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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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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군목들이 가는 길

beautician 2021. 10. 13. 11:00

군목

 

형은 공군 방첩부대 출신입니다. 정확한 부대명은 기억나지 않지만 북파공작원을 교육시키던 곳이었다고 하는데 형이 군시절에 머리를 기르고 휴가를 나와서도 민간에 위세를 부리는 걸 보면서 정보대 비슷한 부대였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전역한 후에도 한번 지하철역에서 차표를 끊지 않고 전철을 타겠다며 역무원과 싸우는 모습에 군이 사람 하나 완전히 버려 놨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형도 지금은 매우 선량한 시민입니다.

 

나는 일반 보병부대나 공수부대로 빠질 확률이 99%였는데 임관 전 생각지도 않았던 신의 변덕으로 학군단을 찾아온 선배에게 찍혀 훈련소 이후 제3땅굴과 도라전망대를 관리하는 부대에서 소대장 겸 안내장교로 근무했습니다. 학교에서 충분히 익히지 못한 영어를 원없이 실전에서 연습하고 일본어도 배우던 시간이었습니다. 그토록 거부감이 들고, 심지어 한동안은 악몽으로 등장하기도 했던 군 복부시절이 지금은 가장 정겹던 시기로 기억됩니다.

 

동생이 신학교에 가게 된 건 처음엔 분명 사고처럼 보였는데 이후 아버지 도움으로 목사안수를 조금 빨리 받아 군목 중위로 임관하면서 군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30년쯤 지나 동생은 육군군종목사단장을 지난 9월 초에 마쳤고 이젠 마지막 보직인 국방부 군종정책과장을 하고 있습니다. 내 동기들 중 마지막까지 군에 남았던 친구가 작년 초 별 둘을 달고 전역하면서 우린 군과 관련해서는 집단적으로 완전히 한 시대를 마감했는데 그런 시대의 마감이 동생에게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금 대령을 달고 있는 동생은 어쩌면 올해, 아니면 내년 초에는 군복을 벗고 민간인이 될 것입니다.

 

절대 개척교회는 하지 말라고 조언해 주었지만 아마 그런 걱정은 필요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한국전쟁 직후 신학교를 마치고 전도사를 하다가 때려치운 아버지가 1980년 대에 뒤늦게 목사안수를 받아 힘겹게 개척교회를 꾸려가면서 개고생한 것을 나만 본 게 아니었으니까요. 삼형제 중 둘은 사탄, 하나는 군목으로 컸으니 아버지 인생은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난 형이 사탄의 탈을 쓴 천사가 아닐까 가끔 의심하고 있긴 합니다.

 

그래서 집안의 두 목사님들은 교주스러운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고 다니는 내가 좀 부담스러울 지 모르나 딱히 대놓고 뭐라 하진 않습니다. 개싸움은 피하겠다는 거죠.

 

동생은 우리 중 가장 높은 계급을 달고 전역하지만 어찌 보면 이제 퇴직금을 잔뜩 받고 나와 사기꾼이 군침 흘리며 주변에 꼬이는 나이 많은 사회초년생이 되는 셈입니다. 옛날 청소년 시절 군목 중에 장영출 목사라는 걸출한 부흥사가 있었는데 동생은 그 정도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일요일마다 열 군데 넘는 교회를 돌며 설교하는 인기있는 목사님이라 하더군요. 유튜브에도 설교하는 동영상이 몇 개 올라 있습니다. 특전사 군목을 하던 시절엔 정기 강하훈련 때마다 첫 비행기에서 축복기도를 하고 제일 먼저 비행기에서 뛰어내렸다고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교회보다는 신학자가 되길 기대하지만 곧 사회에 나올 동생이 어떤 갈을 걸을 지 사뭇 기대됩니다.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육군군종목사단장에서 물러나는 배 군목 대령  

 

 

2021.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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