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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적도에 부는 바람

적도에 부는 바람 (5)

beautician 2009. 10. 8. 03:01

 

 

릴리와 루벤은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한 후 정말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참 많이도 다투었습니다. 그런 싸움에는 서로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있었어요.

 

빠사라야(Pasaraya)의 스타벅스(Starbucks) 커피점 야외탁자에 앉아 있던 중 아파트 전화비를 좀 내달라며 루벤이 지폐들을 꺼내서 세어 주었을 때 왜 릴리가 얼굴이 새빨게질 정도로 흥분하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는지 루벤은 이해하지 못했고 릴리는 루벤이 그렇게 공개적으로 돈을 꺼내 주는 행위가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서양 남자가 전날 밤 갖고 논 현지 여자에게 화대라도 치르는 인상을 주기 쉽다는 것을 상상하지도 못하는 루벤의 두뇌구조는 태생적 불량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릴리는 결혼도 하기 전에 함께 살자는 루벤의 제의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혼전 동거가 다반사인 유럽인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투로 했던 제의를 결혼 후 동거가 기본인 아시아인의 사고방식을 가진 릴리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물론 그 저의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루벤은 릴리가 어서 아파트에 들어와 주기를 기다렸고 릴리는 루벤이 먼저 청혼해 줄 것을 기다렸죠.

 

정황 상 내가 또 나서야 하는 대목이 왔습니다.

 

릴리야. 너 혹시 대부분 서양사람들이 말이야. 딸이 어떤 남자랑 결혼한다고 하면 뭘 물어보는 지 알아?”

남자가 뭐하는 사람인지? 집안 배경?”

물론 그런 것도 물어 보겠지. 근데 내가 요즘 공부해 본 바로는…, 동거해 봤냐고 물어본다는 거야.”

엄마 입장에서 당연하지 않아요? 어떻게 키운 딸인데 결혼 전에 동거부터 하게 놔둬요?”

그게 아니고, 결혼하기 전에 동거부터 해서 그 사람이 정말 자기 남편이 될 만한 사람인지 겪어 보라고 한다는 거야.”

거짓말!!”

 

나 역시 동양인으로서 만약 내 딸이 동거부터 하겠다고 말해 온다면 내 시체를 밟고 넘어가라고 하겠죠. 아무튼 이 친구들의 당면한 문제는 문화의 차이였어요. 서양에 살아 보지 않은 나로서는 당연히 모두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줏어 들은 얘기들을 릴리에게 좀 해 주어야 했습니다. 두 사람은 매주 몇 번씩 만나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도 같이 하고 주말엔 교외로 지방으로 놀러도 다니면서 그런 배경설명들은 통 안하는 모양이었습니다.

 

루벤, 회사에서 잘 나가는 임원이라고 해서 집에서도 회사에서 하는 직원 관리하는 방식으로 가족들 대해서는 안된다는 거 잘 알죠?”

그야, 물론이죠. 그런데 왜 갑자기 뜬금없이….?”

 

사실 이 얘기를 몇 년 후 루벤에게 한번 더 해 주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우리 시대에 회사에서 잘나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회사에서 칭찬받았던 수완과 능력을 집에서도 발휘하면 집안도 회사처럼 잘 돌아갈 거라는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루벤 역시 회사에서 높이 평가받던 경리 회계 및 분석능력을 집에서 발휘하다가 릴리가 몇 번 가출하는 사건이 생기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하는 얘긴데…, 회사랑 집도 그렇게 다른데 벨기에랑 인도네시아는 또 오죽 다르겠어요? 한국이랑도 천양지차거든요. 관광하러 오는 사람들한텐 색다른 문화가 구경거리겠지만 그 나라에서 살려는 사람한텐 그 색다른 문화가 적이 되기도 해요. 잘 알죠?”

미스터 배. 말을 그렇게 뺑뺑 돌리는 이유가 있는 거죠?”

이런 얘기 해도 될지 모르겠어서…”

괜찮아요. 뭐든 얘기해 줘요. 미스터 배가 무슨 말을 해도 다 선의에서 하는 말이라는 거 잘 알고 있어요.”

