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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왕자와 공주는 정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을까? 서로 만나 첫 눈에 사랑하게 된 왕자와 공주가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마침내 결혼해 그 후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 속 결론을 난 믿지 않습니다. 그렇게 극적으로 맺어진 왕자들과 공주들도 그 후에 살아가는 동안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갈등과 고통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고 어쩌면 성격차이나 가정폭력, 또는 숨겨놓은 애인 때문에 이혼하거나 반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해 함께 목이 날아가거나 전쟁에서 패해 죽거나 노예로 잡혀갈 수도 있고 왕자가 왕이 된 후 후궁을 들여 본처 공주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었을 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니 '그 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의 마무리는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합니다. 장미 빛 찬란한 그 동화들은 권선징악과 사필귀..

천지를 창조하셨던 하나님 지금까지 여러가지 이유와 용도로 재질이나 디자인, 크기, 내구성이 각각 다른 정말 다양한 봉투들을 사용해 봤지만 역시 그 중 최고 품질은 누가 뭐라해도 교회 헌금봉투였습니다. 오래 전에 쓰던 가방들을 정리하다가 그 안에 넣어 둔 채 잊고 말았던 헌금봉투가 여러 장이 나왔습니다. 당시 달러나 영수증을 넣어두는 용도로 사용하곤 했는데 1년 넘게 써도 여전히 새것 같아 그 내구성에 감탄하곤 했습니다. 특히 십일조 봉투는 겉면에 매주 얼마를 냈는지 적어서 예배시간에 회중석의 신도 개개인 앞을 돌며 지나가는 헌금 주머니에 넣었다가 다음 주에 거대한 우편물 보관함이나 사물함 비슷한 곳의 내 이름 적힌 홈에서 그 봉투를 다시 회수하는 방식으로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1년을 사용해야 하니 튼..

새로 돋는 팔 영화 ‘고지전’(2011년, 장훈 감독, TPS컴파니)은 한국전쟁 막바지 참상과 전쟁 속 일그러진 인간군상을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역동적인 영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흥행에서도 일정부분 성공한 이 영화는 그러나 그 강렬한 메시지와 여운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권에 의해 좌파영화로 낙인 찍혔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비록 그것이 스크린에서 벌어지는 허구이며 예술의 영역임이 분명했고 영화 전반에 반전 메시지가 흐르고 있었지만 류승룡 김옥빈 등이 멋지게 또는 안타깝게 연기한 일부 북한군들, 그리고 자기가 살기 위해 아군에게 기관총을 갈기고 무모한 명령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상관을 살해하는 국군 하사관들의 모습을, 그게 개연성이 있든 없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한없이 엄숙하고 자기만 한없이 잘난 사람..

새로 100일 글쓰기 마음가짐 이제 세 번째를 맞는 100일 글쓰기의 마음가짐과 계획을 세워봅니다. 올해 들어 두 번에 걸쳐 총 200회 매일 글쓰기를 해보니 역시 좋은 점은 글 쓰는 버릇이 정착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글쓰기 실력이 느는 것과는 별개로요. 하지만 매일 글을 쓰기 위해 한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를 할애하는 것 역시 나도 모르게 글쓰기에 좀 더 진지하게 만들어 줍니다. 어차피 바쁜 시간을 나눠 쓰는 건데 그런 만큼 시간을 더욱 더욱 알차게 써야 하니까요. 그래서 정해진 시간 안에 미션을 마치기 위해 저녁시간 7층 700미터짜리 둘레길을 7-8 바퀴 도는 한 시간동안, 또는 잠들기 전, 아니면 책상에서 의자 방향을 돌려 잠시 눈을 쉬어주는 동안 글 쓸 주제제와 논조를 생각하게 되죠. 좋지 않은..

엑소더스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사의 전설적인 1960년작 영화 (오토 프레밍거 감독)는 당시 한국엔 이란 제목으로 소개되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폴 뉴먼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볼 수 있고 무엇보다도 OST가 인상적입니다. 이 음악은 MBC ‘주말의 명화’ 오프닝 곡으로도 쓰여서 지금 50-60대들은 대부분 기억하고 있을 듯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7eWSxdkHWU 2차 대전 후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아랍국가들 사이에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이스라엘이 건국된 것이 1948년이었으니 이 영화가 나온 것은 그로부터 불과 12년 후의 일입니다. 어찌 보면 12년은 2천년 넘게 세계에 흩어졌던 유태 민족들이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가나안에 자기들의 나라를 재건하는 거대한..

군목 형은 공군 방첩부대 출신입니다. 정확한 부대명은 기억나지 않지만 북파공작원을 교육시키던 곳이었다고 하는데 형이 군시절에 머리를 기르고 휴가를 나와서도 민간에 위세를 부리는 걸 보면서 정보대 비슷한 부대였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전역한 후에도 한번 지하철역에서 차표를 끊지 않고 전철을 타겠다며 역무원과 싸우는 모습에 군이 사람 하나 완전히 버려 놨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형도 지금은 매우 선량한 시민입니다. 나는 일반 보병부대나 공수부대로 빠질 확률이 99%였는데 임관 전 생각지도 않았던 신의 변덕으로 학군단을 찾아온 선배에게 찍혀 훈련소 이후 제3땅굴과 도라전망대를 관리하는 부대에서 소대장 겸 안내장교로 근무했습니다. 학교에서 충분히 익히지 못한 영어를 원없이 실전에서 연습하고 일본어도 배..

먼저 살고 있던 1997년에 시작된 태국발 외환위기가 1998년 아시아를 휩쓸고 그 후로도 몇 년간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는데 인도네시아에서는 수하르토를 하야시킨 1998년 5월의 민주화운동, 그리고 그와 동시에 벌어진 자카르타 폭동을 촉발시켰습니다. 폭동 당시의 아수라장은 말로 다 할 수 없지만 환율이 역변해 루피아가 똥값이 되면서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했고 많은 프로젝트들이 중간에 중단되었습니다. 북부 자카르타의 안쫄 근처엔 당시 공사가 중단된 아파트 콤플렉스가 최근까지도 한 개 서 있었습니다. 내가 사는 끌라빠가딩에도 빨라디안(Paladian) 아파트가 70% 정도 공정까지 갔다가 중단된 채 몇 년 동안 흉물스럽게 방치된 적이 있습니다. 원래 이름은 머나라뚜주(Menara 7 = seven towers..

5년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났더니 문자들이 잔뜩 와 있었는데 그중 메이가 보낸 내용에 눈길이 갔습니다. 전날 밤 차차가 잠을 못자며 고민하길래 물어보니 내가 아픈 것 같다며 걱정하더랍니다. 이번 주엔 매일 시내일정이 있었는데 어제는 마침 다시 시내 나가는 길에 오래 보지 못했던 차차와 마르셀을 보러 잠깐 들렀습니다. 최근 조금 일에 치이다 보니 아이들 들여다보는 게 조금 뜸해졌는데 그럴 수록 보고싶은 마음이 커지더군요. 아이들도 그럴 것이라 내 마음대로 생각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아이들 잡에 도착한 게 오전 10시 반. 아직 온라인수업 중이서 잠깐 한 번씩 안아주고 갈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싱거운 느낌이라 원래는 월초에 주는 용돈을 미리 주고 5분도 안돼 바로 시내 약속장소로 출발했습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