 싱가포르와 호주가 속속 취항하면서 외국인 입국자들에 대한 자가격리 규정도 대폭 완화되었고 3월에는 도착비자제도(VoA)가 발리에서 제일 먼저 재개되었다. 그렇게 하나 둘 빗장을 푼 인도네시아는 5월 말에 접어들면서 국제선 입국이나 국내여행과 관련한 코로나 방역규제의 거의 대부분을 폐지하거나 대폭 완화했다.

 

특히 라마단 금식월을 마치고 이둘피트리 장기 연휴를 맞은 5월 초 정부가 2년만에 귀성금지를 풀어 예년 평균의 두 배인 6,50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고향을 방문했다. 이에 힘입어 국내여행이 아연 활기를 띄었고 4월에 입국한 외국인 관광객 숫자는 작년 동기 대비 다섯 배 증가했다. 바야흐로 관광산업이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보로부두르 사원 입장료 15배 인상

문제는 바로 이 시점에서 보로부두르 사원 입장료를 파격적으로 인상한다는 발표가 나온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고속도로 이용료나 영화관람요금 같은 것을 단번에 20-30%씩 올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지만 보로부두르 사원 내국인 입장료를 15배 올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이번 인상안은 현지인들에게도 가히 충격적이었다. 해당 발표가 나온 6월 4일(토)부터 12일(일)까지 8일간 더틱닷컴(detik.com)에서는200개, 꼼빠스닷컴(Kompas.com)은 100개, 안타라뉴스(Antaranews)는 60개 이상의 관련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해당 발표는 조코위 정권의 실세 중 실세라 할 수 있는 루훗 빈사르 빤자이탄 해양투자조정장관의 입에서 나왔다. 보로부두르 사원 하루 입장객 수를 제한하고 국내외 방문객들의 입장료를 대폭 인상한다는 것이었다. 우선 내국인 성인 방문객 입장료는 현행 5만 루피아(약 4,300원)에서 75만 루피아(약 6만5,000원)로 15배 인상하고 외국인 관광객들은 성인 35만 루피아(약 3만 원), 아동 21만 루피아(약 1만8,200원)에서 미화 100불, 즉 144만 루피아(약 12만5,000원)로 약 네 배 인상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했다.

 

루훗 장관은 이 같은 입장료 인상이 방문객 수를 제한해 결과적으로 유적지 보존에 일조할 것이라면서 하루 방문객을 1,200명으로 제한할 계획도 밝혔다.

 

한편 학생들 입장료는 5,000루피아(약 430원)로 책정되었다. 현행 학생요금은 10세 이상 아동청소년은 5만 루피아(약 4,300원), 3세 이상 10세 미만 아동은 2만5,000루피아(약 2,150원), 3세 미만은 무료이며 학생 단체는 일인당 2만5,000루피아의 입장료를 받고 있으므로 5분의1 내지10분의1 수준으로 인하한 것으로 학생들의 방문을 권장한다는 취지지만 해당 인상안이 시행되면 학생들에 비해 내국인은 150배, 외국인은 288배를 더 내야 하는 현저한 입장료 차이로 보로부두르 사원은 이후 학생들의 수학여행지로 고착되기 쉽다.

 

또한 학생 방문자들이 하루 방문 제한인원 1,200명에 포함되는지 여부도 분명치 않았다. 관광수입이란 측면에서 오히려 내국인 학생 1,200명의 입장을 막고 외국인 다섯 명을 들이는 편이 더 큰 입장료 수입을 올리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관광지나 유적지에서 외국인 입장료가 내국인보다 더 비싸게 책정되는 것은 썩 유쾌하진 않지만 일반적인 관행이다.[4]

 

엄청난 입장료 인상 계획에 보로부두르 방문을 희망하는 실수요자들의 거센 비난이 쏟아지고 관광업계 종사자들 역시 이로 인해 방문객들이 크게 줄어들 것을 우려하자 산디아가 우노 관광창조경제부 장관, 에릭 토히르 국영기업부 장관 등 정부 고위 관료들은 물론 간자르 쁘라노워 중부자바 주지사와 보로부두르 사원 관리당국도 입장료 인상을 옹호하는 발언을 쏟아낸 것이 더 큰 불만과 비난을 불러 일으켰다.