 

루벤이 그렇게 얘기하니 오히려 더 말을 못하게 됩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 봅니다.

 

당신이나 나나 인도네시아에서는 언제 본국으로 떠나갈지 모르는 외국인이에요. 현지인 아가씨 입장에서는 외국인과 교제하는 것 자체는 큰 사건이 아니지만 관계가 심각해지면 보수적인 아시아 정서로서는 더 이상 개인적인 일이 아니지요. 모든 가족들이 관심사가 되는 거에요. 인도네시아에서도 한국에서도 그건 대개의 경우 개인이 스스로 결정하는 사안이 아니에요. 릴리는 자기가 하는 행동에 자기 가족의 명예가 걸려 있다고 생각하죠.”

나도 릴리와 가족의 명예를 존중해요.”

알아요. 그래서 릴리는 최소한의 security가 필요한 거겠죠. 당신이 릴리가 남들에게 과시해 보여주려는 장식품이 아니듯 릴리 자신도 가족들이 보기에 당신 장식품이 아닌 그 이상이라는 security 말이죠.”

 

이 말을 루벤이 이해했는지는 잘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발전해 나갔어요.  우리 사무실이 코린도 빌딩 5층에 있는 동안 루벤은 매년 릴리를 해외여행에 데려 갔습니다. 첫 해에는 인디아를 방문해 열흘 정도의 일정 동안 인디아 북부의 도시들을 여행했고 이듬해에는 미얀마에 다녀 왔지요. 그리고 우리가 무스티카 라투(Mustika Ratu) 건물로 이사하기 직전인 2000년 하반기에는 릴리를 벨기에에 데려가 부모님에게 소개를 해 주었습니다.

 

루벤은 부모의 이혼으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릴리와 루벤 두 사람이 처음 벨기에에 갔을 때 오래 전 이혼하여 각각 따로 가정을 꾸린 루벤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각각 다른 집에서 각각의 새 배우자와 함께 만나야 했던 사실이 릴리에게는 충격으로 다가 왔던 모양입니다. 더욱이 루벤의 여동생은 미혼모로 아기를 혼자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루벤이 결혼이나 가정이라는 시스템을 불신하는 이유라는 사실을 릴리는 알게 되었죠. 루벤에게 있어, 아니 대부분의 서양인들에게 있어 결혼이란 영원할 수도 없는, 조금만 잘못하면 자칫 깨지기 쉬운 살얼음판 같은 것이었고 그런 생각은 21세기에 들어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도 급속도로 확산되었죠. 유렵 여행은 루벤으로서는 나름대로 성의를 다한 것이었지만 릴리는 오히려 마음 한 편에 더욱 불안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벨기에 첫 방문에서 루벤의 조카들과 릴리의 조우

 

 

2001 1월 말에 난 5년간 떨어져 있던 가족들과 자카르타에서 다시 합류했습니다.

모든 준비를 다 하고 나면 부르려 했지만 그 준비라는 것이 해도 해도 끝이 없었기 때문에 만약 그 때 그렇게 저질러 버리지 않으면 가족들이 언제 함께 살게 될 지는 기약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5년간 혼자 살면서 지냈던 따만 모데른(Taman Modern) 주택의 계약만료를 아직 몇 개월이나 남겨 놓았던 시점에서 쯤빠까 마스(Cempaka Mas)의 아파트를 얻어 이사한 후 가족들을 맞았습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얼마 후 사업의 실패와 함께 가족들을 극한의 고통으로 몰아 넣는 서곡이었지만 5년만의 합류는 기뻐하는 아이들 모습에 그때만큼은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잘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족들이 자카르타에 온 지 이틀 후 내리기 시작한 폭우는 곧 끌라빠가딩, 뿔로마스 지역을 포함, 자카르타 북부는 물론 자카르타 전역에 유래가 없는 대홍수를 이루었습니다. 5년 전인 1996년에도 대홍수로 자카르타 전역의 산업이 마비되었는데 2001년의 홍수는 그 이상이었어요. 도시는 호수로 변하고 도로에는 자동차 대신 뗏목과 보트들이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자카르타에 오자마자 천재지변을 맞은 우리 가족들은 황당하면서도 신기해 했습니다.

