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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인도네시안 드림

인도네시안 드림 (3)

beautician 2022. 2. 9. 11:33

 

ep3. 불법체류

 

내가 입주한 최사장의 끌라빠가딩 사무실은 루꼬(Ruko)라고 부르는 주상복합 4층짜리 소형 유닛 두 개를 튼 4층짜리 건물의 2층이었습니다. 그 당시 북부자카르타의 중심지인 끌라빠가딩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어요. 자카르타 고급 몰 순위에도 들지도 못하던 작고 허름한 끌라빠가딩 몰은 증축을 거듭하면서 이제 자못 화려한 위용을 자랑하게 되었고 지역 전체에 건축붐이 일면서 수많은 아파트들과 루꼬, 상업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좀 더 나중의 일이지만 기존의 창고형 할인매장인 마크로(MAKRO) 2010년 롯데마트가 인수하여 새롭게 리모델링한 모습으로 문을 열었고 끌라빠가딩은 이제 자카르타 전역에서도 내로라 하는 노른자위 상권으로 떠오른 지 오래입니다.

 

내가 입주한 루꼬 단지는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 된 건물군이어서 낡고 허술해 보였지만 당시 자카르타 북부 이민국도 그곳에 입주해 있었고 한국 슈퍼마켓, 현지 과일가게 등도 입점해 있어 신생 몰 MOI 가 바로 지척이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사무실의 화려함보다 효율성을 우의에 두는 사람들에게는 최적의 위치라 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그 사무실의 방 한 칸이었지만 나만의 사업공간을 실로 6년 만에 다시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감격스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편 그 즈음 최사장 부부는 롯데마트 뒤, 빨라디안 아파트로 이사해 왔습니다. 최사장의 부인이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을 데려오기 위해 구했다는 그 아파트의 유닛은 내부를 완전히 뜯어고쳐 현대적 인테리어로 바꾸었고 TV, 냉장고, 심지어 주방기기며 접시, 은수저까지 완비된 풀퍼시니여서 일반 아파트보다 3배 이상 비싸게 주고 임대했던 것입니다. 한국처럼 전세돈을 돌려 받는 시스템도 아니고 임대기간이 끝나면 톡톡 털고 맨손으로 나와야 하는 임대주택에 필요이상의 돈을 지불하며 화려함을 추구하는 최사장 부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가늠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가 한국에서부터 누려온 기본 생활수준이 그 정도였기에 그 이하의 생활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지요.

 

직원 좀 구해 줘요.”

 

그는 업무협의를 한다며 나를 아파트로 종종 부르곤 했었는데 일을 도와 달라며 내게 사무실 입주를 종용했던 최사장이 정작 자신은 왜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늘 집에 있는 사람에게 왜 직원이 더 필요한지도 이해할 수 없었죠.

 

김부장하고 다른 직원들도 있는데 직원이 더 필요하세요? 김부장이 사무실도 싸게 잘 얻어 준 거 보면 능력도 있는 것 같은데, 김부장 앞에서 내가 최사장님 직원 구해 주면 모양이 좀 이상하잖아요?”

세상에 믿을 놈이 없어서요.”

 

김부장을 채용한지 불과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에 대한 최사장의 불신은 도를 넘고 있었습니다. 김부장은 원래 선원 출신으로 한국 원양어선들이 닻을 내리곤 하는 술라웨시 북단 마나도(Manado)에 상륙해 어찌어찌 정착하게 되었고 거기서 현재의 현지인 처와 결혼하여 세 아이를 낳고 살다가 자카르타로 옮겨 와 직장을 찾던 중 최사장을 만났다고 합니다. 30대 중반이었던 그 역시 노숙자 황사장처럼 한국에서 그를 기다리는 본부인과 자식들이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의 상황이 매우 절박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최사장은 교민지에서 그의 구직광고를 보고 채용했는데 약력과 희망 업무, 연락처 등만 기재하게 되는 아날로그 교민지의 구직광고엔 비록 실명까지는 올리진 않는다 하더라도 줌도 안되는 교민사회 규모를 감안하면 전화번호나 약력 등을 보고 대략의 정체를 간파하는 것이 아주 어렵지는 않은 일이죠. 결국 구직광고를 내는 것은 자기 정체를 거의 까발리는 것이나 다름없고 자신의 절박한 처지를 그렇게 교민사회에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대중 앞에서 발가벗겨지는 같은 상황이 되기 쉬웠습니다. 그래서 구직란에 광고를 올리는 사람은 대개 인맥도 경험도 운도 없어 벼랑 끝까지 밀릴 대로 밀린 끝에 정상적인 경로로는 직장을 찾기도, 면접을 통과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모멸감을 십분 감수하고 자기 자신이라는 상품을 헐값에라도 내다 팔겠다는 절박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구직광고를 내는 또 다른 부류가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으로 성공해 보겠다고 무작정 날아 오는 수많은 눈먼 투자자 중 한 놈 걸려 보라는 식으로 칼을 갈고 있는 사람들 말입니다. 다용도 빨대를 미소 뒤에 숨기고 기회가 잡히면 절대로 그냥 넘어가는 법 없이 걸린 사람 숨통에 빨대를 깊숙이 박아 넣고 쭉쭉 빨아 먹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죠. 그러나 다행히, 최사장과 처음 만날 당시 불법체류 상태로 현지 빈민촌에서 혼자서 되는 데로 살고 있던 김부장은 아무래도 전자의 경우에 속합니다.

