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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적도에 부는 바람

적도에 부는 바람 (4)

beautician 2009. 10. 1. 00:42

 

 

릴리가 루벤을 피하는 이유와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릴리는 기본적으로 남자들을 혐오하고 있었던 거에요.

 

릴리가 자카르타에 처음 온 것이 1993년쯤이니 나와 만난 것은 그녀가 자카르타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지 2~3년쯤 되어서였습니다. 그 전까지 릴리는 술라웨시 떵가라(Sulawesi Tenggara)주의 주도 끈다리(Kendari)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마쳤고 고교시절엔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해 싱어(Singer)를 맡았던 전력이 있어 빼어난 노래솜씨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1월생이어서 학교를 일찍 다녔던 릴리는 자카르타에 오기 직전까지 17살의 나이로 그 곳 대학에 진학해 생물학을 전공하던 중이었어요.

 

그러던 그녀가 자카르타까지 흘러 오게 된 사연은 막내 언니 티니(Tini)로부터 시작됩니다.

 

릴리와 다섯 살 터울인 티니는 릴리가 대학에 진학할 당시 새내기 공무원이 되어 있었어요.  티니는 릴리의 가족들 중 가장 예뻤고 더욱이 당시엔 20대 초반의 상큼한 아가씨였죠. 티니는 답답할 정도로 조금 아둔하다는 것이 문제였는데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그것을 백치미라 부르기도 합니다. 문제는 선수들에게는 누구나 다 업어치기 한판을 당하기 쉽지만 티니 같은 아가씨는 길바닥 거렁뱅이가 살짝 발만 내밀어도 틀림없이 걸려 넘어지는 게 세상 법칙이라는 점입니다.

 

남자들은 이런 아가씨들을 가만 두지 않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특히 그래요. 그 중에서도 3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남자들은 강력한 공격력과 높은 성공률을 자랑합니다. 세계 어디서나 그렇듯 10, 20대 초반의 아가씨들은 세상물정을 잘 모르죠. 아직 세파에 크게 시달리지도 않았고 늘 백마 탄 왕자님을 꿈꾸며 드라마 같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질 거라는 공상, 망상에 사로잡혀 있곤 하죠. 그 꿈이 너무 커서 로맨틱한 주말 저녁을 안쫄 해양공원 방파제에 어깨동무를 하고 앉아 뭉개 보려는 같은 또래의 남자들은 잘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그렇다고 현지 TV의 시네트론(Sinetron)에서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재벌 2, 부자집 아들내미는 실생활에선 코빼기도 보이지 않죠. 실제로 눈 앞에 나타나는 남자들이라고는 지갑을 비교적 두툼하게 유지하고 있는 40대 직장인들인데 그들은 젊은 아가씨의 아리따운 자태에 폭포처럼 침을 흘리고 여자도 남자의 지갑에 자꾸 눈길이 가는 게 인지상정일까요? 그래서 뭔가 이루어지는 확률이 높지만 그들 100%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이 불행의 씨앗이 됩니다.

 

티니의 눈앞에 나타난 남자 역시 중년의 유부남이었고 게다가 상관 공무원이었습니다. 외관상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직위를 남용한 섹슈얼 허레스먼트(Sexual Harrasement)로 보이는 두 사람의 관계는 실제로는 순진하고 어수룩한 티니가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는 사랑이었고 작은 도시의 한 직장에서 벌어졌던 이 불륜은 순식간에 동네방네 소문이 나버립니다. 릴리의 아버지는 그를 경외하던 주민들에게 면목을 잃고 티니의 오빠들은 민망함과 분노에 눈이 뒤집혀 버리죠.

 

전편들에서 소개한 큰오빠 히틀러 아미르를 비롯해 지금은 짜맛 임기를 마치고 승진 대기중인 누딘 그리고 몇 년 후 군복무 중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게 되는 릴리의 셋째오빠, 이렇게 세 명이 어느 날 아침 티니의 상관이 집에서 구청으로 출근하는 길목, 계곡에 세워진 다리 앞에서 차를 막아 세우고 그 남자에게 치도곤을 놓습니다. 남자는 찍 소리 못하고 당할 수 밖에 없었고 이 일은 아직도 끈다리에서 회자되곤 하는 유명한 사건입니다.

