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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켈광산 영적방어작전

니켈광산 영적 방어작전 (15)

beautician 2022. 1. 25. 11:44

 

ep15. 싱가포르

 

아시아 시빌리제이션 뮤지엄이 강 너머로 보이는 UOB 플라자의 강변 광장에서 맞는 싱가폴의 오전은 부산하면서도 싱그럽고 평화롭기까지 합니다. 새벽 비행기로 자카르타를 출발해 싱가폴 창이공항에 내려 이스트웨스트라인(Eastwest Line) 지하철을 타고 일단 타나메라(Tanah Merah)역에서 같은 라인의 시내행 열차로 한 번 갈아탄 후 한 시간 가량 달려 도심 시청역(씨티홀)의 바로 다음인 레플스 플레이스(Raffles Place) 역에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가면 도심 번화가가 나타납니다. UOB 플라자 건물은 거기서 멀지 않습니다.

 

그 건물을 끼고 흐르는 싱가폴리버의 잘 정비된 강변엔 아놀드 슈왈츠네거 닮은 매우 건장한 참새 한 마리가 앉아 있습니다. 청동으로 제작된 그 참새 동상의 제목은 그냥 ‘Bird’, 입니다.  지금은 80대에 접어든 저명한 콜롬비아 조각가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1990년 제작한 것으로 새는 싱가폴의 평화와 긍정의 힘, 번영 등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꼭 그런 의미를 어딘가를 뒤져 찾아 보지 않더라도 도도히 흐르는 강물 위로 4월의 햇살이 부서지는 오전, 종아리 근육 튼실한 커다란 참새의 어딘가 맹한 표정은 누가 봐도 충분히 평화롭습니다.

 

물론 약속장소를 거기로 잡은 건 그리 현명한 결정은 아니었어요. 평화롭다고 해서 꼭 기온마저 청량하다는 뜻은 아니었으니까요. 자카르타보다 적도에 더욱 가까운 싱가폴의 오전은 이미 푹푹 찌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UOB 플라자 건물 안에서 펑펑 쏟아지는 에어컨의 냉기에 오히려 옷깃을 여미며 덜덜 떨고 있는 게 더 나았을까요?

 

 

나타샤가 그 새 동상 앞에 나타난 것은 약속보다 한 시간 가량 늦은 11시가 거의 다 되어서였습니다. 조호바루에서 커즈웨이 라인(Causeway Line)을 타고 싱가폴로 들어온 그녀는 시간을 맞추려 버스를 타지 않고 밴을 임대했는데도 길이 무척 막혔다고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나 역시 약속시간을 대려고 새벽에 집을 나섰죠. 각각 자기 나라를 출발해 제 3국의 특정 장소에서 오전에 약속을 잡아 만나는 것은 언제나 만만찮은 미션입니다.

 

우선 일부터 볼까요?” 

가쁜 숨을 헐떡이던 나타샤는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 채 그렇게 얘기했고 우린 함께 UOB 플라자 1층의 은행 홀로 들어섰습니다. 거기서 우리가 할 일은 릴리의 싱가폴 법인 구좌에서 미화 30만 불을 싱가폴 달러로 찾는 것입니다. 릴리가 받는 대부분의 니켈 오더 신용장을 이 회사가 받고 모든 선적서류도 이 회사 명의로 작성하고 발급되어 네고하게 되니 수출대금 역시 이 회사 싱가폴 구좌로 입금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걸 인출하는 것은 인도네시아로 가져가기 위해서죠. 인도네시아에서의 싱가폴 달러 환율은 미화 못지 않게 경쟁력 있습니다. 더욱이 미화 30만 불은 대개 백불 짜리 지폐 30 뭉치가 되지만 그 환산액인 싱가폴 달러 40만 불은 1,000 불짜리 지폐로 네 덩이밖에 되지 않아 무엇보다도 현금운반에 용이합니다. 물론 미화 1,000 불짜리 지폐도 당연히 존재하지만 그걸 지갑에서 꺼내는 순간 십중팔구 위조지폐라고 의심받을 정도로 동남아 국가에서는 거의 통용되지 않습니다. 반면 싱가폴 달러 1,000 불짜리 지폐는 그리 희소한 편이 아니어서 대체로 문제없이 통용되고 있죠. 싱가폴 달러 1,000 불짜리는 마치 100만 원짜리 자기앞수표 같은 느낌입니다. 그거 100장짜리 한 묶음이면 1억 원인 거죠. 