 

최사장은 김부장을 처음 채용했을 때 많은 배려를 해 준 것이 사실입니다. 사무실에서 5분 거리인 빨라디안 아파트로 이사오기 전에 숙소로 사용했던, 사무실에서 10분 거리인 매디테라니안 아파트의 유닛을 아직 많이 남은 임대기간과 새로 산 가구들까지 함께 김부장에게 사용하도록 넘겨 주었거든요. 한국에서 파견된 지사원들에게 주택, 차량 등을 회사가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인 대기업조차도 현지에서 채용한 한국인에겐 그런 배려 하나 없이 월급마저도 훨씬 덜 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김부장에 대한 최사장의 배려는 더욱 파격적인 것이었고 김부장은 그렇게 제대로 된 숙소가 마련되자 그제서야 마나도에 남아 있던 처자식들을 자카르타로 불러 들여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나름대로 격조 높은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런데 나 역시 상황에 떠밀리고 빚에 떠밀려 세상의 밑바닥까지 가 보았던 사람으로서 그런 김부장의 입장을 족히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김부장처럼 장기간 빈곤의 바다 밑바닥에서 지내던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물에서 건져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해외에서 극빈의 바닥까지 떨어져 본 사람에게 정말 도움이 되려면 보다 적극적이고도 세밀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그 정도로 절박한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첫 번 째는 현지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 그래서 남들은 보통 다 가지고 있는 것들 중 일부, 또는 전부가 없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주택, 비자, 차량, 자녀 학교 같은 것들입니다. 이것들은 외국인이 인도네시아에서 근무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수불가결 요소들이고 적잖은 비용이 소요되는 부분들이죠. 김부장의 경우에는 그 모든 것이 없었을 뿐 아니라 비자상 체류허가 기간을 며칠도 아닌 몇 년을 넘겨 불법체류 중이었으므로 체포되면 바로 이민국 유치장을 거쳐 인도네시아 교도소에서 복역하거나 당시 하루에 20불씩 계상되는 몇 년치의 벌금을 포함해 수만 불을 낸 후 강제추방 당할 입장이었죠. 정식 혼인등록도 되어 있을 리 없었고요. 그래서 자녀들의 국적은 모두 인도네시아였고 한국어는 그들에게 외국어였어요. 아이들의 정체성 역시 어정쩡해지기 쉬운 상황이었죠.

 

두 번 째 공통점은 남들이 보통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빚이죠. 대개는 갚을 능력도, 방법도 없는 상황에서 자꾸 더 빌려 늘어난 빚들이므로 스스로도 자기 빚이 정확히 얼마인지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갚고자 하는 마음자세도 없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고용주에게까지 부담을 주게 되죠. 비단 현지 한국인들의 경우만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백수상태였다가 막 취직한 운전수들 중 열에 아홉은 한 달도 못돼 가불을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갚아야 할 빚들이 그 사이 잔뜩 쌓여 있기 때문이고 절박함 끝에 너무 작은 액수의 월급에도 성급히 동의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장기간 불법체류 중이었던 김부장의 빚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수준이었을 것입니다.

 

굳이 세 번 째 공통점까지 꼽자면 열등감, 피해의식, 기회주의 등에 젖어 있다는 점이죠. 그래서 아무 것도 아닌 일에 공격적, 파괴적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한없이 무책임해지기도 합니다.

 

열거하자면 한도 없겠지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분명한 특징은 현지 언어에 있어서만큼은 나름 일가견을 가지고 있기 쉽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홍등가와 가라오케에서 배운 저급의 언어든, 현지 국립대학의 정통언어연수과정을 통해 배운 격조 높은 수준이든 한국에서 막 들어온 고용주보다는 분명히 몇 수 위임은 두 말할 나위 없습니다. 게다가 현지처와 결혼하고 자녀들까지 낳은 사람들은 대개 현지인들의 은어까지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딜이 됩니다.

 

인도네시아 길바닥에 널린 게 돈이니 현지어만 조금 뒷받침 돼주면 저 돈은 다 내 거다.

한국에서 막 도착한 사람들이 며칠 인도네시아를 돌아본 후 이렇게 얘기 하는 것을 귀가 아프도록 들어봤습니다. 푼돈을 들고 온 풋내기 투자자가 그런 생각을 품고 현지어 유창한 절박한 백수를 만나는 것이 현지에서 흔히 발견되는 조합형태이지만 열에 아홉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물고 물리는 고약한 관계가 되어 버립니다. 최사장과 황사장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맘먹고 잘 찾아 보면 훨씬 유능하고 배경 좋은 한국인을 현지에서 채용하는 것이 당연히 가능하지만 대개의 경우 개인 투자자들은 현지물가를 감안해 싼 맛에 사업을 벌이려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현지에서 채용한 한국인도 한국에서 주는 것보다는 좀 덜 줘야 한다는 이상한 사고방식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싼 게 비지떡이라는 옛 성현들의 말씀을 무시하고 비용이 적게 치이는 사람을 첫 직원으로 들이죠.  똑 같은 사람인데도 비용이 적게 치이면 십중팔구 뭔가 하자가 있다는 뜻입니다. 굳이 고백하자면 골프샵에서 일할 당시의 내가 바로 그 하자 있는 비지떡이었던 겁니다.

 

선원 출신 김부장에게 회사관리를 맞긴 최사장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싸게 치이리라 생각했던 비용이 오히려 더 많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최사장이 아파트와 가구를 무상으로 물려준 것은 갓 도착한 한국인들이 현지 물가와 환율로 인해 뻥튀기된 구매력과 높은 화폐단위가 불러온 착시현상 때문이었다고 치고 그 후에도 온정으로 해석될 만한 여러 가지 혜택을 김부장에게 제공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김부장의 불법체류 사실로 뒤통수를 맞은 최사장은 이민국에 지불할 뒷돈이라며 김부장이 요청한 만여불을 가불형식으로 빌려 준 후부터 김부장의 페이스에 말려들기 시작했고 이젠 애당초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끌려가는 듯 보였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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