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206)
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78.6 올 초에 가슴이 너무 아파서 새벽에 일어나 고민하던 일이 기억납니다. 가슴이 옥죄듯 아프거나 두통이 심하거나 뒷목이 뭉치듯 아프면 대개 그건 살이 너무 쪘다는 신호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2020년 연말을 지나면서 좀 과하게 살이 쪄버려 체중계에 한 번 올라가 봤다가 본 당시 체중에 쇼크를 먹을 정도였습니다. 87-88킬로쯤까지 갔는데 그 이후에도 체중은 좀 더 늘어났으니 어쩌면 90킬로를 넘은 적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작년 중반 77킬로 전후를 오갈 때에도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던 중이었습니다. 바지들을 살려야 했거든요. 그간 무수한 내 바지들이 인생의 모퉁이 여기저기에서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언젠가부터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풀었던 것 같아요. 그날 새벽,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 ..
중간차선의 용도 인도네시아 와서 운전하던 처음 몇 년 간 가장 적응이 안되던 건 이런 거였습니다. 1. 신호등이 안보인다 – 없는 게 아니고 있긴 한데 한국 신호등과는 조금 다른 위치에, 그것도 조금 아래쪽에 달려 있어서 익숙하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습니다. 2. 차간거리가 좁다 – 앞뒤 차간거리가 좁은 건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인도네시아는 좌우 차간거리가 좁았어요. 그래서 내 차의 폭이 얼마인지 금방 익히게 되었고 딱 보기에 차가 못지나갈 것 같은 공간으로 얼마든지 지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3. 버스의 검은 매연 – 거의 대부분의 버스들이 시커먼 매연을 뿜고 다녔는데 지난 세기에는 거의 단속을 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부터 공공차량들 배기가스 검사를 하기 시작하면서 이젠 거의 사라졌지만 요즘도 가..
교주 오늘도 온라인예배가 있었습니다. 교회에 마지막으로 간 게 작년 2월이니 1년 반 이상 교회에 가지 않은 셈입니다. 두 차례 이상 교민사회의 코로나 감염 클러스터가 되었던 우리 교회는 최근 인도네시아의 코로나 지표가 표면적으로나마 크게 호전되면서 다시 대면예배 재개를 모색하는 중이고 화면에 보이는 예배당 내부엔 최대 400-500명 입장 가능한 공간에 출석예배를 드리는 사람들 50명 정도가 보입니다. "헌금을 안내는 게 하나님 돈을 훔치는 거야?" 아내가 이런 질문을 하는 걸 보면 오늘도 헌금얘기가 나온 모양입니다. 교회에 돈이 필요하다는 건 사실 잘못된 것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닙니다. 건물을 유지하고 목사, 전도사, 용인들 급여도 줘야 하고 그래도 남는 돈이 있으면 선교나 구제도 해야 하니까요..
내 불만의 본질 2주 넘게 발목을 잡고 있던 영진위 보고서를 방금 전에 마쳤습니다. A4 30페이지가 넘으니 퇴고하는 데에만 오전이 다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또 하나 마쳤다는 생각이 조금 홀가분해집니다. 인도네시아 복지시스템 보고서를 앞으로 36시간 안에 끝낸다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바로 다음 순서지만요. 일단은 한 두 시간 정도 숨을 돌려 보렵니다. 이번 보고서 주제였던 OTT-VOD라는 말은 'Over the Top'과 'Video on Demand'의 역자입니다.그래서 샛톱박스로 보는 케이블 TV 같은 건데 영상을 내가 골라서 보는 시스템을 말하는 거죠. top은 셋톱박스를 뜻합니다. 물론 요즘은 케이블용 셋톱박스 없이 인터넷 기반의 VoD 시대이니 첨단 용어인듯 한 OTT라는 ..