 

 

사실 송금하면 간단할 일을 굳이 내가 릴리 대신 싱가폴로 날아가야 했던 이유는 릴리가 인터넷 뱅킹이나 다른 원거리 거래방식을 모두 막고 항상 자신의 실제 서명이 들어가야만 하도록 처음부터 은행거래 방식을 설정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싱가폴 법인 운영 전권과 파이낸싱 부분을 나타샤에게 일임하고서도 자금의 인출과 운용에 대해서만은 그녀의 권한을 제한했던 것입니다. 그 얘기는 결국 은행 일을 보려면 매번 릴리가 직접 싱가폴에 날아가거나 그녀의 서명이 담긴 인출신청서 또는 이체신청서를 위임장과 함께 자카르타로부터 대리인이 직접 들고 가거나 우편으로 나타샤에게 보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초창기 한동안은 릴리가 직접 오갔지만 그 후 대부분 내가 그녀의 대리인 자격으로 날아다녔습니다. 여자 몸으로 현금 뭉치를 수억 원 단위로 들고 다니는 것이 위험부담도 적지 않았으니 인상 더러운 남자가 하는 게 훨씬 타당하다는 부분엔 동의하지만 돈 문제에서만큼은 나타샤도 믿지 않던 그녀가 나는 왜 그토록 철썩 같이 믿었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그런 일을 부탁할 다른 마땅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던 거겠죠.

 

그 정도의 현금을 들고 다니는 것이 매우 신경 쓰이는 건 사실이지만 마음만 단단히 먹는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물론 1인당 미화 1만 불 이상은 휴대하여 국경을 넘을 수 없다는 룰은 대부분의 국가들이 차용하고 있는 규정이었습니다. 더욱이 인도네시아 공항세관에서 어떤 예기치 않은 꼬투리를 잡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될 지도 모르고 내가 그 정도 현금을 휴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지면 소매치기나 강도가 따라붙을 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1천 불짜리 지폐 고작 몇 덩이이니 가방이나 몸에 요령 있게 잘 숨겨 사람들 시선을 끌지 않고 세관을 통과해 보겠다는 유혹이 드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게 발각되어 문제가 불거진다면 돈은 물론 그 운반자인 나 자신의 안전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 뻔했습니다. 그래서 아예 싱가폴을 출발할 때부터 현지 세관에 현금반출사실을 신고하고 자카르타에서도 검색대를 지나기 전 공항세관 간이사무실에 자진 신고해 외화반입 신고서류를 작성하는 공식적인 방법을 택했습니다. 어떤 꼬투리든 잡아 돈을 뜯어낼 것이란 당초 우려와 달리 세관원들은 투철한 신고정신을 가진 훌륭한 외국인이라며 오히려 나를 추켜세워 주었습니다. 매번 말입니다. 물론, 그것은 인도네시아에서 국내거래 외환결재 금지조치가 내려지기 훨씬 전인 2014년의 일입니다. 그 조치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일일 수도 있지만 지금도 그런 식으로 수십만 불씩 현금을 휴대하고서 무사히 세관을 통과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305천 불을 찾았어요. 그게 싱달러로는....”

 

우린 은행 홀 뒤편에 마련된 내방객용 의자에서 정산을 마쳤습니다. 은행 일을 볼 때마다 모든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나타샤가 싱가폴까지 나와주는 이유는 인출서류에 그녀의 서명도 꼭 필요했거니와 내가 도착하는 날이 그녀의 월급날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예전엔 그녀의 경비를 릴리가 자카르타에서 송금해 주었지만 니켈수출이 시작된 후부터는 싱가폴에서 현금으로 지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송금이나 이체라는 좋은 제도를 놔두고 모든 일을 현금으로 처리하려는 릴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자카르타에서 법인구좌를 통해 공식적으로 돈을 받아서는 아무 지출증빙자료도 없이 관료들이나 지역유지들에게 쇼핑백에 담아주는 현금을 회계장부에서 공식지출로 떨어낼 방법이 없을 것이란 부분은 이해하지만 릴리는 그 외의 것들조차 대부분 현금으로 처리했으므로 자신이 소유한 법인들의 회계처리를 앞으로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외국인들에 비해 현지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비공식적인 방법들이 다양한 방면에서 훨씬 더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명료한 숫자로 처리되어야 하는 재무회계 부분에서조차 매번 기적을 일으킬 수는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릴리 언니는 뭐라고 해요?”

