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인도네시안 드림

인도네시안 드림 (2)

beautician 2022. 2. 8. 11:08

 

ep2. 연봉 50억

 

“아, 나 여기 말링핑에 와 있는데요. 지난 주까지 킬로그램당 1,200 루피아 하던 납 원석을 3,000 루피아 달라고 하는데 얘기 좀 해 주세요. 도대체 가격이 비싸진 이유가 뭐고, 얼마까지 주면 팔겠냐고요.”

 

전화를 걸어온 최사장은 빠른 말투로 이렇게 말하고는 대뜸 현지인을 바꿔 주곤 하는 겁니다. 그 시간도 대중없어 아침식사 전에도 전화가 걸려오고 한참 미팅 중일 때에도, 지인들 골프모임에서 드라이버를 막 휘두르려는 찰나에도 핸드폰이 울곤 했습니다. 최사장은 저녁식사 자리를 종종 만들었는데 예고도 없이 자기 사업 파트너라는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나와 내가 자기 일을 봐주는 것처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다급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또한 악의나 고의가 없었다 하더라도 나로서는 점점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러나 소개해 준 양프로를 봐서 대뜸 화를 낼 수는 없었습니다.

 

“최사장님, 상황도 모르는 사람한테 무작정 통역해 달라고 전화기 맡기시면 곤란하잖아요? 미리 약속을 잡으시면 하루나 이틀 정도 시간을 빼서 도와드릴 수는 있지만 매번 갑자기 그러시면 피차 곤란해요. 여기 황사장님이 그 동안 도와주셨다는데 황사장님께 부탁 드리면 인도네시아 말도 유창하시고 최사장님 사업상황도 잘 아시니 더 효과적으로 통역해 줄 수 있잖아요?”

 

끌라빠가딩의 또 다른 식당인 당시 해물촌 식당 2층에서 최사장이 지난 3년간 발릭빠빤 실리카 광산 건립을 도운 사람이라며 소개해 준 황사장 앞에서 내 고충을 털어 놓았습니다. 사람 좋은 인상의 황사장은 그저 허허 웃고 있을 뿐이었지만 최사장과 부인은 왠지 처음부터 불편한 기색이었죠. 황사장이 먼저 떠나고 굳이 2차를 하자며 가딩 바타비아 식당촌의 조이 카페(Joy Café)로 내 팔을 끌고 간 최사장 부부는 앞다투어 하소연을 시작했습니다.

 

“황사장 저 사람은 지금 니켈 한다고 바빠요. 게다가 우리 실리카광산도 자기 부인 이름으로 해 놔서 위세가 말도 아니라고요.”

 

두 사람 말대로라면 아까 인상 좋은 황사장은 인간 말종에 가까운 인물이었습니다. 황사장이 어떻게 인도네시아에 처음 흘러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최사장이 실리카사업을 시작하기 오래 전 처음 황사장을 소개받던 당시 그는 대통령궁 앞 모나스 광장에서 노숙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외국에서 노숙이라니….!  이 부분은 최사장의 뻥이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아직까지도 한국인이 인도네시아에서 노숙걸인이 되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아무튼 그의 처지를 불쌍히 여긴 최사장이 살 집과 차를 얻어 주었고 그 덕에 재기할 기회를 얻은 황사장은 상황이 호전되면서 피트리아(Fitria)라는 현지여인을 만나 결혼식도 올렸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시작해, 3년 전 최사장이 발리빠빤에 실리카 광산을 시작할 때부터 황사장은 발벗고 나서 통역과 각종 허가진행을 책임졌고 광산건설의 혁혁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 푼도 투자하지 않았지만 광산의 지분까지 나누어 받았죠. 현지인 명의의 사업체가 제반 허가를 더 빨리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실리카 광산은 황사장의 부인 피트리아의 명의로 등록되었고요.

 

그러나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습니다. 달랑 50헥타르의 광산 채굴허가를 받고 불과 1km 도 떨어지지 않은 강가에 바지선을 댈 제티를 만들고 컨베이어를 하나 놓은 것에 투입되었다는 한화 30억원은 당시 시세를 감안하면 누가 보아도 지나치게 투자였어요. 그리고 최사장을 만나기 전엔 날거지나 다름없었던 황사장은 실리카 광산과 제티가 완성될 즈음 발리빠빤에서 북쪽으로 조금 더 들어간 그로곳(Grogot) 지역 두 군데에 뜬금없이 니켈 광산 허가를 받아 독자적으로 투자유치를 시작한 것입니다. 황사장의 어깨엔 힘이 잔뜩 들어갔고 틈나는 대로 한국을 날아 다녔습니다. 게다가 최사장이 현지 관리를 위해 채용해 그간 황사장의 오른팔처럼 일하던 아살(Asal)이라는 현역 군인조차 갑자기 자기 명의로 회사를 하나 세우고 니켈 광산허가를 받아낸 상태였어요. 정황상 최사장이 한국 투자자들로부터 유치했다는 30억원은 실리카 광산에 투입되는 과정에서 줄줄 세어 온천지에 흩뿌려지면서 특히 황사장과 아살의 주머니만 불려주었다는 인상이었어요.