 

릴리의 아버지는 이 사건을 빨리 무마하고 집안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급히 매파를 세워 신랑감을 찾아 티니를 시집 보내려 했어요. 그렇게 급히 결혼 날짜가 정해지자 사랑하던 유부남에게 갈 수도 없게 되었고 마음에도 없는 남자에게 시집가는 것도 죽기보다 싫었던 티니는 어느 날 야반도주해 자카르타로 날아 옵니다. 사회경험도 일천하고 순진하기 이를 데 없던 시골처녀가 혈혈단신으로 번잡한 자카르타에 들어와 겪게 된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도망 올 때 훔쳐 온 어머니의 패물이 있어 당장의 숙식을 해결할 수 있었고 나중엔 당시 수백 개가 넘던 은행들 중 하나에 취직해 창구직원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어렵사리 자카르타에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결혼날짜를 받아 놓은 티니가 그렇게 도망가 버리자 릴리의 부모는 더욱 더 난감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티니는 결과적으로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하다 못해 결정타를 먹이고 줄행랑을 친 셈이었고 이 사건을 수습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대안은 릴리였습니다. 릴리의 가족 중 마지막 남은 결혼 가능한 연령의 처녀였기 때문이었죠.

 

야구로 치면 구원투수 기용.

전혀 몸도 풀지 않고 있던 17살의 릴리가 갑작스럽게 혼인이라는 마운드에 오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30살도 넘은 남자의 입장에서는 더욱 어린 신부를 맞게 된 것이 입이 귀밑까지 찢어지도록 즐거운 일이었겠지만 대학생활을 만끽하고 있던 릴리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습니다.

 

며칠 후 릴리도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자카르타로 달아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이 사건은 티니의 경우와 같이 일견 야반도주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도양양한 막내딸이 꿈 많던 시절 가졌던 모든 미래의 가능성들을 갑자기 버려야만 하는 것을 측은히 여긴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릴리를 빼돌린 것이었어요. 어린 딸을 그렇게 허무하게 시집 보낼 수도 없었고 물정 모르는 티니를 자카르타에 혼자 둘 수도 없었던 어머니는 티니가 가져가고 남은 패물 모두를 릴리에게 쥐어 주고 자카르타에 날아 가 티니와 합류하도록 종용했습니다.  릴리의 자카르타 생활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패물을 팔아 자카르타 남부 깔리바타(Kalibata) 지역에 허름한 집을 임대해 두 자매가 같이 살게 되었지만 그 생활은 결코 여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끈다리에서는 신부가 두 명씩이나 연이어 사라져 버린 사건 때문에 릴리의 아버지는 가문의 대망신을 온 몸으로 견뎌 내야 했으므로 크게 진노하고 실망한 것은 당연했죠. 거기에 아미르는 티니가 가문의 명예에 두 번씩이나 먹칠을 하고 릴리는 그 상황에서 집안의 처녀로서 당연히 져야 할 의무를 저버렸으니 의절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기름을 붓습니다.

 

