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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소설

끝내 말할 수 없었던 것

beautician 2019. 10. 10. 10:00

끝내 말할 수 없었던 것




1.




찬란한 미래를 가져올 거라 믿었던 술라웨시 목재사업이 오히려 파산의 구렁텅이로 내 등을 떠밀 줄 미처 몰랐습니다. 릴리의 큰 오빠 아미르는 우리 벌목장과 제재소가 있던 술라웨시 동남부 아세라 지역 짜맛이라는, 면장과 군수 사이 어딘가쯤 직책의 관리였습니다. 뒤에서 도와주며 적당히 자기 몫을 챙기면 될 그가 처음부터 지나친 욕심을 부리는 게 문제였습니다. 투자자인 나와 친동생 릴리를 밀어내고 사업운영을 독점하려던 아미르는 급기야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맙니다. 우리가 파견한 화교 감독관을 붙잡아 정글 속 모처에 감금하고서 그의 몸값으로 벌목장과 제재소 사업권 양도를 요구해온 것입니다.


바로 3개월 전 세상을 뜬 릴리의 아버지가 아직 계셨다면 절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지만 명실공히 집안의 어른이 된 아미르는 유산을 독차지하고서 이제 형제들 재산에도 군침을 흘렸습니다. 급기야 막내 여동생의 외국인 파트너 사업까지 집어삼키려고 인질극까지 벌인 아미르는 말종의 인간이었고 당시 술라웨시는 그런 무법천지였습니다. 필사적으로 원만한 해결책을 모색했지만 내 사업에 남의 목숨까지 걸 만큼 독하지 못했던 난 결국 아미르에게 소유권 서류들을 공증해 넘겨 주고서야 감독관을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전 재산을 쏟아 붓고 빚까지 끌어넣은 술라웨시 사업은 그렇게 한 푼도 건지지 못한 채 남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릴리 역시 빚더미에 올랐지만 아미르의 친동생인 그녀가 그때 내 눈에 곱게 보였을 리 없습니다. 술라웨시 사업은 릴리를 통해 진행했고 자금도 당연히 그녀를 통해 흘러갔습니다. 명백한 거짓말을 하는 아미르를 위해 그녀가 대신 변명을 것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남매가 작당해 어수룩한 한국인 투자자를 벗겨 먹은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업 초창기 자기 패물까지 팔아 회사운영을 도왔던 릴리의 허전한 목덜미와 손가락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녀에게 분노를 퍼부을 수밖에 없었던 그 순간까지도 난 릴리의 진심만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아미르와 전쟁을 하려면 그녀가 먼저 피 흘리게 될 터였습니다. 깊은 고민 끝에 돈보다 파트너를 지키겠다고 결심한 순간, 파산은 문 앞에 닥쳐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떨어지고 만 시커먼 나락, 그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던 2003.

 

 

2.

빚을 단 한 푼도 갚을 수 없었으므로 모든 카드가 연체되었고 전화, 전기가 끊기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였습니다. 곧 사무실도 비워야 했습니다. 


 그 동안 신세 많이 졌는데 이번엔 우리 사무실에 잠깐 와 있지 그래?” 


 코린도 건물에서 확장이전해 온지 불과 2년차. 빤쪼란 사거리가 내려다 보이는 무스티카 라투 건물 5층의 우리 사무실 반을 잘라 학군선배와 고교후배에게 무상으로 빌려주던 중 맞은 파산이었습니다. 당시 오랜 현지생활의 고충을 온몸으로 겪으며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던 선배는 따로 사무실을 계약해 나가면서 이번엔 거꾸로 내게 책상 놓을 자리를 나누어 주려 했지만 그 옆에 선 후배가 곱지 않은 눈매로 흘겨보고 있었습니다. 그를 나무랄 수 없습니다. 그런 반응도 인지상정이니까요. 


