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맷집 키워 뽀큐 날리는 슬기로운 생활 본문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진 않아도……
학창시설 누군가 날 바라볼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그런 생각은 한화그룹에 다닐 때에도 인도네시아에 넘어온 후에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남들이 절대 관심가질 리 없는 내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굳이 왜 매일 갈아 입고 다녀야 하는지, 왜 번듯한 브랜드의 허리띠와 손목시계와 가방을 들고 다녀야 하는 건지 정말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건 사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남들의 시선을 끌게 되는 상황은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초등 시절 장기자랑 같이 혼자 앞에 나가 뭔가를 해야 하는 것. 중고교 시절 선생님이 그날 날자 끝자리 번호 맞춰 내 번호 부르면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칠판 앞에 나가 뭔가를 답하거나 답을 풀어야 하는 상황, 사회에 나와 사람들 앞에서 상황 브리핑을 하거나 뭔가를 정리해 발표하는 것 말입니다. 평생 말로 하는 것보다 글로 쓰는 게 편했던 사람이어서 참 익숙해지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 시선에 맞서 내가 딱히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모든 건 내가 하는 말, 내 의견, 내가 내놓은 결과물에 달린 것이니 교수님이나 상사나 동료들이나 부하 등, 사람들 부담스러운 시선을 누그러뜨리려면 그 함량을 제고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습니다.
내 발표의 내용이 아니라 내가 입은 옷이나 말투나 머리색깔을 가지고 문제를 삼는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쩌라고?' 가 대략적인 내 입장이었고요.
결국 누군가의 시선이란 어차피 언제나 부담스러운 것이지만 그 시선이 내가 뭔가 일하고 말하는 내용과 방식의 본질을 평가하는 것이냐 아니면 알맹이와 관계없이 형식과 외관만 따지려 드는 것이냐 생각하게 됩니다. 그건 마치 인터넷 공간에서 사람들의 댓글을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익명의 방패 뒤에 숨은 이들이라 해서 꼭 악의적인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귄 곳도 인터넷 공간이었죠. 내가 인터넷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1996년부터이니 이제 25년이 됩니다. 댓글의 시작, 첫 접촉이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이나 비비 꼬인 조롱인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그 빈도가 많아지는 추세죠.
단적인 예는 얼마전 한 매체 게시판에 동성애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을 적었을 때입니다. 기본적으로 동성애자란 위상은 누군가 노력해서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타고 난 것이 언제가 발현되는 것이 쉬우니 성소수자들에 대한 포용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죠. 물론 그런 게시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뻔한 일입니다. 네 자식들 모두 동성애자 되어 버리라고 저주하는 놈들이 나타납니다. 그런 건 거의 예외가 없어요. 북한과 화해 가능성이나 미군철수에 대한 의견을 얘기하면 빨갱이로 모는 건 수십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전형이죠. 블로그 게시물엔 개인 명예를 침해했다며 블라인드 처리요청 들어오는 것도 적지 않습니다.
인터넷에서 글을 쓰는 건 분명 맷집을 늘리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맷집이 좋아진다고 해서 맞아도 아프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건 오히려 받아치는 기술이나 상대방 주먹을 흘리는 기술이 좋아진다는 뜻이죠. 최소한 인터넷에서 수십, 수백 명이 나를 욕하고 저주한다고 해서 한강다리에서 뛰어내리는 바보 짓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남의 시선에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부담을 느끼고 영향을 받고 상처입기도 하는 거 당연합니다.
하지만 나한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을 마주 쏘아 봐주거나 그 시선과 함께 쏟아 붇는 악의 가득찬 욕설과 비난에 '너나 잘 하세요' 뽀큐를 유려하게 날려주고 귀가 길에 맥주 한 잔 걸치며 통쾌해하는 멘탈도 필요하다 봅니다.
물론 난 매번 뽀큐를 날리는 사람은 아닙니다.
2021.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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