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은이 이야기 본문
은이를 처음 만난건 중3때였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새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오빠와 살던 은이는 얼굴이 희고 눈매가 똘망똘망한 아주 작고 귀여운 아이였다. 어느 날 어느 TV 연속극에서 김혜자가 화상을 입는 장면이 나왔는데 다음날 내내 그 앤 눈물을 글썽였다. 김혜자를 보면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난다는 거였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늘 얼굴을 마주쳤지만 난 말도 잘 걸지 못했다. 대학생들과 주로 어울리던 은이는 아마 나보다 훨씬 조숙했던 것 같다. 산행을 가던 날 그애가 눈덥힌 북한산의 좁은 산길을 어느 대학생 손을 잡고 그 일행들과 어울려 올라가는 뒷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섬뜩하게 아파오곤 했다.
버스를 두번 씩이나 갈아타면서 북가좌동 집과 방배동 학교사이를 오가면서 일주일에도 몇번씩 지금은 대학로가 되어버린 동숭동을 찾았다. 그리고 그 애 아파트 앞 멀찍이에 축대 난간을 기대고 몇시간이고 앉아 있다가 쓰레기를 버리거나 아빠 담배 심부름을 나가는 은이 모습을 본 다음에야 집에 가곤 했다.
그런 미친 짓을 대학 진학할 때까지 2년동안이나 계속했고 우리 부모님은 내가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다 늦게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난 그때 아마 별로 해악은 없는 건전한 스토커였던 것 같다.
그런 특수한 방과후 활동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럽게 난 외대에 가게 됐고 은이는 인천교댄가에 진학했지만 여전히 얼굴을 볼 기회는 많았다. 1학년 시절 몇번 용기를 내 데이트를 청해 봤지만 번번히 퇴짜를 맞곤 했다. 당시 은이는 대학생활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고 틈만 나면 미팅을 하고와 내가 마음 썩일 걸 뻔히 알면서도 미팅한 남자들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곤 했다. 그앤 좀 가학적인 성격도 있었던 거 아닌가 싶다.
촌티난다는 학군단 알티에 입단한 3학년 그해 여름 한달간 병영훈련을 갔다 오니까 스스로 꽤 남자가 된 것도 같고 이번에는 은이가 퇴짜를 놓더라도 제정신이 아니라는 군인정신 힘을 빌어 그앨 억지로라도 끌고 갈수 있을 것 같았다. 훈련갔다온 약발이 떨어지면 다 허사라고 생각한 나는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던 은이를 서둘러 만나러 갔고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친 그애의 반응은 기대하지 못한 봄날 흐드러지는 벚꽃마을과 같은 환한 미소로 나를 반겨 주었다.
나의 알티 행색은 역시 촌티가 났던 모양이다. 은이는 내 베레모를 자꾸 벗기려 들었지만 학군단 1년차가 감히 시내에서 베레모를 벗으면 선배들한테 나중에 조 맞는다며 난 좌우간 촌티를 떨었다. 주말의 대학로는 사람들로 붐볐고 은이는 자꾸 내 뒤로 따라오며 내 걸음걸이를 흉내내면서 킥킥거렸다.
은이는 그 당시 운동권 학생이 되어 있었다. 호프집에서 생전 처음으로 2천cc째 맥주잔을 앞에 놓고 긴장하고 있는 내게 그 앤 자본론에서 12.12사태까지를 망라하며 학교 써클에서 배운 이론을 내게 가르치는데 정성을 쏟았다. 그렇게 어떤 일에 열심히 빠져 있는 은이가 참 보기 좋았다.
그앤 내가 2천 5백cc 째 잔을 30분째 비우지 못하자 이미 빈지 오래된 자기 잔에 전부 붓고 원샷으로 들이켜 버렸다. 그런 다음 트림을 꺼억~하며 활짝 웃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다시 화장실을 갔다 오자 상황은 이상하게 변해 있었다. 난 그 동안 마신 술이 깨고 있는데 은이는 이제 술이 제대로 취해오기 시작한 모양이다.
은이의 그런 모습은 처음 보았고 그때 꼬이기 시작하는 혀로 말하기 시작한 이야기들도 처음 듣는 것들이었다. 집과 엄마와 가족과, 그리고 새엄마 얘기...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혀가 꼬인 다음에도 은이는 그 호프집 2층 구석 테이블에서 처절하게 울면서 뭔가 내게 말을 하려고 했다.
" 괜찮아, 괜찮아.. "
뭐가 괜찮은 건지도 모르면서 난 자꾸 그렇게 말했지만 은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는 잠이 들어버렸다. 그 예쁜 눈에 여전히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채. 그때 그애가 나한테 무슨말을 했는지 글고 내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 그애는 알지 못할 거다. 내가 그 다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까 은이는 자기가 집에 업쳐 왔다는 것만 오빠에게 들어 알것이다.