 

그리고 언젠가부터 황사장이 포스코의 법인카드를 들고 다니며 거들먹거리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물론 그가 그 법인카드를 누구에게서 어떤 경유로 획득하게 되었는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황사장과 그 부인 명의의 광산허가서들만 보고서 그를 인도네시아 광물자원의 유력한 공급선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던 모양입니다. 실제로 그날 해물촌에서의 저녁식사도 황사장이 카드로 결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더니 회사 허가서류는 피트리아가 몽땅 집에다 보관해 놓고 뭔가 하려고 할 때마다 자기가 사장이라도 된 듯 허가 받아라, 보고해라, 난리도 아니라고요. 실리카 대신 납 원석을 하려는 이유도 사실은 그거에요. 납은 황사장과 아무 관계가 없거든요.”

 

이런 얘기를 털어 놓는 최사장이 안됐다고 생각한 것도 사실입니다. 톤당 수십 불, 수백 불씩 하는 비철도 아니고 톤당 달랑 2불도 안되는 실리카를 하겠다며 3년에 광산을 걸쳐 만들어 놓자마자 수출규제에 걸려버린 최사장의 짧은 안목과, 비록 투자 받은 돈이 궁극적으로 남의 돈이라 해도 그 돈이 줄줄 세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방하지도 막지도 못한 관리능력, 그리고 투자자들의 돈과 이익을 지켜줘야 할 사람이 쉽게 배신당하고 사업주도권을 뺏기면서 어정쩡한 처지가 되어 가고 있던 그의 입장이 안쓰러웠던 것입니다.

 

대기업 지사원들처럼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본사에서 발령을 받은 사람들을 제외하고 뭔가 사업을 통해 성공해 보겠다며 인도네시아를 찾는 사람들은 ‘인도네시안 드림’이라 일컬을 만한 나름의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죠. 처음 자원개발 붐이 일기 시작할 당시 자카르타 교민들은 대략 다섯 명에 한 명 꼴로 그 첫 번 째 아이템이었던 석탄에 수년 동안 한 발씩 걸치면서 많이도 망가졌던 게 사실이고 이번엔 비철금속 가격이 폭등하면서 사람들 가슴에 빵빵하게 바람을 불어 넣고 있던 것이 2007년 초의 상황이었습니다. 망간이나 구리, 납, 니켈을 하겠다고 기염을 토하는 사람들을 주변에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던 시절, 최사장 역시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처한 곤란한 처지에 동조해 마음이 흔들리면 어느새 나 역시 그의 사업에 발목이, 아니, 무릎까지 잠겨 있게 될 것이 뻔했습니다.

 

하지만 최사장 부부에게 들은 얘기만으로도 황사장에 대해 치기 어린 정의감이 들끓어 올랐습니다. 이건 좋은 징조가 아닙니다. 세상은 정의감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인도네시아에서 지난 십 수 년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정의감=손해’ 라는 건 학계에서 인정하는 공식이거든요.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세상은 꼭 이성적으로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엇고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갈등의 클라이맥스가 조만간 꼭 닥쳐 오기 마련이죠. 그것을 어떻게 넘기느냐가 항상 관건입니다. 자칫 그 과정에서 만나는 어떤 사소한 계기가 급기야 인생의 방향을 틀어버리는 전환점이 되기도 하거든요.

 

 

“당신 정도 능력이라면 여기서 이런 일을 하고 있을 사람이 아닌데…”

 

이것도 어디서 많이 듣던 얘깁니다. 일견 내 능력을 높이 평가해 주는 듯한 이 말은 사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한없이 얕잡아 내려다 보고 있는 상대방의 마음을 대변하는 구절입니다. 비록 내가 성공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고 이제 막 그 깊고 깊었던 파산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와 아이들을 기어이 선진국 대학교육을 받게 하겠다는 목표를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경주하며 구슬땀을 흘리는 중이었는데 노숙자 출신이라는 황사장에게 그런 얘기를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지요. 그 날도 최사장이 황사장과 회동하던 자리에 뜬금없이 나를 불러 앉혔던 것인데 약속이 겹쳐 해물촌 1층과 2층을 오락가락하던 최사장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황사장이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알아요? 내가 포스코에서 받는 연봉이 1년에 50억이요.”

