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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호구로 살 것인가?

beautician 2021. 3. 1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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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중반에 만났던 사람들을 통해 난 내가 스스로 늘 생각해 오던 유형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과 이 세상도 내가 교실에서 배웠던 그런 세상이 아님을 절절히 알게 되었습니다. 술라웨시에서 시작된 파산의 나락에서 기어 나오려 몸부림치던 시절이었죠.

 

그때 만났던 사람들에겐 특이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인도네시아에 와서 이미 두 세 차례 정도 사기를 당하거나 사업을 거의 거덜낸 상태에서 나에게 왔습니다. 그들은 대개 처음엔 나와 일하게 된 걸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일이 어느 정도 회복되거나 주변정리가 되면 난 늘 정리대상 1호가 되어 떨려나곤 했습니다.

 

처음엔 내가 나쁜 놈들을 만난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같은 문제가 반복되면 그 원인은 그들에게 있는 게 아니라 나한테 있다는 것이 점점 더 명백해집니다. 매번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데 늘 같은 결과로 끝나면 그 모든 과정의 유일한 상수인 내가 원인인 것은 너무나 분명한 일이었죠.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때 단번에 대답을 찾았다면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겠죠. 몇 년이나 시간이 지난 후 생각지도 않은 순간에 뜬금없이 수긍이 되며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이런 뒷북이……

 

우선 처음 만남부터 세팅이 잘못되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난 백수인데 누군가 찾아와 수백억 벌리는 일을 안겨준다면 거기엔 분명 뭔가 야료가 있을 터입니다. 그런 일은 나한테 절대 찾아올 리 없으니까요.

 

그들이 날 찾아온 건 나름 엘리트 비슷한 스펙을 가진 것 같은데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으니 돈 몇 푼이면 쉽게 맘대로 움직여줄 것이라 생각한 거겠죠. 요컨대 가성비 높다는 판단을 한 것이죠. 그러다가 어느 정도 상황이 안정되어 내가 퇴출 1 순위가 되는 것은 토사구팽이란 옛말 하나도 틀리지 않은 것이고 어려운 일 다 처리된 마당에 고분고분한 젊은 사람들을 쓰는 게 더 편하고 싸게 치이기 때문이죠.

 

물론 그런 판단을 더욱 쉽게 내리도록 만드는 건 내가 쉽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난 그들이 원하는 걸 거의 거절하지 않았고 원하는 이상을 해주고서도 그에 상응하는 추가적 보상을 요구한 적도 없습니다. 더욱이 부당한 요구를 받아도 충돌하기보다는 내가 좀 손해를 보며 원만하고 신속하게 상황이 진행되도록 대체로 수용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학교와 교회에서 배운 것처럼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라 믿었지만 그건 여러 차례에 거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호구인증을 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난 그때까지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던 쑥맥이었고 진정을 다해 상대방을 대하면 반드시 상응하는 보답이 올 거라 생각하는 금치산자였던 거죠.

 

'그때 지랄를 쳐야 했어....!'

 

독한 남자가 되기로, 잡놈이 되기로 생각했던 게 대략 그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다짐은 아랑곳없이 얼마전 당시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했는지 단적으로 깨닫게 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선배가 있었는데 2000년대 당시 나를 지켜봤던 분이죠. 그분이 나에게 한 회사를 소개해주며 등나무 소품 팔로업을 부탁했는데 그때가 외대 양승윤 교수님과 공동번역한 <막스 하벨라르>가 출간되기 직전이었습니다. 나름 이런저런 일들로 바빠지고 있던 때였지만 그 선배는 옛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여전히 허덕이는 백수일 거라고요.

 

'이건 오더가 다 된 건데 내가 시간이 안되니 배동문이 맡아서 좀 해주게. 나중에 성사가 되면 장기 오더가 될 테니 자네가 세밀하게 팔로업해 주면 나중에 큰 도움이 될 걸세."

 

그래서 3개월 정도 롬복의 등나무 소품 공장과 서울의 수입상을 연결하며 쌤플을 제작하고 가격과 제반조건을 맞추었습니다. 당시 원고들과 생계를 위한 다른 일로 눈코뜰 새 없었지만 굳이 그런 얘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돈 버는 일이 바쁜 건 당연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모든 팔로업이 끝나고 품질과 조건이 맞자 서울에선 L/C를 열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L/C는 처음부터 안배된 대로 소개해준 그 선배 회사 앞으로 열리는 거였고 커미션은 그 선배와 내가 반씩 나누는 조건이었죠. 그런데 선배가 갑자기 반대를 하며 나섰습니다.

 

"이게 성사되리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아무튼 저 롬복업체는 너무 영세해서 믿을 수 없으니 그간 수고한 건 안됐지만 이번 딜은 없었던 걸로 하지. 그간 고생했네."

 

선배는 원래 안될 일을 나한테 감언이설로 모든 관련 정보를 조사시켜 그 서울업체에게 생색을 냈던 걸까요? 아니면 말은 그런 식으로 날 제치고 그 오더를 독식하기로 한 것일까요? 그 영세해서 안된다는 롬복의 등나무소품업체조차도 초창기에 그 선배가 소개해주며 보증해 주었던 곳입니다.

 

2000년 대에 날 보았던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평가하고 있었던 겁니다.

뭐든 시키면 곧잘 해오지만 굳이 상응하는 보상까지 해줄 필요는 없는 사람.

호구.

 

그때도 그 선배에겐 아무 불평도 하지 않았습니다. 미리 간파하지 못하고 결과물을 모두 줘버린 후에 벌어진 그런 상황에서 난 철저히 약자였습니다. 호구가 되지 않으려면 그때가 지랄할 타이밍이었는데 결국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난 거절을 잘 못합니다.

그 대신 뒷담화 능력은 이제 스탯 창에 만렙을 찍었습니다.

 

 

 

2021. 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