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인도네시아 근대사 (70)
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10) “전하, 끄라톤 생활이 무료하시면 모처럼 선선한 날씨온데 바깥바람을 좀 쐬시지요.” 어쩐 일인지 다누레죠 재상이 그날 아침 일찍 도성 외곽 소풍을 제안했습니다. 술탄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마침 끄라톤 궁전 안의 모든 것에 숨이 막힐 듯하던 차였으니까요. 물론 마차 두 대와 시종, 하녀들 수백 명씩을 거느리고 길을 나서는 것이 얼마나 번거롭고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인지엔 생각이 미치지 않았습니다. 왕실과 귀족들에게 그런 것은 그저 당연히 누리는 권리였으니까요. 그래서 수백 미터씩 늘어진 왕실의 행차가 장관을 이루었고 인근 백성들은 그 행차 앞에 하던 일을 멈추고 무릎을 꿇어 경의를 표해야 했습니다. 그 행차의 앞 뒤를 소규모 끄라톤 경비대가 호위했고 멀찍이 뒤편에선..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9) 나폴레옹 전쟁으로 멸망하다시피 했다가 간신히 되살아나 동인도로 돌아온 네덜란드는 과거의 기득권을 주장하며 족자 술탄국을 신속히 다시 손에 넣기 위해 이 시기에 전방위적으로 끄라톤 왕족들과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자바땅을 잠시 영국에게 맡겨 놓았던 자기 보따리처럼 여기는 네덜란드의 행태가 디포네고로 왕자 눈에 곱게 보였을 리 없습니다. 그때 그들이 가장 공을 들여 회유하려 한 사람은 다누레죠 4세 재상이었습니다. 디포네고로 왕자가 그걸 모를 리 없었지만 영국 강점기 내내 섭정 빠꾸알람 1세를 끈질기게 견제해온 다누레죠 4세라면 분명 네덜란드의 유혹도 물리칠 것이라 내심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집요했고 거대한 이권이 걸리자 다누레죠 4세가 욕망 앞에 흔들리는 것은..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8) 디포네고로 왕자의 어린 이복동생 입누쟈롯 왕자는 10살의 나이로 하멩꾸부워노 4세가 되어 술탄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가 성인이 될 때까지 디포네고로 왕자가 국사를 도울 섭정이 될 것임을 누구도 의심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결코 자기 편이 되지 않을 것임을 일찌감치 간파한 래플스 총독은 영국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합니다. 영국과 깊은 교분을 나누고 있던 빠꾸알람 1세를 섭정으로 지정한 것입니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스뻐히 전투에서 영국이 끄라톤을 함락시킨 후 영국에 협조한 공을 인정받아 자치구인 빠꾸알라만 봉국을 할양받고 그곳의 영주가 된 빠꾸알람 1세는 말레이 반도 삐낭섬으로 유배된 하멩꾸부워노 2세의 동생입니다. 그가 어린 하멩꾸부워노 4세를 대신해 족자 술..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7) 제3장 왕위를 포기하다 하멩꾸부워노 3세는 술탄이 된 후 아직도 뒤숭숭한 왕궁의 상황을 수습하기는커녕 매번 식사를 물리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등 육체적 정신적 건강문제를 노출시키며 국사에 대해 아무런 의욕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기저에는 그가 어떤 의지와 목적을 가지고 있든 영국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결코 성취할 수 없으리라는 절망감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지난 몇 년 사이 왕국에서 일어난 사건들로 인한 충격과 이제 술탄으로서 왕국을 위하기보다는 이민족들에게 휘둘려야만 한다는 현실은 큰 중압감으로 다가왔고 정신적 부담을 견디지 못한 그의 육체는 날로 쇄잔해 꼬챙이처럼 말라갔습니다. “이럴 때 왕자님이 계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술탄 전하의 힘이 되어 주십시오.” 이..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6) 한편 영국군은 찌레본(Cirebon)에서 네덜란드군에게 잡혀 있던 노토꾸수모 왕자를 풀어주었는데 앞서 설명한 것처럼 그는 하멩꾸부워노 2세의 동생입니다. 그는 영국이 동인도 총독대행으로 보낸 토마스 스탬포드 빙글리 래플스(Thomas Stamford Bingley Raffles)를 만나 그가 가진 자바문화의 깊은 이해에 감탄하여 친분을 다졌고 그와 하멩꾸부워노 2세 사이의 소통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멩꾸부워노 2세는 네덜란드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영국에 대해서도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영국 총독대행에게 붙어 다니는 동생도 영 마뜩치 않았습니다. 처음엔 하멩꾸부워노 2세를 족자 술탄국의 지배자로, 라덴 마스 수로요를 아디빠티 아놈(태자)으로 순순히 ..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5) 아니나 다를까, 네덜란드는 왕궁이 하는 모든 일을 참견하며 온갖 이권을 요구해 왔습니다. 왕실과 귀족들이 네덜란드에게 강력히 반발하던 중 응으벨(Ngebel)과 스끄독(Sekedok)에서 티크나무 숲을 뺴앗으려는 네덜란드 총독부를 상대로 현지 백성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네덜란드는 그 책임을 라덴 롱고 쁘라위로디르죠 3세(Raden Ronggo Prawirodirjo III)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폭동지역 관할인 마디운의 군수이면서 술탄의 사위이자 고문이었고 무스타하르 왕자의 장인이기도 했습니다. 주로 끄라톤궁에서 지냈던 인물이었는데 댄덜스 총독은 그에게 폭동을 사주했다는 증거가 있다며 보고르(Bogor)로 소환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의 장인인 술탄을 압박하려는 수단이었고 ..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4) 제2장 뜨갈레죠 시절의 청년기 라덴 마스 무스타하르는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궁전에서 나와 머스짓(Mesjid – 이슬람 사원, 모스크)과 쁘산트렌 (Pesantren) 이슬람 기숙학교를 옮겨 다니며 공부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서부 수마트라 출신인 끼아이 땁토자니(Kyai Taptojani)같은 명망 높은 끼아이(Kyai)나 울라마(Ulama)를 스승으로 모실 기회를 가지며 이슬람 사회와 깊은 교분을 쌓았습니다. 1805년 족자 지역 주지사 보고서에 따르면 땁토자니는 자바어로 학문을 가르쳤고 당시 종교교육의 본산인 수라까르타로 학생들을 유학시켰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족자의 왕자인 무스타하르가 사실상 적국이나 다름없었던 수라까르타로 유학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죠. 쁘산트..
디포네고로 왕자와 자바전쟁 (3) 망꾸부미 왕자는1751년 보고원토 강(Sungai Bogowonto) 전투에서도 드 클럭(de Clerck) 대위가 이끄는 VOC 군을 크게 격파하며 승승장구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망꾸부미 왕자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이번에도 주변에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사실 라덴 마스 사이드 자신도 그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망꾸부미의 조카이자 사위였지만 두 사람은 같은 편에 있으면서도 자바의 주도권을 서로 다투는 경쟁관계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두 사람 모두 21세기에 들어 인도네시아 정부에 의해 국가영웅으로 지정되지만 영화 어벤져스의 마블 영웅들과 달리 실제 역사 속에서 이들이 꼭 끈끈한 우정으로만 이어져 있던 것은 아닙니다. 1752년에 이르러 마침내 망꾸부미와 라덴 마스 사이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