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인도네시아 근대사 70

[소설]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4)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4) 제2장 뜨갈레죠 시절의 청년기 라덴 마스 무스타하르는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궁전에서 나와 머스짓(Mesjid – 이슬람 사원, 모스크)과 쁘산트렌 (Pesantren) 이슬람 기숙학교를 옮겨 다니며 공부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서부 수마트라 출신인 끼아이 땁토자니(Kyai Taptojani)같은 명망 높은 끼아이(Kyai)나 울라마(Ulama)를 스승으로 모실 기회를 가지며 이슬람 사회와 깊은 교분을 쌓았습니다. 1805년 족자 지역 주지사 보고서에 따르면 땁토자니는 자바어로 학문을 가르쳤고 당시 종교교육의 본산인 수라까르타로 학생들을 유학시켰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족자의 왕자인 무스타하르가 사실상 적국이나 다름없었던 수라까르타로 유학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죠. 쁘산트..

[소설]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3)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3) 망꾸부미 왕자는1751년 보고원토 강(Sungai Bogowonto) 전투에서도 드 클럭(de Clerck) 대위가 이끄는 VOC 군을 크게 격파하며 승승장구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망꾸부미 왕자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이번에도 주변에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사실 라덴 마스 사이드 자신도 그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망꾸부미의 조카이자 사위였지만 두 사람은 같은 편에 있으면서도 자바의 주도권을 서로 다투는 경쟁관계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두 사람 모두 21세기에 들어 인도네시아 정부에 의해 국가영웅으로 지정되지만 영화 어벤져스의 마블 영웅들과 달리 실제 역사 속에서 이들이 꼭 끈끈한 우정으로만 이어져 있던 것은 아닙니다. 1752년에 이르러 마침내 망꾸부미와 라덴 마스 사이드가..

[소설]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2)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2) 하멩꾸부워노 1세는 1717년 8월 6일 마타람 왕국 후신인 까르타수라 수난국(Kasunanan Kartasura) 아망꾸랏 4세(Amangkurat IV)의 아들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이 무스타하르 왕자가 일곱 살 때였으니 증조 할아버지 시조 술탄의 아우라와 카리즈마를 무스타하르 왕자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어요. 용맹스러운 시조 술탄도 아망꾸랏 4세의 후궁 라덴 아유 떼자와티(Raden Ayu tejawati)를 어머니로 두었던 것입니다. 하멩꾸부워노 1세의 본명은 라덴 마스 수자나(Raden Mas Sujana)였고 성인이 된 후엔 망꾸부미 왕자(Pangeran Mangkubumi)라고 불렸습니다. ‘망꾸부미’란 이름이 아니라 그의 위상을 상징하는..

[소설]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1)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1) 제1장 디포네고로 왕자 유년기의 시대적 배경 디포네고로 왕자는 1785년 11월 11일 새벽녁, 당시 ‘동인도’라 불리던 현재의 인도네시아 중부 자바에 위치한 요그야카르타(Yogyakarta)에서 하멩꾸부워노 왕가의 왕자로 태어났습니다. 현재 인도네시아의 특별시 중 하나인 요그야카르타가 이 이야기의 주무대가 되는데 여기서는 인도네시아인들이 흔히 그러는 것처럼 ‘족자’(Yogya)라고 줄여 부르기로 합니다. 그렇게 갓 태어난 왕자에게 아버지 라덴 마스 수로요(Raden Mas Suyojo)가 붙여준 이름은 라덴 마스 무스타하르 (Raden Mas Mustahar)였습니다. 왕가와 귀족들의 이름 앞에는 깐젱(Kanjeng), 라덴 마스(Raden Mas), 구스티(Gusti..

[한겨레 스크랩] 마자빠힛의 가자마다 재상 이야기

인도네시아 거리마다 살아 있는 위대한 상징 작은 왕국을 수십 년 만에 현재 인도네시아 영토로 확장한 재상 가자 마다, 국민에게 가장 존경받는 인물 등록 2023-07-13 19:29 수정 2023-07-19 19:36 인도네시아 현대 시인이자 화가이며 독립 이후 정치인으로도 활동했던 헹크 은간퉁이 그린 가자 마다의 초상화. 현대 인도네시아가 ‘원하는’ 영웅의 모습이 투영됐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영웅 일대기는 모든 근대국가의 국가 형성 과정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민족이라는 상상된 (혹자에 따라서는 계승된) 정체성을 짧은 시간 내에 전파하는 데는 영광스러운 역사를 이끈 영웅의 서사보다 더 효과적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국권 피탈 직전 을지문덕과 이순신 장군의 전기를 잇달아 저술한 것..

