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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니켈광산 영적방어작전

니켈광산 영적 방어작전 (10)

beautician 2022. 1. 20. 11:33

ep10. 시멘트 공장 매각작전

 

 

그렇게 돌아온 자카르타의 상황도 결코 말랑말랑하지 않았습니다. 내 사업의 기반이 되었던 도매 매출도 줄어들고 있었지만 한때 업계 1위를 달렸던 미용실 방판부문은 더욱 큰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리는 중이었습니다. 지표에 나타나는 인도네시아의 GDP는 꾸준히 상승 중이었고 시내 곳곳에 거대한 사무실 건물들과 아파트 단지들이 속속 올라가고 있었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서민들의 구매력 약화가 피부에 와닿았고 그것은 우리가 가동하던 할부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차량이나 오토바이 파이낸스 회사나 해결사들을 낀 전문 회사들이 돈놀이 비슷한 할부사업을 하고 있었지만 우린 그런 회사들을 낄 만한 규모가 되지 않아 할부판매를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모든 리스크를 스스로 져야 했습니다. 한 달에 100명 중 1-2명 꼴로 돈을 떼어먹고 도망가는 놈들을 기어이 쫓아가 잡아내는 것도 우리가 직접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2013년 말에 이르러 도망가는 미용사들은 100명 중 10명을 넘었고 그 숫자는 계속 늘어났습니다. 우린 전력을 다해 그들을 잡으러 다녀야 했는데 그러기엔 시간과 인력이 크게 모자랐습니다.

 

게다가, 150만 루피아 짜리 제품을 5개월 할부로 팔았다고 해서 다섯 번만 방문하면 할부금이 회수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구매자들이 온갖 핑계를 대며 결재를 미루는 바람에 우린 한 건 5회 할부금을 받아내기 위해 평균 8-9회를 방문해야만 했고 심하면 20번 이상 방문해도 끝내 대금을 주지 않는 놈들도 있어 영업사원들이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날이 많았습니다. 더 이상 자체적으로 리스크를 지고 할부판매 하는 건 자살행위가 분명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도 온라인 판매로 전환하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100% 선불을 요구하는 판매방식은 소매매출의 급감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한국에서 들이닥쳤습니다. 오랫동안 거래해온 한국 공급선이 우리 경쟁사인 현지 파키스탄 업체로 갈아탄 것입니다. 내겐 하나뿐인 소중한 인도네시아 시장이지만, 많은 나라에 수출하던 그들에겐 그저 지표상 숫자 하나에 불과했던 것이죠. 우리가 지난 10년간 브랜드 인지도를 한껏 올려놓은 현지시장에, 한국 공급선이 몰래 물건을 판 현지 경쟁사가 같은 제품을 들고 20-30% 가격으로 치고 들어왔습니다. 그들로서는 땅 짚고 헤엄치기였고 우린 속수무책으로 무녀졌습니다.

 

이건 내가 만든 시장을 그쪽에서 임의로 파키스탄 사람들에게 팔아먹은 거잖아요? 양해를 구하든, 조율을 하든, 하다못해 최소한 사전통지를 하든 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당신보다 더 많이 팔 수 있는 사람한테 물건 주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요? 

한국 공급선의 대답은 냉정했어요.

 

나나 상대방이나 모두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건 인지상정입니다. 결국 그날 우린 대판 싸웠고 공급선은 공식적으로 거래중단을 선언했습니다. 우린 한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그 파키스탄 업체에게 수세로 몰리며 시장에서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내 브랜드를 만들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었습니다. 난 그동안 공급선의 브랜드를 그대로 사용해 현지 시장을 개척했고 그것이 공급선으로부터 보다 적극적인 협조를 얻어내는 길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시장점유율이 현지시장에서 고점을 찍을 즈음 공급선은 1년치 물량의 PO를 들고 온 내 경쟁사에게 인도네시아 시장을 넘기며 내게 안면을 바꿨던 것입니다. 그게 그들에게 장기적으로 얼마나 이익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난 이제 내가 지난 10년간 애지중지 키워온 브랜드를 빼앗기고 다시 맨바닥부터 뛰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를 갈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이 바닥이 원래 그런 곳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한국, 중국, 일본의 유력한 업체들에 줄을 대며 대체 상품을 개발하며 고심하던 시점에 니켈 광산 일을 도와달라는 릴리의 요청을 받았습니다. 당시 중국에서 막 들어온 시제품들을 시장에 풀고 있던 중이어습니다. 릴리의 광산사업은 언젠가 내 사업이 또다시 실패하게 되면 한발 물러설 수있는 뒷배, 여분, 예비군 같은 것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자카르타에서 물건 푸는 일을 메이에게 맡기고 끈다리로 들어가 한동안 광산일을 도왔던 것입니다.