 그가 자카르타에 처음 들어올 때 난 숙소준비와 자녀 학교전입을 도우며 선배 노릇을 하려 했습니다. 사무실을 나누어 쓰면서 집기도 무상으로 빌려주었고 몇 개월간 하루도 빠짐없이 내 차로 출퇴근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내게 파산의 그림자가 드리우자 그는 알 수 없는 적개심으로 날 대했습니다. 적개심보다는 두려움이었을까요?  곤경에 처한 이웃이란 어떤 이들에겐 도울 대상이 아니라 가능한한 멀리해야 할 전염병 보균자같은 존재일 수 있으니까요. 그는 망해버린 선배가 돈이라도 빌려달라 할까 두려웠을 것 같습니다. 


 . 이 와중에 글 쓰는 것도 다 사치 아니오? 돈 벌어도 시원치 않을 시간에 글이나 끄적거리면 뭐가 나와요?” 


 모든 것이 막막하고 술 먹을 돈도 없었으니 밤새 글 쓰는 것만이 한없이 짓눌러오는 고통과 번민을 잠시라도 잊는 방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당돌한 다그침도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식의 글쓰기가 자구책이나 생산활동일 수는 없었으니 그 상황에선 사치와 별반 다를 바 없었습니다. 돈 벌 길을 찾지 못하면 죽을 방법이라도 찾아야 했던 시절, 난 후배의 말에 송곳으로 정곡을 찔린 듯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후 난 다시는 글을 쓰지 않게 되었지만 후배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 선배, 성공한 사업가 행세를 하더니 결국 사기꾼이야. 다 망해 빌빌거리면서 내 사무실 한 구석을 턱 차지해 버리고..., 우리 파일 근처를 자꾸 얼씬거리는데 뭘 빼가려는지…, 그 파트너라는 여자는 아무래도 현지처 같고…” 


 내 자리를 마련해 준 선배의 배려는 고마웠지만 굳이 내 주변사람들을 골라 찾아다니며 나를 모욕하는 후배의 밑도 끝도 없는 증오를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난 그때 아직 남은 일말의 자존심을 완전히 죽이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결국 쫓겨나듯 길바닥으로 나섰습니다.  세상을 가진 자와 못가진 자로 양분하는 이들에게 파산한 나는 효용가치를 다한 폐기물이자 장애물이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해외에서 처참한 사업실패를 맞는 이들이 파산 초창기에 겪는 공통된 경험인지도 모릅니다.

 

 

3.

차가 왜 그래요?”


북부 자카르타 뿔로마스에 위치한 수퍼린도 슈퍼마켓에서 차에서 내리지 못한 채 난감해하고 있을 때 2층에서 내려온 릴리가 그렇게 물어 왔습니다. 내 다이하쭈 페로자 4인승 찝은 이제 그 수명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파워윈도가 고장나 차창을 올려 닫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모터가 죽은 것이죠. 차창을 그렇게 열어 둔 채 놔두고 일을 보러 갈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정작 난감했던 것은 그 차창을 수리할 고작 20~30만 루피아, 한화 2~3만원 정도조차 수중에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2004 , 파산의 후유증이 아직도 태풍처럼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빚독촉에 시달리면서도 우린 얼마 남지 않은 시간과 여력을 최대한 활용해 여러 아이템들을 연구하고 시도해 보았습니다. 나중에 우릴 구원하게 될 미용기기 사업도 그 중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장 성과를 낸 것은 택견전수관이었어요. 평소 친분 있던 택견협회 경기도지부 이사 두 명이 자카르타에 전수관 설립을 부탁하며 선수금을 보내왔던 것입니다.


치우패 출신 고수들로 구성된 택견시연단이 안쫄 소재 간디스쿨 학생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면서 자카르타 순회시범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그 수퍼린도 슈퍼마켓 2층을 수리해 만든 전수관은 개관 첫 달 유료회원 28명을 찍었습니다.  첫 달 결과로는 기대 이상이었으므로 손익분기점 돌파와 후속 전수관 프랜차이즈 시대가 조만간 도래할 것만 같았습니다.  전수관 구석에 작은 사무실을 만들어 몸 둘 곳도 일단 마련한 상태였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장미빛 미래가 살짝 엿보였습니다. 


