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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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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켈광산 영적방어작전

니켈광산 영적 방어작전 (13)

beautician 2022. 1. 23. 11:38

 

ep13. 나타샤

 

 

어째서인지 몰라도 릴리는 왕구두의 송구영신 행사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듯 했습니다. 사실 이 행사는 내가 끈다리를 떠나던 2주 전만 해도 계획에 없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릴리가 갑자기 이 행사의 개최를 결정했다는 것인데 급조된 행사치고는 그 규모가 엄청나 억대의 비용이 투하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왕구두와 아세라 전역의 주민들은 물론 부빠띠를 비롯한 지역 고위 관료들과 군, 경찰들을 대대적으로 초청했고 왕구두 중앙통의 큰 공터엔 대규모 무대와 함께 VIP들을 위한 초대형 차양도 설치했습니다. 그동안 허가를 진행하고 선적서류를 만들면서 관청에는 이미 필요 이상의 지출을 한 상태였는데 광물원석 수출금지조치의 발효를 불과 열흘쯤 앞두고 이런 행사를 위해 또다시 엄청난 지출을 불사하는 이유를 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금지조치가 발효되면 이 행사를 통해 관청과 주민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반대급부는 크게 제한되어 버릴 게 분명한데 말입니다.

물론 이런 비효율적인 축제에 퍼부을 돈이 있다면 예전 제재소 사업에서 말아먹은 내 돈을 일부라도 우선 보전해 줘야 하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어쩌면 릴리는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던 거겠죠.

 

 

우린 알라께서 허락해 주신 천연자원을 이용해 이 사업을 하는 거에요. 욕심을 부려 우리 배만 채우려 하면 반드시 벌 받을 거라고요. 이 행사는 결실을 함께 나누는 것이고 일을 도와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거란 말이에요.” 

암본 노동자들을 떼로 데려와 스위스벨 특급호텔에서 며칠씩 재우는 것 말고도 그들의 노고를 치하할 많은 다른 방법들이 있었던 것처럼 관청과 주민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하는 것 역시 다른 방법들이 분명히 있을 터였습니다. 게다가 시기적으로도 이미 선적 진행한 것들의 수출대금은 절반도 입금되지 않았고 초창기에 나탸샤가 싱가폴에서 주선해 아랍계 대출업자로부터 빌려온 자금도 아직 상환하지 못한 상태였어요. 샴페인을 터뜨리는 일은 모든 정산이 다 끝난 후에 해도 늦지 않을 터였습니다. 하지만 릴리가 욕심, 자연, 함께 나눔을 운운하자 내 생각과 계산을 말하는 것이 마치 옥합을 깨뜨려 그 향유로 적신 자기 머리칼로 예수의 발을 닦던 막달라 마리아를 꾸짖는 이스카리옷의 유다가 되는 기분이었으므로 차마 입에 담진 않았습니다.

 

릴리 언니가 벌리는 일은 정말 상상 이상이에요.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어요.”

그러게. 잘하는 짓인지는 나도 모르겠어.” 

릴리는 모든 비용을 대겠다며 내 가족들도 왕구두로 데려오라 했지만 난 평소처럼 혼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나타샤는 조호바루에서 개업 치과의로 일하는 부모와 변호사 오빠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녀로서는 이 행사가 자신이 더 이상 철부지 막내딸이 아니라는 것과 그동안 자신이 어떤 대단한 일들을 해왔는지를 가족들에게 보여줄 첫 번째 기회였고 몇 년 전 인도네시아에서의 대실패로 그녀의 쟁쟁한 가족 구성원들에게 준 나쁜 인상을 단번에 만회할 기회였습니다. 비록 지방의 작은 군소재지였지만 다른 거대기업들도 하지 않는 대대적인 사은행사를 자신이 속한 조직이 해당 지역의 관청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개최한다는 것은 분명 자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지출규모에 대해서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 했습니다.

 

