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적도에 부는 바람

나락의 밑바닥

beautician 2013. 12. 2. 03:30

1.

내 차의 좌우를 쌩쌩 지나치는 오토바이들을 볼 때마다 그들이 그렇게나 부럽던 적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기름이 떨어져도 저들은 한화 500원어치만 주유하면 곧 다음 목적지를 향해 내달릴 수 있지만 내 차의 기름이 떨어지면 무슨 돈으로 기름을 채워야 할 지 아무런 기약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파산의 나락, 그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리던 2003.

 

우리에게 찬란한 미래를 가져다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술라웨시에서의 목재사업은 오히려 우리를 파산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었습니다. 내 파트너 릴리의 큰 오빠 아미르(Amir)는 당시 우리의 벌목장과 목재소가 있던 아세라(Asera)지역의 기세등등한 짜맛(Camat)이었는데 한국으로 치면 면장과 군수 사이 어딘가 쯤 되는 직급의 관리였습니다. 뒤만 봐주면 될 그가 직접 현장관리를 하겠다고 나선 것부터 문제였지만 외국인인 나나 나이 어린 릴리가 산골짝 제재소와 정글 속 벌목장을 직접 운영하기에는 경험과 연륜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는 사이 아미르의 탐욕이 모든 문제들을 불러 일으키며 급기야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기에 이릅니다.

 

운영비를 핑계로 밑 빠진 독처럼 끝없이 돈을 집어삼키던 아미르는 우리가 자카르타에서 파견한 화교 감독관을 정글 속 어딘가에 감금시키고는 현지 모든 사업의 소유권 이양을 감독관의 몸값으로 요구해 왔습니다. 릴리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3개월도 안된 시점이었습니다. 강력한 가부장이었던 그녀의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그런 짓은 꿈도 꾸지 못했겠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가문의 가장으로 등극한 아미르는 아버지의 모든 유산은 물론 가족, 형제들의 재산들마저 냉큼 집어삼키기에 급급했습니다. 인질범을 잡아도 시원치 않을 공무원으로서 탈레반처럼 터무니없는 인질극을 벌이는 아미르는 그런 말종의 인간이었고 그런 게 통하는 말도 안되는 무법천지가 인도네시아였습니다.

 

당시 우린, 내 목숨이라면 몰라도 남의 목숨까지 우리 사업에 걸 만큼 독하지 못했으므로 타협점을 찾아 원만히 해결하려 했지만 탐욕에 눈이 먼 사람에게 돈 외에 그 어떤 말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우린 공증서류와 인질을 맞바꿔야만 했습니다. 술라웨시에서의 사업에 난 전 재산은 물론 빚까지 끌어다 퍼부었지만 그렇게 소유권을 뺏기면서 결국 단 한 푼도 건지지 못했습니다. 나도 눈이 뒤집히지 않을 리 없었지만 수년간 사업상 단짝이 되어 손발을 맞춰왔던 릴리마저 피를 흘리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술라웨시 사업과 관련된 모든 일들은 릴리를 통해 진행되었고 자금도 릴리를 통해 아미르에게 흘러 들어갔었죠. 게다가 아미르는 릴리의 큰오빠였으니 누가 봐도 남매가 작당하고 한국인 투자자를 벗겨먹은 사건으로 보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난 추호의 의심도 없이 릴리를 철저히 믿었고 그래서 탐욕으로 스스로를 불사르는 아미르에게 반격을 하기 위해 릴리와 그녀의 다른 형제들마저 모두 싸잡아 적으로 삼아 전쟁을 치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피눈물을 흘리며 양보하려 마음먹는 순간 파산은 이미 우리 문 앞에 도달해 있었습니다.

 

호흡을 짓누르는 빚더미.

사업을 위해 끌어온 빚을 단 한 푼도 갚을 수 없는 상황에서 당연히 모든 카드가 연체되었고 사무실 전화도, 핸드폰도, 전기도, 모든 것이 끊어지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였죠. 곧 사무실을 비워야 하는 시점도 도래했습니다.