이제 티니와 릴리는 끈다리의 가족으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고립무원의 상태에 처하고 만 것이지요. 어머니가 이따금 조금씩 돈을 보내주었지만 큰 도움이 되지 못했고 티니의 은행 월급 역시 간신히 입에 풀칠 할 정도였으므로 릴리 역시 돈을 벌지 않으면 두 자매가 물가 비싼 자카르타에서 도저히 생활해 갈 수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끈다리에 있었다면 응석받이 막내딸로 가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한편으로는 한창 대학 새내기로서 지성의 세계에 첫발을 딛고 있었을 릴리는 결국 학업을 포기하고 돈을 벌러 길바닥으로 나서야 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의 자카르타에서 17살의 여자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으므로 릴리의 선택의 폭은 좁을 수 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릴리는 길거리 악사가 되어 맘빵 사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뻥아멘(pengamen)이라고 부르는 거리의 악사들은 길가에 자리를 깔고 이런 저런 악기를 연주하면서 행인들에게 돈을 받는 좀 낭만적이라 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법한 한국의 상황과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자리를 잡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신호대기를 하는 차량 차창에 다가가 멱따는 소리로 노래하며 노래값을 강요하는, 말하자면 아무 것도 안하고 돈 달라고 손 내미는 거지보다는 조금 한 단계 위쯤 되는 위상이 인도네시아의 뻥아멘입니다. 템버린도 아니고 작은 나무 막대기에 박은 못에 템버린 부속 같은 작은 금속 원판을 끼워 그걸 흔들어 대며 박자를 맞추거나 손바닥 두 배 크기만한 기타를 줄도 맞추지 않은 채 아무렇게나 튕기며 차창에 머리를 박고 있는 오늘 날 자카르타 거리의 뻥아멘들은 그 노래값을 받기 보다는 그 노래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운전자들에게 피해보상을 해 주어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폭동 전 90년대 초반의 자카르타 거리에는 아직도 낭만이 조금 남아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릴리가 노래 부르던 곳은 뗀데안(Tendean) 거리에서 가똣 수브로또(Gatot Subroto) 거리로 넘어가는 길에 있는 뗀데안 플라자 앞 고가도로 밑의 신호등이었어요. 당시에도 차가 많았지만 지금처럼 말도 못할 정도는 아니었고 모든 것이 귀찮기만 한 오늘날의 운전자들과는 달리 당시 운전자들은 수십 미터씩 신호대기를 하다가 신호가 바뀌어도 빨리 가라며 클락션을 마구 눌러대지도 않았고 뻥아멘들을 연민의 눈빛으로 바라볼 줄도 알았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신호등마다 수십명의 거지들과 뻥아멘들, 심지어 섹시한 여장을 했음에도 심각하게 남성스러운 벤쫑(bencong)들로 우글거리지도 않아 차량은 차량대로 한가하고 뻥아멘들은 경쟁하기보다는 서로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며 서로 도왔다고 합니다.

 

처량해진 자기 신세가 슬프지 않았을 리 없는 릴리는 열심히 노래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륵 흘리곤 했다는데 그것이 너무 불쌍해 보였던지 릴리는 그 일을 돈을 꽤 많이 벌었습니다. 당시 뻥아멘들의 하루 벌이가 1달러도 되지 않던 시절, 릴리는 매일 5~10만 루피아 정도를 벌었다고 하니 당시 달러당 2천 루피아 대의 환율로 계산하면 일당 25~50불 정도를 버는 고소득 뻥아멘이 된 것입니다.

 

길바닥의 여자아이가 그 정도 돈을 쥐고 있으면 주변 양아치들이나 다른 뻥아멘들이 시기 질투를 하고 때로는 그 돈을 강탈하기도 할 법 한데 릴리는 오히려 같은 처지의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밥도 얻어 먹고 밤길 위험하다며 집까지 걸어서 바래다 주기도 하고 심지어 명절 때는 자기들이 일해 번 돈까지 릴리에게 나누어 주곤 했답니다. 뻥아멘도 레벨이 천양지차여서 릴리가 잘 나가는 뻥아멘이 되자 이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밴드를 했던 릴리는 실제로 노래를 잘했습니다. 그래서 한 뻥아멘 밴드에 발탁되어 블록 엠(Blok M) 버스터미널에서 버스에 올라 노래하기 시작했어요. 일반 밴드처럼 고가의 악기들을 다루며 앰프와 버즈를 이용해 전자음을 내는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뻥아멘 중에도 음악성 있는 사람들이 있어 실제로 나중에 가수로 성공한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고 릴리의 팀은 나름대로 실력있는 팀이었는데 릴리가 합류하면서 대박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릴리와 가끔 그런 얘기를 합니다.  릴리는 Muka Permohonan 이라고요. 무까 뻐르모호난…, 이 얘기는 도와 주지 않으면 못배길 얼굴을 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릴리는 밴드의 지원을 받았을 뿐 아니라 승객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슬픈 발라드를 부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리곤 하는 어린 여자아이를 보며 승객들은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렇게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노래를 부르면 20~30만 루피아 벌이가 되었다고 하며 밴드의 리더는항상 릴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가져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합니다. 릴리는 그 생활을 1년 동안 하면서 돈을 모았고 그 돈으로 UNAS 대학 등록금을 치르면서 뻥아멘 생활을 마치고 밴드 동료들의 눈물겨운 환송을 받으며 거리를 떠나게 됩니다.