 

릴리 역시 우리 옆 동 아파트에 갇혀 있다시피 했습니다. 그때 자카르타 북부에서는 최고급 아파트로서 우리 아파트로부터 3km 정도 떨어진 빠사데니아(Pasadenia) 아파트에 살고 있던 루벤이 사진기를 들고 곳곳에 물이 가슴까지 올라오는 길을 헤치고 걸어서 릴리의 아파트까지 찾아 왔어요. 그리고는 릴리와 함께 빠사데니아로 돌아가면서 대홍수 속에서 데이트를 즐기며 사진도 찍었죠. 그때 루벤이 찍은 사진들은 예전에 올린 자카르타 홍수 (옛날 사진)’ 편에 실었습니다.

 

그 홍수 속의 데이트가 두 사람에게는 무척 낭만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홍수가 잦아들 때까지 릴리는 루벤의 아파트에서 지냈고 홍수가 걷히고 얼마 있지 않아 릴리는 짐을 정리해 루벤의 아파트로 들어 갔습니다.

 

마침 릴리의 아파트 계약기간이 거의 끝나가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술라웨시의 목재사업은 밑빠진 독처럼 엄청난 돈을 삼키는 중이었고 우린 모든 비용을 줄여야만 했던 시기였지요. 당시의 릴리는 더 이상 내 직원이 아니라 내 사업 파트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었던 사연은 예전에 올렸던 도망치듯 자카르타를 떠나던 날 편에 역시 기술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비용의 문제는 릴리도 민감하게 느끼던 부분이었고 어떤 미래에 대한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루벤과 살림을 합치기로 한 배경에는 두 사람의 사랑뿐 아니라 우리가 당시 겪고 있던 경제적 문제도 크게 작용했던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릴리의 부친상을 당해 루벤이 술라웨시에 날아 가 릴리의 가족들을 만난 것은 그렇게 두 사람이 함께 살기 시작한 지 1년 반 쯤 지난 후였어요. 릴리 둘째 누나 네르틴(Nertin)의 큰 딸 딴띠(Tanty)가 루벤의 집에서 묶으며 대학을 다니기도 했지만 당시 릴리의 고향 가족들은 릴리가 나와 함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고 심지어 내가 릴리의 남편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죠.

 

티니가 실직했을 때 내가 베풀었던 호의도 그런 생각을 부추겼지요. 97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경제위기의 폭풍이 98년 들어 맹위를 떨치면서 수백개에 이르던 은행들이 폐쇄되고 통폐합되었고 그 과정에서 티니가 다니던 은행도 문을 닫았던 것입니다. 실업자가 넘쳐 나던 그 시절, 티니는 무슨 일을 해야 할 지 막막하기만 했는데 그 모습이 측은해 보이던 차에 마침 릴리의 제안으로 티니를 죠니 안드레안(Johnny Andrean) 미용학원에 보내기로 했었죠. 본인도 좋아했으므로 적지 않은 교육비와 교재비를 내 주었고 그것이 그녀의 미용 경력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지금 멀라웨이 플라자(Melawai Plaza) 3층 죠니 안드레안 살롱의 수석 미용사가 되어 있습니다.

 

아무튼 루벤이 술라웨시에 나타날 때까지 고향사람들은 릴리가 날카로운 콧날이 선 서양남자와 교제한다는 얘기를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당시 나의 술라웨시 출장과 루벤의 조문으로 릴리의 가족들은 자카르타의 상황을 분명히 이해하게 되었고 상황도 정리되었습니다.

 

릴리는 부친상을 치른 후에도 오랫동안 자카르타에 돌아오지 않았고 40일제가 지난 후 루벤은 회사에 휴가를 내고 다시 한번 끈다리 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이번엔 자신의 결혼식 때문이었죠. 상이 끝나자 마자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보통 있는 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남편을 먼저 보낸 릴리의 어머니는 당신도 이미 고령이었으므로 막내딸의 배우자가 이미 결정된 상태라면 하루라도 빨리 혼인시키자는 의지가 강했고 그 얘기를 어렵게 전하던 릴리에게 루벤이 예상과는 달리 아무런 이의 없이 동의했기 때문이었어요. 끈다리에서는 릴리의 대가족과 수백명의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혼인잔치가 열렸습니다. 첫 만남을 가진 지 7년만에 결혼하게 된 두 사람을 나 역시 사업 파트너로서, 또한 친구로서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습니다.

