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인도네시안 드림 (7) 본문
ep7. 안전거리
양프로에게 정산을 약속한 2월말이 되었습니다. 빡빡하게 돌아가는 자금상황 속에서 매달 고정비용 외에 추가로 양프로에게 돌려 줄 1만불을 더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조금 무리한 끝에 약속한 까지1만불에서 약 300불 빠지는 상당의 루피아화를 ATM 카드를 통해 양프로의 구좌로 계좌이체 하고 마지막 수익분배할 금액도 정산내역서와 함께 따로 봉투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미용시장엔 수금해야 할 외상들이 지천에 깔려 있었지만 아직 현금화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당장은 지갑과 통장을 통틀어 모든 현금을 한 푼도 남김없이 박박 긁어 모은 결과였습니다. 그러고서도 300불 차액을 남겼다는 것이 역시 못내 아쉬웠지만 어쨋든 최선을 다한 결과였습니다. 난 송금 내역을 우선 문자 메시지로 통지하고 나서 수익금 정산봉투를 들고 양프로의 골프연습장을 찾아 갔습니다.
“잔액이 생겨서 미안해요. 작은 차액 때문에 약속한 날짜를 늦추고 싶지 않았어요. 일단…, 이건 송금증빙이고 이전 이번 달 마지막 이익정산이에요.” 봉투를 받는 양프로가 사뭇 냉랭한 시선을 하고 있어 난 흠칫 놀랐습니다.
“나머지 빚은 언제 갚을 건데요?”
그때의 그 단어, 그 말투, 그 눈초리를 양프로 스스로 기억하고 있을까요? 난 죽어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때 그의 말은 비수처럼 내 가슴에 꽂혔습니다. 모든 것이 화기애애하게 마무리 될 것이라 믿고 연습장까지 찾아와 양프로에게 그 봉투를 건네 주려 했던 내가 너무 순진했거나 경솔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적잖은 한국사람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던 그 연습장에서 난 그에게 돈을 빌렸다가 제때 갚지 못해 닦달 당하는 사람 같은 보였을 테니까요.
그의 1만불을 맡은 이후 그 날까지 2년 동안 김프로에게 나누어준 수익금은 약 1억 2천만 루피아 남짓, 당시 환율로 미화 14,000불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원금도 고스란히 돌려 주었죠. 결국 난 원금을 날리지 않고 수익금도 나누어 주겠다는 약속을 철저히 지켰는데 양프로는 로또 당첨액 수준의 수익배당을 기대했던 건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 것이 매듭지어지는 시점에서 그는 내가 양해를 구한300불의 차액에 ‘빚’이라는 단어까지 동원하며 다그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양프로는 그때 그것으로 나와의 인연이 다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예의를 지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연습장에서 돌아 나오는 심정이 참담했습니다.
이틀 후 잔액 300불 상당금액을 추가로 이체한 후 양프로에게 전화를 걸기 전 나는 마음을 가다듬어야 했습니다. 양프로는 자카르타에 도착한 후 많은 사람들에게 줄곧 당하기만 하며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아마도 그런 정신적 외상으로 인해 수익금 배당은 물론 원금까지 모두 돌려 받았다는 객관적인 사실에도 불구하고 양프로는 내가 자신에게 어떤 식으로든 피해를 주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에게 피해를 주었던 석사장 등 여러 악당들의 이름이 올라 있는 블랙리스트에 그가 내 이름을 함께 올린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었어요.
“양프로, 나 딱 한 가지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뭔데요? 지금 바쁜데 나중에 얘기하면 안돼요?”
“지금 꼭 얘기해야 돼.” 레슨시간도 아닌 듯 했으나 양프로는 내 전화를 빨리 끊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이게 마지막 통화가 된다면 꼭 해야 할 말이 있었습니다.
“양프로 진심을 알고 싶어요. 지금까지 양프로한테 사기치고 피 빨아 먹은 사람들 많았잖아? 나도 당신 피 빨아 먹은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냐고, 몇년을 함께 지냈으면서 그렇게도 날 모르시냐고, 양프로가 그렇게 대답하리라 기대했습니다. 진심이 아니더라도 예의상 그렇게 말해 줄 수도 있는 것이죠. 그러나 양프로는 전혀 예상치 않았던 대답을 합니다.
“그건 지금 뭐라고 말씀드릴 수 없네요.”
지금까지도 내 귓전에 맴도는 그 대답을 이번에도 양프로는 벌써 잊었을 지 모릅니다. 즉답을 피할 수 있는 표현은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Yes 인지 No 인지를 교묘하게 뭉뚱그리는 방법도 많고요. 하지만 양프로의 그 대답은 분명 Yes 쪽에 가까웠습니다. 네가 정말 나쁜 놈인지 아닌지 좀 더 생각해 봐야 알 것 같아…. 이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렇다면 난 차라리 더욱 명명백백한 대답을 듣고 싶었습니다.