당시 20대의 끝자락을 지나고 있던 나타샤가 고등학교를 싱가폴에서 마치고 캐나다에서 대학을 나온 후 어떤 경로로 20대 초반에 곧바로 바뚜리찐의 탄광까지 흘러 들어와 릴리를 만나게 되었는지는 잘 모릅니다. 내가 아는 것은 깔리만탄 시절, 그녀에게 달라붙은 한 턱보트(바지선의 견인선) 선장이 그녀의 돈과 젊음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 급기야 그녀의 인생에 빨대를 박으려 했다는 것과 그녀의 비자를 스폰서 한 자카르타 꼬따(Kota) 지역의 대출업 사업가이자 싱가폴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화교 남자가 나타샤를 통해 투자한 석탄사업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자 숙소로 마련해 준 아파트에서 그녀를 내쫓아 길바닥에 내앉게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릴리가 그 화교와 선장에게 이단 옆차기를 날린 후 나타샤를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난 릴리의 부탁을 받아 나타샤를 위해 끌라빠가딩 메디테라니아 아파트를 구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몇 개월간 나타샤는 관리비는 물로 생활비도 구하지 못해 허덕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불법체류자가 되느냐의 기로에서 그녀의 인생 최초이자 최악의 실패를 부둥켜 안은 채 말레이시아의 부모님에게 돌아가게 되었죠. 그때 릴리는 귀국비용까지 대주면서 원거리 동업을 제의했습니다. 나타샤가 저질러 놓은 모든 문제들을 릴리가 수습해 주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번과 같은 불행한 사건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다시는 인도네시아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조건이 따라붙었습니다. 말레이시아 조호바루에 앉아 릴리 사업의 커뮤니케이션 센터가 되어 달라는 조건이었어요. 처음엔 월급도 없이 약간의 경비만 받는 조건이었지만 깔리만탄에서 릴리가 승승장구하던 모습을 직접 보았던 나타샤는 그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그건 분명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결정이었습니다. 비록 어린 나이와 치기로 인해 이런저런 실수와 갈등이 있었지만 나타샤는 인디아 억양이 전혀 없는 미국식 영어를 유려하게 구사했고 그녀의 인맥은 혈연, 학연, 지연 등을 통해 말레이시아, 싱가폴, 캐나다, 인디아는 물론 아랍과 유럽까지 아우렀습니다. 릴리가 처음 술라웨시로 넘어갔을 때 나타샤가 끌어온 광산투자자금은 싱가폴 소재 아랍계 투자회사에서 받은 것이었어요 분명 그녀는 거친 현장사람들을 상대하기보다는 서구와 중국의 거래선들을 개발해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고상한 언어로 교신하여 오더를 만들어내고 싱가폴과 아랍 투자자들을 설득해 투자를 성사시키는 데에 뛰어난 능력과 수완을 보였습니다. 릴리는 해외오더와 수출대금을 경유시킬 회사를 싱가폴에 만들면서 그 관리를 나타샤에게 전적으로 위임했습니다. 20대 초반에 눈물을 뿌리며 자카르타를 떠났던 나타샤는 불과 6-7년 만에 명실상부 릴리의 가장 중요한 동업자가 되어 마케팅과 파이낸싱 부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도네시아로 돌아오고 싶은데 릴리 언니가 그것만은 끝내 허락해주지 않네요.”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게 분명히 더 효율적이었을 테지만 릴리가 그녀의 인도네시아 복귀를 이유없이 금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건 어린 나타샤가 현장에서 험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려는 의도였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조호바루로 돌아간 나타샤는 유배당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을 겁니다. 당시 막 20대에 접어들었던 풋풋한 나타샤는 그 나이의 여성들이 대개 그렇듯 그 좋은 스펙에도 불구하고 그럴듯한 외모 뒤에 시커먼 속셈을 숨긴 남자들에게 쉽게 빠지거나 뻔한 함정들에 걸려들기 쉬웠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한 뒷처리와 비용을 릴리가 대신 감당하는 건 분명 불합리한 일이었어요. 

 

하지만 그게 정말 입국금지를 당할 정도의 문제였을까요? 릴리가 그녀의 능력을 높이 사 친동생처럼 살갑게 대하면서도 끝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견제하려 했던 것은 총명한 나타샤가 가진 큰 잠재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그녀가 니켈광산의 현장상황과 은밀한 사업비밀들까지 속속들이 알게 되면 다른 파트너를 잡아 독립해 나가 오히려 자신의 만만찮은 경쟁자가 될 거라 우려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녀를 조호바루에 묶어둔 것은 릴리로서는 일종의 안전장치이기도 했습니다.

 

 릴리는 기본적으로 자기보다 예쁜 여자가 인도네시아에 들어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내 말에 나타샤가 웃었습니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것은 웃음이 가식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진짜 웃음을 웃습니다. 그래서 무척 매력적이죠. 20대 시절의 내 웃음도 그랬을까요? 릴리가 나타샤를 멀리 두는 것은 난해한 여자들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내가 절대 알 수 없는 어떤 다른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도 살짝 해보았습니다.

 

그날 해질 녘부터 왕구두의 파티장엔 천 명 가량의 내빈들을 위해 뷔페가 마련되었고 자카르타에서 날아온 꽤 유명한 밴드가 공연을 시작한 무대 앞에도 수천 명의 인파가 몰려들어 그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릴리 부부와 나타샤의 가족, 미쯔비시 상사 상해지점을 비롯해 몇몇 거래선에서 왕림해 준 해외 바이어들은 부빠티 공관에 따로 마련된 뷔페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 축제장소로 옮겼는데 분위기가 한창 고조되었을 때 무대 위로 불려 올라간 릴리는 부빠티를 잔뜩 추겨 세우는 즉석 연설을 한 후 노래 한 곡을 기가 막히게 뽑아 관객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습니다. 릴리는 고등학교 시절 밴드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릴리는 기본적으로 못하는 게 없는 여자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