그러나 너무 좋은 반응이 오히려 독이 되었습니다. 실현도 되지 않은 이익 분배율을 두고 한국에서 투자자들끼리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첫 반년간 한국에서 지원하기로 한 운영경비와 택견선생 월급을 서로 미루다가 결국 양쪽 다 첫 달부터 돈을 끊고 말았습니다. 난 이제 돈을 벌긴커녕 운영비를 구하려 다녀야 했습니다. 인내심 많았던 택견선생도 4개월째 월급이 밀리자 머리끝까지 화가 나 귀국해 버렸습니다. 경리사원이 나가면 내가 경리일을 보고 운전사가 나가면 내가 운전하는 식으로 몸으로 때우는 게 이력이 나 있었지만 이번엔 방법이 없었습니다. 내가 택견을 가르칠 수는 없었으니까요.


아까운 시간이 그렇게 허비되었고 결국 우리 손엔 아무 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시한폭탄의 타이머는 이미 0’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파트 임대기간도 끝나가는 중이었고 밀린 등록금을 내지 못하면 아이들은 중간고사도 볼 수 없었습니다. 되지도 않을 택견전수관에 전력을 쏟던 그 시기에 좀 더 믿음직한 사람들과 좀 더 장래성 있는 다른 일을 모색해야 했다며 후회막급 했지만 늘 그렇듯 뒤늦은 후회만큼 부질없는 것도 없습니다.


이제 나에겐 팔아서 돈을 만들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모두 빚을 갚는 데 털어 부은 후였으니까요. 오직 페로자 찝을 끝내 지키고 있던 것은 그마저 팔아 버리면 대중교통도 변변찮은 인도네시아에서 돈 벌러 다닐 길이 당장 막막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차 창문마저 고장나 닫히지 않게 된 것입니다.

 

지갑 줘 봐요.”


릴리가 내민 손에 내 지갑을 쥐어 주었습니다. 그녀가 자기 지갑도 꺼내 지갑 두 개에서 나온 돈을 모두 합치자 35만 루피아 정도가 되었습니다.  창문 고칠 돈은 대충 될 것 같았습니다. 당시 우린 만날 때마다 그렇게 돈을 합쳐 필요한 일을 하곤 했습니다.


이미 운영을 멈춘 지 오래인 전수관을 닫고 내려온 릴리와 함께 정비소로 향했습니다. 아직 임대기간이 남은 그 공간에서 우린 매일 만나 필사적으로 활로를 찾았습니다. 사실 우린 그때 기적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기만 했습니다. 더욱이 페로자 문제는 창문만이 아니었습니다. 주유할 돈도 없으니 에어컨을 고치는 사치는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프레온이 떨어진 에어컨을 돌려 바람이나 쐬자 했던 것이 콤프레셔를 완전히 고장내고 만 것입니다.




 

금방이라도 질식해 버릴 듯한 상황에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나도 모르게 흐느낌이 새어 나올 것 같은 심정이었고 심장 근처 어딘가에서 모멸감과 열등감이 맹렬히 소용돌이 치고 있었습니다.  표정을 살피던 릴리가 애써 말을 걸며 기분을 북돋으려 했지만 그녀의 상황도 별반 다를 바 없었으므로 오히려 안쓰럽기만 했습니다.


술라웨시에서의 사건 이후 릴리는 모두에게 의심을 받았습니다. 명색이 친오빠라는 사람이 막내 여동생을 그런 식으로 거덜냈다는 사실을 아무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소개해 결혼까지 이른 벨기에인 남편 루벤조차 릴리가 오빠와 짜고 나에게 사기를 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릴리 역시 빚쟁이들에게 시달렸습니다. 험상궂은 콜렉터들이 일주일이 멀다 하고 릴리가 남편과 사는 뿔로마스의 빠사데니아 아파트를 찾아왔는데 벨기에 굴지기업 현지법인 CFO로 돈 문제에 철저한 루벤은 도무지 이치에 닿지 않는 사업몰락에 대해 대체로 릴리를 비난하는 편이었습니다. 당시 투쟁하듯 농성하듯 곤혹스러운 결혼생활을 이어가던 릴리의 고단함을 나도 대충은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용처를 매번 따지는 남편에게서 빡빡한 생활비를 받아 그 일부를 다시 쪼개 사무실 경비에 보탰습니다. 그날 릴리 지갑에 있던 돈은 자기 손목시계를 팔아 집 전화세를 내고 남은 돈이라고 했습니다. 그녀의 허전한 팔목이 그날 따라 더욱 처연해 보였습니다.


