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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ep7. 안전거리 양프로에게 정산을 약속한 2월말이 되었습니다. 빡빡하게 돌아가는 자금상황 속에서 매달 고정비용 외에 추가로 양프로에게 돌려 줄 1만불을 더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조금 무리한 끝에 약속한 까지1만불에서 약 300불 빠지는 상당의 루피아화를 ATM 카드를 통해 양프로의 구좌로 계좌이체 하고 마지막 수익분배할 금액도 정산내역서와 함께 따로 봉투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미용시장엔 수금해야 할 외상들이 지천에 깔려 있었지만 아직 현금화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당장은 지갑과 통장을 통틀어 모든 현금을 한 푼도 남김없이 박박 긁어 모은 결과였습니다. 그러고서도 300불 차액을 남겼다는 것이 역시 못내 아쉬웠지만 어쨋든 최선을 다한 결과였습니다. 난 송금 내역을 우선 문자 메시지로 통지하고 ..
ep6. 어려울 때 친구 교민사회 역사의 많은 부분이 이루어지는 곳이 교회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특정 신앙이라는 주관적인 부분을 차치하면 빈부와 업종을 초월한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을 비교적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이 교회이기에 운이 좋으면 기대했던 것 이상의 다양한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재수 없으면 조리용 도마에 올라 토막토막 다듬어져 권사들과 여신도들 송곳니에 찔리고 어금니에 씹히기도 하는 곳이지요. 양프로도 절대 나가지 않을 것 같던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부인 손에 이끌려 나갔을 것이 틀림없는 그가 교회 체육위원 감투까지 쓴 것은 자신의 골프레슨사업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기대했던 것이라 이해하지만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카르타에 도착한 이후 적진에 ..
ep5. 도어락 그러나 정작 문제는 최사장 자신에게도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중산층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인도네시아에 날아와 사업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은 자신의 경제적 지위가 현지에서 갑자기 격상되는 것에 스스로 놀랍니다. 대개 인도네시아에서 외국인이라면 무조건 부자 취급을 해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당시 한국화폐는 현지의 싼 물가와 저렴한 인건비 환경에서 위력을 발휘했지요. 그래서 자칫 잘못 생각하는 순간 운전사, 가정부도 필요 이상으로 각각 두 명씩 들이고 수스터(Suster)라 부르는 보모도 둘, 거기에 집에서 쓰는 비서까지 따로 채용하기도 하고 그 생활에 중독되면 집사와 정원사까지 두고 영화 속 대저택의 영주 같은 생활을 완성해 가지요. 최사장이 그런 상태였어요. 그는 절대 자신의 것..
ep4. 뒤통수의 심리학 거기에 최사장 동생이 뛰어 들면서 문제가 불거집니다. 최사장에 따르면 알코올중독 치료까지 받았지만 아직 그 버릇을 완전히 고치지 못했다는 동생이 납 원석사업의 현장업무를 맡아 김부장과 마나도 출신 여직원들을 데리고 서부자바의 말링핑, 바야, 자싱아, 수카부미 등지로 1~2주씩 출장을 나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현지 불법채굴업자들로부터 원석을 구매해 북부자카르타 찔린찡 지역에 있는 한 컨테이너 하치장에 모아 수출하는 데 성공하죠. 그러나 순도 40% 이상이라고 장담했던 200톤의 원석은 그 순도대로라면 납 80톤이 나와야 했지만 실제로는 불과 2~3톤도 제련해 낼 수 없는 형편없는 쓰레기였음이 한국에 도착한 후 밝혀집니다. 그냥 짱돌들이었던 거에요. 그 사건으로 구..
ep3. 불법체류 내가 입주한 최사장의 끌라빠가딩 사무실은 루꼬(Ruko)라고 부르는 주상복합 4층짜리 소형 유닛 두 개를 튼 4층짜리 건물의 2층이었습니다. 그 당시 북부자카르타의 중심지인 끌라빠가딩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어요. 자카르타 고급 몰 순위에도 들지도 못하던 작고 허름한 끌라빠가딩 몰은 증축을 거듭하면서 이제 자못 화려한 위용을 자랑하게 되었고 지역 전체에 건축붐이 일면서 수많은 아파트들과 루꼬, 상업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좀 더 나중의 일이지만 기존의 창고형 할인매장인 마크로(MAKRO)도 2010년 롯데마트가 인수하여 새롭게 리모델링한 모습으로 문을 열었고 끌라빠가딩은 이제 자카르타 전역에서도 내로라 하는 노른자위 상권으로 떠오른 지 오래입니다. 내가 입주한 루꼬 단지는 이..
ep2. 연봉 50억 “아, 나 여기 말링핑에 와 있는데요. 지난 주까지 킬로그램당 1,200 루피아 하던 납 원석을 3,000 루피아 달라고 하는데 얘기 좀 해 주세요. 도대체 가격이 비싸진 이유가 뭐고, 얼마까지 주면 팔겠냐고요.” 전화를 걸어온 최사장은 빠른 말투로 이렇게 말하고는 대뜸 현지인을 바꿔 주곤 하는 겁니다. 그 시간도 대중없어 아침식사 전에도 전화가 걸려오고 한참 미팅 중일 때에도, 지인들 골프모임에서 드라이버를 막 휘두르려는 찰나에도 핸드폰이 울곤 했습니다. 최사장은 저녁식사 자리를 종종 만들었는데 예고도 없이 자기 사업 파트너라는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나와 내가 자기 일을 봐주는 것처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다급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또한 악의나 고의가 없었다 하더라도 나로서..
1. 파산 이후 다양한 스펙트럼의 업종과 사업현장들을 돌고 돌다가 디자인 회사 봐주던 일을 막 그만 두게 되었을 때 나는 다른 사람의 사업이나 봐주는 바보짓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정말로 다짐하고 있었습니다. 달리 먹고 살 방법이 없다면 어떤 일이든, 그 대가가 얼마이든,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래서 파산 후 반둥공장 꼬린 가멘타마에 헐값으로 팔려 갈 뻔 했던 것도, 박치기 대마왕이 지배하던 빠룽의 봉제공장에서 자존심의 시련을 겪어야 했던 것도, 골프샵에서 사장 첩의 집사 노릇까지 감수해야 했던 것도 그 만큼 절박했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그런 막다른 골목에서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은 그 뒤끝이 한결같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디자인 회사의 운영을 맡게 될 즈음의 상황은 분명 달라지기 시작했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