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적도를 지나면 완전히 달라지는 무당들 속성 본문
랑종
한국인 제작자가 참여한 태국 공포영화 <랑종>은 호불호가 갈린다는 감상평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갔습니다.
엑소시스트 류의 영화가 대개의 경우 악령의 빙의를 당한 당사자 한 명의 목숨을 중심으로 주변 여러 사람들의 운명을 뒤흔들어 놓는 전개로 가거나 전염병 퍼지듯 빙의가 전파되어 귀신들린 사람들이 드글거리며 해당 사회가 무너져버리는 식으로 전개되는 게 보통이죠. 아무래도 빙의자, 감염자들이 많아야 판이 커지는 만큼 영화제작자들은 후자의 전개방식을 좋아하는 모양인데 그건 사실 좀비 영화들의 플롯과 비슷한 겁니다. 결국 소수의 인물들 또는주인공 혼자서 나머지 등장인물 전체와 싸우는 그런 구도 말입니다.
<랑종>도 결론부가 그런 식으로 전개되면서 그 직전까지 유지해 왔던 팽팽한 긴장과 공포가 '타락'해 버렸다고 해야 할 만큼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감독이 스토리를 어떤 식으로 끌고가고 싶었는지, 어떤 인상을 남기고 싶었는지는 알 것 같았습니다.
해외에서 개봉될 때 사용한 <The Medium>이란 제목과 같이 영매, 즉 무당을 다룬 이 영화는 영매에게 들어가려는 신, 즉 몸주가, 우리가 익히 아는, 또는 무당들이 추측하거나 기대하는 그런 신이 아닐 수도 있고 또는 대대로 찾아오는 조상신이라고 믿는 그 신이 경험상 알고 있던 것과 전혀 다른 속성을 보이기도 한다는는 부분, 즉 무속의 신들이란 우리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의외였던 것은 태국의 무당들이 한국의 무당들과 마찬가지로 무병(巫病)을 앓고 신내림도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인도네시아에서 오래 살지 않았다면 당연하게 생각했을 부분일 것 같습니다.
인도네시아의 무당은 '두꾼'(Dukun)이라 합니다. 귀신을 부리고 병도 고치고 미래를 점치지만 그들이 무병을 앓거나 신내림을 받았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경우가 어딘가 있는데 내가 아직 찾아보지 못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자신이 귀신을 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런저런 주술을 통해 귀신과 얘기하고 제물과 등가교환하는 방식으로 귀신을 부려 이런저런 일들을 시키는데 그게 누군가를 죽이거나 병들게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누군가를 부자로 만들거나 어떤 사람을 미친 듯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태국까지만 해도 <랑종>에서와 같이 귀신에게 좌지우지되며 무병을 앓고 신내림을 받는 무당들이 적도를 넘어 인도네시아로 오는 순간 갑자기 두꾼이 헤게모니를 쥐고 귀신들을 부리게 되는 급격한 상황변화가 의아했던 것입니다.
태국까지만 해도 어쩌면 그렇게 한국과 닮았는지, 그런데 인도네시아까지 내려오면 왜 그렇게 무속조차도 한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띄는지, <랑종>은 그런 것들을 더욱 궁금하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2021.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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