나 역시 서울의 채권자들에게 비슷한 의심을 받던 터였습니다. 아무리 차근차근 설명하며 이해를 구해도 그들은 믿어주지도, 독촉을 멈추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을 탓할 수 없습니다. 나 스스로 제대로 납득할 수 없는 일에 대해 다른 사람을 무슨 수로 설득할 수 있겠어요? 당시 내 아내조차 사건의 자초지종을 믿지도 이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사건을 함께 겪은 사람은 하늘 아래 나와 릴리 오직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그것이,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전수관 사무실에 매일 출근하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만 서로를 완벽히 이해했으므로 오직 우리만 서로를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었으니까요. 동업은 실패했지만 최소한 우린 원수가 되진 않았습니다.

 

 

4.

거지가 되도 이런 문자는 계속 들어오네요?”


이미 거리가 어둑어둑해진 시간, 정비소에서 파워윈도를 수동식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하는 동안 내 핸드폰에 들어온 메시지를 보고 릴리가 장난을 걸어왔습니다. 저 창문수리비를 내고 나면 우리가 나누어 가질 돈은 거의 남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계속 풀 죽어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우울증이 끌고 들어가는 밑바닥엔 죽고 싶다는 마음만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억지로라도 힘을 내 마음을 다잡을 때 핸드폰에 스미싱 메시지가 들어온 것입니다.

 

귀하는 X X일에 있었던 사텔린도 경품추첨에서 3천만 루피아 상금에 당첨되었습니다. 상금을 인수하려면 X X일 이전까지 전화번호0815-xxxx-xxxx에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날만 벌써 세 번 들어온 메시지였어요. 세상에 우연이나 기적 같은 게 있을 리 없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던 시절, 한화 3백만원 상당 공짜돈이 생겼다는 메시지에 난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런데 그 문자를 지우려던 날 릴리가 황급히 막았습니다.


혹시 알아요? 한번 전화해 봐요? 정말 3천만 루피아 받는 게 맞으면 나 반만 줘요? ?”

턱도 없는 얘기야. 난 평생 뭐 하나 공짜로 당첨된 역사가 없어.”

한 번 전화해 보라니까요? 손해 나봐야 겨우 전화 한 통화 값인데…, 에이, 이리 줘 봐요.”


내 전화기를 빼앗아 전화를 걸 때까지만 해도 그녀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다분히 서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화를 끊을 때 그 장난기가 흥분으로 바뀌어 있었어요.


내 구좌번호 알려 줬더니 바로 입금했대요. 곧장 ATM 가서 확인하라 하네요? 빨리 가 봐요! 빨리!!”


그럴 리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릴리는 들떠서 계속 보챘고 나 역시 은행잔고 한번 더 확인하는 게 뭐 대수겠냐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차창수리가 끝나자 우린 가까운 BCA 은행을 향했습니다. 릴리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렸어요. 이건 사기에 협잡인 게 분명한데 금전적 손해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손끝 하나 사기꾼 원하는 데로 움직여 준다는 게 자존심 상했습니다. 하지만 모처럼 들뜬 릴리 기분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은행 앞에 차를 대자 릴리는 재빨리 ATM 앞으로 달려가 자기 카드로 잔액조회를 해 보더니 다시 전화기를 꺼내 들었습니다.


입금이 안된 것 같은데…, 다시 한번 확인해 주실래요?”


잠시 전화기 너머 상대방의 말을 듣던 릴리는 고개를 갸우뚱 하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뭐래?”

