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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사들에게 유례없이 힘들 2024 대선

beautician 2022. 8. 23. 11:38

아니스가 가야할 길

 

아니스 바스웨단 자카르타 주지사

 

다양한 여론조사기관들이 매번 대선 당선가능성 조사결과를 내놓을 때마다 쁘라보워 수비얀토 그린드라당 총재와 간자르 쁘라노워 중부자바 주지사, 아니스 바스웨단 자카르타 주지사 세 명이 늘 상위권을 형성하며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별로 서로를 경계하지 않는 듯하다. 처한 입장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간자르 주지사는 여론조사기관이나 조사방식에 따라 쁘라보워보다 높은 지지율을 보인다. 하지만 정작 그가 속한 투쟁민주당에서는 당총재 메가와티의 딸 뿌안 마하라니 국회의장을 차기 대선후보로 지명하려는 추세여서 당내 엘리트들로서는 간자르가 지지대상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제압해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렇다고 간자르가 탈당하고 다른 당의 대선주자가 되려 하면 배신자란 꼬리표가 붙으면서 친투쟁민주당 성향의 추종자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갈 판이다. 그래서 간자르는 대선에 대해 단 한 마디 입장표명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쁘라보워는 대체로 초연하고 느긋한 편이다. 2024년 인도네시아 대선이 주지사들에게 유례없이 가장 어려운 선거가 될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주지사들이 최후의 순간까지 현직을 유지하다가 막판에 대선출마를 선언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번엔 올해 있어야 할 지방선거가 2024년으로 연기되었고 그 결과 지자체장들 임기가 속속 만료되면서 선출직이어야 할 그 자리에 내무부가 지정한 인사를 앉히고 있다. 이들 대행 지자체장들이 앞으로 2년 넘게 선출직을 대신해 그 자리에 앉아 권한을 대행하게 된다. 선출직 주지사들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간자르와 아니스도 2개월 후면 주지사직에서 물러나 긴 공백기간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현 정부의 국방장관인 쁘라보워는 여전히 무대 위에서 줄곧 국민들에게 자신의 근황을 보여줄 것이므로 누구보다도 유리한 입장에 있다. 전전긍긍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투쟁민주당이 뿌안을 당 대선후보로 추대한다 하더라고 그린드라당과 제휴할 경우 당선가능성 25% 전후인 쁘라보워에게 대통령 후보 자리를 내놓으라 하기에 1%를 간신히 넘을동말동 한 뿌안의 지지율은 겸연쩍기만 하다. 하지만 뿌안을 잡으면 투쟁민주당의 표 대부분이 따라올 것이다. 그래서 쁘라보워는 국민각성당(PKB)와 정당연합을 결정해 대선 입장권을 얻고 무슬림 표도 끌어오면서 정작 무하이민 PKB 총재에게 부통령 후보 T/O를 내주지 않고 뿌안을 위해 비워놓은 것이다.

 

무소속 아니스는 퇴임 후 가장 불리한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퇴임 전 자신의 몸값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사실 그는 코로나 팬데믹이 휩쓸던 지난 2년 반 넘는 기간 동안 그런 생각을 줄곧 해왔던 것 같다.

 

그래서 방역비용으로 국고가 텅텅 비어가던 상황에서도 기어이 총 4조8,000억 루피아(약 3,350억 원)의 공사비를 들여 인도네시아 최초의 개폐형 지붕, 스카이뷰 데크. 하이브리드 잔디운동장을 보유한 자카르타국제경기장(JIS)을 완공했다. 8만2000명 관객들을 수용하는 이 경기장은 아시아 최대 규모다. 안쫄 톨을 달릴 때 곁을 스쳐 지나게 되는 이 거대한 시설은 이후 두고두고 아니스의 치적으로 기억될 것이다.

 

지난 6월 4일 열린 2022 자카르타 포뮬러 E 전기차 경주대회도 그의 대표적인 업적 중 하나다. 안쫄 지역 도로를 차용하고 개조해 완성한 경기장에 포뮬러 E 대회를 유치하는 데에도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5,000억 루피아 이상의 비용이 소요되었다.

