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니켈광산 영적방어작전 16

니켈광산 영적 방어작전 (6)

ep6. 흑마술 그 두 사람과 로이 아빠가 그날 아침 내가 끈다리를 출발할 때 사무실에 나와 있지 않을 것이란 사실도 릴리는 사전에 설명해 주지 않았습니다.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어요. 전날 밤 먼저 출발해 현장에 올라간 것일까요? 로이 아빠의 전화는 먹통이었습니다. 끈다리를 벗어나면 아세라만 해도 전화가 터지지 않는 곳이 많았고 토비메이타 지역의 광산지대에 들어서면 심빠띠(simPATI) 이동통신 신호가 잡히는 언덕이 하나 있어 전화를 하려는 사람들이 차를 타고 그 언덕에 모여들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곳 길가엔 늘 차량들이 몇 대씩 서 있었고 합판으로 대충 지어진 간이 와룽(warung) 한 개도 커피 타주는 사업이 성업 중이었습니다. 그날 아침 간신히 연락이 닿은 로이는 자기 아버지가 전날 밤 왕구두..

니켈광산 영적방어작전 (5)

ep5. 방어선 그러나 그렇게 로니와 암본인 마피아들을 포섭했다 해서 까마루딘이나 지역위원장의 공격을 영원히 막아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릴리를 등쳐먹으려다가 오히려 회사를 헐값에 넘긴 셈이 되었으니 절대로 쉽게 포기할 리 없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릴리의 사무실엔 보디가드들이 1층을 차지해 자리를 잡았고 쥬프리 대위는 광산에도 나이든 중사 한 명이 이끄는 세 명의 무장군인들을 상주시키며 광산 외곽 몇 군데의 초소를 운용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릴리가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 것은 분명했습니다. 대담한 척 행동할 수는 있지만 그런 분명한 위협에 전혀 개의치 않을 강철여인은 만화 속에서나 존재할 뿐이죠. 그녀는 아직도 충분한 방어력을 갖추지 못했으므로 언제 어떻게 공격받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고 ..

니켈광산 영적방어작전 (4)

ep4. 위태로운 동행 하지만 2013년에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이미 5년을 유예한 원석수출금지조치의 발효가 2014년 1월로 다가오면서 그전에 가능한 한 많은 물량을 실어내려 하면서 중국을 위시한 전 세계 벌크선들이 몰려들면서 북부 꼬나웨 주 모롬보(Morombo)만이 대형 선박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릴리 역시 다잇 니켈 광산 세 군데에서 직접 또는 도급으로 맹렬히 채굴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물량을 대지 못해 애를 먹던 차였습니다. 니켈의 품질은 황이나 실리카에 영향을 받지만 대체로 원석상태에서 순도 품위가 2%만 나와도 최상품 취급을 받습니다. 벌크선에 싣는 5만톤에 함유된 니켈이 1천톤만 되어도, 그러니까 나머지 49,000톤이 쓰레기라도..

니켈광산 영적 방어작전(3)

ep3. 악의를 대하는 방법 사실 산간오지에서 자신과 기업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자체적 경비가 필요하다는 것엔 나도 충분히 공감했지만 처음엔 릴리가 취하는 조치들이 좀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파산 후 내가 재기를 위해 숱한 고생을 했던 것처럼 당시 바뚜리찐의 탄광업계에 들어간 릴리의 고생 역시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미용사업으로 가닥을 잡은 이유는 모든 것이 상식에 따라 진행되지만은 않는 인도네시아에서 한번 파산을 겪고 빈털터리가 되어버린 외국인으로서 진행 도중 예상되는 극복 곤란한 불확실성과 실패 리스크가 높은 길을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미용, 특히 미용실을 위한 미용기기 수입판매 사업은 판이 작은 만큼 전체적인 윤곽을 그리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니켈광산 영적방어작전 (2)

ep2. 권총 차고 다니는 동네 아무튼 릴리는 돈과 이해에 얽매여 자기 편한 쪽으로 현실을 비틀고 왜곡해 보고하며 비용만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 현장상황을 곧이곧대로 보고 얘기해 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선적이 임박해 있었으니 릴리는 그 과정을 전문적으로 감독할 사람도 필요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그 아세라의 제재소 때문에 파산하기 전까지 릴리는 나와 8년쯤 함께 일했습니다. 처음엔 내가 고용주였는데 나중엔 동업자가 되었다가 이젠 자기가 보스가 된 셈이었어요. 그때 난 미용기기 수입판매를 하면서 나긋나긋한 미용업계에서 벤쫑(bencong)들, 반찌(banci)들과 헤어와 네일을 논하며 살고 있었는데 그렇게 예비군 소집되듯 릴리의 광산에 투입되었습니다. 초창기에 남자들 세상인 광..

니켈광산 영적 방어작전 (1)

ep1. 사지로 보내는 이유 술라웨시는 인도네시아를 이루는 수천 개의 섬들 중 세 번째로 큰 섬입니다. 자카르타가 있는 자바섬(또는 자와Jawa섬)이 머리 위에 이고 있는 두 개의 큰 섬들 중 오른쪽에 ‘K’자처럼 생긴 곳이죠. 남부 술라웨시의 마카사르(Makassar)라는 도시는 우중빤당(Ujung Pandang)이라고도 불리는데 이곳은 술라웨시 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전체를 통틀어 가장 번잡한 교통의 요지 중 하나로 동부 인도네시아의 크고 작은 도시로 날아가는 대부분의 비행기들이 이곳을 경유합니다. 부기스(Bugis) 종족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두 번씩이나 부통령을 지낸 유숩칼라(Yusuf Kalla)의 고향이기도 하죠. 술라웨시섬 북단의 마나도(Manado)는 참치잡이 원양어선들의 기항지로도 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