정신과 시간의 방 최근 두 달동안 이렇게까지 마감에 심하게 치인 적이 있나 싶을 만큼 시달리는 중입니다. 원래 매달 늘 두 건 정도의 마감이 있었는데 8월, 9월에는 네 개씩 쳐내야 했습니다. 그게 상당한 조사와 번역작업이 선행되어야 해서 결국 보고서 하나 마치는 게 10일쯤 걸리는 것 같습니다. 한 달이 30일인데 네 개가 걸려 원래는 40일이 필요한 거라서 이리 치이는 걸까요? 거기에 매일 기사번역 한 두 개에 인생질문 에세이, 두 주에 한 번 귀신원고도 있지만 그건 루틴에 가까운 일이라 그것 때문에 보고서 마감이 힘들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세 가지 정도 이유가 있습니다. 하루 두 시간 하는 운동이 시간을 뻇고 10시-11시 정도부터 쏟아지는 졸음이 또 다른 문제입니다. 하지만 운동..
길바닥 눈싸움 인도네시아에 와서 처음 5년쯤 지나는 동안 가장 적응하기 어려운 것은 거리에서 이상한 객기를 부리는 현지인들이었어요. 특히 차를 몰고 다니다 보면 좁은 골목 한 가운데로 걸어가면서 뒤에서 차가 와서 경적을 울려도 돌아보지도, 피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귀머거리라서 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매우 기분 나쁜 표정으로 슬쩍 돌아보고는 계속 그대로 길 한가운데를 걸어갔습니다. 내가 너 따위한테 길을 비켜줄 것 같아?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도로를 횡단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명백히 자신이 교통위반을 하고 있으면서도 운전자를 노려보며 어슬렁거리며 지나는 사람들과 자주 마주쳤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카르타 주민들이 다 건달들이냐 하면 실제로 얘기를 나눠보는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사근사근하기 이를 ..
랑종 한국인 제작자가 참여한 태국 공포영화 은 호불호가 갈린다는 감상평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갔습니다. 엑소시스트 류의 영화가 대개의 경우 악령의 빙의를 당한 당사자 한 명의 목숨을 중심으로 주변 여러 사람들의 운명을 뒤흔들어 놓는 전개로 가거나 전염병 퍼지듯 빙의가 전파되어 귀신들린 사람들이 드글거리며 해당 사회가 무너져버리는 식으로 전개되는 게 보통이죠. 아무래도 빙의자, 감염자들이 많아야 판이 커지는 만큼 영화제작자들은 후자의 전개방식을 좋아하는 모양인데 그건 사실 좀비 영화들의 플롯과 비슷한 겁니다. 결국 소수의 인물들 또는주인공 혼자서 나머지 등장인물 전체와 싸우는 그런 구도 말입니다. 도 결론부가 그런 식으로 전개되면서 그 직전까지 유지해 왔던 팽팽한 긴장과 공포가 '타락'해 버렸다고 해야 할 ..
클리셰와 스테레오타입 일견 만만찮아 보이는 이 단어도 사실은 별거 아닙니다. 클리셰(cliché)란 극 초반에 실종된 등장인물이 후반부에 살아 돌아온다든가 격투기 영화에서 주인공이 악당을 때려 눕힌 후 ‘해치웠나?”라고 중얼거리면 악당이 벌떡 일어나 더 엄청난 기세로 반격해 오는 것 같은 ‘뻔한 전개’를 말합니다. 스테레오타입(Stereotype) 역시 구태의연하도록 전형적인, 그래서 신선도란 찾아볼 수가 없는 설정이나 인물, 극의 전개를 뜻합니다. 얘를 들면 좀비는 머리를 쏴야 죽는다든가, 해병대나 특수부대 출신 또는 참전용사들은 사회에 복귀한 후에도 언제든지 살인병기 같은 전투력을 발휘한다든가, 슬래셔 영화에서 촉새처럼 깐죽거리는 놈, 괴팍한 놈, 비만, 동양인, 흑인은 차례로 죽고 대개의 경우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