 

지난 번 황사장이 한국에 갔다가 자카르타 귀임이 예정보다 1주일 늦어진 이유가 비행기표 살 돈이 없었기 때문이란 얘기를 최사장에게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연봉 50억 받는 사람으로서는 정말 겪기 어려운 경험을 한 셈이 됩니다. 당시 웬만한 대기업 이사들도 당시 1~2억 정도의 연봉을 받던 시절. 황사장이 이미 상당히 술이 들어간 상태라는 건 이해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뻥은 정도껏 쳐야 한다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이자 국룰입니다.  사람 인상 변하는 게 순식간이에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사람 좋은 인상이라고 생각했던 그의 얼굴이 갑자기 음흉하게 일그러지는 듯 보였습니다.

 

“최사장은 속이 좁아서 배형, 당신을 담을 만한 그릇이 못 돼. 그런데 우리 포스코라면 얘기가 다르지. 어때요? 나한테 와서 포스코를 위해 함께 일해 봅시다.”

 

거의 술잔을 집어 던질 뻔 했습니다. 그는 포스코 법인카드를 흔들면서 마치 자신이 포스코의 중역이라도 된 것처럼 얘기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가 정말 포스코 중역이든 수위든, 아니면 뻥을 치고 돌아다니는 시장바닥 사기꾼이든 아무 상관도 없었어요. 최사장의 말대로라면 노숙의 수렁에서 건져 지금의 황사장을 있게 한 사람이 최사장이고 나를 그에게 소개해 준 것도 최사장인데 그것도 최사장이 마련한 술자리에서 최사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최사장을 폄하하면서 나에게 개수작을 걸어오는 황사장이 야비한 인간이라고 느껴졌던 것입니다..

 

“황사장님, 술 취한 김에 일부러 한번 그래 보시는 겁니까? 아니면 원래 그렇게 사람 간보십니까?” 그의 입가에서 돌연 미소가 사라졌습니다. “포스코에서 매년 꼬박꼬박 50억 받으시니 좋겠어요. 하지만 그 50억 짜리 포스코 그릇에 날 담으려 하지 마세요.”

 

이럴 때 쓰는 전문용어가 갑분싸.

어쩌면 황사장은 최고의 선의를 보이려 한 것인지 몰라도 최사장과의 그간 관계에도 불구하고 잠깐 자리를 비우자 저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일 리 없었습니다. 분위기 싸~해지는 이런 상황이 되면 그 다음 수순은 길길이 날뛰며 언쟁을 벌이거나 어느 한 쪽이 피할 때까지 서로 싸늘한 눈초리로 눈싸움을 하는 거죠. 2층에서 내려온 최사장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우리 두 사람이 서로 노려보고 있는 냉랭한 분위기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날 인상은 최사장이 지난 3년간 황사장에게 놀아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최사장이 뻥이 심하긴 해도 그의 얘기가 모두 거짓말일 리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그의 일을 도와줘야겠다고 마음먹기에 이릅니다. 동문회의 등산모임에도 초청하고 몇몇 친분 있는 대기업 지사장들을 소개해 주는 등 그에게 도움될 만한 사람들을 소개해주는 한편 며칠씩 시간을 빼서 발릭빠빤, 말링핑, 바야 같은 곳을 함께 다니며 상담통역 등 노력동원도 불사했지요. 그러던 중 어느 날 아침 황사장의 전화를 받게 됩니다.

 

“너 임마! 도대체 뭐 하는 놈이야? 이 개자식아! 보고서를 왜 함부러 써?”

이 인간이 날 보고 다짜고짜 개자식이랍니다.

“뭔 보고서…, 아니 그런데, 이 새끼가 아침부터 도대체 뭘 쳐먹고 이 지랄이야? 개새끼야!! 야, 너 어디아?”

 

잘들 모르시던데 나도 마음 먹으며 한 욕 하는 인간입니다. 내가 언성을 높이자 전화 건너편의 황사장보다 내 차 조수석에 타고 있던 최사장이 더 놀라는 눈치였어요. 사실 나도 군 시절 이후 처음으로 내 입에서 그렇게 찰진 욕설이 터져 나오는 것에 놀랐습니다. 내 기세에 식겁한 황사장이 허겁지겁 전화를 끊지 않았다면 난 그 날 충만한 필을 받아 욕으로 방언할 뻔 했습니다.

 

“지난 번 배사장님이 쓴 그 보고서, 황사장 부인이 봤대요.”