 

그 동안 우리가 신세 많이 졌는데 이번엔 우리 사무실에 잠깐 와 있지 그래?”

 

코린도 건물에서 확장이전 해 온지 불과 2년차. 빤쪼란(Pancoran) 사거리가 내려다 보이는 무스티카라투(Mustika Ratu) 건물 5층의 우리 사무실 반을 잘라 학군선배와 고교후배가 동업하고 있던 회사에 몇 개월간 무상으로 빌려주고 있던 중 맞은 파산이었습니다. 역시 오랫동안 현지생활의 고충을 온몸으로 겪으며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던 선배는 그때 3층의 작은 사무실을 따로 계약하면서 이번엔 거꾸로 내게 사무실공간을 나누어 주겠다며 위로했지만 그 옆에서 탐탁지 않은 표정을 한 후배가 빈정거리며 투덜대고 있었습니다. 그를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그런 반응도 인지상정이었으니까요.

 

자카르타의 몇 안되는 고교 후배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자카르타에 처음 올 때부터 숙소준비와 자녀들의 학교전입 등을 도우며 가능한 모든 배려를 아끼지 않았고 사무실과 집기까지 무상으로 빌려 주면서 몇 개월간 하루도 빠짐없이 내 차로 출퇴근 시켜 주었는데 내게 파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자 갑자기 태도를 바꾼 그 후배는 알 수 없는 적개심으로 날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그것은 적개심이라기보단 두려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곤경에 처한 이웃을, 도와야 할 대상이 아니라 최대한 멀리해야 할 치명적 전염병 보균자처럼 여기기도 했으니까요. 하물며 하루가 멀다 하고 빚쟁이들이 찾아와 고성의 실랑이를 벌이는 갓 파산한 선배는 오죽했을까요?

 

. 이 와중에 글 쓰는 것도 사치 아니요? 돈 벌어도 시원치 않을 시간에 글이나 끄적거리면 뭐가 나와요?”

 

당시 인터넷 상의 한 인도네시아 커뮤니티에 내가 올리던 글을 본 그 후배가 한 말이었습니다. 난 날카로운 송곳으로 정곡을 찔린 듯 그의 말에 딱히 뭐라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막막하던 시절. 글 쓰는 것만이 나를 한없이 짓눌러오는 고민과 스트레스를 잠시라도 잊을 수 있는 방편이었지만, 후배의 말대로 그건 분명 사치였습니다. 돈 벌 길을 찾지 못하면 죽을 방법이라도 찾아야 했던 시절, 후배의 그 말을 들은 후 난 글을 써보려는 노력을 더 이상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후 그보다 더한 얘기가 들려왔습니다.

 

그 선배, 알고 보니 사기꾼이나 다름없어. 성공한 사업가처럼 행세하더니 결국 다 망해 빌빌거리면서 내 사무실에 자리나 하나 얻어 턱 차지해 버리고..., 우리 파일 근처를 자꾸 얼씬거리는데 뭘 빼가려는지…, 그 릴리라는 여자 파트너는 아무래도 현지처인 것 같고…”

 

그들의 작은 3층 사무실에 내 자리를 마련해 준 선배의 배려는 고마웠지만 굳이 내 주변사람들을 따로 만나 망해버린 주제에 은혜를 베푼 사람들 사업기밀을 빼내려는 파렴치한이라고 험담하며 나를 몰아 세워 모욕하던 그 후배의 행동을 짐짓 모른 척 하고 있기엔 난 당시 마지막 일말의 자존심을 아직 완전히 죽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 사무실에 합류한 지 채 한 달도 안돼 난 쫓겨나듯 길바닥으로 나서야 했습니다. 아마도 그는 세상사람들을 가진 자와 못가진 자로 양분하고 있었던 모양이고 파산해 버린 나는 그에게 있어 이미 효용가치를 다한 쓰레기이자 장애물일 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해외에서 사업하다가 처참한 실패를 맞게 되는 사람들이 파산 초창기에 겪는 공통된 경험인지도 모릅니다.

