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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최선의 자기방어기제

beautician 2021. 3. 16. 02:54

테러리스트식 문제해결법

 


한때는 싸움을 벌이는 게 일 잘하는 줄 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사실 싸움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기도 했습니다.

의류전문회사가 아닌 회사에서 의류를 취급했던 경험 많은 선임자들도 없는 상황에서 국내 하청공장을 돌리는 정도가 아니라 인도네시아에 여덟 개 라인 봉제공장을 만들어 놨으니 사고가 끊일 리 없었습니다. 자켓을 하나 만들려면 색색가지 원단과 단추는 물론 재봉사, 부직포, 라벨, 포장재, 카톤박스까지 줄잡아 30~50가지 자재가 다 맞춰지지 않으면 작업을 시작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두 가지 자재가 시간 내에 오지 않아 생산라인이 멈추면 난리가 나는 시스템인데 내가 부임한 후에도 그런 일이 심심찮게 벌어졌고 그럴 때마다 공장이 발칵 뒤집어졌죠.

“자재 시간 못맞추면 내가 당신 공장 싹 다 불 싸질러 버릴 줄 알아!”
이런 말이 서슴없이 튀어나오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적잖은 기간 동안 멀리, 저 밑바닥까지 다녀오는 우여곡절을 겪은 후 미용기기 수입판매 사업을 시작했을 때 미용실 마다 한 두 명씩은 있는 벤쫑들, 말하자면 여성취향의 야릇한 남자들을 수없이 대해야 했는데 그 친구들과는 험한 말로 싸울 일이 거의 생기지 않았습니다.

“어머, 지지배~!”
이 정도만 던져주면 거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다시 화기애애해졌으니까요.

결국 내가 전에 왜 그리 좌충우돌 싸우고 돌아다녔는지 후회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충성을 다한 회사들은 날 지켜줄 생각이 없었고 싸움의 결과 얻은 흉터는 몸이나 마음 속 어딘가에 남고 말았으니까요.

 

깨달은 것도 있었습니다. 싸움이 벌어져 파국이 찾아오는 건 대개의 경우 일 때문이 아니라 사람 때문이라는 걸 말이죠. 문제의 원흉은 상대방이기도 하고 나 자신이기도 했습니다.

한동안 이어지던 평온한 일상은 2016년부터 이곳저곳에 글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일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교민사회와 처음 교류하게 되었을 때 우리 사는 사회에 상습적인 포탄 낙하지점이 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던 나는 가끔 낭패를 보곤 했습니다. 어느 사회나 원수에게 무작정 총질을 해대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데 물정 모르고 교민사회에 나왔다가 스스로 거물이라 자처하는 사람들 사이 총격전에 휘말려 유탄을 맞았습니다. 군이나 회사 같은 조직에서 부하와 동료들을 총알받이로 삼으려는 이들을 수도 없이 보았지만 교민들 중에도 그런 이들이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예전 날 총알받이로 삼던 이들은 최소한 내 승진이나 월급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교민사회에서 만난 그들은 나랑 아무 관계도 없었고 그저 목소리만 큰 아저씨, 아줌마들일 뿐이었는데 말이죠. 황당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대하기 힘든 부류는 어떤 경우에도 자기가 피해자라고 생각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죠. 남의 등에 비수를 꼽고 사람 마음을 난도질을 하고 나서도 자긴 피해자여야 하는 사람들.

 

피해자 코스프레

 

그런 사람들과 부딪혀 벌어지는 피곤한 일은, 그가 날 사탄새끼로 여기는 것 정도야 상정 범위 안이지만 문제는 동네방네 저 놈이 사탄새끼라고 손가락질하며 사람들에게 속삭이며 돌아다닌다는 것이고 놀랍게도 그 말을 들은 사람들 셋 중 하나는 철썩 같이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건 일찍이 해본 적 없는 싸움이었어요.

내가 공장에 불 싸지르겠다고 소리치면 저쪽에선 ‘우리 공장 소화기는 뭐 장식인 줄 알아?’ 이렇게 받아치는 게 보통이고 지지배, 왜 그래? 하면서 옆구리를 쿡쿡 찔러주면 ‘보고 싶어서 그랬지’ 이러면서 지갑에서 물건값을 꺼내 주곤 했죠. 일단 사정거리와 다음 수가 대충 예측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교민사회에서 만난 피해자 코스프레 전문가들은 그런 게 통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끝까지 주변을 들쑤시며 악다구니를 보이는 그들은 집요하고도 성실했어요.

보통 사람들과의 문제는 말로 풉니다. 그걸로 충분치 않으면 술을 먹든가, 그것도 아니면 한 번 더 주먹질하며 싸우다가 지치면 같이 짜장면 먹으러 가는 거죠. 맺힌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풀려야 마땅한데 저 전문 피해자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 게 보통입니다.

대개 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겪는 일입니다.
그 다음 단계에 들어서서, 어떤 이들은 더욱 양보해 상대방 마음을 누그러뜨리려 애쓰기도 하고 통 크게 사과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그렇게 해서 상황이 끝나는 게 아니라 다음날 교민신문에 ‘사탄새끼 마침내 굴복시키다’라는 헤드라인이 실리기 쉽습니다. 관계가 회복되는 게 아니라 내가 호구가 되어야 끝나는 거죠.

그래서 난, 함께 문제를 푸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해지면 함께 뭔가를 더 시도하기 보다 그냥 나 스스로 뭘 해야 할까 결정합니다. 얘기가 통하지 않는 상대와 원만하게 끝내는 게 안되면 내가 가장 먼저 그 아수라장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찾는 겁니다. 상대가 그렇게 나오는 건 평생 그런 악다구니가 통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내 앞에서는 그 악다구니를 쓰지 않을 거라고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은 안 변해요.

그래서 그 아수라장 탈출 방법이란 대개의 경우 가능한한 빨리 문제의 근원, 원흉으로부터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같이 하던 일을 중단하거나 함께 속해 있던 동아리를 탈퇴하고 나오거나 핸드폰과 이메일에서 상대방 연락처를 다 지워버리고 그 사람이 없는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하는 거죠.

물론, 그 안전거리를 확보한다는 것은 상대방이나 내가 없어져 버리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확실히 없애 버리려는 사람은 테러리스트가 되는 것이고 나를 없애려는 이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물론 이런 게 성숙한 방어기제일 리 없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이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최선이라 믿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테러리스트의 방식으로, 결국 테러리스트까지 되지 않았지만.

 



2021.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