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매일의 삶

사무실 변천사

beautician 2014. 7. 6. 22:44



코린도 빌딩 5층 시절 (1999~2001)

사무실이 삼각형이었다는 게 가장 큰 특징






여직원들은 모두 한화 출신.  맨앞 까만 아가씨가 에피(Evi). 출산 전의 에피는 미스 인도네시아에 나가도 될 정도로 미인이었습니다.


릴리. 이때까지만 해도 철없던 이 아가씨한테 내가 월급을 줬습니다.


















이 당시에도 릴리는 상당히 카리즈마 있었습니다.



무스티카라투 빌딩 5층 시절 (2001~2002)

코린도건물에서 빤쪼란 사거리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면 있는 무스티카라투 건물. 당시엔 아직 의류가 주력사업이었는데 이 미용전문 회사의 사옥에 입주한 것은 나중에 우리도 미용사업에 투신하게 되리라는 전조였을까요?





내 방.



현관



내 방 바로 앞의 쌤플실 겸 상당실


탕비실




내 방보다 컸던 릴리 방


에피가 떠난 후 직원들을 총괄했던 이폰(Ivon)은 ASMI 비서학교를 졸업한 재원. 할머니가 화란인이어서 푸른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직원들이 근무하는 메인 홀

이 당시 우린 Flooring wood와 일부 농산물을 취급하기 시작했습니다.






문간에 있던 또 다른 상담실

그리고 쌤플실 안에 따로 마련되었던 작은 창고






끌라빠가딩 루꼬 사무실 시절 (2008~2012)

- 중간에 시간이 붕 뜨는 이유는 우리가 2002년도에 파산했기 때문이었죠.  그 파산의 나락에서 기어나와 비로소 다시 갖게 된 사무실.

이때 릴리는 이미 광산사업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난 미용기기 수입판매를 궤도에 올린 상태였고요.







릴리의 카리즈마가 돋보입니다.

아직도 귀엽기까지 하고요.


회사설립허가를 내기 위해 상공부에서 실사나온 공무원. 맨 앞에 더벅머리를 한 메이가 이 시점부터 등장하고 그 뒤엔 훗날 사고를 크게 치고 도망하게 되는 에도도 이 끌라빠가딩 사무실의 초창기멤버로 얼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저 뒤에서 우리 직원인 척 하고 있는 분은 우리 허가를 대행해 주던 브로커의 꼬심(Kosim) 아저씨입니다. 그러나 2010년인가 2011년경 지병인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우리 사무실은 2층에 있었고 이 사진의 리셉션 데스크는 이 4층짜리 루꼬의 주인 소유인 1층 로비입니다. 하지만 일단 우리 것인척 사진촬영.


Ruko Plaza Pacific. 무궁화수퍼의 끌라빠가딩 지점이 들어와 있고 이 당시에는 북부자카르타 이민국도 이 컴플렉스 안에 입주해 있었습니다.




삼푸르나빌딩 사무실로 이전 (Sampoerna Strategic Sqaure, South Tower, 30th Floor, 2012~  )

- 자카르타에 흩어져 있던 사무실을 시내 삼푸르나빌딩으로 합체. 하지만 실제로는 전반적인 사업에서 릴리의 광산사업 비중이 절대적으로 커지면서 술라웨시에도 Kendari 사무실과 광산 베이스캠프 등을 운영하고 Banjarmasin, Buton, Solong 등에 줄기차게 날아다니기 시작하면서 이 시내 serviced office는 적잖은 돈을 들여  임대하고서도 자카르타에서는 대체로 제택근무를 하거나 교통이 용이한 호텔을 빌려 사무실로 쓰다가 시내 사무실은 주로 외부손님 미팅용으로 사용.

















1층 로비


LG(Lower Ground 층의 벽화들)


우리 방은 아주 작습니다.

하지만 전경이 죽여요


자카르타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죠.


탕비실

이런 미팅룸이 대충 4-5개 있고

30층 reception lobby



끈다리 출장사무실 (Sulawesi Tenggara, 2012~   )

- Kendari시 외곽의 신축 루꼬 하나를 사서 1층은 사무실, 2층은 사무실과 출장자 숙소로 꾸몄습니다.


2012~2013년 사이에 Kendari엔 이런 형태의 루꼬들이 많이 지어졌어요. 현장에 들어가기 위해 저런 하이룩스 반트럭을 여럿 구매했고요.

1층 사무실 복도. 왼쪽 첫번째 방이 사무실, 두번째 방이 미팅룸.

1층 입구 공간. 원석분류작업을 하거나 필요하면 책상을 들여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포투너 밴이 한대 들어오면 딱 맞는 사이즈입니다.

복도 끝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2층에 올라오면 왼쪽으로 이런 공간이 있습니다. 일이 바빠지면 여기 사무실공간을 만들거나 우리 현장직원들의 임시 숙소를 만들기도 합니다. 저 안쪽의 흰색 문 안쪽엔 제대로 된 침대들과 에어컨들이 장착된 근사한 침실이 마련되어 있어요.



안타깝게도 1996년도 하반기, 한화를 퇴직한 후 자카르타에 돌아와 처음 사무실을 열었던 Jl. Tipar Cakung의 PT. Gamilang 공장 안 뒷쪽 구속에 있었던 첫 사무실이나 1998년 자카르타 폭동이 일어난 후 한동안 내 숙소로 옮겨왔던 Cakung 지역 Taman Modern 주택단지의 재택 사무실 사진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2002년 사업이 망가진 후 릴리와 내가 광산과 미용으로 뿔뿔이 흩어지기 전에 뿔로마스(Pulo Mas)의 수퍼린도(Superindo) 수퍼마켓 2층에 택견전수관을 열고 그 부속 사무실을 열었던 시절의 사진도 전혀 남지 않았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땐 전혀 사진을 찍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던 시절이었죠. 그런 후 빠룽의 봉제공장, 골프샵, 디자인회사 등 남의 회사를 관리해 주다가 2008년 끌라빠가딩에 사무실을 얻기 직전 2년 정도는 길바닥에서 일한 적도 있었어요.


우리 사무실은 앞으로 어떻게 더 진화해 나갈지 알 수 없습니다.

이렇게 그간 거쳐왔던 사무실들의 사진을 게재하면서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예전 순간들이 모두 역사가 되고 만다는 것, 그래서 가능한한 많은 자료를 남겨 두었어야 한다는 후회의 마음이 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2014. 7.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