자기들은 분명히 송금을 했대요. 혹시 ATM 기계나 은행 전산망 문제가 있을지 모르니 한번 테스트를 해보래요.”

테스트? 어떻게?”

저쪽 핸드폰 번호에 요금충전을 해보래요. 뿔사가 들어오면 전산망에 이상이 없는 거니 돈도 바로 들어올 거라면서…”


뿔사는 선불제로 충전하는 통화요금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건 누가 봐도 뿔사를 공짜로 받아내려고 경품당첨 운운하는 파렴치한 사기였어요. 결국 그런 얘기를 들으려고 걸었던 통화비가 아까웠습니다. 하지만 만류에도 불구하고 릴리가 고집을 부렸습니다.


혹시 알아요? 10만 루피아 보내고서 정말 3천만 루피아가 들어올지?”

그럴 리가 없잖아? 분명 치졸한 사기야. 게다가 우린 지금 그 10만 루피아도 없잖아?”

내 통장에 10만 루피아 정도는 있어요. 미스터르한테 돈 달라 안할 테니 걱정 말아요!”


그녀는 살짝 화를 내기까지 했습니다. 지금이야 ATM으로 다양한 금액의 요금을 충전할 수 있지만 당시 ATM 시스템의 최소 충전액은 10만 루피아였어요. 한화 1만원 상당. 릴리는 기어이 고집을 부려 ATM에 다시 카드를 넣고 상대편이 불러준 전화번호에 10만 루피아를 충전해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통화.


 “10만 루피아 들어갔나요? , 그래요? 확인하고 전화 주신다고요? 알았어요. ATM 앞에서 기다리라고요?”  


잠시 후 릴리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온 상대방은 뿔사가 아직 들어오지 않았는데 아마 은행 전산망 문제가 아니라 개별 ATM 기계 문제인 것 같으니 다른 기계에서 다시 한번 송금해 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통장에선 이미 돈이 빠져나가 버렸고 이젠 더 이상 잔고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끊는 릴리의 어두운 표정은 곧 초조한 서러움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후 릴리는 10분마다 잔고를 확인했지만 그 허황된 3천만 루피아가 들어올 리 없는 일입니다. 다시 아까의 전화번호를 돌려 보는데 이번엔 전화기 전원이 꺼져 있었습니다. 릴리의 표정은 돌처럼 굳어버렸습니다.


그렇게 ATM 앞에서 한참 동안 머물면서 방금 전 자기 손으로 마지막 은행잔고를 사기꾼에게 송금했음을 스스로 수긍하기까지 한 시간 정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10시가 지나자 은행 경비원이 ATM 부츠의 금속 슬라이드를 내렸습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릴리는 할 수 없이 페로자에 오르며 애써 명랑해 보이려 했습니다.


돈이 무척 필요한 사람이었던 모양이에요. 우리한테까지 사기를 다 치고…”

처음부터 얘기했잖아, 사기라고. 바보같이…, 그까짓 것…, 잊어버려.”

“그래요, 그깟 10만 루피아, 정말 필요한 사람한테 …. 버렸다고 생각….”


억지로 농담처럼 얘기하려던 릴리는 그 말을 미처 마치지 못했습니다. 북받쳐 오른 흐느낌에 목소리가 갈라지더니 결국 두 뺨에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리고 말았어요. 그리고는 큰 소리로 목놓아 울기 시작합니다.  술라웨시 제재소사업이 망가져 갈 때 릴리가 울거나 실망하는 모습을 수없이 보았지만 그날처럼 서러운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그녀는 늘 눈물을 쓱쓱 닦고 일어서는 강한 여자였거든요.




 

5.

10여분을 달려 빠사데니아(Pasadenia) 아파트에 들어설 때까지도 릴리의 흐느낌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난 그녀를 로비 앞에 내려주는 대신 주차장에 잠시 차를 세우고 흐느낌이 잦아들기를 기다려 주었습니다. 그런 꼴로 집에 들어가도록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칫 쓸데없이 루벤을 걱정시킬 것이고 릴리는 참담한 기분인 채로 남편의 여러 질문에 답해야 테니까요.