 

부연설명의 골자는 이랬다. 사원 입장료 자체는 종전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단지 사원 콤플렉스의 뜰 안에 들어온 관광객들 중 유적 구조물에 올라가려는 사람들은 내국인 75만 루피아, 외국인 100불을 내라는 것이다. 그 금액을 입장할 때 일괄 지불할 것인지 입장 후 별도로 내게 할 것인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한편 학생들 입장료를 5,000루피아로 인하하는 것은 맞는데 학생들 숫자는 하루 제한인원 1,200명의 20%인 240명으로 제한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학생들도 사원 구조물에 올라가려면 75만 루피아를 따로 내야 하는지는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 부실한 세부사항으로 인해 여행업계와 여행자들의 혼란은 더 커졌다.[5]

 

당국이 충분히 다듬어지지 않은 방침을 너무 성급하게 꺼낸 것이 분명하지만 고대유적의 민간노출을 어느 정도 제한하고 유지보수를 위한 재원확보를 도모한다는 차원의 방문인원 제한과 입장료 인상은 어느 정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2010년 10월과 11월 인근 머라삐 화산 분출로 산성 화산재가 2.5센티미터 두께로 쌓여 5일간 문을 닫고 유적 전체에서 화산재 세척작업을 해야 했다. 2014년 2월에도 인근 껄룻 화산 분화로 또 다시 유사한 피해를 입었다. 당시 인근 주민들은 하늘에서 ‘불비가 내렸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옛날 이 사원이 정글 속 흙 속에 파묻혔던 것 역시 무슬림들의 파괴행위 때문이 아니라 지진과 화산분화 때문이었다는 논리에 힘이 실렸다.

 

많은 관광객들의 방문 역시 사원 구조물을 물리적으로 마모시켰다. 사원 기저에서 꼭대기까지 이르는 동서남북 네 방향의 2,033개 돌계단들 중 49% 이상이 심하게 마모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심지어 1985년 1월엔 정상 부분의 불상들을 덮고 있는 스투파(Stupa)라 부르는 종 모양 구조물 아홉 개가 폭발물 테러로 크게 훼손되는 사건도 있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적 문화유산을 보존한다는 측면에서의 방문객 인원제한과 유지보수 비용은 물론 오랜 팬데믹으로 피폐해진 인근지역 경제재건 차원의 입장료 인상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는 공감대는 형성되고 있지만 루훗 장관이 발표한 입장료 인상은 그 엄청난 인상규모와, 이를 정당화할 균형적이고도 설득력 있는 디테일의 부재로 오히려 많은 비난을 불러 일으켰다.

 

보로부두르 사원 청소작업; (출처:중부자바 주정부 홈페이지)[6]

 

 

입장료 인상 연기

보로부두르 사원 입장료 인상안 시행은 비판여론에 부딪혀 일차 연기되었다가 6월 14일(화) 결국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이를 철회했다. 그러나 세계유산 보전이란 대의가 있는 만큼 인도네시아 당국이 조만간 좀 더 납득할 만한 별도의 인상안을 가지고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입장료 인상안 옹호 일변도였던 정부당국과 달리 정치권의 매서운 지적과 반대가 크게 작용했다. 일각에서는 유적지 훼손방지가 목적이라면 방문객을 하루 1,200명으로 제한하는 것으로 이미 충분하며 입장료 인상보다 관광객들에 대한 유적지 행동지침교육과 규칙위반의 경우 엄중한 벌금부과 등의 조치가 더욱 부합하는 방식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도네시아 소비자단체협회(YLKI) 뚤루스 아바디 위원장은 사원 입장료의 급격한 인상이 공익적 목적보다는 상업성이 농후하며 국가경제발전에 이바지하긴커녕 결과적으로 보로부두르 사원을 부자들만 보러 올 수 있는 곳으로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7]

 

보로부두르 사원은 개개인의 종교적 신념을 떠나 누구나 자랑스러워할 문화 유산이고 가장 선호하는 관광지 중 하나인 만큼 이번 입장료 인상 규모는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대부분 신문들은 기사에 팩트만 담았지만 입장료 인상을 옹호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모두의 내용을 각각 보도하면서 특별히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기사의 균형을 맞췄다. 한편 일부 매체들의 사설을 통해 입장료 인상이 유적지 보호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며 당국에 동조하는 기조가 많았다.

