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206

마감에 쫒길 때마다 생각나는 만화 속 장면

정신과 시간의 방 최근 두 달동안 이렇게까지 마감에 심하게 치인 적이 있나 싶을 만큼 시달리는 중입니다. 원래 매달 늘 두 건 정도의 마감이 있었는데 8월, 9월에는 네 개씩 쳐내야 했습니다. 그게 상당한 조사와 번역작업이 선행되어야 해서 결국 보고서 하나 마치는 게 10일쯤 걸리는 것 같습니다. 한 달이 30일인데 네 개가 걸려 원래는 40일이 필요한 거라서 이리 치이는 걸까요? 거기에 매일 기사번역 한 두 개에 인생질문 에세이, 두 주에 한 번 귀신원고도 있지만 그건 루틴에 가까운 일이라 그것 때문에 보고서 마감이 힘들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세 가지 정도 이유가 있습니다. 하루 두 시간 하는 운동이 시간을 뻇고 10시-11시 정도부터 쏟아지는 졸음이 또 다른 문제입니다. 하지만 운동..

자카르타 시내에서 눈싸움 거는 남자들

길바닥 눈싸움 인도네시아에 와서 처음 5년쯤 지나는 동안 가장 적응하기 어려운 것은 거리에서 이상한 객기를 부리는 현지인들이었어요. 특히 차를 몰고 다니다 보면 좁은 골목 한 가운데로 걸어가면서 뒤에서 차가 와서 경적을 울려도 돌아보지도, 피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귀머거리라서 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매우 기분 나쁜 표정으로 슬쩍 돌아보고는 계속 그대로 길 한가운데를 걸어갔습니다. 내가 너 따위한테 길을 비켜줄 것 같아?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도로를 횡단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명백히 자신이 교통위반을 하고 있으면서도 운전자를 노려보며 어슬렁거리며 지나는 사람들과 자주 마주쳤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카르타 주민들이 다 건달들이냐 하면 실제로 얘기를 나눠보는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사근사근하기 이를 ..

적도를 지나면 완전히 달라지는 무당들 속성

랑종 한국인 제작자가 참여한 태국 공포영화 은 호불호가 갈린다는 감상평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갔습니다. 엑소시스트 류의 영화가 대개의 경우 악령의 빙의를 당한 당사자 한 명의 목숨을 중심으로 주변 여러 사람들의 운명을 뒤흔들어 놓는 전개로 가거나 전염병 퍼지듯 빙의가 전파되어 귀신들린 사람들이 드글거리며 해당 사회가 무너져버리는 식으로 전개되는 게 보통이죠. 아무래도 빙의자, 감염자들이 많아야 판이 커지는 만큼 영화제작자들은 후자의 전개방식을 좋아하는 모양인데 그건 사실 좀비 영화들의 플롯과 비슷한 겁니다. 결국 소수의 인물들 또는주인공 혼자서 나머지 등장인물 전체와 싸우는 그런 구도 말입니다. 도 결론부가 그런 식으로 전개되면서 그 직전까지 유지해 왔던 팽팽한 긴장과 공포가 '타락'해 버렸다고 해야 할 ..

클리셰와 스테레오타입

클리셰와 스테레오타입 일견 만만찮아 보이는 이 단어도 사실은 별거 아닙니다. 클리셰(cliché)란 극 초반에 실종된 등장인물이 후반부에 살아 돌아온다든가 격투기 영화에서 주인공이 악당을 때려 눕힌 후 ‘해치웠나?”라고 중얼거리면 악당이 벌떡 일어나 더 엄청난 기세로 반격해 오는 것 같은 ‘뻔한 전개’를 말합니다. 스테레오타입(Stereotype) 역시 구태의연하도록 전형적인, 그래서 신선도란 찾아볼 수가 없는 설정이나 인물, 극의 전개를 뜻합니다. 얘를 들면 좀비는 머리를 쏴야 죽는다든가, 해병대나 특수부대 출신 또는 참전용사들은 사회에 복귀한 후에도 언제든지 살인병기 같은 전투력을 발휘한다든가, 슬래셔 영화에서 촉새처럼 깐죽거리는 놈, 괴팍한 놈, 비만, 동양인, 흑인은 차례로 죽고 대개의 경우 바람..

아잔(Azan)을 즐기는 법

확성기 신앙 옛날 동네 교회에서 예배시간이면 종을 치기도 하고 새벽기도 시간이나 저녁예배 시간에 찬송가를 확성기로 내보내기도 했던 걸 기억합니다. 내가 대학시절까지 다녔던 동국대 후문 쪽 서울침례교회에도 종탑이 있어 예배시간이면 사찰집사님이 종탑에서 줄을 당겨 교회당 맨 꼭대기에 매달린 종을 울렸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심은 그게 누군가에겐 소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인데 그거 시끄럽다고 항의하는 놈들은 모두 사탄의 자식들이라 생각했죠. 그게 인도네시아에 와서는 조금 더 진화한 양상을 보입니다. 우선 한국 기독교인들은 전체인구의 30% 정도지만 인도네시아 무슬림은 80% 이상, 그것도 일부 지역에서는 90%를 훌쩍 넘습니다. 그래서 무슬림들의 기도시간을 알리는 ..