그동안 자기랑 얘기하던 거 아니었어? 제련소라는 게 한 두 푼 들어가는 문제가 아닌데 걘 요즘 누구랑 그런 문제를 협의하는 거야?”

난 릴리 언니가 미스터 배나 루벤이랑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광물원석 수출금지조치가 산업관계자 모두의 우려 속에 2014 1 12일 발효되면서 모롬보 만에서 진행 중이던 니켈 수출은 전격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제련소를 갖춘 대단위 국영기업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중소업체들을 고사시킬, 그래서 발효 전에 모종의 타협안이 반드시 나올 것이라 예상했던 광물원석 수출금지조치는 업계에 거대한 파장을 몰고 왔습니다. 수출업체들로부터 벌크선 한 척에 수십만 불씩 수출세를 챙기던 지방정부의 수입원을 제한해 지방정부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라는 분석과 대통령 선거가 임박한 상황에 누군가의 선거자금을 고갈시키려는 정책이라는 음모론까지 신문지면과 TV 화면을 요란하게 장식하면서 시행된 이 조치로 당시 승승장구하던 릴리의 사업에도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우린 모두 거기서 무조건 멈춰야 했습니다. 선적을 완료하지 못한 벌크선들은 수출금지조치가 발효되면서 모롬보 만에 발이 묶여 막대한 디머리지(demurrage-체선료)가 발생했고 타협안이 나올 것이라 낙관하다가 계약불이행의 위기를 맞은 업체들은 큰 손해를 입으며 존폐의 기로에 서야 했습니다.

 

 

니켈수출업자들이 수출행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자체 명의의 스멜터, 즉  자연상태의 2% 전후인 니켈 순도를 해당금수조치 법령이 수출을 허용하는 10~25% 수준까지 처리할 제련소를 지어야만 했습니다. 관련 제련소를 이미 착공했거나 최소한 건설계획을 제출한 업체들에게는 심사를 거쳐 2017년까지 일정 수출세를 부과하는 조건으로 원석수출이 허용되었지만 인도네시아에서 큰 이권이 걸린 사업의 심사또는 검토라는 단어는 치열한 뒷거래와 막대한 뒷돈을 의미하는 것이기 쉽습니다.

 

설령 바이어들을 설득해 투자를 받아 제련소 건설에 착수한다 해도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광산들은 대부분 오지에 위치했으므로 대형 제티나 항만 인근에 공장부지를 수배하고 제반 허가를 받아내는 지난한 수속절차보다 더 큰 과제는 가뜩이나 전력사정이 좋지 않은 지방도서 오지에서 그 제련소를 가동시킬 대규모 전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즉 제련소를 지으려면 그 몇 배의 비용이 들어가는 발전소 건설부터 고려해야 했습니다. 개별 광산사업자의 제련소를 가동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전력공사(PLN)가 알아서 발전소를 지어줄 리 없었으니까요. 정부의 경찰력만으로는 치안유지를 감당할 수 없으니 개인과 개별기업들이 알아서 집과 공장에 경비원들을 고용해 배치해야 하고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수단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아 개개인들이 알아서 차량이나 오토바이를 사서 타고 다녀야 하는 것처럼 전력 역시 국가에서 공급해 주지 않으면 스스로 조달하거나 애당초 그 사업에 진입할 수 없는 것이 인도네시아의 사업환경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럴 능력도 없는 조무래기 개인회사들을 모두 꺼져라... 2014 1월의 광물원석 수출금지조치는 그런 의미를 포괄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지출만 있으면 돈이 바닥나는 건 금방이에요. 사방에서 압박도 심하고요.”

릴리도 다른 방법들을 찾는 중이지만 자카르타나 끈다리 사정도 만만찮은 모양이야. 다들 혈안이 되어서 날뛰는 중이니...”

 

은행 일을 마친 우린 UOB 플라자에서 가까운 강변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러나 얘기의 주제는 맛있는 점심식사를 즐기면서 나누기엔 너무 무거워지고 있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