 

그것이 지금도 릴리가 차를 타고 가다가 뻥아멘들을 보면 우수에 잠기곤 하는 이유지요. 그때의 팀 중에 이제 꽤 나이를 많이 먹고도 아직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우연히 그들을 지나치게 될 때마다 릴리가 차를 세우고 자기 지갑에 있는 돈을 몽땅 털어 주며 펑펑 눈물 흘리는 것을 몇 번 본 적도 있습니다.  그것이 내가 릴리를 좋아하는 이유지요. 릴리는 어려웠던 시절 고마웠던 사람들을 절대 잊지 않았습니다.

 

그 후 릴리는 소고 백화점에 취직해 매장 카운터에서 일하며 틈틈이 학교를 다녔어요. 10시가 되어야 끝나는 백화점 일은 다행히 일일 2교대 근무였고 릴리는 늘 아침에 출근해서 오후 4~5시면 퇴근할 수 있도록 배려를 받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늘 야간강의를 들었죠. 그러다가 1년쯤 지나면서 열심히 일한 것이 인정되어 릴리는 매장 캡틴으로 승진합니다. 승진으로 월급을 조금 더 많이 받게 된 건 좋았지만 이젠 낮 근무만 할 수는 없게 되고 말았어요. 또 한 명의 다른 캡틴과 서로 교대하며 밤 근무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마침 다음 학기 등록금도 모자라던 차였으므로 릴리는 일단 휴학계를 제출하고 돈 버는 데 전념키로 합니다.

 

이 시기에 릴리에게 또 한 번 시련이 닥쳤습니다.

매장에 물건이 없어지는 사고가 벌어졌어요. 정확한 사건 경위는 알 수 없지만 앞서 언급했던 또 한 명의 캡틴이 자기 쉬프트 때 벌어진 일이 아니라며 극구 발뺌하면서 릴리의 책임으로 몰았답니다. 고가의 제품을 파는 매장에서 물건이 없어지면 직원들을 패닉상태에 빠지는 게 보통입니다. 고가 제품을 판다고 해서 그 매장 직원의 월급이 그만큼 많은 것도 아니고 대개 화교인 매장 주인들은 피도 눈물도 없이 손해액을 직원들의 월급에서 제해 버리기 때문이죠. 이의를 제기하거나 발뺌하려 하면 그 다음 수순을 경찰을 부르는 것이고요.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상황에서 그 물건을 판 당사자도 아닌 릴리가 덤터기를 쓰는 상황이 되어 버렸어요. 릴리는 그로부터 6개월 동안 더 일하면서도 월급을 한 푼도 받지 못한 것은 물론 퇴직금도 받지 못했습니다.

 

사실 이 대목도 내가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보통 인도네시아 사람들이라면 어차피 월급도 받지 못할 거 차라리 그만 둬 버리고 마는 게 보통이죠. 이 사람들에게 뭔가 책임감을 기대하는 것은 늘 무리입니다. 심지어 대기업의 중역, 고위 공직자들도 다 마찬가지지요. 그러나 당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릴리는 거기서 그만 둬도 더 잃을 것도 없는데 6개월을 꽉 채우면서 매장에서 손해가 났던 부분을 완전히 보전했습니다. 릴리는 책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잘 아는 사람이었어요.   

 

매장의 사고가 나던 거의 같은 시기에 릴리는 대학을 다니면서 사귀기 시작해 급기야 약혼반지까지 주고 받은 디딧(Didit)이라는 남자에게 청혼을 받습니다. 내가 앞에서 얘기했죠?  인도네시아에선 젊은 아가씨들을 절대 가만 두지 않는다고요. 20대 후반으로 접어 들고 있던 이 남자는 아직 갓 스무살도 안된 릴리에게 청혼하면서 싱가폴에 함께 가자고 제의해 왔습니다. 디딧은 싱가폴에서 대학원을 다니려 할 정도로 유복한 집안 출신이었는데 한국에서 흔히 그런 것처럼 같이 싱가폴 유학을 가자는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결혼해서 싱가폴에 가긴 가는데 자기는 공부하고 릴리는 밥해 주고 빨래해 주며 뒷바라지를 해달라는 것이었지요.