삶의 질

자전거의 부활 내가 자전거를 산 건 마르셀이 아직 두 살쯤 되었을 때니까 2012년 전후였던 것 같습니다. 원래 운동하려고 산 자전거인데 운동할 시간이나 장소가 만만찮으니 별로 쓸 일이 없었습니다. 당시 자카르타엔 매년 2-3월에 대홍수가 나 며칠씩 차가 다닐 수 없게 되곤 했는데 자전거는 그때 요긴하게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일년에 몇 차례 사용할 일이 없어서 집안에 보관하기엔 덩치만 큰 애물단지였다가 어느날 아이들한테 양도하기로 마음먹고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게 4년쯤 전의 일입니다. 하지만 메이네 집에 뭔가 가져다 주면 다 금방 고장나거나 못쓰게 되어 버리곤 합니다. 자전거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건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홍수때마다 집이 침수되면서 자전거도 물속에 ..

옷태가 나는 이유

차차의 고민 여자들 많은 데에서 할 얘기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일단 꺼내 봅니다. 내 형제들은 모두 딸만 둘씩 낳았지만 난 아들 딸을 얻었습니다. 지금 싱가포르에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이 아직 어릴 때 워낙 생활에 허덕이다 보니 내가 거의 신경쓰지 못하는 동안 양육은 거의 다 엄마가 도맡았습니다. 그 와중에도 아들은 내가 남자라서 그나마 대하는데 단순하고 간단했지만 딸과의 관계에는 변수가 많았습니다. 아이들에겐 하늘같던 아버지가 갑자기 미워지거나 어려워지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오는 모양인데 어릴 때 나만 보면 뽀뽀세례를 퍼붓던 딸이 커가면서 냉랭해지기도 하고 살가워지기도 하면 저건 또 무슨 조화일까 하고 고민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차차와 마르셀을 만났을 때 일단 한번 아들과 딸을 다 키워본 베테랑 아..

입금이 모든 걸 가능케 하리라

아침부터 불금 요즘은 금요일이 밝으면 마치 주말이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합니다. 물론 늘 그랬던 건 아닙니다. 예전처럼 주중에 출근했다면 절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 텐데 ‘재택근무’를 하니 느끼게 되는 일입니다. 특히 조간신문매체들과 일하면서요. 조간신문은 토요일과 일요일엔 신문발행을 하지 않으니 그 전날인 금요일과 토요일엔 기사를 보낼 필요가 없습니다. 그 대신 월요일 조간용 기사를 일요일에 보내야 하죠. 요즘은 다시 거의 기사를 보내지 않고 있는 아시아투데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월요일 조간 기사를 일요일 오전 9시(한국시간)까지 발제해야 하는데 시간대가 맞지 않는 국가의 통신원들에겐 발제 먼저 해서 컨펌 받은 후 다시 기사를 쓰는 게 원고료에 비해 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뺏기는 일이기도..

얕은 지식이라도 그게 어디냐

일당백 딴지일보가 직영하는 딴지마켓에서 파는 '잘난척' 시리즈 책이 요즘 인기랍니다. 역사, 철학 또느 다른 어떤 특정분야에 딱히 깊이 들어가 그 원리를 다 꿰뚫지 않더라도 어디 가서 누구랑 얘기할 때 꽤 있어 보이게 얘기할 수 있도록 설명해 상식을 북돋워 줄 목적으로 쓴 책이라 합니다. 좀 편법인 것 같기도 하고 함량도 부족해 보이기도 하지만 정보의 홍수 속에 사는 요즘 세상에 어쩌면 그건 매우 요긴한 것 같습니다.일례로 두 시간짜리 영화를 15분 짜리로, 16부작 드라마를 30분짜리로 요약한 소개 동영상들이 요즘 유튜브에서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는데 바쁜 세상에 원본 찾아 볼 시간 없는 이들에겐 최소한 그 영화나 드라마가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게 해주거든요. 그러다가 그 짧은 영상으로 성이 차지 않을..

체중계의 교훈

아부 코로나 델타변이가 한창 창궐할 때 산소포화도를 체크하는 옥시미터(Oxymeter)를 사놓고 만약을 대비하던 중 그런 가정용 의료기기(실제로는 검사기)가 실제로 그리 비싸지 않다는 걸 알고 와이프가 당뇨 측정기도 주문했는데 그걸로 검사해 본 결과치가 경종을 울렸습니다. 수치가 정상범위를 한참 넘어가 있던 겁니다. 사실 그 사이 몸무게가 늘어도, 혈압이 고혈압으로 나타나도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있었는데 지난 7월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을 지나면서 매일 눈이 많이 침침해지고 심한 두통에 시달리다가 당뇨 검사결과를 보고 우선 몸무게를 빼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작년 11월쯤 와이프가 한국 가서 3개월 있다가 오는 동안 살 빼겠다고 마음 먹은 것과는 반대로 오히려 10킬로 정도 급격히 살이 찐 상태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