 

 

2.

차가 왜 그래요?”

 

뿔로마스(Pulo Mas) 수퍼린도(Superindo) 슈퍼마켓 앞에 세워둔 차 옆에서 난감해 하던 내게 다가온 릴리가 그렇게 물어 왔습니다. 내 페로자(Feroza) 찝은 이제 그 수명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파워 윈도우가 작동하지 않아 내린 차창을 도무지 올려 닫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모터가 죽은 것이죠. 차창을 그렇게 열어 둔 채 놔둘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난감했던 이유는 그 차창을 고칠 20만 루피아, 고작 한화 2만원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때가 2004 2. 파산의 후유증이 아직도 태풍처럼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빚독촉에 시달리면서도 파산 직후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여력과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수백 가지 아이템들을 연구하고 시도해 보았습니다. 나중에 나와 내 가족들을 구원해 주는 미용기기도 그때 그 아이템들 중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장 우리의 구세주가 되었던 것은 택견전수관이었어요 대한택견협회의 경기도지부에서 두 명의 이사가 자카르타에 전수관을 내기로 했고 그 중 한 명의 이사와 친분이 있던 내가 현지에서 전수관 설립과 운영업무를 책임지기로 했던 것이죠.

 

한국에서 치우패 출신 택견고수들로 구성된 시연단을 이끌고 자카르타를 순회하고 당시 아직도 안쫄(Ancol)에 있던 간디스쿨에서 학생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택견전수관은 개관 한 달 만에 인도네시아인들을 포함해 유료회원 28명을 기록했습니다. 사전 시뮬레이션을 통해 계산해 보았던 손익분깃점은 유료회원 60명선이었으므로 한국에서 파견되어 온 27살의 택견선생도 흥분할 정도로 첫 달 치고는 예상을 넘는 좋은 결과였고 이 상태대로라면 손익분깃점 돌파는 물론 장차 인도네시아에 수십 개의 전수관 프랜차이즈를 내는 것도 단지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장미빛 미래가 살짝 엿보이고 있었죠. 그러나 당장은 전수관 구석에 파산 이후 처음으로 작은 사무실 공간이 마련되었고 최소한의 고정수입도 보장될 것이라는 의미가 더욱 컸습니다.

 

그러나 어떤 문제 때문인지  한국의 두 이사는 아직 이익이 실현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누구도 운영경비를 보내 오지 않았고 우린 전수관 운영을 통해 돈을 벌기는커녕 개관 초기의 운영비를 맞추기 위해 돈을 구하려 다녀야 했습니다. 인내심 많았던 택견선생도 한국에서 약속한 월급을 4개월째 받지 못하자 결국 머리끝까지 화를 내며 한국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맨땅에 헤딩하며 몸으로 때우는 데 이력이 난 나로서는 경리사원이 나가도 내가 경리일을 하면 보면 되고 운전사가 없어도 내가 운전하면 되는 거였지만 택견선생이 돌아가 버리자 당장 대처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내가 택견을 가르칠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아까운 시간이 그렇게 모두 허비되어 버렸고 결국 우리 손엔 아무 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시한폭탄의 타이머는 이미 ‘0’에 가까워져 있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살던 아파트의 임대기간도 거의 끝나가는 중이었고 새 학기가 시작된 후 이미 두 달이나 밀린 등록금을 내지 못하면 내 두 아이들은 중간고사도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택견전수관에 전력을 쏟던 그 시간에 뭔가 보다 그럴싸한 다른 일을 모색했어야 했다며 후회막급 했지만 뒤늦게 후회한들 부질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때 내가 여자였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최악의 경우가 왔을 때 영화 레미제라블의 코제트 엄마처럼 여자라면 절박한 상황에서 몸이라도 팔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러나 난 팔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돈이 될 만한 것들은 이미 모두 팔아 빚을 갚는데 털어 부은 상태였어요. 오직 하나 있다면 폐차가 되어가고 있는 페로자 찝 한 대뿐. 이 차마저 팔아 버리면 교통환경이 열악한 인도네시아에서 우린 돈을 벌러 다닐 길이 당장 막막해져 버립니다. 그런데 이제 그 페로자의 창문마저 고장나 닫히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갑 줘 봐요.”

