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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안 드림

인도네시안 드림 (4)

beautician 2022. 2. 10. 11:46

 

ep4. 뒤통수의 심리학

 

납 광석

 

거기에 최사장 동생이 뛰어 들면서 문제가 불거집니다. 최사장에 따르면 알코올중독 치료까지 받았지만 아직 그 버릇을 완전히 고치지 못했다는 동생이 납 원석사업의 현장업무를 맡아 김부장과 마나도 출신 여직원들을 데리고 서부자바의 말링핑, 바야, 자싱아, 수카부미 등지로 1~2주씩 출장을 나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현지 불법채굴업자들로부터 원석을 구매해 북부자카르타 찔린찡 지역에 있는 한 컨테이너 하치장에 모아 수출하는 데 성공하죠. 그러나 순도 40% 이상이라고 장담했던 200톤의 원석은 그 순도대로라면 납 80톤이 나와야 했지만 실제로는 불과 2~3톤도 제련해 낼 수 없는 형편없는 쓰레기였음이 한국에 도착한 후 밝혀집니다. 그냥 짱돌들이었던 거에요.  그 사건으로 구매비만 한화로 2억, 엄청나게 초과 지출된 출장비를 포함해 운송비 등 관련 경비를 모두 계산하면 4억쯤 되는 돈이 한 순간에 증발해 버리고 맙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당시 비철금속가격이 하늘을 찌를 당시 원석사업에 뛰어 들었던 부지기수의 교민들과 투자자들이 한결같이 경험했던 일입니다. 좋은 원석들이 들어 있는 포대를 보여주고 돈을 받은 후 실제로는 준비해 둔 쓰레기포대들만 실어 주기도 하고 아예 포대를 채울 때부터 맨 위에는 좋은 원석을 올려 놓고 포대 밑은 짱돌들을 채워 넣어 눈속임을 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철저한 검품 끝에 순도 좋은 원석포대만 실은 트럭을 출발시키더라도 중간에 쓰레기 짱돌을 실은 트럭과 바꿔치기 하기도 하고요. 이런 것들이 현지업자들이 뜨내기 구매자들을 대하는 일반적인 방식이었는데 국적을 불문하고 한국, 중국, 인디아 등에서 돌을 사러 온, 소위 전문가라 자부하는 사람들까지도 현지인들의 이런 농간에 놀아났습니다.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직접 광권을 사서 채굴하려는 이유엔 이런 장난에 놀아나지 않겠다는 의지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겠죠.

 

최사장 동생은 전문가도 아니었는데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좋다는 호텔에 방을 잡고 하루 종일 만취한 상태였으므로 터질 듯 현금이 들어 있는 돈가방은 김부장이 마나도 여직원들과 들고 나가 원석구매를 다녔으니 더욱 놀아나기 쉬운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그 마나도 출신 직원이라는 사람들도 전부 김부장의 처제와 그 친구들이었어요. 돈가방을 든 김부장을 감시하고 견제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중에 한국에 도착한 원석의 충격적인 검사결과를 받고 투자자들의 추궁이 시작되자 동생은 별다른 고민도 없이 나 몰라라 며칠간 술만 마시다가 어느 날 밤 야반도주하여 종적을 감춰 버립니다.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최사장이 직접 현지업자들을 접촉하면서 그간 세 살 박이 현지아이들도 익히 알고 있던 동생의 음주 행각을 알게 되고 그런 동생을 호텔에 두고 구매를 진행했던 김부장이 실제 원석 값보다 영수증 금액을 부풀려 차액을 착복했다는 정황과 일부 증거를 확보했다고 합니다. 경제적으로 절박한 사람에게 수십억 루피아가 든 현금가방을 맡겼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었죠. 발릭빠빤의 실리카 광산을 만들 때 황사장을 통해 퍼부었던 투자자들의 돈 30억원이 다른 곳으로 줄줄 새어버렸던 사고로부터 최사장은 아무런 학습도 하지 못한 것입니다.

