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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믿음교회 신원에벤에셀 까라왕 공장 구내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렸던 신길에벤에셀교회가 믿음교회의 전신으로 살라띠가에서 사역하던 백광현 선교사가 목회를 맡았다. 이후 교회는 1996년 7월 7일 남부 자카르타의 맘빵으로 옮겨와 창립예배를 드렸고 2000년에 끌라빠가딩으로 다시 장소를 옮겼다. 이후 백광현 선교사가 귀국함에 따라 1989년부터 인도네시아로 파송받아 살라띠가에서 현지인 선교에 전념하며 살라띠가 신학교(STTN – Sekolah Tinggi Teologia Nusantara)를 설립한 이재정 선교사를 2대 담임목사로 청빙했다. 맘빵에서 끌라빠가딩으로 옮겨가 끌라빠 가딩 머나라 콘도미니엄 근처 엘찝다 건물에서 예배 드리다, 다시 블르버드 길 맨 끝 카리스마 건물에 세 들었던 믿음교회는 오랜 기도 끝에..
아무리 봐도 사우나의자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끌라빠가딩 몰오브인도네시아 복도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최근 고급화되면서 입점율이 높아지고 있는 모이 운영진은 무슨 생각을 한 걸까요? 그것도 1층 메인홀로 연결되는 통로에 설치된 이 의자들은, 그러나 오가는 이들에게 ..
며칠째 밤새 비가 오면서 개천들이 넘칠 듯 말 듯 하더니 1월 17일 새벽 아침 3시부터 오전 9시경까지 폭우가 쏟아지면서 자카르타 전역이 물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이 정도 홍수는 대략 5-6년 만에 처음인 것 같네요. 차를 끌고 나가다가 출근 실패한 후 이번엔 자전거를 끌고 끌라빠가딩 ..
자카르타의 홍수를 처음 겪었던 것은 1996년 초였습니다. 짜꿍(Cakung) KBN 공단은 완전히 침수되어 정전에 감전사고까지 일어 났지만 뚝심좋은 한국공장은 그래도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나도 본넷 위까지 밀려 오는 파도를 해치며 공장까지 갔지만 어떻게 차를 댈 방법도 내릴 방법도 없었..
코린도 빌딩 5층 시절 (1999~2001) 사무실이 삼각형이었다는 게 가장 큰 특징 여직원들은 모두 한화 출신. 맨앞 까만 아가씨가 에피(Evi). 출산 전의 에피는 미스 인도네시아에 나가도 될 정도로 미인이었습니다. 릴리. 이때까지만 해도 철없던 이 아가씨한테 내가 월급을 줬습니다. 이 당시에..
끌라빠 가딩 몰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자카르타의 북부 중심 끌라빠 가딩(Kelapa Gading)의 유일한 몰이었습니다. 최근 끌라빠 가딩이 개발과 발전을 거듭하면서 아르타 가딩 몰(Mall Artha Gading), 스포츠 몰(Sprot Mall), KTC (흔히 마타하리 또는 하이퍼마트로 알려져 있지만) 등 여러 몰들이 들어섰고 바로 최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