 

이외에도 그는 자카르타를 관통하는 두 개의 중앙통 도로에 11 킬로미터에 달하는 보호형 자전거 도로 건설과, 서로 다른 형태의 교통수단 간 매끄러운 환승이 가능하도록 여러 기차역과 전철역 개보수를 감독했다. 도시버스 고속운송시스템(BRT), 즉 버스웨이 확대도 도모해 자카르타 주민 80%가 주거지로부터 도보 500미터 거리 안에서 버스 정류장에 도달할 수 있게 한다는 목표를 나름 달성했다. 아주 완벽하진 않지만 어쨌든 자카르타 공공교통 시스템의 통합을 이룬 것이다.

 

이제 퇴임까지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아니스 주지사의 노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는 지난 8월 17일(수) 독립기념일 행사에서 부동산공시가격(NJOP)이 20억 루피아(약 1억8,000만 원) 미만의 토지와 건물에 대해서는 도농토지건물세(PBB-P2)를 추가로 면제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자카르타 주정부는 2019년에도 공시지가 10억 루피아(약 9,000만 원) 미만의 토지와 건물을 가진 개인과 기업, 단체에 도농토지건물세 면제 정책을 이미 발표해 시행 중이었는데 이를 확대한 것이다. 이번 추가 세금면제정책이 시행되면 자카르타 소재 주택 85%가 혜택을 받게 된다. 면제대상에는 우수 납세자, 교사, 교수, 교육근로자, 참전용사, 국가영웅, 훈포장 수상자, 전직 대통령과 부통령들, 전직 주지사와 부지사, 퇴역 군경과 공무원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자신의 임기 내내 예전 규정대로 세금을 걷다가 임기 말에 세원을 축소해 차기 주정부 넘겨준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8월 18일에는 북부 자카르타 뻔자링안(Penjaringan) 지역에서 루수나와(Rusunawaw)라 부르는 공공임대아파트 33개 동 7,421 가구의 12개 단지 공식 준공식을 가졌다. 이는 선수금을 지불하지 않고 입주할 수 있는 주택을 제공하겠다고 했던 2017년 주지사 선거 공약 실천의 일환이다. 하지만 23만 가구 이상을 공급하겠다던 당초 공약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이렇게 열심히 대선용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있는 아니스의 상황과 당내에 내로라한 대선후보가 없는 각당 또는 정당연합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얽히고 섥히면서 노골적 또는 암묵적인 러브콜이 아니스에게 집중되고 있다.

 

가장 먼저 손을 뻗은 나스뎀당은 조코위 연정의 정보통신부 장관을 배정받아 죠니 G 쁠라테를 입각시켰는데 대선 입장권을 얻기 위해서는 부득이 둘 밖에 남지 않은 야당인 민주당, 번영복지당(PKS)과 제휴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아무래도 첨예하게 충돌하던 야당과 여당이 선뜻 손잡는 게 쉬운 일이 아니어서 그 개연성은 점점 줄어드는 듯하다. 아니스 역시 선뜻 입당의사를 보이지 않는 것은 나스뎀당이 결국 대선 입장권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일찌감치 간파한 골카르당, 국민수권당(PAN), 통합개발당(PPP)의 정당연합인 KIB 측에서 아니스를 자신들의 잠재후보로 거론한 지 이미 오래다. 최근 국민수권당 자카르타 지부가 개최한 2024 총선준비 역량강화를 위한 실무회의에서 아니스 주지사와 에릭 토히르 국영기업부 장관을 정부통령 러닝메이트로 묶는 방안이 논의된 것도 아니스에게 보내는 또 다른 형태의 러브콜이다. 국민수권당 내부적으로는 자당 총재인 줄키풀리 하산을 대선후보로 정했지만 그가 사실상 대선경쟁력이 전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미 대선입장권을 가진 KIB이 아니스에게 매력적이지 않을 리 없다.

 

10월 16일 주지사직 퇴임을 앞둔 아니스가 정말 대선출마 의지를 분명히 가지고 있다면 무대에서 내려와 국민들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 자신이 소속할 정당을 잠정적으로나마 결정할 것이라 전망된다. 현역 장관이자 유력한 정당의 총재인 쁘라보워를 상대로 어려운 선거를 치러야 하는 주지사로서는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 않다.

 

유일한 변수라면 앞으로 대선을 18개월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어느 시점에 혹시 개각이 이루어져, 그때 이미 주지사직에서 물러나 백수가 되어 있을 간자르나 아니스가 각료로 입각한다면 대선의 진행축이 다이내믹하게 바뀔 것이고 투쟁민주당과 그린드라당엔 당장 공습사이렌이 울기 시작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