 

릴리가 내민 손에 내 지갑을 쥐어 주자 그녀는 자기 지갑도 꺼내 두 지갑에서 나온 돈을 모두 합쳤습니다. 35만 루피아 정도가 되었어요. 그 돈이면 대충 창문을 고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당시 우린 늘 그렇게 했습니다. 서로 한없이 쪼들리던 시절, 우린 만날 때마다 그렇게 두 지갑의 돈을 합쳐 다시 똑같이 둘로 나누었죠.

 

사무실 문을 잠그고 내려온 릴리와 함께 우린 정비소로 향했습니다. 택견전수관이 문을 닫은 후 우리에게 남은 것은 아직 임대기간이 남아있던 그 전수관 공간뿐이었죠. 그곳에 매일 출근해 우리가 살아갈 활로를 필사적으로 찾으며 한편으로는 기적을 기다리고 있었던 같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냉정하기만 했고 그곳의 임대기간 역시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창문을 고치러 가면서도 주차문제만 아니라면 차창이 열려 있는 게 차라리 나을 거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주유할 돈도 없으니 에어컨 프레온도 채우지 못했습니다. 그런 상태로 바람이라도 쐬자며 에어컨을 억지로 돌린 탓에 컴프레셔가 완전히 고장나 버렸던 것입니다.

 

당시의 심정이란 당장이라도 질식해 버릴 듯 답답하기만 했고 비록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지만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나도 모르게 북받쳐 오르는 흐느낌이 새어 나와 버릴 것처럼 모멸감과 열등감이 심장 근처 어딘가에서 맹렬히 소용돌이 치고 있었습니다. 나의 침울한 표정을 살피며 릴리가 뭔가 기운을 북돋을 만한 말을 애써 걸어왔지만 그녀의 상황도 나와 별반 다를 바 없었으므로 그런 노력이 오히려 안쓰럽기만 했습니다.

 

술라웨시 사태 이후 릴리는 모든 사람에게 의심을 받았습니다. 명색이 친오빠라는 사람이 막내 여동생을 그런 식으로 거덜 냈다는 사실을 아무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내가 오래 전 릴리에게 소개해 결국 결혼까지 이르게 된 벨기에인 남편 역시 처음엔 릴리가 오빠와 짜고 나에게 사기를 친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망해버린 술라웨시 사업을 위해 릴리가 직접 끌어온 돈도 적지 않았고 그 돈이 오빠의 뱃속으로 모두 사라진 후 릴리는 나 못지 않게 빚쟁이들에게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험상궂은 콜렉터들이 일주일이 멀다 하고 릴리가 남편과 사는 빠사데니아(Pasadenia) 아파트를 찾아왔는데 그때마다 부부싸움이 벌어졌어요.  릴리가 일 때문에 남편에게서 빌린 돈도 적지 않았으므로 우리의 파산은 그녀의 결혼생활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벨기에 굴지의 대기업 현지법인 CFO답게 돈 문제에 철저했던 남편 루벤은 지리멸렬해 버린 우리 술라웨시 사업과 도무지 이치에 닿지 않는 그 상황들을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투쟁하듯 농성하듯 루벤과의 곤혹스러운 결혼생활을 이어가던 릴리의 고단함을 난 대충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단 한 푼도 벌지 못하고 있던 시절, 그녀는 용처를 매번 따지는 남편에게서 받은 빡빡한 생활비의 일부를 다시 쪼개 사무실 경비에 보탰고 그래서 늘 돈이 부족하던 릴리가 그날 지갑에 가지고 있던 돈은 손목시계를 팔아 집 전화세를 내고 남은 돈이라고 했습니다. 그녀의 텅 빈 팔목이 그날 따라 무척이나 처연해 보였습니다.