그 순간 릴리와 내 지갑, 우리 통장 전체를 탁탁 털어도 그 합계가 방금 릴리가 송금한 10만 루피아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술라웨시에서 이미 한화 수십억 원이 증발해 버린 마당에 그깟 10만 루피아가 아쉽고 안타까워 우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기라는 걸 처음부터 뻔히 알면서도 스스로 걸려들고 만 우리의 절박함. 그래서 가슴을 쥐어 뜯게 만드는 끝도 없는 자괴감. 그런 것들이 릴리의 마음을 후벼 파고 있었습니다. 릴리의 마음을 헤집던 그 똑같은 칼날들이 그때 내 마음도 갈갈이 찢어발기고 있었습니다.


아무 생각하지 말고 잘 자 둬.”


아파트 로비에 내려 주면서 그렇게 얘기할 때까지도 릴리의 호흡에는 여전히 흐느낌이 남아 있었습니다. 릴리는 현관 앞 화단에 무릎을 안고 앉았어요. 흐느낌이 완전히 그친 들어가려는 거겠죠. 백미러에 비친 그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녀의 모습은 처연하기 그지없었고 어떤 위로도 해주지 못하고 떠나는 내 마음도 무겁기 짝이 없었습니다. 릴리와 거의 하루 종일 함께 있었지만 정작 해야 할 말은 꺼내지도 못한 채 당장 죽어버릴 것만 같은 우리의 절박함만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었습니다. 내 인생과 운명이 내 손을 떠나 있다는 느낌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아파트 정문을 나서면서부터 폭주하기 시작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갓길에 차를 세우고 운전대에 머리를 묻었습니다. ATM을 떠나면서부터 내내 참았던 눈물이 흐느낌과 함께 쏟아져 나왔습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차창이 고장나지 않았다면 그날 전수관 사무실에서 난 릴리에게 자카르타를 떠나 반둥에 가게 되었다는 말을 하려 했습니다. 앞서 밝힌 것처럼 우리가 안고 있던 시한폭탄의 타이머는 이미 제로가 되어 있었어요.  돈도 시간도 모두 떨어져버린 우리가 당장 어딘가 취직이라도 하지 않으면 그 시한폭탄은 여지없이 터져 우리 모두를 파멸시킬 터였습니다.  그러던 중 하필이면 자카르타에서 몇 시간 떨어진 반둥 봉제공장에서 며칠 후부터 출근하라 통보를 받은 것이 바로 전날 저녁이었습니다. 내 절박함을 간파한 공장 측은 그저 죽지 않을 정도의 야박한 조건을 제시했는데 난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파산할 당시 이미 결정되어 버린 건지도 모릅니다. 서로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 더 없는 위로가 되었는데 내가 갑자기 멀리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릴리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 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젠 더 이상 서로에게 기댈 수도 없고 앞으로 어떡해서든 각자 자립해 살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후 몇 년 간 말도 안되는 조건을 감수하며 직장 몇 군데를 전전하는 동안 전수관 시절 씨를 뿌렸던 미용기기 수입판매 사업이 선전하면서 난 마침내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릴리는 그사이 남자들만 우글거리는 깔리만탄 바뚜리찐 석탄광산에서 무작정 좌충우돌하며 새로운 경력을 시작한 후 지금은 술라웨시 동남부 꼬나웨 지역에 니켈광산 몇 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줄리아 로버츠 주연영화 에린 브로코비치를 좋아하는 릴리는 그 영화에서처럼 언젠가 내게 동그라미 많이 그려진 수표를 보내 줄 거라며 기염을 토하지만 사업이란 부침이 있기 마련이고 우린 여전히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래서 초심으로 돌아가려 마음을 다잡을 때면 늘 그 날을 기억하곤 합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나락의 밑바닥으로 침몰하던 우리들의 절박함 위로 더욱 짙은 어둠이 내리던 뿔로마스의 그날 밤을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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