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교회는 어려운 질문하는 사람을 배척하는 곳 본문
교주
오늘도 온라인예배가 있었습니다.
교회에 마지막으로 간 게 작년 2월이니 1년 반 이상 교회에 가지 않은 셈입니다. 두 차례 이상 교민사회의 코로나 감염 클러스터가 되었던 우리 교회는 최근 인도네시아의 코로나 지표가 표면적으로나마 크게 호전되면서 다시 대면예배 재개를 모색하는 중이고 화면에 보이는 예배당 내부엔 최대 400-500명 입장 가능한 공간에 출석예배를 드리는 사람들 50명 정도가 보입니다.
"헌금을 안내는 게 하나님 돈을 훔치는 거야?"
아내가 이런 질문을 하는 걸 보면 오늘도 헌금얘기가 나온 모양입니다. 교회에 돈이 필요하다는 건 사실 잘못된 것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닙니다. 건물을 유지하고 목사, 전도사, 용인들 급여도 줘야 하고 그래도 남는 돈이 있으면 선교나 구제도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러면서 교인들을 잠재적 절도범 취급을 하는 건 돼먹지 못한 발상임에 분명합니다..
"그게 아니라 거꾸로 헌금 내라고 강요하는 놈들이 교인들 돈을 훔치는 거지."
목사님들은 하나님이 광대무변, 무소불위하다면서도 사실은 돈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하는 팔푼이를 만들어 놓은지 오래입니다. 설령 부득이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돈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 있다고 쳐도 그 돈이 내 주머니에 있어서는 안되고 꼭 목사님 주머니에 있어야만 하나님의 일에 쓰일 수 있다는 발상은 전근대적이고 오만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교회들은 말로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고 하지만 실상 그 개개인 지갑의 위상은 절대 평등하지 않다고 그간의 역사와 교리를 통해 강변하고 있는 것이죠.
많은 목사님들이 그런 것처럼 수백억원 짜리 아름다고 웅장한 교회를 지어야 하나님의 영광이 빗난다고 생각하는 천박한 철학을 공유하고 싶지 않습니다. 위대한 성전이 아니라 마구간에서 태어난 분이 있다는 걸 목사님들은 벌써 다 잊은 거죠.
인도네시아 생활 초창기에 교회의 소모임들이 특히 주재원 남편을 따라온 엄마들에게 도움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 소모임을 이끄는 사람은 대개 존경받는 권사, 집사님들이지만 교회들이 많아지고 그런 소모임들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면 꼭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모임을 이끌지 않는 경우도 종종 생깁니다. 그런 모임에 출석한 아내가 저런 질문을 나에게만 질문했을 리 없습니다.
- 태양이 창조되기도 전에 빛이 어떻게 있을 수 있죠?
- 만약 에덴동산에서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 세례를 받기 전에 죽은 아기들은 지금쯤 지옥에 떨어졌을까요?
-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헌금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처단할 때 경찰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죠?
- 예수님도 양말을 신고 터번까지 썼을까요?
-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대기권을 벗어나기까지 얼마나 높이 올라가야 했을까요? 그런 다음 얼마나 더 올라가신 거죠?
- 예수님이 쫓아낸 귀신들이 들어간 돼지 떼가 물에 뛰어들어 죽었을 때 손해배상청구소송이 벌어졌을까요?
- 그 돼지들 말인데요. 돼지고기 먹는 게 금지된 나라에서 왜 돼지를 쳤을까요?
- 장사 지냈던 사람이 부활해 무덤에서 걸어 나왔다면 이미 상속되거나 처분된 부동산은 어떻게 되는 거죠?
- 예수님은 왜 그렇게 늦게 오셔서 천지창조 후 4천년 동안이나 인류의 구원을 늦추신 거죠?
- 왜 하나님은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거부하도록 그냥 놔두는 것일까요?
- 예수님이 악마를 물리쳤다면 왜 아직도 세상의 권세를 마귀가 잡고 있는 거죠?
-기독교 국가엔 도둑이 있을 리 없는데 왜 우린 집 문을 걸어 잠그고 사는 거죠?
- 다윗의 자손인 요셉이 예수님의 친부가 아니라면 왜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라고 주장하는 거죠?
-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할 수도 없는 존재라면 하나님이 위대하다는 건 어떻게 입수한 정보일까요?
- 노아가 무슨 수로 용케도 한 쌍의 북극곰을 찾아 방주에 태웠을까요?
- 카인을 죽일 수 없게 된 그 사람들은 갑자기 어디에서 튀어나온 걸까요?
- 두 명의 신자가 서로 싸우며 도와달라고 기도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나요?
이 질문들은 내 아내가 던진 질문들이 아니라 1860년 네덜란드에서 처음 발간된 <막스 하벨라르>라는 소설에 등장하는 질문들입니다. 사실 저 위의 질문들을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속장이나 구역장들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이런 비슷한 질문을 할 때마다 속장이나 환자급 성도들은 아내를 믿음이 부족한 사람 취급을 하며 성경을 더 읽고 기도를 더 열심히 하라는 소리만 했습니다. 아내는 그래서 여러 번 마음을 다쳤고 결국 구역예배나 속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원래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배척하고 공격하고 배제시키는 곳입니다.
그래서 온라인 예배라도 착실히 드리는 아내가 제법 대견스럽습니다.
:"성경 구절에 대해 목사님이랑 생각이 다르면 내가 이단이야? 우리 같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스스로 깨닫는 게 목사님 말씀이랑 틀린 건 그게 다 사탄의 속삭임이기 때문이야?"
"자기한테 그렇게 말하는 놈이 사탄이야."
대부분 한국인들, 특히 인도네시아인들의 98%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것(설문조사 당시 응답자의 98% 이상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는 의미)은 다들 알아서 필요에 따라 핸드폰을 쓰기 위함인 것처럼 세계 곳곳에 성경이 배포되어 모든 사람이 한권 이상 가지고 있게 된 건, 심지어 인터넷에서 언제든 찾아볼 수 있게 된 건 다들 스스로 읽고 스스로 나름 깨닫는 바가 있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섭리일까요? 아니면 예전 루터 이전 시대처럼 사제만 라틴어 성서를 가지고 읽고 해석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걸까요?
"교회에 불이 나서 홀라당 타버렸다고 생각해 봐. 그래서 목사님은 열심히 헌금을 모으고 은행 대출까지 받아서 교회를 다시 재건했고 하나님의 크신 도움이었다고 간증해. 그럼 교인들은 아멘 하면서 열광하지. 그런데 교회에 불이 난 것 자체가 하나님의 뜻이었다면 그건 이제 교회를 그만하라는 의미였을까? 미안하지만 다시 지어 보라는 계시였을까? 혹시 교회를 재건한 목사님이 사실은 하나님 뜻을 거슬러 놓고서 그걸 교인들에게 자랑하면서 신에 대한 반항을 부추기는 건 아닐까?"
어쩌다 친구들과 이런 생각을 얘기를 하게 되면 친구들 반응은 대체로 이랬습니다.
"네가 교주 해."
2021.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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