나중에 황사장과 따로 통화한 최사장이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무슨 보고서요?” 난 보고서를 쓴 일이 없었습니다.

“아, 그때 발릭빠빤 출장 갔다가 와서 써 준 출장일지를 내가 투자자들한테 이메일로 보냈거든.”

“황사장 부인이라면….피트리아가요? 피트리아가 한글도 읽습니까?”

“아니 피트리아 말고 한국에 본부인…”

“네에?”

 

모나스 광장에서 노숙했다는 사람에게 한국에서 공무원 생활하는 본부인과 다 큰 자녀들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황사장은 사실 한국에 출장가면 본부인 집에서 지내다가 자카르타에 돌아오면 현지처 피트리아와 함께 사는 집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한국에 본처를 숨기고 현지처와 사는 사람들을 맘먹고 찾아 보자면 많고도 많은 곳이 자카르타라지만 왜 유독 내 주변에 그분들이 줄줄이 나타나는 걸까요?

 

문제의 보고서라는 것은 내가 최사장과 함께 발릭빠빤 출장해서 진행했던 일들을 컴퓨터로 정리해서 최사장에게 보내주었던 것입니다. 거기엔 ‘황사장 부인 피트리아 명의로 되어 있는 발릭빠빤의 실리카 광산 및 제티’ 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었는데 무슨 자격으로 어디서 듣고 누구 컴퓨터로 그 이메일을 열었는지 모르지만 황사장 본부인은 그 부분을 읽고 난리를 쳤던 모양이고 황사장은 그 보고서를 쓴 내게 분통을 터트린 것입니다. 

 

내가 황사장의 본처와 첩에 관한 내밀한 배경은 다 알고 있어야 할 이유도 없지만 어차피 배포용 보고서도 아니었던 그 문서를 어쩌면 최사장이 엿먹어보라는 심정으로 뿌린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로서는 황사장이 한국에 본부인을 두고 현지처와 살고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게다가 출장지에서의 미팅내용과 현지상황을 나중에 최사장이 기억할 수 있도록 일지형식으로 요약해 준 것을  최사장이 보고서라고 이름붙여 한국 투자자들에게 이메일 배포한 것도 난 알지 못한 일입니다. 결국 최사장이 나와 황사장 사이에 싸움을 붙인 셈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어쨌든 그 날 이후 다시는 황사장을 만나는 일도 전화통화를 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나름대로 정성껏 준비했습니다. 고생하지 마시고 당장 내일부터라도 들어와서 이 방을 쓰세요.”

최사장 부부는 어느 날 끌라빠가딩에 얻은 사무실에서 네 평쯤 되는 방을 하나 보여주었습니다. 거기엔 사무용 가구와 집기들이 완비되어 있었습니다.

 

“배사장 안들어오시면 난 이 집기들 사느라고 헛돈을 쓴 게 되요. 어차피 요즘 우리 일 많이 봐주시는데 이렇게 하는 게 서로 편하죠.”

“그래요. 우리 애들도 곧 도착하는데 앞으로 도움 부탁드릴 일이 더 많아질 거에요. 어차피 남는 방인데 들어와서 같이 일해요.”

부인도 한 마디 거들었습니다. 

난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다른 일에 엮이지 않으려고 사무실 셰어하자는 제의를 모두 거절해 왔는데 최사장 부부에게 결국 엮여 들어가 불과 반년 만에 내 돈까지 비용을 써가며 그들 업무 대부분을 돕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야 했습니다. 황사장과 충돌한 이후엔 최사장이 사람들에게 사기당하지 않도록 좀 더 개입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허리까지 물 속에 잠긴 셈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 최사장 부부의 제의를 거절할 이유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그때 사무실엔 최사장이 교민지의 구직광고를 보고 채용한 김부장이란 사람이 나를 경계의 눈빛으로 흘겨보고 있었어요. 그는 마나도(Madado)출신들로 구성된 직원들을 거느리고 원석구매업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렇게 해서 디자인 회사를 나온 후 반년이 좀 넘은 길바닥 생활을 정리하고 끌라빠가딩의 사무실로 들어가게 됩니다. 거기서 2002년 파산 이후 처음으로, 직원들을 다시 채용하기 시작하고 차도 한 대 더 사면서 내 회사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시작합니다. 최사장 부부는 물론 김프로도 내가 그 사무실에 입주한 것을 만족스럽게 여겼고 그 당시는 2008년 초 대폭락 이전까지 비철금속가격이 매일 상한가를 경신하던 시절이었으므로 난 내가 하고 있던 미용사업 말고도 유망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란 기대까지 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인도네시아가 반전 드라마의 본고장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는 거였습니다.

 

50억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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