 

나 역시 모든 소유를 술라웨시에 쏟아 붓고서 그것도 모자라 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지인들에게 빌린 거액의 돈이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아미르의 손을 거쳐 바닥나면서 채권자들에게 비슷한 의심을 받고 있던 터였습니다. 아무리 차근차근 설명하며 이해를 구해도 그들은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들을 탓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나 스스로도 아직 제대로 납득할 수 없는 그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도대체 무슨 수로 믿음이 가도록 설명할 수 있었겠어요? 당시 내 아내조차 그 자초지종을 믿지도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그 사건을 온 몸으로 함께 겪고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하늘 아래 나와 릴리 오직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아무 것도 남지 않은 택견전수관 사무실에 매일 출근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만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으므로 우리만이 서로를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었던 것이죠. 동업이 깨지면 대개 동업자들끼리는 원수가 된다는 일반적인 원칙은 우리들을 비껴나가고 있는 듯 했습니다.

 

 

3.

거지가 되도 이런 SMS는 계속 들어 오네요?”

 

이미 거리가 어둑어둑해진 시간, 정비소에서 파워윈도우를 수동식으로 교체하는 것을 기다리던 중 내 핸드폰에 메시지가 들어오자 릴리가 장난을 걸어 왔습니다. 저 창문수리비를 내고 나면 우리가 나누어 가질 돈은 일인당 5만 루피아도 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내내 풀 죽어 지낼 수도 없는 일이었죠. 나름대로 다시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 들어온 문자는 매일같이 들어오던 스미싱 메시지였어요.

 

귀하는 X X일에 있었던 사텔린도 경품추첨에서 3천만 루피아의 상금에 당첨되셨습니다. 상금을 인수하시려면 X X일 이전까지 전화번호 0815-xxxx-xxxx에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날만 해도 이미 세 번씩이나 지웠던 똑 같은 메시지였어요. 세상에 우연이나 기적이 없다는 사실을 따갑도록 느끼던 그 시절에 한화 3백만원을 공짜로 준다는 내용에 난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 내용을 지우려 하는데 릴리가 황급히 가로막았습니다.

 

혹시 알아요? 한번 전화해 봐요? 정말 3천만 루피아 받는 게 맞으면 나 반만 줘요? ?”

택도 없는 얘기야. 난 평생 뭐 하나 공짜로 당첨된 역사가 없어.”

한 번 전화해 보라니까요? 손해 나봐야 겨우 전화 한 통화 값인데…, 에이, 이리 줘 봐요.”

 

내 전화기를 빼앗아 전화를 걸 때까지만 해도 그녀의 목소리에는 다분히 장난기가 서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화를 끊을 때 그 장난기는 흥분으로 바뀌어 있었어요.

 

내 구좌번호 알려 줬더니 돈을 바로 은행에 입금시켰대요. 지금 곧장 ATM 가서 돈 찾으라고 하던데요? 빨리 가 봐요! 빨리!!”

 

그럴 리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자꾸 보채는 릴리는 매우 들떠 있었고 나 역시 은행잔고 한번 확인하는 게 뭐 그리 대수겠냐고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차창이 다 고쳐지자 우린 서둘러 가까운 BCA 은행을 향했습니다. 릴리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렸어요. 이건 사기이고 협잡인 게 분명한데 금전적 손해가 나지 않더라도 손끝 하나 사기꾼이 원하는 데로 움직여 준다는 것 자체가 나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 될 것 같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처럼 들뜬 릴리의 기분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BCA 은행 앞에 차를 대자 릴리는 재빨리 ATM 앞으로 달려가 자기 카드로 잔액조회를 해 보더니 다시 전화기를 꺼내 들었습니다.