“양프로, 이건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 지금 분명히 대답해 줬으면 좋겠어. 난 내 책임을 다했고 마지막 한 푼까지 다 보냈어요. 그게 맡긴 돈이든 빚이든 상관없어. 아무튼 돈 문제는 다 끝났어요. 돈 때문에 그 동안 해야 할 말을 못한 게 있다면 이젠 다 해도 돼요. 분명히 대답해 봐요. 양프로 주변 사람들이 말하고 다니는 것처럼 나도 양프로 등친 사기꾼인 거에요?”
또 다시 침묵이 흐릅니다. 양프로도 생각이 많았겠죠. 그게 우리들의 마지막 통화가 될 것임을 서로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넌 내 돈으로 사업해 번 돈으로 아파트 넓혀 이사온 거잖아? 나한테 덜 나눠 주려고 장난친 게 틀림없지? 그러니 내가 네 욕 하고 다니는 거 당연한 일이잖아? 내가 그 동안 사람들한테 그렇게 당하는 걸 봐 왔으면서 너도 내 등을 쳐? 양프로는 그런 말을 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긴 침묵 끝에 또 예상 밖의 대답을 합니다.
“어…, 아니죠.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 동안 배사장님 도움 많이 받았어요.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음....그럼 됐어요.”
전화를 끊으면서 두 번째 질문은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게 나았을 거리고 후회했습니다. 그런 대답을 강요한 셈이었으니까요. 엎드려 절 받은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건 지금 뭐라고 말씀드릴 수 없네요… 라고 했던 부분이 바로 양프로의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나는 며칠 동안 허탈하기 그지 없는 심정을 다스리기 어려웠습니다. 어쩌면 그런 전화를 하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험한 말로 서로를 만신창이로 만들면서 끝내는 것보다는 분명 백배 나은 결말이었지만 그 전화통화를 통해 우린 서로의 마음을 읽었고 그래서 서로를 마음으로부터 잃었습니다. 그와 함께 했던 지난 3년의 시간 역시 아무 의미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정말 환멸을 느끼게 되는 부분은 누군가를 돕는다는 게 늘 이런 식으로 끝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어요. 어쩌면 형제간에도 돈은 빌리지도 빌려주지도 말라던 옛 성현들의 말씀처럼 양프로와 나 사이의 관계에 그 1만불이라는 돈이 끼어든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돕는 대상은 매번 다른데 결과가 항상 같다는 것은 돕는 행위 자체가 잘못 되었거나 돕는 주체인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나 자신이 틀렸고 내 방법이 틀렸을 거라는 생각은 자괴감이 되어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습니다.
“다 잘된 거에요. 누가 배사장 우습게 여기는 게 싫었는데 양프로랑도 그렇게 정리한 거 잘 한 겁니다.”
식당에서 싱글벙글 웃으면서 술잔을 권하는 최사장의 말에 애써 내색하진 않았지만 오히려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당분간 누구도 양프로 이름을 내 앞에서 꺼내는 것을 듣기 싫었던 것입니다. 특히 최사장은 지난 2~3개월 간 늘 양프로를 비난하고 욕했지요. 그가 더 이상 양프로를 욕하는 것도 싫었습니다.
“배사장이 양프로한테 그 돈 마련해 돌려 준다고 그 동안 애쓴 걸 모르는 바 아니라서 말도 꺼내지 못했지만 이젠 또 우리 일 좀 도와 주셔야죠. 지난 번에 내 동생이랑 김부장이 현지에서 개판 죽이는 바람에 일이 좀 잘못되었는데 내가 직접 나섰지만 말이 안통해서 여간 고생이 아니에요. 뭐, 머리도 식히고 바다 바람도 쐴 겸 말링핑으로 드라이브 한 번 가시죠.”
그 와중에서도 최사장은 나를 자신의 납 원석사업에 더욱 깊숙이 끌어 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떠올려 보았습니다. 내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일을 돕고 있는 이 최사장과도 나중엔 어떤 모습으로 헤어지게 될 것지를요. 선의로 만난 사람들이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방법은 적당한 안전거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언젠가부터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양프로와는 그 안전거리를 넘어 서로 너무 접근해 버렸기 때문에 관계가 깨질 때 더 큰 상처를 받게 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최사장과도 그 안전거리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안전거리를 무시하고 계속 접근해 왔으므로 언젠가 파국을 맞게 될 때 또 다시 깊은 상처를 받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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