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선 곳에 따라 달리 보이는 풍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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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에 보낸 기사가 데스크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연일 신규확진자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규확진자를 내는 나라가 되어 우너진 의료체계 속에 현지인들은 물론 한국인 확진자들도 무너진 의료체계 속에 호흡곤란이 올 경우 사망자를 내기 쉬운 상황에 의료용 산소 현황과 산소발생기 등의 수입상황을 다룬 것이었지만 데스크의 반려 사유는 '코로나 기사는 식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일이지만 어느 한 나라의 죽고사는 문제, 심지어 그곳에 약 2만 명 교민들의 생사가 걸릴 수도 있는 문제가 식상하다며 다른 기사를 찾아달라는 요청에, 서 있는 자리에 따라 풍경이 달리 보인다는 것을 새삼 절절히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어제 밤엔 2019년에 만화책 채색을 도왔던 옛 직원 랑가(Rangga)가 약값을 빌려다라고 해 흔쾌히 돈을 보내주었습니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그라메디아에 납품해 출간한 귀신만화 세 권 말고 일곱 권을 더 함께 작업했을 친구입니다. 다행히 코로나가 아니라 위산과다와 위궤양 사이 어디쯤의 병명인 것 같아 동지의식도 좀 느끼며 몇 마디 왓츠앱 통해 나누었는데 혹시 난 내 기준에서 얘기하다가 곤궁에 빠져 있는 그의 기분을 의도치 않게 건드린 부분은 없었을까 싶어 어제밤의 대화들을 다시 되짚어 보았습니다.
아침에 메이가 자기 건강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면 연락해 와서 인근 병원에 PCR 검사를 받아보라 얘기했지만 말을 들어먹지 않아 한 소리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나니 아프다는 친구한테 좀 너무했단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리 선의였다 해도, 같은 집에 사는 차차와 마르셀이 걱정되었다 해도 역시 좀 더 우쭈쭈 해줬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내가 뭔가 당해 봐야 반성을 시작하는 건 아직 좀 멀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아직 내가 반성 가능한 인간이라는 걸 다행스럽게 느끼게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아마 하노이 특파원이 쓴 이 미얀마 기사에 밀린 듯 합니다.
2021.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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