 

메이는 판매능력이 뛰어났지만 그렇다고 관리능력도 그런 건 아니어서 몇 개월 만에 돌아온 자카르타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미용기기 수입판매를 통해 견고한 요새를 쌓아 올렸는데 어느 날 그 요새에서 쫒겨난 후 이제 내가 만든 그 요새와 싸워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공급선의 브랜드를 그대로 사용했던 내 어리석음이 뼈저리게 사무쳤습니다. 그건 내 발의 족쇄가 되었습니다. 내가 나서도 전세를 뒤집기 어려운 그 전장을 메이가 나 대신 지키는 것은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광산 쪽 일이 잘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릴리는 내 오랜 동업자였고 자카르타에서의 사업이 망가져 가는 상황에서 그녀의 광산사업은 사라져가는 내 소득원을 대체할 중요한 대안이었습니다.

 

릴리의 광산 일을 도운 건 2013년이 처음이 아닙니다. 릴리가 바뚜리찐에서 석탄을 선적하기 시작한 후 2007년부터 틈틈이 그녀가 개발하는 광산을 함께 다녔는데 본격적으로 한발 걸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초 동티모르가 있는 티모르섬 남부 꾸빵(Kupang) 소재의 시멘트 공장 매각에 참여할 때였습니다. 꾸빵은 거대한 해양을 아우르는 동부 누산따라 주(NTT)의 주도입니다. 릴리는 시멘트 공장과 이를 구매하겠다는 인디아 에너지관련 기업 나파바랏, 그리고 공장의 최대 채권자인 만디리 은행의 위임장을 모두 확보하고 현지 공기업들을 주관하는 BUMN 장관까지 만나 공장 매각을 위한 일차적인 정지작업을 완료한 상태였습니다. 그녀가 시간과 비용을 들여 발로 뛰며 그 모든 당사자들을 일일이 만나 설득하고 교섭한 끝에 만들어낸 결과였습니다. 나파바랏은 공장을 인수하면 공장의 원활한 가동과 현지 열악한 전기사정을 동시에 호전시키기 위해 총 2억 달러를 들여 50 메가와트 규모의 화력발전소를 꾸빵에 건설하고 당시 이미 독립해 티모르레스테(Timor Leste)가 된 동티모르 지역까지 포함해 티모르섬 전체에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거창한 사업계획도 세워놓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하필 그때 릴리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다 알라의 뜻이에요.”

네가 임신한 건 네 뜻이지. 그리고 사업권 뺏기는 게 어떻게 알라의 뜻이야?” 

사실 릴리의 임신에 내가 열을 올리는 게 그리 아름다운 광경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 수 없었어요. 

미스터 한이 그렇게 나올 줄은 몰랐어요. 나도 속상해요. 하지만 그것도 알라의 뜻인 거죠.”

바보야! 산모가 되었다고 해서 미스터 한이 비켜달라니까 네, 알았습니다 하고서 간단히 비켜줘?”

그 위임장들 모두 미스터 한 이름으로 받았단 말이에요.”