 

“김부장이랑 동생이 서로 상대편 잘못이라고 미루고 있으니…, 저 놈들을 믿고 돈을 맡긴 내가 잘못이지요…”

 

비슷한 상황에서 현지인들과 관리자들을 욕하는 투자자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직원을 채용한다는 것, 특히 인도네시아에서 사람을 쓴다는 것은 현지 사업환경의 특성상, 대개의 경우 불법의 바다 위에 놓인 벼랑에서 좁디 좁은 외나무 다리에 그 사람을 올려 놓고 건너편 벼랑의 사과를 따오라고 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 외나무 다리를 타는 법을 알려 주고, 중심을 잡고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하며 때로는 자세를 교정해 줘야 하는 것이 고용주나 관리자의 의무인 것이고 그 의무를 소홀히 해 외나무 다리 위의 직원이 불법의 바다 위로 추락하고 만다면 그 직원에게 묻을 책임과 같은 정도의 책임을 고용주 스스로에게 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관리가 그만큼 중요하지 않다면 대기업 본사에 인사과, 경리부, 업무부, 외환과, 법제부, 기획실 같은 비대한 관리팀을 운용하고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죠. 중소기업이나 영세기업의 경우 그 규모가 작은 만큼 앞서 열거한 관리팀들의 일을 사장이나 한 줌의 관리자집단이 도맡아야 하는 것이고 그만큼 더욱 철저히 관리해야 하는 것이었으므로 알코올중독 동생과 불법체류자 출신 김부장에게 별도의 안전장치 없이 무작정 돈가방을 맡긴 최사장에게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최사장의 그런 하소연은 내 치기 어린 정의감에 또 기름을 부었는데 그런 얘기를 들어서인지 매일 사무실에서 얼굴을 마주치는 김부장의 행동은 더욱 실망스러워 보였습니다. 외근 없는 날이면 그는 거의 매일 점심 때쯤 나가 오후 3~4시에 돌아오곤 했어요. 그것이 업무상의 외출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실제로는 인근 사우나를 다녀 오는 것이었습니다. 굳이 정상적인 기업윤리를 따지지 않더라도 최소한 최사장, 즉 윗사람이 출근해 있었다면 김부장이 오후 시간 대부분을 사우나에서 떼우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죠. 그것도 자신이 직접 진행했던 일로 인해 회사가 4억원의 손해를 본 상황에서 말입니다. 또한 그는 내가 엿들을 새라 내방한 원석업자들과는 물론 자기 직원과도 늘 소곤거렸으므로 뭔가 비밀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 둘 일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김부장이 소개한 현지인들 이름을 빌려 설립한 회사의 정관을 수정해 명의를 바꾸는 과정에서 첫 번 째 문제가 발견되었어요.

 

명의를 빌려 준 대가로 두 명의 현지인에게 매월 일인당 300만 루피아(한화 30만원 쯤)씩 급여가 나가고 있었는데. 이런 비용조차 줄이고자 그들의 이름을 정관에서 빼고 보다 저렴한 조건의 명의자로 바꾸려는 중이었어요. 김부장은 그 두 명과 모두지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보고했고 몇 주 째 아무런 진전이 없자 결국 최사장은 나에게 이 일의 진행을 부탁해 왔어요. 그래서 당시 막 뽑은 내 직원들을 통해 명의인들을 수소문한지 반나절도 안되어 그들과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촌에 살고 있던 그들은 처음 명의를 빌려줄 당시 차비성격으로 몇십만 루피아를 받은 것 말고는 회사 돈을 구경한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명의 임대에 대한 사례는 그때 그것으로 이미 끝났던 것입니다. 최사장은 당연히 노발대발 했고 그 두 명에게 반년 넘게 지출된 월 600만 루피아의 행방을 물었지만 김부장은 정색을 하며 그 돈을 매달 이상없이 전달했다고 강변했습니다. 그가 몇 주 동안 찾아도 연락조차 할 수 없었고 은행구좌 하나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그는 명의인들이 내게 거짓말 했다고 펄펄 뛰었으므로 최사장은 그들을 사무실로 불러 들여 대질하자고 했지만 김부장은 또다시 미적거리며 몇 달을 끌다가 끝내 불러 들이지 않고 흐지부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커먼웰스 은행 인도네시아가 ATM 현금인출기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2017년의 일이다

 