 

물론 국민들의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는 매체도 있었다. 진보 성향의 메트로TV는 6월 6일 ‘보로부두르가 국민들 지갑형편에 적대적’이라는 제목의 22분짜리 동영상을 통해 보로부두르 사원 입장료 인상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다.[8]

 

하지만 대체로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길 서슴지 않던 영자지 자카르타포스트도 6월 9일(목) ‘보로부두르의 가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번 입장료 인상 시도에 엿보인 유적 훼손 방지를 위한 정부의 노력에 동조했다.[9]

 

인도네시아 관광산업 재건을 위해

2020년 3월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후 완전히 정지해 버린 인도네시아 관광산업 재건을 위해 정부 당국은 많은 노력을 경주해 왔다. 발리, 리아우제도의 빈딴섬 등을 위시한 국내 관광지들을 코로나 청정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백신접종과 방역에 전력했고 싱가포르와 호주 등 팬데믹에서 먼저 벗어난 국가들과 트래블 버블을 만들어 무격리 관광여행통로를 개통하려 애썼다.

 

특히 주무부처인 관광창조경제부에서 관광객 유치를 위해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2020년 말에는 필자도 그 프로그램들 중 하나에 초청되어 올해 11월 G20 정상회의가 열릴 동누사떵가라(NTT)의 라부안바조(Rabuan Bajo)-코모도섬 일대의 해양공원과 발리 투어를 다녀온 적도 있었다. 당시 한국 매체 두 곳과 요미우리 신문 등 일본 매체 두 곳, SNS 인플루언서 등이 관광창조경제부 담당 국장과 함께 여행하며 취재하였다. 올해 초에도 프레스 투어 행사가 조직되었고 이번엔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개막식에 참석한 MotoGP 국제 오토바이 경기대회 참관을 포함한 롬복과 발리 투어에 교민매체 편집장들이 초청되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코로나로 발이 묶였던 해외 관광객들이 다시 인도네시아를 찾아오도록 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그런데 이제 코로나 팬데믹 끝물에 현지 대부분의 유명 관광지들이 외국인들에게 개방되고 국내여행도 활성화되는 시점에서 부각된 이번 보로부두르 사원 입장료 인상 시도는 앞으로 비슷한 일이 여러 다른 여행지에서도 일어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간 노력에 힘입어 관광객들이 다시 인도네시아와 관광지에 들어오게 되자 이젠 관광수입을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모양새다. 가격인상은 그 경우 가장 효과적인 중 방법 중 하나다.

 

 인도네시아는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조치를 아무렇지도 않게, 그리고 갑작스럽게 시행하는 나라다. 올해 1월에는 발전소용 석탄이 부족해지자 석탄 해외수출을 한시적으로 중단했고 4월 말에는 국내 식용유 파동이 벌어지자 이번엔 팜유 원유수출을 중단해 전세계적으로 충격파를 던졌다. 이 조치로 인해 해외 수입상들은 물론 국내 생산업체들과 수출업체들도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를 개의치 않는 듯하다.

 

심지어 2019년에는 현지 군사박물관을 방문하려는 외국인들은 우리 국정원에 해당하는 국가정보국(BIN) 추천서를 받아오도록 해 사실상 외국인들의 박물관 출입을 금지시킨 일도 있었다. 자카르타에서 거의 대부분의 박물관들을 다녀본 나도 고작 군사박물관 한번 더 들어가 보겠다고 국가정보국까지 찾아가 수속을 밟는 것이 너무 과하다 여겨 손을 들고 말았다. 말도 안되는 것 같은데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

 

그러니 보로부두르 사원 입장료의 기습 인상 같은 것은 사실 인도네시아에서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매체들이 이번처럼 뜨겁게 반응하며 수많은 후속기사들을 단기간 내에 양산하는 것은 흔히 보지 못했다. 어쩌면 특정 사안에 대해 매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 해당 기사를 대량 노출해 독자들이 스스로 어느 편에 설 지 판단하도록 만드는 것이 좀 더 언론 본연의 역할에 가까운 것일 지도 모른다.

 

물론 가격이 저 정도로 뛰면 사원 관리주체 외엔 누구도 좋아할 사람 없는 게 정상일 듯하다. (끝)



[2] 보로부두르 사원 방문객 통계는katadata가 인도네시아 통계청(BPS) 자료를 인용함: https://databoks.katadata.co.id/datapublish/2022/06/07/imbas-pandemi-covid-19-pengunjung-candi-borobudur-merosot-tajam-pada-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