 

이로서 모든 것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비록 두 달 동안 일은 별다른 진척이 없는 가운데 사업 외의 비용이 턱없이 들어갔지만 이제 릴리도 안정을 찾았고 돌아가신 아버님의 유지도 있었던 터라 릴리의 현지 가족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 일을 도와 주게 될 거라고요. 단지 릴리나 루벤이 정말 그 결혼을 행복한 마음으로 받아 들인 것인지는 좀 마음에 걸렸습니다. 누구에게 또는 상황에 등 떠밀린 것이 아닌가 해서요.

 

 

발리 여행 중인 릴리와 루벤

  

 

똑 같은 상황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어디든 있기 마련이지요.  아미르가 그랬습니다.  좀 더 시간이 많이 지난 후 듣게 된 얘기지만 아미르는 릴리와 루벤이 결혼식을 마치고 자카르타에 돌아가자마자 쿠데타를 일으켰어요. 돌아가신 릴리의 아버지는 끈다리와 아세라 지역에 광대한 땅을 유산으로 남겼습니다. 아미르는 그 많은 유산을 모두 틀어 쥐고서 형제들을 자기 앞으로 줄 서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공평한 분배 같은 것은 그의 사전에 없는 단어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사업에 핵폭탄을 터뜨리게 되는 아미르의 그런 행동을 형제들 중 아무도 릴리나 나에게 알리지 않았던 것은 대부분 공무원인 그들 사회에서는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받아 들였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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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의 아버지는 내가 끈다리에 출장갔을 때 전 가족들을 모아놓고 우리 사업을 돕진 못할 망정 말아먹지는 말라고 호통을 쳤었죠.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끈다리에서 꿈을 펼치려 하고 있던 막내딸의 사업을 걱정하여 자녀들에게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릴리의 아버지가 날 예쁘게 봐서라기 보다는 막내딸의 행복을 빌었기 때문이었죠.

 

아미르는 그 부분을 이제 릴리가 돈 많아 보이는 서양남자와 결혼했으니 충분히 행복해진 거라고 자기 마음대로 해석했습니다. 이젠 자기가 행복해 질 차례라고 생각한 것이죠.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제 그는 장남으로서 자신의 권리하고 생각하는 것을 찾으려 했고 그 첫 번째가 유산을 독식하는 것이었습니다., 두 남동생 누딘과 리리에게는 자신이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에 걸리적거리지 말라는 조건을 걸고 땅을 조금씩 나누어 주면서 생색을 냈고 한 명의 누나와 릴리를 포함한 세 명의 여동생들에게는 단 한 푼의 유산도 나누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순서가 20살 이상 나이터울이 지는 막냇동생 릴리의 등에 비수를 박는 것이었죠. 그 당시 아세라(Asera)의 벌목장과 제재소에는 한화로 수억원의 돈이 투자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아미르로서는 릴리가 그런 돈을 가지고 있을 리 없으므로 분명 내가 마련한 돈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자신이 독차지해 나를 거덜내더라도 이미 든든한 남편이 생긴 동생은 아무 탈이 없으리라 마음대로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는 릴리 역시 비용을 충당하려고 여기저기서 돈을 빌리면서 적잖은 빚을 지고 있는 상태였는데 말이죠.

 

그가 뒤로 빼돌린 돈이 적지 않다는 사실과 그 사실을 나나 릴리가 알고 있음을 아미르는 잘 알면서도 이젠 본격적으로 벌목장과 제재소까지 자기 것으로 만들려 했어요. 릴리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그런 속셈을 아직 모르고 있던 우리는 릴리가 술라웨시에서 돌아오자마자 그동안 방만해졌던 사무실을 추스르고 수라바야 거래선 요한과 감독관을 불러 미팅을 한 후 장기간 미루어진 선적을 재개하기 위해 감독관을 끈다리로 보냈습니다. 그날 밤 끈다리에 도착했다고 보고 전화를 해 온 감독관은 그러나 그 다음날부터 연락이 두절되었고 우린 며칠 동안 아무런 보고를 받지 못했습니다.