아이를랑가의 까후리빤 왕국

까후리빤 왕국(Kerajaan Kahuripan) 까후리빤은 아이를랑가가 1009년 동부자바에 세운 왕국으로 1006년 멸망한 머당 왕국(Kerajaan Medang)의 후신 격이다. 머당 왕국의 마지막 왕은 다르마왕사 떠구(Dharmawangsa Teguh)로 스리위자야 왕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인물이다. 1006년 스리위자야 일족인 르와람(Lwaram)의 우라와리 왕(Raja Wurawari)이 머당 왕국의 수도 와딴(Watan)을 공격했다. 성대한 잔치가 벌어지던 틈을 탄 기습이었다. 여기서 다르마왕사 떠구 왕은 죽고 조카인 아이를랑가는 간신히 공격을 피해 살아남았다. 아이를랑가는 다르마왕사 떠구의 여동생 마헨드라다타(Mahendradatta)와 발리의 왕 우다야나(Udayana) 부부 사이의 ..

마타람 왕국의 시조 스노빠티

마타람의 수타위자야 스노빠티는 마타람 술탄국의 시조로 panembahan(뻐늠바한-지도자)란 칭호가 붙는데 ‘권능왕 스노빠티’라고 번역하면 좀 폼이 난다. 그의 정식명칭는 빠넘바한 스노빠티 잉 알라가 사이딘 빠나타가마 칼리파툴라 따나 자위(Panembahan Senopati ing Alaga Sayidin Panatagama Khalifatullah Tanah Jawa)다. 1587-1601년 기간 마타람을 다스렸다. 그는 빠장 술탄국 치하의 마타람의 영주(adipati Mataram) 지위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고 이후 빠장 왕국으로부터 독립해 마타람 왕국을 세웠다. 수타위자야가 죽은 후 마타람의 모든 후대 왕들을 스노빠티라는 명칭을 공식칭호 안에 넣었다. 바우와르나 연대기(Serat Bauwarna)..

항뚜아(Hang Tuah)와 네 친구들

말라카 왕국의 수군제독 항뚜아 (Hang Tuah) ‘왕들의 탄생’이란 의미인 술라라투스 살라틴(Sulalatus Salatin)은 왕실의 역사, 관습, 족보 등을 담고 있는데 여러 가지 판본에서 항뚜아는 대체로 일관되게 가난한 어부 출신으로 기록되어 있다.항뚜아는 15세기 말라카 멀라유 술탄국(Kesultanan Melayu Melaka) 시대 멀라유족의 전설적 영웅이다. 유년기 항뚜아의 부모 항 마흐무드(Hang Mah­mud)와 당 머르두(Dang Merdu)는 오늘날 리아주 제도의 휴양섬인 빈딴섬에 자리를 잡았다. 물론 당시엔 휴양지가 아니라 척박한 오지였다. 그곳의 왕은 시간뚱 산지(Bukit Sigantung)를 다스리는 상 사뿌르바(Sang Sapurba) 왕의 아들 상 마니아카(Sang M..

고고학 유적지로서의 온러스트 섬

온러스트(Onrust) 섬의 역사 온러스트 섬은 뿔라우 스리부 군도 비다다리 섬에 인접해 있고 식민지 시대엔 뿔라우 까빨(Pulau Kapal)이라 불리기도 했다. 17세기부터 네덜란드 선박이 자주 방문했고 식민지 시대의 고고학적 유적들도 많이 남아 있다. 온러스트(Onrust)라는 이름은 절대 쉬지 않는다는 Unrest에서 왔다고도 하며 네덜란드 귀족의 후손 Baas Onrust Cornelis van der Walck의 이름에서 따왔다고도 한다. 역사 동인도회사(VOC) 시절 오래 전부터 자야카르타 만(teluk Jayakarta)의 온러스트섬과 인근 다른 섬들은 반뜬 왕가의 휴양지와 같은 곳이었다. 자야카르타는 순다끌라빠, 바타비아와 함께 자카르타의 옛 이름 중 하나다. 그런데 반뜬 왕국와 자야카르..

쭛냐디엔 - 뜨꾸 우마르의 아내, 여성영웅의 전형

아쩨 저항의 상징 - 쭛냐디엔 (Cut Nyak Dhien) 들어가는 말 오늘은 어쩌면 인도네시아를 특별히 공부하는 게 아니라면 교민들이나 본국 한국인들이 관심을 가질 이유가 거의 없는 인도네시아 근현대사의 여성 영웅의 이야기를 현지 영화산업 이야기와 덧붙여 살짝 버무리려 합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독립 이후 국가영웅으로 지정한 인물들은 근현대사를 망라해 백수십 명이 있고 매년 특별한 날을 기해 시의성 있는 인물들을 추가로 선정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30일엔 인도네시아 영화의 날을 맞아 현지 영화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우마르 이스마일(Umar Ismail)이란 인물을 국가영웅으로 선정해 달라는 청원이 현지 영화계에서 크게 일었으나 성사되지는 않았습니다. 그 백수십 명의 인도네시아 국가영웅들 중 여성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