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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한인교회

끌라빠가딩 믿음교회

beautician 2020. 10. 28. 11:39

믿음교회

 

조광용 담임목사

 

신원에벤에셀 까라왕 공장 구내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렸던 신길에벤에셀교회가 믿음교회의 전신으로 살라띠가에서 사역하던 백광현 선교사가 목회를 맡았다. 이후 교회는 199677일 남부 자카르타의 맘빵으로 옮겨와 창립예배를 드렸고 2000년에 끌라빠가딩으로 다시 장소를 옮겼다.

 

이후 백광현 선교사가 귀국함에 따라 1989년부터 인도네시아로 파송받아 살라띠가에서 현지인 선교에 전념하며 살라띠가 신학교(STTN – Sekolah Tinggi Teologia Nusantara)를 설립한 이재정 선교사를 2대 담임목사로 청빙했다.

 

맘빵에서 끌라빠가딩으로 옮겨가 끌라빠 가딩 머나라 콘도미니엄 근처 엘찝다 건물에서 예배 드리다, 다시 블르버드 길 맨 끝 카리스마 건물에 세 들었던 믿음교회는 오랜 기도 끝에 현재 위치(Blok A2 No., Jl. Bgr. Boulevard No.19, Klp. Gading Barat, Jakarta 14240)의 루꼬 3개를 매입해 비로서 자체 성전을 확보했다. 교세는 130-140명 규모였다가, 현지 경제상황이 출렁이며 한인사회 규모가 줄어들어 지금은 100-110명 정도가 모이고 있다.

 

자카르타 믿음교회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교단 소속이며 이재정 목사는 그간 인도네시아 PGI 교단을 통해 목회자 비자(Visa Rohani)를 협조받았고 현재는 제프리 신학교의 도움을 받고 있다.

 

믿음교회는 교민영세기업을 지원하는 디아스포라 교회가 되어 고국을 떠나 외롭고 힘들어하는 교민들의 쉼터가 되려 노력하면서 불법체류자 한국송환 지원, 무연고 교민사망자 장례식 주관 등 소외된 한인들을 위해 더욱 낮은 곳으로 임하며 끌라빠가딩 동포사회에 기여해 왔다.

 

20089월 시작했던 SCA 유치원은 20116월 운영을 접었지만 교회는 언어공부, 설장구, 미술, 크레도 중창단, 기악, 요리 자녀교육 등으로 교민들을 돕는 문화사역을 계속하고 있다.

 

믿음교회의 선교여행과 수련회에는 일종의 뚝심이 엿보이는데 20083월 살라띠가 신학교, 2010년 깔리만탄의 발릭빠빤(이성헌 선교사 선교지), 2011년 마나도, 2012~2015년의 4년간은 아쩨(전재형 선교사 선교지) 등 굳이 격오지만 찾아 누빈 것은 선교사 출신 목회자의 마음가짐을 판박이로 닮은 듯하다. 아쩨에서 활동하는 예수전도단 선교사 지원과 믿음교회가 직접 개척한 반둥 현지 교회를 돕는 선교활동을 할 때엔 지역의 반발을 겪었지만 목회자와 성도들이 합심해 어려움을 이겨냈다.

 

 

예배실 (믿음교회 제공)

 

살라띠가 등에서 두 번 교회개척을 해본 이재정 목사는 2020년 초 믿음교회 담임을 사임하고 현지인 선교사역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보다 젊은 세대가 교민사회의 주류를 채워가고 교민사업도 다양해지면서 새 시대에 맞는 차세대 목회자로서 11명의 후보들 중 조광용 목사(48)가 선발되어 후임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20204월 초 코로나-19가 한창 창궐하던 당시 이의덕 부목사가 숙소에서 행해진 신속검사에서 홀로 양성판정을 받아, 감염자 격리시설로 급조된 끄마요란 아시안게임 선수촌 아파트의 열악한 환경 속에 닷 새간 방치되듯 격리되어 고초를 겪다가 유전자증폭검사 최종 음성판정을 받아 가까스로 그곳을 벗어난 사건은 가장 낮은 곳에서 끌라빠가딩 교민들의 애환을 온몸으로 함께 하는 믿음교회 모습의 단편이 아닌가 싶다

 

이재정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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