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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나름의 동기

beautician 2021. 10. 10. 11:45

78.6

 

 

 

올 초에 가슴이 너무 아파서 새벽에 일어나 고민하던 일이 기억납니다.

가슴이 옥죄듯 아프거나 두통이 심하거나 뒷목이 뭉치듯 아프면 대개 그건 살이 너무 쪘다는 신호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2020년 연말을 지나면서 좀 과하게 살이 쪄버려 체중계에 한 번 올라가 봤다가 본 당시 체중에 쇼크를 먹을 정도였습니다. 87-88킬로쯤까지 갔는데 그 이후에도 체중은 좀 더 늘어났으니 어쩌면 90킬로를 넘은 적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작년 중반 77킬로 전후를 오갈 때에도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던 중이었습니다. 바지들을 살려야 했거든요. 그간 무수한 내 바지들이 인생의 모퉁이 여기저기에서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언젠가부터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풀었던 것 같아요.

 

그날 새벽,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타이밍이란 걸 느꼈는데 당장 뭔가 약을 먹어야 할 상황에서 몇 달씩 걸리는 감량을 생각하는 스스로가 한심스러웠습니다. 아직도 캄캄하던 새벽 네 시쯤이었는데 7층에 내려가 둘레길을 돌아야겠다고 생각하다가, 그 시간에 아무도 없는 7층에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도와줄 사람도 없으니 끝장이란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게 사실은 심장 문제가 아니라 위염, 역류성식도염 때문이란 걸 안 건 며칠 후에 병원에서였어요. 몰랐다면 그때 당장 운동을 시작했을 텐데 한시름 놓으면서 반년쯤 더 허송했습니다.

 

오늘 78.6킬로그램을 찍었어요. 운동 직후에 하루에 단 몇 초간 유지되는 최저중량이지만 이제야 1년 전의 체중을 회복한 겁니다. 내가 가장 무거울 때 얼마였는지는 잘 몰라도 대략 10킬로는 확실히 뺀 겁니다. 하지만 1년 전에도 난 스스로 너무 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지금 거울을 봐도 그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내 적정 체중은 65킬로쯤인 것 같지만 당장 거기까지 가는 건 무리고 우선 75를 찍고 그후 천천히 70까지 가본 다음 더 할지 말지를 생각해 봐야 할 듯합니다. 무슨 대회 나가려는 것도 아닌데 바쁜 세상에 마냥 살만 뺄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7층을 돌다 보면 사람들을 많이 마주치고 매일 만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도는 방향이 같아서 추월하거나 추월당할 때 눈인사할 상황도 안되지만 젊은 선남선녀들은 날렵하게 달리는 뒷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습니다. 50대 후반쯤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뛰는 어깨 넓은 아저씨도 한 분 있습니다. 쏙 들어간 허리가 부럽고요. 허리가 좀 굽은 키 큰 할아버지와 그 옆으로 걷는 할머니의 금슬도 부럽습니다. 느릿느릿 걷느라 나한테 두 번쯤 추월당하지만 그때마다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는 마음이 느껴지듯 합니다.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보행기 같은 것을 밀고 다니는 할머니입니다. 자세히 보지 않아 잘 모르지만 70세 전후쯤 된 듯해요. 700미터 둘레길을 세 바퀴쯤 도는 발걸음이 힘겨워 보이지만 그래도 건강을 되찾기 위해, 또는 건강을 지키기 위해 7층에 내려온 시점에서 이미 그 의지가 대단한 분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 운동을 다시 시작한지 3개월쯤 되었고 정말 제대로 7층을 돌기 시작한 건 두 달 되었습니다. 첫 달에는 아직 문닫고 있던 콤플렉스 안의 몰(Mall of Indonesia) 2층을 돌았어요. 몰은 영업을 하지 않았지만 약국들은 반드시 문을 열어야 하는 규정에 따라 몰 안의 약국들은 문을 열고 있어서 몰 폐쇄기간 동안에도 드나들 수는 있었던 겁니다.

 

요즘 매일 7층에 내려갈 때마다 그날 새벽에 일어나 절박하게 고민하던 상황이 가끔 떠오릅니다. 운동한답시고 무작정 7층 내려갔다가 자칫 변사체로 발견되면 어쩌지…? 이런 생각하던 순간.

 

그래서 7층 둘레길을 돌며 스쳐지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의 동기는 뭘까 생각하게 됩니다. 누군가는 멋진 몸매를 가꾸기 위해, 누군가는 개죽음 하지 않기 위해, 또 누군가는 아내의 등쌀에 떠밀렸을 텐데 나도 몇 가지 해당되는 카테고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운동을 해서 살을 빼는 궁극적인 목표는 우선 바지들을 살리는 것도 있지만 역시 ‘맛있는 음식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닐까 합니다. 지금 당장은 부득이 거의 즐기지 못하만요. 사랑하니까 헤어진달까…..

 

 

 

2021. 9.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