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206

골막이 상한 사람들

새로 돋는 팔 영화 ‘고지전’(2011년, 장훈 감독, TPS컴파니)은 한국전쟁 막바지 참상과 전쟁 속 일그러진 인간군상을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역동적인 영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흥행에서도 일정부분 성공한 이 영화는 그러나 그 강렬한 메시지와 여운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권에 의해 좌파영화로 낙인 찍혔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비록 그것이 스크린에서 벌어지는 허구이며 예술의 영역임이 분명했고 영화 전반에 반전 메시지가 흐르고 있었지만 류승룡 김옥빈 등이 멋지게 또는 안타깝게 연기한 일부 북한군들, 그리고 자기가 살기 위해 아군에게 기관총을 갈기고 무모한 명령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상관을 살해하는 국군 하사관들의 모습을, 그게 개연성이 있든 없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한없이 엄숙하고 자기만 한없이 잘난 사람..

다시 글쓰기

새로 100일 글쓰기 마음가짐 이제 세 번째를 맞는 100일 글쓰기의 마음가짐과 계획을 세워봅니다. 올해 들어 두 번에 걸쳐 총 200회 매일 글쓰기를 해보니 역시 좋은 점은 글 쓰는 버릇이 정착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글쓰기 실력이 느는 것과는 별개로요. 하지만 매일 글을 쓰기 위해 한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를 할애하는 것 역시 나도 모르게 글쓰기에 좀 더 진지하게 만들어 줍니다. 어차피 바쁜 시간을 나눠 쓰는 건데 그런 만큼 시간을 더욱 더욱 알차게 써야 하니까요. 그래서 정해진 시간 안에 미션을 마치기 위해 저녁시간 7층 700미터짜리 둘레길을 7-8 바퀴 도는 한 시간동안, 또는 잠들기 전, 아니면 책상에서 의자 방향을 돌려 잠시 눈을 쉬어주는 동안 글 쓸 주제제와 논조를 생각하게 되죠. 좋지 않은..

이스라엘 건국 정당화를 위한 영화

엑소더스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사의 전설적인 1960년작 영화 (오토 프레밍거 감독)는 당시 한국엔 이란 제목으로 소개되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폴 뉴먼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볼 수 있고 무엇보다도 OST가 인상적입니다. 이 음악은 MBC ‘주말의 명화’ 오프닝 곡으로도 쓰여서 지금 50-60대들은 대부분 기억하고 있을 듯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7eWSxdkHWU 2차 대전 후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아랍국가들 사이에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이스라엘이 건국된 것이 1948년이었으니 이 영화가 나온 것은 그로부터 불과 12년 후의 일입니다. 어찌 보면 12년은 2천년 넘게 세계에 흩어졌던 유태 민족들이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가나안에 자기들의 나라를 재건하는 거대한..

군목들이 가는 길

군목 형은 공군 방첩부대 출신입니다. 정확한 부대명은 기억나지 않지만 북파공작원을 교육시키던 곳이었다고 하는데 형이 군시절에 머리를 기르고 휴가를 나와서도 민간에 위세를 부리는 걸 보면서 정보대 비슷한 부대였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전역한 후에도 한번 지하철역에서 차표를 끊지 않고 전철을 타겠다며 역무원과 싸우는 모습에 군이 사람 하나 완전히 버려 놨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형도 지금은 매우 선량한 시민입니다. 나는 일반 보병부대나 공수부대로 빠질 확률이 99%였는데 임관 전 생각지도 않았던 신의 변덕으로 학군단을 찾아온 선배에게 찍혀 훈련소 이후 제3땅굴과 도라전망대를 관리하는 부대에서 소대장 겸 안내장교로 근무했습니다. 학교에서 충분히 익히지 못한 영어를 원없이 실전에서 연습하고 일본어도 배..

흉가

먼저 살고 있던 1997년에 시작된 태국발 외환위기가 1998년 아시아를 휩쓸고 그 후로도 몇 년간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는데 인도네시아에서는 수하르토를 하야시킨 1998년 5월의 민주화운동, 그리고 그와 동시에 벌어진 자카르타 폭동을 촉발시켰습니다. 폭동 당시의 아수라장은 말로 다 할 수 없지만 환율이 역변해 루피아가 똥값이 되면서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했고 많은 프로젝트들이 중간에 중단되었습니다. 북부 자카르타의 안쫄 근처엔 당시 공사가 중단된 아파트 콤플렉스가 최근까지도 한 개 서 있었습니다. 내가 사는 끌라빠가딩에도 빨라디안(Paladian) 아파트가 70% 정도 공정까지 갔다가 중단된 채 몇 년 동안 흉물스럽게 방치된 적이 있습니다. 원래 이름은 머나라뚜주(Menara 7 = seven towers..

