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마감에 쫒길 때마다 생각나는 만화 속 장면

beautician 2021. 10. 6. 12:22

정신과 시간의 방

 

최근 두 달동안 이렇게까지 마감에 심하게 치인 적이 있나 싶을 만큼 시달리는 중입니다. 

 

원래 매달 늘 두 건 정도의 마감이 있었는데 8월, 9월에는 네 개씩 쳐내야 했습니다. 그게 상당한 조사와 번역작업이 선행되어야 해서 결국 보고서 하나 마치는 게 10일쯤 걸리는 것 같습니다. 한 달이 30일인데 네 개가 걸려 원래는 40일이 필요한 거라서 이리 치이는 걸까요?

 

거기에 매일 기사번역 한 두 개에 인생질문 에세이, 두 주에 한 번 귀신원고도 있지만 그건 루틴에 가까운 일이라 그것 때문에 보고서 마감이 힘들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세 가지 정도 이유가 있습니다.

하루 두 시간 하는 운동이 시간을 뻇고 10시-11시 정도부터 쏟아지는 졸음이 또 다른 문제입니다. 하지만 운동을 하고 나면 정신도 개운해지는 편이니 두 시간을 뻇겨도 일에는 궁극적으론 도움되는 믿습니다. 매일 5킬로미터를 걸으려 하면 처음 한 두 바퀴를 도는 동안은 좌골신경통때문에 걷는 게 매우 아프고 불편하지만 조금 지나고 나면 아픈 게 사라지는 게 참 신기합니다. 어쨋든 건강의 위기를 느끼고 시작한 운동인데 그것때문에 원고매감이 힘들어지는 건 어쨋든 극복해야 할 리스크라 생각됩니다. 

 

졸리는 것도 생리작용이니 어쩔 수 없지만 문제는 평소엔 새벽 한 두 시까지 이것저것 하면서도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마감이 임박하면 10시쯤부터 집중이 잘 안되고 눈꺼풀이 무거워진다는 거에요. 눈도 아프고요. 마침 졸음에 나를 괴롭히려는 인격이 붙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무력감이에요. '하기 싫다'는 마음이 드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런 상태가 되면 아무리 시간이 있어도 온갖 안되는 이유, 안해야 하는 이유 할 수 없는 이유를 지어내면서 딴 짓을 하게 되거든요. '내일 하자'는 생각이 들고 내일이면 더 잘할 수 있겠다 생각하지만 정작 내일 아침이 되면 하루 밤을 헛되이 보내버렸다는 자괴감이 먼저 들게 됩니다.

 

내주 월요일까지는 꼭 마쳐야 할 원고가 있어 영진위 인도네시아 OTT-VOD 시장 보고서를 지난 주말에 마쳐야 했는데 그게 오늘 밤에 끝날 동 말 동합니다. 20일 가까이 걸린 겁니다. 

 

결국 역시 최소 10일은 필요한 월요일 마감 원고를 토 일 이틀만에 쓰는 기적을 이뤄내야 하는데 사전조사와 번역작업을 하려면 이제부터 계속 밤을 세워도 시간을 대긴 어렵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럴 때마다 드래곤볼에 나오던 '정신과 시간의 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그 방에 들어가서 1년 동안 수련했는데 바깥 현실세계에서는 달랑 하루가 흘렀다는 그 공간 말이죠..

 

 

 

기본적으로 글 쓰는 일, 아니 보고서를 쓰는 일이 연비도 가성비도 낮은 일이기 때문일까요?

 

기왕 쫒길 바에 보고서 마감 말고 소설 마감 같은 거에 쫓기고 싶습니다.

 

 

2021. 9.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