 

입금이 안된 것 같은데…., 다시 한번 확인해 주실래요?”

 

잠시 전화기 너머 상대방의 말을 듣던 릴리는 고개를 갸우뚱 하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뭐래?”

분명히 송금을 했대요. 혹시 ATM 기계나 BCA 전산망에 문제가 있을지 모르니 테스트를 해 보래요.”

테스트? 어떻게?”

저쪽 핸드폰 번호에 뿔사(Pulsa)를 넣어 보래요. 뿔사가 들어가면 전상망에 이상이 없으니 돈도 바로 들어올 거라면서…”

 

뿔사는 선불제로 충전하는 통화요금입니다. 그렇다면 이건 누가 봐도 핸드폰 뿔사를 공짜로 받아내려는 파렴치한 사기였어요. 고작 그런 얘기를 들으려고 걸었던 몇 번의 핸드폰 통화비가 아까웠습니다. 그런데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릴리가 고집을 부립니다.

 

혹시 알아요? 10만 루피아 보내고서 정말 3천만 루피아가 들어올지?”

그럴 리가 없잖아? 이건 사기야. 게다가 우린 지금 그 10만 루피아도 없잖아?”

내 통장에 10만 루피아 정도는 있어요. 미스터르한테 돈 달라 안할 테니 걱정 말아요!”

 

지금이야 ATM으로 다양한 금액의 요금을 충전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 있지만 당시 ATM으로 충전하는 요금 바우처는 최소 10만 루피아였어요. 한화 1만원 상당. 릴리는 기어이 ATM에 다시 카드를 넣고 불러준 전화번호에 10만 루피아를 충전해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전화통화.

 

“10만 루피아 보냈는데 들어갔어요?  , 그래요? 확인해서 전화 주신다고요?  알았어요. . 그럼 ATM 앞에서 기다릴게요.”

 

잠시 후 릴리에게 걸려온 전화는 뿔사가 아직 들어오지 않았고 아마도 전산망이 아니라 개별 ATM 기계에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다른 ATM 기계로 다시 한번 송금해 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통장에선 이미 돈이 빠져 나가 버렸고 이젠 더 이상의 잔고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끊는 릴리의 표정에 깔린 어두운 그림자는 곧 초조한 서러움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후 릴리는 10분마다 ATM에서 잔고를 확인했지만 그 허황한 3천만 루피아가 입금될 리 없는 일이었습니다. 다시 아까의 전화번호를 돌려 보는데 이번엔 전화기 전원이 꺼져 있었습니다. 릴리의 표정이 점점 돌처럼 굳어져 갔습니다.

 

그렇게 ATM 앞에서 한참 동안이나 서성인 끝에 통장에 남아 있던 마지막 10만 루피아를 지금 막 참으로 어리석게 사기 당했음을 릴리 스스로 수긍하기까지 한 시간 정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미 밤 10시가 지나 ATM 부츠도 금속 슬라이드가 내려와 닫혔습니다. 체념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릴리는 다시 페로자에 오르며 애써 명랑해 보이려 했습니다.

 

돈이 굉장히 필요한 사람이었던 모양이에요. 우리한테까지 사기를 다 치고…”

처음부터 얘기했잖아, 사기라고. 바보같이…, 그까짓 것…, 잊어 버려.”

 그래요, 그깟 10만 루피아, 정말 필요한 사람한테…. 버렸다고 생각….”