그애를 업고 도로와 동숭동 비탈길을 2km 정도 걸어 올라가는 일은 무척 힘들었지만 그 순간 나는 행복했다. 항상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것 같았던 은이가 그때 내 등에 업혀 있었으니까. 자세를 여러번 바꾸면서 그애 집에 도착할때까지 사람들이 보면 은이가 나중에 창피해 할까봐 가게 앞을 지낼때는 방범등이 비치지 않는 쪽으로 조심해서 지났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은이의 허벅지와 엉덩이. 등에 와닿는 그애 가슴의 감촉. 그날 밤 그렇게 내게 자신의 모든 것을 의지한 은이는 이제 나의 소유가 되었고 그래서 앞으로 내가 돌봐 주겠다고 그 비탈길에서 여러번 다짐했다. 아직도 무더운 여름날 달동네의 밤공기가 그날따라 상쾌하게 느껴졌다.
며칠이 지나는 동안 전화에서 은이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난 그 비탈길을 오르던 밤을 생각하며 가슴이 뿌듯해지곤 했다. 그리고 경복궁을 가기로 약속한 날, 우린 대학로에서 만나 1호선을 타려고 종로까지 걸어갔다. 전날 호프집 사건 전에는 단 둘이서 어딘가에 가본적이 없었다.
그날은 새로운 날이었고 은이가 나의 마음을 받아주는 날이었다.
그러나 종로 3가역 플랫폼에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날은 주말이라 사람들이 꽤 많았고 그런 주말이면 아직도 지방에서 지하철 한번 타보겠다고 상경하는 사람들까지 있었던 때다. 붐비는 사람들 틈에서 전철이 진입하는 것을 본 나는 자연스럽게 은이의 허리를 내 팔로 감았다.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행동이었고 내 여자를 붐비는 인파에서 보호하고자 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은이는 갑자기, 매우 사납게 내 팔을 쳐내 버렸다.
그건 아주 작은 사건일 수도 있었다. 그런 다음에도 은이의 표정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앤 전철에 올라타고는 아직도 플랫폼에 멍하니 서있는 나를 바라보며 빨리 타라고 눈짓했다. 하지만 나의 마음에는 그때 폭풍우가 치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한다.
그때 널 업고 집에 데려다 준게 나란 말야. 네 허벅지와 엉덩이에 손을 두르고 네 가슴을 느끼면서 그날밤 비탈길을 오른던게 바로 나였단 말야. 넌 그때부터 내 여자가 된거란 말야. 그게 바로 지난주 일이었어. 지금 널 팔로 감싼 건 널 보호해 주려고 했던 거란 말야. 넌, 그래서 그렇게 내 팔을 쳐내어서는 안되는 거였단 말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안 은이를 태운 전철의 문이 닫히고 난 여전히 플랫폼에 남아 역을 빠져나가는 전철을 보고 있어야만 했다.
그 장면은 부대 BOQ에 혼자 멍하니 앉아있을 때에도 종종 마치 어제 일처럼 눈앞에 생생하게 떠오르곤 했다. 난 그때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했어야 했어...너무 내가 어렸던 거야. 그렇게 이제는 어른이 다 되었다고 자부하며 그때 일을 회상하곤 했다. 자존심이 강한 은이는 결코 내게 전화하지 않았고 나도 차마 전화하여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한주, 두주가 지나가자 결국 영영 전화하지 못하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안개가 많이 낀 어느 밤 비무장지대에 들어가던 매복조 1개 분대가 길을 잘못 들어 지뢰를 밟아 좌초되고 새벽녘에 구조하러 들어간 다른 분대도 선두가 지뢰에 날아가 버려 아직도 붙어있던 병사들의 목숨이 해가 떠서야 들어온 다른 구조대를 기다리며 꺼져갔던 날. 지원보냈던 우리 부대 엠블란스를 청소할 때 핏물과 살점이 씻겨 내리던 것을 본 날이었다. 땅굴을 다녀온 내게 상황병이 어떤 여자에게 전화가 왔다고 했다.
사단 교환수를 통해 군용 딸딸이 전화로 물어 물어 우리부대까지 연결해 온 그 인내심 많은 여자가 누구인지 자못 궁금했다. 그리고 그날 밤 은이는 다시 전화했고 난 4년만에 그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내촌이라는 전방지역 국민학교에 부임한 은이는 혼자 살고 있었다. 문산으로 나갔다가 다시 금촌까지 가서 내촌행 버스를 올라타고서도 난 은이를 다시 만난다는게 실감나지 않았다. 그날, 그 늦은 여름날 종로 3가 지하철에서 헤어진 것이 우리들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해 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골똘히 생각하면서 헌병초소 검문을 두번 받은 끝에 내촌에 도착했다.
은이는 약속한 대로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려 주었다.
옷이며 머리모양에서 이제는 성숙한 여인의 내음이 나는 은이가 거기 있었다. 벚꽃축제가 연상되는 예의 환한 미소를 짓고서.
긴 치마에 털실로 짠 카디건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조금은 더 나이들어 보이게 했고 왠지 자꾸 자신없이 말꼬리를 흐리는 것이 그애에게 그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음을 알수 있게 했다. 운동권의 투사였던 은이가 전교조가 무더기로 짤린 그때에 아직도 교직에 서있는 것, 그리고 아무 연고가 없는 내촌이라는 깡촌에 밀려온 것도 그랬다.