 

릴리의 부친상을 치르고 또 릴리와 루벤이 결혼식을 올리면서 제재소에서의 생산활동이나 선적은 당분간 중지된 상태였지만 벌목은 계속 진행되어 벌목장과 제재소엔 상당량의 바록(Bar-log)들이 쌓여 있었어요. 감독관이 끈다리에 간 것은 중단되었던 생산을 재개하고 수라바야에서 물건을 기다리고 있는 요한에게 가장 빨리 컨테이너들을 실어 보낼 수 있는 일정을 잡기 위함이었습니다. 현지 통신사정이 워낙 좋지 않아 도착 다음날 연락이 되지 않은 것은 벌목장에 들어갔거나 통신 신호가 좋지 않아 그러려니 생각했지만 그 다음날도 연락이 되지 않자 우린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더욱 이상한 것은 감독관을 수행하며 도와주고 있어야 할 릴리의 막내오빠 리리 역시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죠.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릴리가 끈다리행 비행기표를 사서 사무실로 배달 받았을 때 뜬금없이 아미르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아미르는 우리가 감독관을 파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제재소 업무에서는 거의 빠져 있다시피 한 상태였는데 말입니다.

 

너희 제재소, 나한테 넘겨야 되겠다.”

 

그것이 아미르의 전화통화의 요지였습니다.

전화를 끊고 난 후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두 손을 파들파들 떨던 릴리에게 들은 얘기는 이랬습니다.  아미르는 우리가 끈다리에 법인을 설립하고 제재소를 세울 당시 이미 회사 정관에 명의상 대표이사로 해 놓았던 상태였습니다. 단 한 푼도 투자하지 않았던 그는 이제 제재소와 바닥재 사업 자체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현지 사업과 제재소, 벌목장과 관련 허가, 기자재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한다는 각서와 정관 변경을 위한 위임장을 써주지 않으면 감독관의 신상에 심각한 변화가 올 것이라는 협박을 해 온 것입니다.

 

감독관이랑 연락 안되지? 네가 여기 와도 상황은 마찬가지야. 내가 말하는 데로 하지 않으면 감독관은 영원히 자카르타나 수라바야로 못 돌아갈 지도 몰라. 정글이 얼마나 위험한 곳이냐? 계곡에 발 잘못 디뎌 굴러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는 게 목재사업이야. 각서랑 위임장 가져 오지 않을 거면 끈다리 와도 소용없다.”

 

이게 무슨 개소립니까? 아미르가 돼먹지 못한 인간이라는 것은 이미 첫 출장에서 알아 봤지만 자기가 무슨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이라도 된 듯 감독관을 인질로 잡아 놓고 몸값으로 제재소와 사업전체를 독식하려까지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인질범을 잡아 주어도 시원치 않을 현직 짜맛, 고위 공무원으로서 말입니다.

 

 

승진을 계속해 부빠띠 수석 비서가 되어 있던  아미르

 

 

그것은 릴리로서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릴리는 다음 날 새벽 끈다리로 날아갔고 나 역시 그날 오후 비행기를 탔지만 끈다리의 상황은 좋지 못했습니다. 아미르는 전화를 받지도 않았고 찾을 수도 없었어요. 릴리의 둘째 오빠 누딘은 곤혼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어떤 적극적인 도움도 주지 않았습니다. 더욱 답답했던 것은 우리 일을 봐 주어야 하는 릴리의 막내오빠 리리 역시 행방을 알 수 없다는 점이었어요. 릴리의 아버지가 없는 끈다리는 마치 적진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도저히 받아 들일 수는 없었지만 상황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미르가 틀어쥐고 있는 아버지의 유산을 나누어 받는 조건으로 릴리의 오빠들은 막내 여동생과 내 사업을 팔아 넘겼던 것입니다. 교육 공무원이었던 둘째 누나 네르틴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 발 뒤로 물러나 있었습니다. 남편 루슬란이 릴리에게 2억 루피아 정도를 빌려 준 상태였는데 말입니다. 아미르와 네르틴 사이에도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아미르는 루슬란에게 릴리의 빚을 대신 갚아 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미르는 결국 그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루슬란은 릴리에게 빚독촉을 해 오지요. 그 빚을 다 청산하기까지 그 후 릴리는 3년간 바닥을 박박 기어야만 했습니다.

