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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소설

그의 원한

beautician 2020. 6. 5. 10:00

그의 원한

 

 

 

 

 

 

2년간 다녔던 회사를 나온지 10일차. 경제적으론 분명 곧 쪼들리기 시작하겠지만 그래도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 것은 그 비상식적인 아수라장을 떠났다는 사실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게 되어버린 사업구조 속에서 악의 충만한 두 사람이 서로 비수를 등에 숨기고 이용하려고 들던 곳에서 공연히 당사자도 아닌 내가 그 둘에게 놀아나 남에게 피해줄 바에 반드시 그 전에 정리하고 떠나겠다고 맘먹었던 터였다. 사실 사람들은 다 그런 판단하면서 산다.

 

사람이란 변해가는 존재라지만 큰 애 멜번으로 대학보낼 때 잔액증명 떼기 위해 도움주었던 10년 터울의 선배는 그 사이 취득한 인도네시아 국적과 알량한 현지 인맥을 휘드르며 남의 피해를 불사하고 노욕을 불사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언제였던가? 세월호에서 자식을 잃은 엄마 두 명을 자카르타로 모셔와 간담회를 가지려던 현지 교민단체를 그가 단체 간사들을 인도네시아 사회불안조장세력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자신은 애국심 충만한 인도네시아 국민으로서 그들을 당국에 고발하겠다고 위협했던 사건이 있었다. 단체의 간사들은 주로 학생들과 젊은 엄마들, 즉 진보적 성향을 마음껏 드러내도 보수꼴통 사업주나 상사에게 짤리거나 불이익 당할 리 없는, 그래도 여전히 사회적 약자일 수 밖에 없는 이들이었는데 그 선배로서는 쉽게 위협하고 간단히 짓누를 상대라 여겼을 것이다. 몇 차례 설전이 오가고 그 선배의 위협이 가중되던 시점에 약자들을 보호할 유일한 수단으로서 난 당시 상황을 딴지일보에 올려 응원여론을 조성하려 했다. 물론 그 선배의 신상은 노출시키지 않았지만 그가 그걸 직접 읽었다면 자기 얘기라는 걸 단번에 알았을 것이다. 사실 그게 골자이기도 했다. 자기 얘기라는 걸 알아야만 그가 시민단체 간사들에 대한 겁박을 멈출 테니까. 그 생각이 주효했다.

 

작년에 그 선배가 우리 회사일에 간여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는 처음부터 내가 있는 한 돕지 않겠다고 했단다. 최소한 자기가 진행하는 일에 날 끼워선 안된다고 강변했단다. 그가 그 기사를 읽은 게 분명했다. 물론 그랬으니 여론이 불리해지는 걸 알고 못이기는 척 시민단체 측과 화해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악감정을 품은 건 당연하다. 10년 선배로서 찌질하게 동문들 앞에서 후배 욕하는 건 자제했지만 사업적으로 만나 밥줄을 끊을 수 있다는 판단이 서자 주저없이 공격해 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원래 사회적 갑질이란 그런 식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그는 우리 회사 프로젝트를 위해 정부에 다리를 놓아 성사시켜 주겠다며 돈을 받아가면서도 매번 나를 내보내라고 사장을 종용했다. 그가 그런 식으로 나를 참소한지 7개월만에 내가 결국 회사를 나왔으니 난 나름 오래 버틴 셈이다.

 

공교로운 일은 내가 해고통지를 받던 그날, 그 선배도 자신이 1년 전 원래 있던 이들을 몰아내고 차지한 현지법인에서 한국 투자자들에 의해 해고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사장에게 자기가 자기 사람들 데리고 들어와 일해줄 테니 원래 있던 사람들 (나를 포함)을 다 내보내라 했다고 한다. 그건 그가 1년전 그 법인에서 한국 투자자들에게 했다는 말과 같다. 그는 최근 그런 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믿는 구석이 생긴 우리 사장은 자기 끼따스 연장에 생긴 문제를 보고하고 해결하려는 나에게 뜬금없이 책임을 묻고 말도 안되는 문제로 충돌한 끝에 사표를 받아내려 한 것이다.

 

"당신 월급 3분의 1로 줄이겠소. 그거 받고 다니려면 다니고 싫으면 사표 내시오."

 

이런 얘기는 15년전쯤에도 한번 들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엔 그때처럼 기가 막혀 말도 못하고 떨려날 만큼 경험없는 풋내기가 아니었다.

 

"그건 나가달라는 말씀인데 그럼 해고하시는 걸로 알고 퇴직금과 해고수당 정산하겠습니다."

 

그의 안면근육이 씰룩였다. 인도네시아 노동법 상 내가 사표를 내야만 퇴직금 안주고 내보내는 건데 의표를 찔리고 만 것이다. 그는 내 말실수를 유도하려 했지마 그는 자기 마음이 다 읽히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대표님쯤 되는 분이 퇴직금 몇 푼이 아까워 한번 뱉은 말을 번복할 리 없다 봅니다. 하지만 정 어려우시면 그 퇴직금 할부로 주셔도 됩니다."

 

그의 약점은 언제나 그 알량한 자존심이다. 결국 그렇게 마무리하고 나왔는데 그가 약정된 퇴직금을 약속대로 줄지는 가봐야 안다. 그가 약속을 제대로 지키는 걸 지난 2년 2개월간 본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그로부터 1주일쯤 지나 사장이 송별회하자며 나를 불러냈다. 내키진 않았지만 못나갈 자리도 아니었다. 거기서 그는 그 선배에 대한 욕을 늘어놓았다. 와서 일해주기로 한 사람이 매일 출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선배는 사장의 회사가 외국인투자법인인데 순수 로컬법인을 통해서만 프로젝트 진행이 가능하니 인도네시아 국적자인 자신을 대표이사로 하는 자본금 100억루피아 (10억원)짜리 회사를 만들어 달라 했다는 것이다. 사장은 그런 말도 안되는 사기를 시도당할 정도로 그에게 우습게 보인 것이다.

 

"그러면서 오늘도 그 영감한테 1억 루피아를 뜯겼어요."

 

한화 천만원 가까운 돈. 그는 직원들 월급과 수당을 깎고 퇴직금도 안주려 하면서 자기 술값만은 아끼지 않았는데 그렇게 여기저기 돈을 뜯기는 일도 한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를 도울 이유도 조언을 해줄 명분도 없다.

 

"혹시라도 시간 있으면 나중에 내가 도움 청하면 좀 도와줘요."

 

자기가 해고한 사람에게 그는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에게 받은 돈을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그에게 다시 돌아갔다가 그 책임을 내가 함께 잘 수는 없는 일이다. 그를 돕는 건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다. 주변 사람 그 누구도 보호하거나 책임지지 않고 자기 자신만 중요한 그는, 그리고 그 선배는 이제 나에게 그저 남일 뿐이다. 

 

그렇게 또 한 시대의 막을 내렸고 난 그 두 사람을 내 마음으로부터 지웠다.

 

 

2020.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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