하지만 물어볼 용기가 없었다. 군복을 입고 전투모를 눌러쓰고 있었지만 아직도 내 안의 나는 그날 은이가 탄 전철을 떠나 보내던 학군단 1년차의 모습에서 더 이상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겉도는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저녁을 먹고 은이는 나를 자기 자취방으로 안내했다. 부엌이 딸린 단칸방이었다. 계속 겉도는 얘기만 하다가 그애 집에서 어색해진 나는 뜬금없이 "난 이제 커피에 인이 백였어"하고 생각도 않았던 말을 지껄였고 은이는 빙긋이 웃으며 물을 올리며 작은 난장이 탁자에 커피며 크림병을 올려 놓았다.
" 음... 그땐 미안했어. "
마치 금기인 것처럼 버스에서 내릴 때부터 서로 입에 담지 않았던 전철역에서의 일을 내가 먼저 꺼내고 말았다. 하지만 은이는 여전히 빙긋이 웃을 뿐이었다.
" 군대생활은 좀 어때? "
우리 대화는 여전히 서로 촛점이 맞지 않았다. 은이는 그때 아마도 내게서 당황함과 초조함을 읽었을 것이다. 나는 그애의 흰 목덜미와 가끔 내쉬는 낮은 한숨에서 세상이 그애를 여기까지 흘러들게 했고 이제 또 어디론가 흘려 보낼 거라는 허무함을 느꼈다. 아니, 어쩌면 그애의 인생이 나의 인생과 자꾸 다가서곤 하지만 결국은 한번도 마주치지 않고 빗겨 나갈 것이라고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시계를 본 은이는 뭔가 요구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 여긴 여덟시 반이면 차가 끊겨. "
호텔은 커녕 여관도 없는 내촌에 내가 도착한 건 한시간이 조금 넘었고 우린 얘기다운 얘기도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이십분 후면 차가 끊긴다는 것이다.
" 카드놀이 할 줄 알어? "
당연히 할줄 아는 카드놀이가 몇개 있었다. 하지만 난 이내 그 말에서 은이가 나를 보내기 싫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세상의 끝인 것 같은 오지 내촌. 내가 여기 있는 것을 누구도 모르고 그리고 내 앞엔 그 오랜 시간동안 내 맘을 태우게 하던 은이가 나와 함께 밤을 지내고 싶어한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앞에서 난장이 탁자에 카드를 꺼내 섞는 은이의 손이 떨리며 뺨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만다. 왼쪽 뺨, 그리고 이어서 오른쪽 뺨. 그앤 카드를 섞으며 그렇게 애써 소리죽여 울고 있다.
내촌을 빠져 나오는 마지막 버스를 타고서 난 무엇이 은이를 그렇게 절박하게 만들었을까 생각한다. 그동안 무슨일이 은이에게 생겼던 것일까. 왜 그애는 그곳까지 흘러와야 됐을까. 그 대답은 아직까지도 모른다. 난 울고 있는 은이의 어깨를 토닥거려주지도 못한채 멍청히 앉아있다가 "나 갈께"하고 말했을 뿐이다.
그 많은 해가 지난 후 그애가 날 마음에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때, 아니, 무슨 이유에선지 그애가 그런 절박함으로 무언의 애원을 해왔을때 난 어째서 그 자리를 그렇게 떠나야 했을까. 그애에게 위선을 느꼈을까. 아니면 그런 식으로 준비되지 않은채 은이와 밤을 지내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을까. 그 대답도 아직 없다.
은이는 버스정류장까지 다시 나를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비록 붉게 충혈된 눈을 하고서도 언젠가 날 그토록 철저히 매혹시켰던 그 웃음을 띄우며 차창 밖에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것도 87년의 일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때 내촌에서의 이별, 떠나가는 전철의 모습들은 이제 자주 떠오르지는 않는다. 단지 이렇게 늦은 밤 혼자 깨어 있을때 오래된 사진첩에서 잊어버린 줄 알았던 사진을 찾아된 것처럼 가끔 생각날 뿐이다. 난 이제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고 아들과 딸은 둘다 한살 터울로, 어쩌면 은이가 어느 교단에선가 아직 가르치고 있을지 모를 초등학교 학생이 되어 있다. 얼마전 그 당시의 친구들을 실로 오랜만에 만난 적이 있어 은이의 근황을 물었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 애도 이제 결혼을 해서 아이들도 낳고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을까. 하지만 왠지 아직 결혼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내촌에서 보았던 그애의 절망과 절박함의 인상이 아직 남아 있어서겠지만...
그리고 생각해보면 그렇게 오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도 난 항상 은이를 마음속에 품어 왔지만 한번도 사랑한다든가 좋아한다는 식의 말을 해본적이 없었다.
" ....그때 내가 널 많이 사랑했었어. "
매혹적인 미소를 가진 내 첫사랑의 건강과 행복을 빈다...
1999.1.25.월
인도네시아 특파원 Don S. 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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