 

사실 사랑에 눈먼 여자들 입장에서는 결혼해 주겠다는데, 그리고 싱가폴까지 함께 가달라는데 그 조건이 무엇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그러나 릴리는 디딧을 사랑하면서도 자기 자신의 꿈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대학을 꼭 마치고 싶었던 것입니다. 릴리는 디딧이 혼자 싱가폴에 가서 대학원 공부를 하고, 그 동안 자기는 돈을 벌면서 대학을 마치겠다고, 그렇게 서로 학교를 마친 후 결혼하자고 달랩니다. 그래서 디딧은 얼마 후 혼자 싱가폴로 떠나게 됩니다.

 

그런 후 1년이나 2년쯤 흘러 사건이 터졌다면 릴리가 그렇게 가슴 아파하지 않았겠죠. 야속하게도 릴리가 소고 백화점에서 앞서 기술한 사고로 월급 없이 일한 지 6개월쯤 되자 디딧이 자카르타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디딧은 릴리에게 돌아온 것이 아니었어요. 디딧은 임신 6개월 된 여자를 데리고 자기 부모님에게 가서 그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했답니다. 릴리를 친 딸처럼 여겼던 디딧의 부모님들은 발칵 뒤집어졌지요.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얘기를 전해들은 릴리가 디딧의 집을 기어코 찾아 가고 말았습니다. 여자들은 그렇게 몸으로 부딪혀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입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디딧의 부모님 앞에서 릴리의 억장이 무너졌던 것은 그 함께 온 임신한 여자가 바로 자기 UNAS 대학 친구라는 사실 때문이었어요. 그 여자가 좀 더 먼저 싱가폴로 유학을 갔지만 그 전에 디딧과도 캠퍼스에서 몇 번 같이 만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마치 책임지라는 듯 집에도 돌아가지 않고 디딧의 집에 눌러 살고 있던 그 여자친구는 릴리를 외면한 채 불러온 배만 어루만지고 있었고 임신 6개월이라면 디딧이 싱가폴에 가자마자 그 여자와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는 의미였습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죠.

 

그쯤 되면 거기서 돌아 나와야 하는 거 아니었을까요? 릴리 자신을 위해서, 스스로 더 망가지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체념하고 나왔어야만 했습니다. 난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나 여자들은 들은 것으로 추론하고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는 그런 메커니즘을 가진 존재가 아니란 것도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릴리의 직성이 풀리려면 디딧의 입에서 직접 설명을, 아니 변명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내가 같이 가자고 했잖아. 네 잘못이야. 네가 날 안 따라온 거야. 날 탓하지 말고 너 자신을 탓해.”

 

이런 말을 듣고야 마는데 말입니다.

거기에 한 술 더했다는 말에 몇 년이 지나 릴리로부터 그 얘기를 듣던 나까지 울컥 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너도 알지. 내가 아직 너 사랑하는 거? 사실대로 말하자면 저 여자보다 널 더 사랑해. 진심이야. 그러니 좀 기다려 줘. 내가 너랑도 꼭 결혼해 줄게.”

 

말이 안되는 듯한 이 말이 인도네시아 사람, 이슬람 교도들에게는 말이 되는 모양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여자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싫어하고 혐오하는데도 남자들은 첩을 들이고 두 번 째, 세 번 째 처를 취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능력과 재력의 증거로서 과시하곤 하지요.

 

정말 웃기는 것은 이슬람 율법 상으로는 죄가 아니지만 인도네시아 실정법 상으로는 위법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공직자가 중혼한 것이 발각되면 공직에서 쫓겨나는 것이 사실이고 그래서 남편인 경찰이나 공무원이 바람을 피우고 딴 살림을 차리면 본처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한 끝에 마지막에 찾아가는 것이 남편의 직장 상관입니다. 남편이 중혼했으니 처벌해 달라고요. 그렇게 해서라도 아내는 남편에 대한 소유권, 점유권을 지키고 자신이 유일한 아내라는 지위를 지키려 합니다.