 

억지로 농담처럼 얘기하려던 릴리는 그 말을 미처 마치지 못했습니다. 북받쳐 오른 흐느낌에 목소리가 갈라지더니 결국 두 뺨에 눈물이 주루룩 흘러 내리고 말았어요. 그리고는 큰 소리로 목놓아 울기 시작합니다. 그 장면과 당시의 심정을 글로는 어떻게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술라웨시에서의 사업이 망가지면서 릴리가 울거나 실망하는 모습을 수없이 보았지만 그날 릴리가 그간의 강한 모습 뒤에 끝까지 숨기려 했던 연약하고 서러운 감정들이 가감 없이 모두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릴리의 그런 모습을 난 그 전엔 한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10여분을 달려 빠사데니아(Pasadenia) 아파트에 들어설 때까지도 릴리의 흐느낌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난 그녀를 로비 앞에 내려주는 대신 주차장에 잠시 차를 세우고 흐느낌이 잦아들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 순간 릴리와 내 지갑, 우리 통장 전체를 탁탁 털어도 그 합이 10만 루피아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술라웨시에서 한화로 이미 십수억원이 증발해 버린 마당에 그깟 10만 루피아가 아쉽고 안타까워 우는 것은 아니었겠죠. 사기임을 뻔히 알면서도 꼼짝없이 걸려들고 만 우리의 고집과 절박함. 그래서 결과적으로 가슴을 쥐어 뜯게 만드는 끝도 없는 자괴감. 그런 것들이 릴리의 마음을 후벼 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수석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릴리의 모습을 보며 그녀의 마음을 헤집고 있던 똑 같은 칼날들이 내 마음도 갈갈이 찢어발기고 있었습니다.

 

아무 생각하지 말고 잘 자 둬.”

 

아파트 로비에 내려 주면서 그렇게 얘기할 때까지도 릴리의 호흡에는 여전히 흐느낌이 남아 있었습니다. 릴리는 현관 앞 화단에 무릎을 안으며 앉았어요. 집엔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흐느낌이 그친 후 들어가려는 것이었겠죠. 백미러에 비친 그 모습은 십 년이 넘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릴리의 모습은 처연하기 그지없었고 그런 그녀를 두고 떠나는 내 마음도 무겁기 짝이 없었습니다. 릴리와 거의 하루 종일 함께 있었지만 정작 해야 할 말은 하지도 못한 채 당장 죽어버릴 것만 같은 우리의 절박함만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었고 모든 능력을 상실해 버린 나라는 존재가 스스로 참담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아파트 정문을 나서면서부터 폭주하기 시작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갓길에 차를 세우고 운전대에 머리를 묻었습니다. ATM을 떠나면서부터 내내 참았던 눈물이 흐느낌과 함께 쏟아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차창이 고장 나지 않았다면 그날 전수관 사무실에서 난 릴리에게 내가 곧 자카르타를 떠나 반둥으로 가야 함을 말하려 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가 안고 있던 시한폭탄의 타이머는 이미 제로가 되어 있었어요. 우리의 사업구상을 구체화시킬 경비는 고사하고 아파트 임대연장비용도, 아이들 학비도, 심지어 차에 기름 넣을 돈도 모두 떨어진 상태에서 어딘가에 당장 취직이라도 하지 않으면 그 시한폭탄은 여지없이 터져 우리 모두를 파멸시킬 것이 자명했습니다. 그것은 릴리도 수긍하고 있었죠. 그러던 중 우여곡절 끝에 직장이 나서 며칠 후인 다음 달 초부터 출근하는 것으로 막 확정되었던 것입니다. 하필이면 자카르타에서 몇 시간 떨어진 반둥에 있던 봉제공장이었습니다. 그 동안 서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는 위로가 되었는데 이제 내가 반둥으로 취직해 떠난다는 사실을 차마 릴리에게 말해줄 수 없었습니다. 이젠 우리가 더 이상 서로에게 기댈 수도 없고 어떡해서든 각자 자립해 살아가야만 한다는 사실도요.

 

지옥과도 같았던 당시 파산의 경험은 훗날 우리에게 분명 좋은 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희망도 없이 나락의 밑바닥을 헤매던 그날 밤은 우리들의 절박함과 함께 그렇게 조용히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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