이 아이들의 미래

5년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났더니 문자들이 잔뜩 와 있었는데 그중 메이가 보낸 내용에 눈길이 갔습니다. 전날 밤 차차가 잠을 못자며 고민하길래 물어보니 내가 아픈 것 같다며 걱정하더랍니다. 이번 주엔 매일 시내일정이 있었는데 어제는 마침 다시 시내 나가는 길에 오래 보지 못했던 차차와 마르셀을 보러 잠깐 들렀습니다. 최근 조금 일에 치이다 보니 아이들 들여다보는 게 조금 뜸해졌는데 그럴 수록 보고싶은 마음이 커지더군요. 아이들도 그럴 것이라 내 마음대로 생각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아이들 잡에 도착한 게 오전 10시 반. 아직 온라인수업 중이서 잠깐 한 번씩 안아주고 갈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싱거운 느낌이라 원래는 월초에 주는 용돈을 미리 주고 5분도 안돼 바로 시내 약속장소로 출발했습니다. 그..

나름의 동기

78.6 올 초에 가슴이 너무 아파서 새벽에 일어나 고민하던 일이 기억납니다. 가슴이 옥죄듯 아프거나 두통이 심하거나 뒷목이 뭉치듯 아프면 대개 그건 살이 너무 쪘다는 신호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2020년 연말을 지나면서 좀 과하게 살이 쪄버려 체중계에 한 번 올라가 봤다가 본 당시 체중에 쇼크를 먹을 정도였습니다. 87-88킬로쯤까지 갔는데 그 이후에도 체중은 좀 더 늘어났으니 어쩌면 90킬로를 넘은 적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작년 중반 77킬로 전후를 오갈 때에도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던 중이었습니다. 바지들을 살려야 했거든요. 그간 무수한 내 바지들이 인생의 모퉁이 여기저기에서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언젠가부터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풀었던 것 같아요. 그날 새벽,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 ..

트럭들이 자카르타 시내 톨 가운데 차선으로 달리는 이유

중간차선의 용도 인도네시아 와서 운전하던 처음 몇 년 간 가장 적응이 안되던 건 이런 거였습니다. 1. 신호등이 안보인다 – 없는 게 아니고 있긴 한데 한국 신호등과는 조금 다른 위치에, 그것도 조금 아래쪽에 달려 있어서 익숙하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습니다. 2. 차간거리가 좁다 – 앞뒤 차간거리가 좁은 건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인도네시아는 좌우 차간거리가 좁았어요. 그래서 내 차의 폭이 얼마인지 금방 익히게 되었고 딱 보기에 차가 못지나갈 것 같은 공간으로 얼마든지 지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3. 버스의 검은 매연 – 거의 대부분의 버스들이 시커먼 매연을 뿜고 다녔는데 지난 세기에는 거의 단속을 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부터 공공차량들 배기가스 검사를 하기 시작하면서 이젠 거의 사라졌지만 요즘도 가..

교회는 어려운 질문하는 사람을 배척하는 곳

교주 오늘도 온라인예배가 있었습니다. 교회에 마지막으로 간 게 작년 2월이니 1년 반 이상 교회에 가지 않은 셈입니다. 두 차례 이상 교민사회의 코로나 감염 클러스터가 되었던 우리 교회는 최근 인도네시아의 코로나 지표가 표면적으로나마 크게 호전되면서 다시 대면예배 재개를 모색하는 중이고 화면에 보이는 예배당 내부엔 최대 400-500명 입장 가능한 공간에 출석예배를 드리는 사람들 50명 정도가 보입니다. "헌금을 안내는 게 하나님 돈을 훔치는 거야?" 아내가 이런 질문을 하는 걸 보면 오늘도 헌금얘기가 나온 모양입니다. 교회에 돈이 필요하다는 건 사실 잘못된 것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닙니다. 건물을 유지하고 목사, 전도사, 용인들 급여도 줘야 하고 그래도 남는 돈이 있으면 선교나 구제도 해야 하니까요..

정치란 한정된 자원의 배분 기술

내 불만의 본질 2주 넘게 발목을 잡고 있던 영진위 보고서를 방금 전에 마쳤습니다. A4 30페이지가 넘으니 퇴고하는 데에만 오전이 다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또 하나 마쳤다는 생각이 조금 홀가분해집니다. 인도네시아 복지시스템 보고서를 앞으로 36시간 안에 끝낸다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바로 다음 순서지만요. 일단은 한 두 시간 정도 숨을 돌려 보렵니다. 이번 보고서 주제였던 OTT-VOD라는 말은 'Over the Top'과 'Video on Demand'의 역자입니다.그래서 샛톱박스로 보는 케이블 TV 같은 건데 영상을 내가 골라서 보는 시스템을 말하는 거죠. top은 셋톱박스를 뜻합니다. 물론 요즘은 케이블용 셋톱박스 없이 인터넷 기반의 VoD 시대이니 첨단 용어인듯 한 OTT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