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206)
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스트레스를 받을 때 했던 미친 짓들 난 스트레스 받을 때 이렇게 풀어….라고 말할 만큼 나 스스로를 잘 알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잘 모르죠. 자신에 대한 분명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게 현실 속의 자신과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닙니다. 스트레스란 압력이죠. 짓누르는 힘. 난 시간이 지날수록 스트레스를 잘 견디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부임해온 자카르타 현지법인이 지옥처럼 변해 결국 본사에 들어가 사표를 냈을 때, 2002년 파산했을 떄, 그 파산의 절벽을 힘겹게 기어오르며 온갖 수모를 견디던 2006년 전후엔 몸무게가 5킬로, 8킬로씩 빠졌는데 요즘은 어떤 역경에 처해도 살이 찌니 말이죠. 이젠 살찌는 게 스트레스입니다. 어느 새 영화진흥..
테러리스트식 문제해결법 한때는 싸움을 벌이는 게 일 잘하는 줄 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사실 싸움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기도 했습니다. 의류전문회사가 아닌 회사에서 의류를 취급했던 경험 많은 선임자들도 없는 상황에서 국내 하청공장을 돌리는 정도가 아니라 인도네시아에 여덟 개 라인 봉제공장을 만들어 놨으니 사고가 끊일 리 없었습니다. 자켓을 하나 만들려면 색색가지 원단과 단추는 물론 재봉사, 부직포, 라벨, 포장재, 카톤박스까지 줄잡아 30~50가지 자재가 다 맞춰지지 않으면 작업을 시작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두 가지 자재가 시간 내에 오지 않아 생산라인이 멈추면 난리가 나는 시스템인데 내가 부임한 후에도 그런 일이 심심찮게 벌어졌고 그럴 때마다 공장이 발칵 뒤집어졌죠. “자재 시간 못맞..
가치관은 불치병 한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고 확신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는 상식에 반하는 일엔 혀를 차며 어처구니없어 하곤 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 각각 다른 생각과 주장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임을 깨닫지 못한 시절이 어쩌면 누구에게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동문 단톡방에선 70대 전후 선배들이 마치 단체 구성원 전체의 가치관을 대변하는 듯 태극기집회 참석 인증사진을 올리며 서로를 격려하고 찬양하곤 했습니다. 그분들은 우리 모두 마음 한 구석엔 태극기 부대의 가치관을 당연히 공유하고 있을 거라 확신하는 듯합니다. 가치관이란 각자의 세계관에 근거해 형성되는 것이고 그 세계관은 전공분야와 경험,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주변사람들에 반응하고..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진 않아도…… 학창시설 누군가 날 바라볼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그런 생각은 한화그룹에 다닐 때에도 인도네시아에 넘어온 후에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남들이 절대 관심가질 리 없는 내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굳이 왜 매일 갈아 입고 다녀야 하는지, 왜 번듯한 브랜드의 허리띠와 손목시계와 가방을 들고 다녀야 하는 건지 정말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건 사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남들의 시선을 끌게 되는 상황은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초등 시절 장기자랑 같이 혼자 앞에 나가 뭔가를 해야 하는 것. 중고교 시절 선생님이 그날 날자 끝자리 번호 맞춰 내 번호 부르면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칠판 앞에 나가 뭔가를 답하거나 답을 풀어야 하는 상황, 사회에 나와 사람들 앞에서 상황 ..
샛길과 슬럼프 샛길에 빠져 방황해 본 적 없냐는 세바시의 질문은, 이 세상엔 꿈을 찾아 가는 꿈길이란 올바른 길과 그렇지 않은 샛길이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은 원래 내가 있었어야 하는 그 원래의 길로 돌아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어쩌면 내가 지금 샛길에 서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감히 대답하기 힘들다. 혹시 난 어딘가에서 길을 잘못 들어 지금 원래 갔어야만 하는 길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닐까? 영어를 전공한 사람이 왜 인도네시아에 와있을까? 사실은 샛길에 서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밀려 봉착한 골목에서 이게 원래 가고 싶었던 곳이라고 자기 최면을 걸며 정신승리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슬럼프에 대해선 분명한 기억이 있다. 슬럼프란 뭔가 왕성하던 것이 잠시 시들해진 것과는 본질적으로..
내 일생의 도전 언젠가부터 도전이란 단어가 본질적으로 다른 의미인 시도와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이게 된 것은 수시로 '도전'을 외처대는 무한도전, 1박2일 같은 리얼리티 TV 예능 프로그램들과 뻑하면 뭔가 도전받았다고 주장하며 성도들에게 도전하는 호전적인 목사님들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가 뭔가 ‘도전해 보았다’고 생각한 것들이 사실은 ‘그냥 해본 것’의 수준을 크게 넘지 못했다. ROTC 모집에 응한 것, 재외동포문학상에 응모한 것, 미용기기수입판매 사업을 하면서 현지 미용시장과 여성 취향의 ‘벤쫑’들 넘쳐나는 세상에 깊숙이 들어가 봤던 것들도 사실은 한 번 해본 것 또는 어찌하다 보니 그리 된 것이라 감히 도전이라 말하기 어렵다. 인도네시아에 와 만 26년차를 살게 된 것도 처음엔 다니던 회사에서 발령을..
만랩 찍기 2000년대 초중반에 만났던 사람들을 통해 난 내가 스스로 늘 생각해 오던 유형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과 이 세상도 내가 교실에서 배웠던 그런 세상이 아님을 절절히 알게 되었습니다. 술라웨시에서 시작된 파산의 나락에서 기어 나오려 몸부림치던 시절이었죠. 그때 만났던 사람들에겐 특이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인도네시아에 와서 이미 두 세 차례 정도 사기를 당하거나 사업을 거의 거덜낸 상태에서 나에게 왔습니다. 그들은 대개 처음엔 나와 일하게 된 걸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일이 어느 정도 회복되거나 주변정리가 되면 난 늘 정리대상 1호가 되어 떨려나곤 했습니다. 처음엔 내가 나쁜 놈들을 만난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같은 문제가 반복되면 그 원인은 그들에게 있는 게 아..
자존감 최상의 순간 “난 한번 뱉은 말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반드시 지키는 사람입니다. 심지어 술에 떡이 되어 필름이 끊겨도 그 상황에서 한 말들조차 무슨 수를 쓰든 다 지켜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날 좋아하는 거에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과 3년도 넘게 일했는데 그 사이 그가 나한테 지키지 않은 굵직한 약속만 해도 여럿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남도 아니고 자길 누구보다 잘 아는 나한테 확신에 찬 표정으로 저런 얘기를 하는 것은 그가 정말 그리 믿고 있기 때문이죠. 물론 그가 나한테 지키지 못한 그 여러 약속들을 하나도 기억 못한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내가 반박하려 하면 인문사회철학적 수사를 동원하여 당시 그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밖에 없었던 완벽한 이유와 당위성을 내세웁니다. 그럼 그의 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