 

꾸빵 시멘트 공장 매각과 관련한 다른 동업자들이 몇 명 더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었던 미스터 한은 한국인이었습니다. 미국과 멕시코를 거쳐 인도네시아에 들어온 그는 큰 프로젝트들을 시도하면서 대관업무와 자금조달에 두각을 보였는데 우린 당시 나파바랏의 대리인이라며 동업자로 참여해 온갖 감언이설로 사업의 주도권을 가져가려던 인디아인 에이전트들에 맞서 릴리를 도와 사업과 그 결실을 끝내 지켜줄 흑기사이자 우군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 그가 릴리의 임신이 알려지자 임산부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이 전면에 나서려 했고 이에 동의한 릴리가 모든 위임장을 그의 이름으로 받아 주자마자 미스터 한은 릴리를 사업과 이익분배구조에서 완전히 배제해 버린 것입니다. 말로는 나중에 릴리의 지분을 알아서 챙겨 주겠다지만 누가 봐도 릴리의 등에 비수를 꽂고 사업을 빼앗은 것입니다.  성사를 코 앞에 둔 프로젝트가 좀 돈이 벌릴 듯 하면 성급한 동업자들이 동료들에게도 송곳니를 드러내고 물어 뜯는 일은 사실 흔하게 벌어지죠.

 

부당하다 생각되면 싸워야 할 거 아냐? 어떻게 인도네시아에서 인도네시아 사람이 한국 사람한테 당해? 다 네가 만든 일이니 수틀리면 때려 부수고 다시 만들면 되잖아? 다들 위임장을 줬다 해도 제일 중요한 건 나파바랏이야. 그쪽에서 너한테 위임장을 다시 발급해 준다면 매각하는 쪽이나 채권자 쪽은 당연히 구매자 말을 따를 거 아냐?”

“......”

당장 인디아에 전화해. 그리고 빠 마짓(Pak Madjid)이랑도 얘기해서 같이 날아가라고. 나중에 네가 배불러서 정말 못 움직이겠으면 그땐 내가 너 대신 뛰어 줄게. 그러니까 일단 네 밥그릇부터 지키란 말이야!”

지금 생각해보면 2013년말 내 사업을 파키스탄 놈들에게 뺏길 당시 나 스스로도 못했던 일을 릴리에게는 그때 참 쉽게 말했습니다.

 

마짓은 꾸빵 시멘트 공장의 법인장입니다. 릴리는 광산사업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부터 전략적으로 토요일 아침마다 혼자 할림골프장에 골프를 치러 다녔는데 그건 그녀가 인맥 풀을 만드는 비법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할림골프장의 퍼블릭코스는 다른 프라이빗 골프장에 비해 작고 낡았지만 몇 안 되는 시내 골프장 중 하나였고 공군이 관리하는 곳이어서 아침 일찍 짬을 내 골프를 즐기려는 고관대작들과 로비스트들이 모여들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젊은 여자 혼자 골프채를 매고 가면 자연스럽게 다른 남자들과 팀이 짜졌는데 그렇게 만나 명함을 교환한 사람들 중엔 장군들도 있었고 법조인이나 사업가, 고위공무원들도 있었습니다 릴리가 마짓을 처음 만난 것도 그곳이었습니다. 둘의 그런 인연이 사업으로 이어져 꾸빵 시멘트 공장 매각을 위해 한 팀처럼 움직이며 구매의사를 보이는 외국기업들을 수배한 끝에 마침 나파바랏이 나서며 급진전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릴리의 또 다른 동업자이자 말레이시아의 마케팅 담당 나타샤가 그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아무튼 판매자와 구매자 양쪽이 미스터 한에게 만들어 준 위임장을 취소하고 릴리에게 다시 위임장을 발급한다면 채권을 회수해야 할 만디리 은행도 따르지 않을 리 없었습니다.

 

사실 릴리라고 그걸 생각하지 못했을 리 없습니다. 하지만 릴리는 절대 누구한테 매달리는 것 같은 모양 빠지는 일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게 그녀의 장점이자 큰 약점이기도 하죠. 게다가 때늦은 첫 임신으로 불러오기 시작한 배가 평소의 배짱을 갉아 먹었습니다. 미스터 한은 아마도 릴리의 그런 부분까지 치밀하게 계산했겠죠. 하지만 내가 집요하게 그녀를 설득하리란 것도 계산했을까요? 결국 릴리는 며칠 후 마짓과 함께 하이드라밧으로 날아가 나파바랏에게서 새 위임장을 받아옵니다. 그와 동시에 잠시 과욕을 부렸던 미스터 한은 단번에 날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