 

그런데 수하르토가 자카르타 폭동으로 하야한 후 짧은 하비비 대통령 시절을 거쳐 MPR 국회투표에서 선출된 와히드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나고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의 맏딸 메가와티가 인도네시아의 첫 여성 대통령이 되었을 때 골카르 당 주도로 추대한 함자 하스 부통령은 네 명의 부인을 거느린 사람이었어요. 이건 완전히 코미디지요. 첫 여성 대통령, 개코나 엿먹으라는 겁니다. 한 정당의 당직자가 갑자기 공직자, 그것도 인도네시아 정부의 넘버 투가 된 것인데 당직자일 땐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던 네 명의 처를 가졌다는 사실이 부통령이 되자 처치불가한 이상한 모양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죠. 당시 골카르 당의 정치가들은 메가와티에게 제대로 물을 먹인 셈이 되었고 함자 하스 부통령은 이슬람 창시자 모하멧 이후 중혼의 표본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또 한번 만방에 보여준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함자 하스의 이름도 잘 들어보지 못했을 90년대 초에 디딧은 그렇게 말하며 릴리의 억장을 뒤집어 놓았고 릴리는 분노와 배신감에 눈에서 불꽃이 튀었을 겁니다. 릴리는 거기서 약혼 반지를 빼 디딧의 부모 앞에 내팽개쳐 버리고 그 집에서 돌아 나와 버렸습니다.

 

그때 릴리는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고 생각했겠지요. 그 상처가 너무 깊었습니다. 릴리는 그렇게 어렵게 견뎌왔던 소고 백화점에도 사표를 제출하고 학교에도 돌아가지 않은 채 인생을 소비하기 시작했어요. 그 나락과도 같았던 시기에 그녀는 잠시 마약에도 빠지고 한 두 달 가라오케에도 나갔다고 합니다.

 

거기서 시작된 것입니다. 남자에 대한 릴리의 혐오감이 말이죠.

나와 만났을 때 릴리는 디딧에게 당한 뼈아픈 배신의 상처를 딛고 어렵사리 다시 정상으로 회복되어 있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일과 공부에 전념했던 것이죠. 디딧 이후 릴리는 한번도 남자에게 빠지지 않았고 그러기 위해 자기 스스로를 지독하게 독려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사건으로 여자들에 대한 릴리의 시각도 많이 왜곡되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릴리의 대학친구들은 모조리 남자들이었어요. 여자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릴리는 여자들의 세계를 버리고 스스로 남자가 되어 남자들의 세계에서 남자들과 겨루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 루벤의 유혹은 이빨도 들어가지 않은 게 당연했지요.

그러나 릴리도 가끔은 내게 이런 질문을 해왔습니다.

 

루벤한테 오늘도 전화 왔어요?”

 

이 부분에서 뭔가 또 살짝 감이 왔습니다. 

열 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 없다는 성현의 말씀은 역시 진리 중의 진리입니다. 루벤이 계속 접근하려고 노력하면서 어쩌면 릴리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나로서는 좋은 일이라고 해야 할지 나쁜 일이라고 해야 할 지 잘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남자를 남자로 보지 않는 릴리의 성격은 분명 정신적 외상에 의한 후유증, 말하자면 질병이나 다름없다는 측면에서 회복기미가 보인다는 것은 희망적이었지만 또 한편으로 릴리와 일하는 것이 편했던 이유는 대개의 경우 인도네시아 여자를 채용하면 아가씨들은 애인에게, 아줌마들은 아이들에 묶여 일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아왔는데 남자 문제가 전혀 없었던 릴리는 그야말로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걸 굳이 내가 나서 루벤에게 등 떠밀며 불안정한 상태로 몰고 갈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었고요.

 

하지만 내 사업 잘 해보자고 릴리 개인을 희생시키고 루벤의 간절한 소망을 무시할 만큼 나는 독한 사람이 못되었어요.

 

루벤, 그 대사관 파티…, 릴리를 꼭 데려 가고 싶은 거죠?”

물론이죠. 릴리, 가겠데요?”

. 그게…, 아직 얘기 안했어요. 하지만 릴리도 파티 좋아하고 당신한테 호감도 없지는 않은 거 같은데….”

정말요?”

그래서 작전이 좀 필요해요.”

 

나는 먼저 루벤과 말을 맞췄습니다. 그리고 파티 하루 전날.

 

릴리. 루벤한테 파티 초대 받았다. 내일 저녁에 갈 거니까 준비해.”

미스터르만 가요. 왜 나까지 가요?”

부부동반이래. 파트너 없으면 뻘쭘하잖아?”