 

오직 릴리의 어머니와 큰 누나 티나가 적극적으로 릴리를 도와 아미르와 리리를 수소문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끈다리는 이미 아미르의 아성이었고 우린 그에게 점점 말려 갔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미 사흘 이상 연락이 끊긴 상태에서 그를 찾는 수라바야의 요한과 감독관 가족들의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어요. 그 때 정말 겁났던 것은 감독관이 이미 죽은 것이나 아닐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시간을 좀 줘요. 내가 해결할게요. 아미르는 당신이 있으면 날 만나 주지 않겠대요.”

 

천신만고 끝에 릴리와 연락이 닿은 아미르는 나를 기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 속에 들끓었어요.

 

릴리. 경찰을 부르는 게 나을지 몰라. 납치, 협박…, 이건 중대한 범죄야.”

미스터르. 여긴 끈다리에요. 아미르는 여기선 뭐든 맘대로 할 수 있어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고요. 아미르가 일을 이렇게까지 벌려 놓은 걸 보면 경찰도 우리 편이라는 보장이 없어요.”

그럼 아미르 상관에게라도 찾아 가서 사정해 보자. 부빠띠(Bupati = 군수)라도 만나서 사정 얘기를 하면 뭔가 방법이 있을 지 몰라. 현직 짜맛이 사람을 납치해서 죽이겠다고 협박한다는 게 말이 되는 얘기야?”

하더라도 내가 할게요. 그러니 미스터르는 일단 자카르타로 돌아가요.”

 

인도네시아는 그런 무법천지였습니다.

속이 터질 것 같았지만 내 분을 풀겠다고 지금 어떤 상태에 있을지도 모를 감독관을 더 이상 사지로 내몰 수도 없었습니다. 만약 우리 일 때문에 끈다리로 파견한 감독관이 정말 영원히 행방불명 되거나 어디서 변사체로 발견되고 아미르는 자긴 모르는 일이라고 오리발 내밀면 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어 갈 지도 판단할 수 없었어요 경찰들은 고위 공무원인 아미르보다 어쩌면 피해자이자 외국인인 내게 돈을 뜯으려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고는 릴리에게 뒷일을 맡기고 자카르타로 돌아가는 것뿐이었어요. 어차피 내가 있어도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데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 이런 상황 때문에 릴리는 그 후 한동안 아미르와 짜고 일을 벌인 한통속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게 됩니다. 상황이야 어쨌든 아미르도 릴리의 가족인데 아버지 상을 치르고 또 결혼을 치른 끈다리에서 이번엔 큰 오빠, 그것도 현직 짜맛을 경찰에 고발하면서 돈 문제, 납치 협박 문제를 온 세상이 다 알게 하고 싶지 않았던 릴리는 가능한한 조용히 일을 처리하려 했습니다. 그런 릴리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쪽이 굽히지 않는 한 이 문제는 이미 조용히 끝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우린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어요. 모든 것을 털어 부은 끈다리의 제재소와 벌목장까지 날리고 나면 우린 돈도 시간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마지막 희망마저 남지 않는 최악의 상태가 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월급을 주던 감독관을 돈 때문에 희생시킬 수도 없는 일이었어요. 릴리의 말대로 아미르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었고요. 

머리 속이 복잡해 지면서 사람이 이러다가 미치는 거구나….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결국 난 다음 날 여전히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을 억누르며 아침 비행기로 끈다리를 떠났고 내가 자카르타에 도착하던 저녁 무렵, 상황은 이미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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