문제는 비단 김부장만이 아니었습니다. 두 명의 여직원도 뭔가 이상한 구석이 있었어요. 천문학적 금액을 즐겨 언급하던 최사장도 실리카 광산 실패와 말링핑 납원석 구매실패 등을 경험하면서 이제 쪼들리기 시작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호주유학 중이던 전처소생 아이들 학비와 생활비 송금을 위해 커먼웰스은행에 개설해 놓은 구좌에서 개설 당시 디파짓(deposit)으로 넣어둔 200만 루피아(약 20만원)마저 인출하려 했는데 그 디파짓 때문에도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당시 최사장이 아직 주재비자를 받지 못한 상태여서 그 호주달러 구좌는 최사장의 예전 운전사 사트리아(Satria)라는 사람 명의로 개설되어 있었습니다. 이 인간은 이 문제가 터질 당시 자싱아 지역 어디에선가 원시적인 방법으로 광석을 녹여 납괴를 만드는 일에 간여하고 있었는데 당시엔 스스로를 투자자라고 하는 것을 보면 최사장이 30억원을 흩뿌리던 당시 나름대로 콩고물을 챙겼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개설 당시 입금한 디파짓 200만 루피아는 해당 은행 내규로 정해진 최소 초기입금액이었고 김부장의 마나도 출신 여직원 이까(Ika)와 엔젤(Angel)은 6개월이 지나야만 그 금액을 인출할 수 있다고 최사장에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BCA, BNI 같은 현지 시중 은행들도 같은 형태의 초기입금액을 책정해 놓고 있긴 하지만 불과 50만 루피아 정도 규모이고 구좌개설이 되면 그 즉시 그 초기입금액을 인출할 수 있었지요. 아무리 외국계 은행이라지만 정기예금도 아닌 고객의 돈을 무작정 6개월씩 묶어 놓는 고압적인 규정을 만들어 놓았다는 게 좀 이상했는데 좀 알아 봐 달라고 최사장이 이번에도 나에게 부탁해 왔습니다.

 

물론 첫 수순은 이까와 엔젤에게 상황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은 자기들이 이미 다 확인했으니 나까지 나설 필요가 없다며 정색을 하고 필사적으로 앞을 가로막았죠. 이러면 더 확인하고 싶어집니다. 수상했으니까요. 한번 테스트라도 해 볼 테니 ATM 카드를 달라고 하자 이 친구들은 ATM 카드를 사트리아가 가지고 있다고 대답합니다. 그만 둔 운전사가 최사장의 ATM 카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궁금증은 전화 한 통화면 해결되는 것들입니다. 아무리 인도네시아라지만 그 정도는 되는 나라입니다.

 

“200만 루피아는 구좌개설 다음날 전액 인출되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은행은 ATM 카드를 지급하지 않아요. 저희  인도네시아 지점에는 아직 ATM 시스템이 도입되어 있지 않거든요.”

 

은행의 대답은 허를 찔렀어요. 사트리아에게 전화를 걸자 그는 예의 유들유들한 말투로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합니다. 입금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통장을 이용한 현금인출은 계좌주인 본인만이 신분증을 제출해야만 가능하고 다른 사람을 시키려면 소정 양식의 위임장을 써 주어야만 하는데 말입니다. 이까와 엔젤도 시치미를 떼고 있는데 그렇다면 은행직원이 고작 200만 루피아를 가로채 먹겠다고 콩밥 먹을 각오로 거짓말을 한 걸까요? 절대 그럴 리 없지요.

 

커먼웰스 은행의 호주달러 구좌는 통장을 사용하지 않고 거래 내역을 매월 말 우편으로 보내주는 시스템입니다. 결국 그 우편물을 열어 보거나 은행에 직접 전화해 보지 않는 한 잔액은 확인할 수 없는 것이고 영어도 인도네시아도 되지 않는 최사장이 은행에 직접 가볼 리 없는 일이었죠. 정황상 이까, 엔젤, 사트리아가 짜고 200만 루피아를 인출해 나누어 가진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 돈이 최종적으로는 김부장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 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어요.  그 상황을 전해들은 최사장은 불같이 화를 냈지만 김부장은 이번에도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며 발뻼 했고 그의 마나도 직원들도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결국 돈은 사라졌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죠.

 

 

 

 

이런 일들을 처리해 주면서 이젠 김부장과 한 사무실을 써야 하는 내 입장도 많이 곤란해졌습니다. 그러다가 최사장으로부터 직원을 구해 달라는 얘기가 나온 것이었어요. 최사장은 조직 내에 김부장을 견제할 자기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채용하고서도 ‘자기 사람 한 명’이 따로 필요하다던 디자인회사 전사장이 떠올랐습니다. 직원들끼리 경쟁하고 감시하도록 만드는 건 모든 사주들의 속마음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상황이 정말 그렇다면 김부장에겐 매우 미안한 일이지만 기존 직원들을 전부 내보내고 새로 채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보였습니다. 이미 회사의 빈틈을 파고들어 사고치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또 다른 빈틈을 찾아낼 것이고 그 빈틈을 활용할 온갖 창의적인 방법들을 고안해 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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