 

가족들과 자카르타에서 다시 합류하기 몇 년 전의 얘기입니다. 그 다음 날 나까지 양복을 입고 파티 드레스를 입은 릴리와 함께 페로자 찝을 몰아 물리아 호텔로 갔어요. 릴리는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죠.

 

헤이!! 릴리!!”

 

로비에 나타난 릴리의 모습에 루벤은 흰 치아를 빛내며 활짝 웃으며 빠른 걸음으로 다가 왔어요. 그가 입은 바틱 셔츠가 잘 어울렸어요. 릴리는 내 등 뒤로 슬그머니 숨어 버립니다.

 

이제 루벤, 당신이 책임지는 거에요. 다 끝나면 릴리 집까지 바래다 줘야 되요.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가 들리거나 릴리가 울면서 집에 가는 일이 생기면 내가 가만 있지 않으리라는 거 알죠?”

 

물론 협박하는 거 아니었습니다. 나 역시 큰 미소를 짓고 있었지요. 영어를 다 알아 듣는 릴리도 눈이 휘둥그레 집니다. 내가 사기 쳤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 거에요. 이 대목에서 필요한 것은 스피드였습니다. 로비에서 더 이상 시간을 끌면 릴리는 나와 말다툼을 시작하거나 현관 밖으로 걸어나가 택시를 잡을 판이었으니까요.

 

릴리. 오늘 밤은 내 파트너가 되어 줘요. 내가 미스터 배한테 간곡히 부탁했어요. 그러니 화내지 말고…”

 

루벤이 독일어처럼 딱딱하게 말하는 영국식 영어가 그날따라 부드럽게 들렸습니다. 릴리의 손을 잡아 끄는 루벤은 그렇게 말하며 허리를 굽혀 릴리 손등에 가볍게 키스를 했고요. 루벤도 로맨틱한 부분이 있는 남자였어요.

 

루벤에 내미는 팔에 팔짱을 끼고 나를 자꾸 뒤돌아 보며 파티장으로 향하는 릴리의 모습이 비록 끌려 가는 느낌이 없지 않아 좀 있었지만 당장 내뺄 것 같은 기미는 없었으므로 나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양복 상의를 벗고 목을 조이던 넥타이도 풀어 들었어요.  사람들로 붐비는 로비에서 그렇게 릴리를 인계하고 혼자 남아 서 있는 게 더 뻘쭘했던 건 두말할 나위 없었고요.

 

두 사람의 역사는 그날 밤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릴리는 그 후에도 루벤의 데이트 요청에 늘 머뭇거리곤 했지만 그때마다 나는 그녀의 등을 살살 떠밀어 주었어요. 릴리는 그렇게 벨기에인들, 유럽인들의 커뮤니티에 합류하게 되었고 좀 더 시간이 흐른 후에는 굳이 내가 등 떠밀지 않더라도 루벤과 잘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는 내가 루벤의 세계를 더 잘 알고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릴리는 내가 모르던 세계의 얘기들도 전해 주기 시작했지요.

 

릴리는 루벤이 속한 세계에서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을 가보고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외국인들과 유엔기구 현지 사무소 직원들의 사교모임이나 허쉬(Hush) 같은 운동행사에도 참가하고 스마랑, 발리를 다니더니 그 다음 해부터는 인디아, 미얀마를 함께 다녀오고 벨기에에 가서 루벤의 부모님을 만나 인사하고 네덜란드, 스위스, 프랑스, 이태리까지 루벤이 임대한 BMW 승용차로 여행하기도 합니다.

 

2000년에 들어섰을 때 두 사람은 이제 공공연한 연인에서 약혼한 사이로 발전해 있었고 시온과 거래가 종료된 후에도 릴리는 루벤과 함께 프레드릭이나 당시 생산직으로 새로 채용된 스테판(Stephan), (wimm) 같은 친구들과도 자주 어울리고 후기 쓰듯 그간의 일들을 쉴 새 없이 내게 재잘거리곤 했습니다.

 

그러나 루벤이 끈다리를 처음 방문하던 2002년까지도 두 사람은 아직 결혼 계획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건 루벤이 가지고 있던 유럽식 사고방식과 불우한 가족사로 인한 결혼과 가족 시스템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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